하구로(중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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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함생
2.1. 탄생
2.2. 제 2차 세계대전
2.2.2. 산호해에서 과달카날까지
2.2.3. 엠프레스 오구스타 만 해전
2.2.4. 혼작전
3. 평가
4. 관련 링크


1. 개요[편집]


일본군 묘코급 중순양함 4번함 하구로.


2. 함생[편집]



2.1. 탄생[편집]


1928년 3월 24일에 진수되었으며, 1929년 4월 25일에 취역했다.


2.2. 제 2차 세계대전[편집]



2.2.1. 자바 해전[편집]


1942년 2월 27일부터 벌어진 1차 자바해전에서 자매함 나치와 함께 참전했다. 상대인 연합군 함대가 네덜란드 + 미국 + 영국 + 호주군으로 편성된 연합군이었으므로 언어 문제로 의사소통에 장애가 컸기에 효율적인 지휘가 어려웟던 데다 8인치 포 20문 vs 8인치 포 12문으로 화력에서도 열세였다.

그러나 양측 모두 정신나갈 정도로 명중탄을 내지 못했고, 너무 오랫동안 지속된 포격전에 지친 하구로의 탄약고 수병 2명이 열사병으로 전사했다. 그러나 지겨운 포격전은 하구로가 연합군 순양함 익세터에 명중탄 1발을 날리고, 구축함에 어뢰 1발을 먹여 격침시키면서 끝났다. 기관부가 손상된 익세터는 퇴각했고, 익세터의 후퇴를 엄호하는 연합군 구축함들과 일본 구축함들 사이의 전투가 이어지면서 연합군 구축함 1척이 침몰하고 일본 구축함 1척이 대파된 끝에 전투 후에 스크랩되었다. 양측 함대는 20시 52분에 다시 조우했으나 이번에도 명중탄은 나오지 않았다.

지겨운 전투가 끝난 것은 28일 새벽이었다. 나치와 하구로는 포격전을 벌이다가 갑자기 어뢰를 날렸고, 드디어 연합군 경순양함 2척을 격침시키는 데 성공했다. 장시간의 혈투(?) 끝에 승리한 나치와 하구로의 승조원을은 만세를 불렀는데, 연합군 군함들은 이 틈을 타서 탈출했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이다.

이후 3월 1일에 익세터는 자바를 탈출하려고 했으나, 하구로는 자매함 3척과 함께 익세터를 집중공격해서 침몰시켰다.

문제는 자바 해전에서 묘코급 자매들이 탄약을 너무 낭비했다는 것이다. 나치 문서에도 나오지만 1차 자바해전에서 나치와 하구로는 2000발 가까이 포격했는데도 명중탄은 하구로가 쏜 1발 뿐이었다. 불발탄 3발까지 더하면 무려 4발이다. 일본 대단해 이후 액세터와 다시 만났을 때도 묘코급 4척이 1400발 이상의 포탄을 퍼부어서야 익세터를 침몰시킬 수 있었다. 이때 어뢰는 무려 1발이나 명중시켰다. 일본 진짜 대단해 묘코급의 전투력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2.2.2. 산호해에서 과달카날까지[편집]


하구로는 자매함 묘코와 함께 산호해 해전에서 쇼카쿠와 즈이카쿠의 호위를 맡았지만 이 해전은 일본의 전략적 패배로 끝났다. 이후 미드웨이 해전동부 솔로몬 해전에도 참전했지만 특기할만한 전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2.2.3. 엠프레스 오구스타 만 해전[편집]


1943년 11월 1일, 미국은 부갠빌 섬의 엠프레스 오구스타 만에 상륙했다. 묘코와 하구로는 이들을 막기 위해 미군 상륙지를 포격하려 했으나 미군은 제39기동부대로 받아치면서 엠프레스 오구스타 만 해전이 벌어졌다. 일본군은 중순양함 2척(묘코, 하구로), 경순양함 2척(센다이, 아가노), 구축함 6척이었고 미군은 경순양함 4척과 구축함 8척이었으므로 겉보기로는 불리하지 않았지만, 일본군의 레이더는 고철이었고 미군의 레이더는 강력한 SG레이더였다.

해전에서 일본군이 일방적으로 얻어터졌다. 미군 경순양함들의 화력은 엄청났고, 센다이는 집중포화를 맞고 키가 망가졌다. 그래도 센다이는 계속 싸웠지만, 신형 경순양함 아가노는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미군에게 얻어맞다가 후퇴해버렸다. 센다이가 동반했던 구축함 사미다레와 시라츠유도 자기들끼리 충돌사고를 내서 박살나더니 후퇴했다. 센다이는 고립된 것이다. 묘코와 하구로도 피격당하면서도 산소어뢰를 발사하며 애를 써봤지만 제대로 된 명중탄이 나오지 않았고, 맞아도 적 경순양함의 철판을 뚫고 바다로 처박혔다. 게다가 묘코가 적의 포화를 피하다가 구축함 하즈카제를 들이받아 대파시켰다. 결국 일본군은 후퇴했고, 센다이는 최후까지 싸우다가 침몰했다. 하즈카제도 뒤를 따라 가라앉으면서, 일본군은 완벽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이후 일본 함대 사령관 오모리 제독은 졸렬한 지휘로 패배했다는 이유로 군에서 쫓겨났다.

