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크라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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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피터 크라우치
Peter Crouch

본명
피터 제임스 크라우치
Peter James Crouch
출생
1981년 1월 30일 (43세)
잉글랜드 체셔주 메이클즈필드
국적
[[영국|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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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
신체
201cm[1] / 75kg
직업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유스 클럽
토트넘 홋스퍼 FC (1995~1998)
소속 클럽
토트넘 홋스퍼 FC (1998~2000)
덜위치 햄릿 FC (2000 / 임대)
IFK 헤슬레홀름 (2000 / 임대)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00~2001)
포츠머스 FC (2001~2002)
아스톤 빌라 FC (2002~2004)
노리치 시티 FC (2003 / 임대)
사우스햄튼 FC (2004~2005)
리버풀 FC (2005~2008)
포츠머스 FC (2008~2009)
토트넘 홋스퍼 FC (2009~2011)
스토크 시티 FC (2011~2019)
번리 FC (2019)
국가대표
파일: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42경기 22골 (잉글랜드 / 2005~2010)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개인 기록
5.4. 클럽 기록
5.5. 국가대표 기록
6. 여담



1. 개요[편집]


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현역 시절에는 우월한 제공권을 바탕으로 공중을 지배하는 타깃맨이었다. 현재 PL 헤더 득점 51득점 으로 1위에 랭크 되어있다.[2]

2. 클럽 경력[편집]



2.1. 커리어 초반[편집]


토트넘 핫스퍼의 유스팀 출신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퍼스 입단은 2009년이 다 돼서야 이루어졌다. 10년을 돌고 돌아 고향에 돌아온 것. 그동안 저니맨을 방불케 하며 팀을 이리저리 옮겼는데, 국내 팬들에게 인상이 남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리버풀 FC 시절이다.

EPL에서 두각을 처음 나타낸 것은 2002년 포츠머스 FC에 있을 때인데 좋은 실력을 보여주며 37경기 18골을 기록하며 팀을 먹여살렸다. 아스톤 빌라 FC에서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 2시즌 동안 출전 기회가 손꼽힐 정도였으며 그동안 다른 팀으로 임대를 가서 스탯을 쌓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이후 사우스햄튼 FC으로 이적하여 31경기 15골의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이때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던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의 눈에 띄어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발탁되었다. 사우스햄튼이 강등당하자 그를 노리고 있던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에 의해 05-06 시즌, 리버풀로 이적한다.


2.2. 리버풀 FC, 포츠머스 FC[편집]


리버풀에서의 데뷔 골은 상당히 늦었는데, 첫 19경기 간 무득점을 이어갔다. 심지어는 스티븐 제라드가 전담하던 페널티 킥을 데뷔 골을 위해 양보해주기까지 했는데 실축하기도 했다. 골이 없었음에도 불구 그렇게까지 큰 비난은 듣지 않았는데 특유의 피지컬과 발재간을 이용한 찬스 메이킹이 제법 호평받았기 때문이다.[3] 결국 위건전에서 멀티 골을 작렬하며 골 가뭄은 해소했다. 05-06 시즌 FA 컵 결승전에서 제라드에게 어시스트를 넣기도 하는 등 중요한 경기에서도 제법 좋은 활약을 이어갔다. 06-07 시즌에는 모든 대회 통합 18골을 기록하며 리버풀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기도 했다.

문제는 다음 07-08 시즌에 페르난도 토레스가 영입되면서 토레스, 디르크 카윗에 이은 3순위 스트라이커 옵션이 된 것이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서브 출장에 그쳤지만 그래도 07-08 시즌에는 전대회 포함해 36경기 11골을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결국 언해피를 띄우다 주전 출장을 보장받을 수 있는 팀으로의 이적을 희망해 1,1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옛 팀 포츠머스로 이적했다.

다시 돌아온 포츠머스 FC에서는 부실한 미드필더진에도 불구하고 저메인 데포와 함께 좋은 활약을 펼치며 크라우치-데포 투톱이 얼마나 강력해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파일:크라우치 로봇춤.gif
리버풀 시기 그의 예능감은 절정에 달해 희대의 골 세리머니 로봇춤이 영국 전역을 강타해 잉글랜드 대표팀 캠프를 찾은 왕세자님까지 따라 하는 위엄 넘치는 개인기였다. 또한 위의 짤방을 생산해내며 해외 축구팬들에게 여러 소스와 작품을 선사하였다.