자세한 내역은 묘코 문서 참조.


2.2.4. 혼작전[편집]


1944년 6월, 하구로는 비야크 섬에 증원군을 보내는 혼작전에 참가했다. 본대는 16전대(기함 아오바)였고, 하구로는 묘코와 함께 경계부대가 되었다. 그러나 2회에 걸쳐 실시된 혼작전은 미군의 방해로 기대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일본군은 3차 혼작전에서는 야마토급 전함 야마토와 무사시를 동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미군은 항모전단을 출동시켜 마리아나 제도를 공격해왔고, 일본군은 혼작전을 취소한 후 항모전단으로 받아쳤다. 하구로도 이 해전에 참가했지만 그게 하필이면 위대한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이었고 비야크 섬은 고립되었다.

혼작전의 자세한 내역은 아오바 항목 참조.


2.2.5. 레이테 만 해전[편집]


1944년 10월, 하구로는 묘코와 함께 구리다 함대의 일원으로 레이테 만 해전에 참가했다. 작전목적은 오자와 함대(기함 즈이카쿠)가 미끼 역으로 나서서 미 항모전단을 끌어내면, 그 틈에 레이테 만의 미군 상륙부대를 박살내는 것이었다. 자매함 나치와 아시가라는 시마 함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시부얀 해전에서 자매함 묘코가 대파되어 퇴각했고, 구리다 함대는 간신히 레이테 만에 접근했지만 사마르 해전에서 미군 구축함 히어만에게 일본 전함 야마토, 나가토, 하루나가 패배하면서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구로는 히어만과 같이 돌진하였던 호엘이 발사한 어뢰 1발를 맞기도 하였고 스크류와 2번 포탑이 파손되긴 했어도 살아남았으나, 묘코는 수리를 위해 일본으로 돌아가다가 잠수함의 어뢰에 맞고 6노트로 속도가 저하되어 겨우 싱가포르로 돌아왔고, 이후에는 수리불가판정을 받고 계류되었다. 나치는 시마 함대 기함으로 참전했다가 대파된 니시무라 함대의 중순양함 모가미를 들이받아 침몰시키고 스스로도 대파된 후, 미군의 공습으로 격침되었다. 결국 하구로는 자매함 아시가라와 함께 동남아시아에서 수송임무에 투입된다.

그러나 하구로는 2번 포탑과 스크류 손상을 수리받지 못했고, 이 때문에 속도와 화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수리를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이미 길이 막힌 상태였으니 장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2.2.6. 페낭 해전[편집]


1945년 5월 12일, 하구로는 안다만 보급작전을 위해 카미카제급 구축함 1번함 카미카제와 함께 출항한다. 그러나 보급물자를 최대한 많이 싣기 위해 무장을 일부 철거하면서까지 과적을 한 데다, 아직도 2번 포탑과 스크류가 수리되지 않았기에 전투력이 크게 떨어졌다. 게다가 영국군은 눈에 불을 켜고 일본군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고, 하구로가 출항하자마자 낌새를 알아채고 공습을 감행했다. 공습 자체는 하구로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햇지만, 일본군 초계기는 영국 동양함대 61임무부대가 쳐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전함 퀸 엘리자베스와 리슐리외가 편성되어 있는 시점에서, 하구로에게 승산은 하나도 없었다. 곧바로 하구로와 카미카제는 후퇴했지만 영국 구축함들에게 따라잡혔다.

1945년 5월 16일 페낭 해전에서 하구로는 처참하게 얻어맞았다. 스크류가 파손되었기에 안 그래도 안 맞는 포격이 더 안 맞는 데다가, 배에 잔뜩 실린 보급품은 맞았다 하면 불길에 휩싸였다. 결국 하구로는 침몰했고, 이것이 태평양 전쟁에서 벌어진 마지막 해전이 되고 말았다. 일본 해군은 이제 바다로 나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후 1945년 6월 8일, 아시가라도 방카 해협에서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 묘코는 전후생존함이 되었으나 영국군에게 넘겨졌고, 표적함이 되어 침몰하고 말았다.

그러나 하구로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2014년 5월 22일자 말레이시아 영자신문 더 스타 온라인(THE STAR ONLINE)에 따르면, 해적들이 하구로의 선체 일부를 몰래 인양해서 고철로 팔아먹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죽은 후에도 편히 잠들지 못한 셈이다.


3. 평가[편집]


하구로는 묘코급답게 전쟁 내내 부지런히 뛰어다녔지만, 엄청난 대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매일매일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함으로서 일본군의 전쟁 수행에 도움이 되기는 했으나, 포격전에서 보여준 밑바닥 명중률 등의 문제가 컸다. 게다가 하구로는 항공모함 호위 등,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역할을 많이 수행했기에 확실히 눈에 띄는 군함으로 남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하구로가 수훈함임은 확실하다. 화려하지 않아도 전장에서는 그런 배도 필요했고, 하구로는 나름대로 열심히 뛴 셈이다. 태평양 전쟁의 마지막 해전에서 침몰함으로서 자기 이름을 확실히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운은 없는 배였다. 침몰한 후에도 수난을 당한 걸 보면 확실히 그렇다고 볼 수밖에 없다.


4. 관련 링크[편집]


영문위키 하구로
일본어위키 하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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