2.3. 토트넘 홋스퍼 FC[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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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여름, 포츠머스 FC의 재정 악화로 인해 핵심 선수단이 매물로 올라오면서 니코 크란차르, 저메인 데포와 함께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했다.[4] 거의 10년 만에 자신을 발굴한 팀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게 돌아온 토트넘 핫스퍼에서 다시 한번 크라우치-데포 투톱의 강력함을 보여주었고, 맨체스터 시티 FC와 4위 자리를 놓고 다툰 끝 토트넘의 홈에서 피터 크라우치의 결승골로 쐐기를 박아 4위를 확정짓게 된다. 이렇게 해리 레드냅 감독의 지휘 하에 4위를 차지하며 챔피언스 리그까지 진출하여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다.

09-10시즌 리그 18라운드 블랙번 원정경기에서 크란챠르와 제나스의 패스를 받아 멀티골을 작렬 팀은 2대0으로 승리

리그 컵 4라운드에서 하부리그팀과의 경기에서 헤트트릭을 하였다

2010-11시즌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영보이즈와의 홈 경기에서 헤트트릭을하여 팀을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시켰다

허나 10-11 시즌에는 뛰어난 미드필더 진이 포진해있음에도 불구하고 리그 4골에 불과한 스탯으로 까이는 중이다. 문제는 이런 크라우치가 그나마 현 토트넘 공격진 중에 제일 양호한 상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데 있다. 이 시대 거절의 아이콘, 토트넘은 이러한 공격수 전체 부진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겨울 이적 시장에서 쓸만한 원톱들에게 수많은 오퍼를 넣었지만 모조리 거절당하고 말았고, 결국 당분간은 크라우치의 원톱 자리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10-11시즌 리그 5라운드 울버햄튼전 , 7라운드 아스톤빌라전에서 각각 2도움을 기록했으며 10-11시즌 리그 32라운드 스토크시티와의 홈 경기에서 멀티득점을 하였다

AC 밀란과의 챔스 16강 1차전에서 아론 레넌의 패스를 결승골로 바꿔 넣으면서 이름을 떨쳤다. 어차피 아는 사람은 다 웃으며 넘기지만, 챔스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꽤 임팩트가 남았을듯.

10-11시즌 챔피언스리그 9경기 4골 2도움을 하여 리그보단 득점력이 좋았다

그런데 10-11 리그 36라운드 경기 맨시티 전에서 자책골을 넣어 0-1로 지게 하면서 리그 4강 희망을 아주 날려버렸다. 공교롭게도 맨체스터 시티 FC를 비웃으며 우리야말로 리그 4강이라고 큰소리쳤던 적이 있던 그였다.

2.4. 스토크 시티 FC[편집]


파일:Peter Crouch.png}}}
결국 2011-12 시즌 여름 이적 시장 마지막 날 중하위팀인 스토크 시티 FC이적했다. 선덜랜드 AFC 이적설이 있었지만 예상을 뒤엎은 것이다.

11-12 시즌 vs 맨체스터 시티 FC 전에서 그림같은 중거리 발리 슈팅을 성공시키며 맨시티의 1위 싸움에 재를 뿌렸다.[5] 가히 11-12 시즌의 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역시 고춧가루 부대 스토크 시티다.

파일:귀여운 크라우치.gif
14-15 시즌 뉴캐슬전에서 새로운 세레머니를 선보였다.

시즌 최종전에서 친정팀 리버풀을 6-1로 떡실신시키는 마지막 헤더 골을 넣으면서 EPL에서만 헤더로 47골을 기록, 종전 앨런 시어러가 보유하고 있던 EPL 역대 최다 헤더 골 기록(46골)을 갈아치웠다.


2.4.1. 2015-16 시즌[편집]


15-16 시즌은 전반기가 지나도록 골은 고사하고 출전 기회조차 못 얻고 있으며 완전히 공기화되었다. 전반기가 지났지만 리그에서 3경기 45분 출전에 그치고 있다. 아무래도 아르나우토비치-샤키리-보얀이 너무 잘하는 탓에 주전에서 밀려버렸다.

컵대회에서는 하부 리그 팀을 상대로 2골을 넣긴 했다. 스토크 지역지에서는 마크 휴즈의 팀 개선을 위해 베테랑 선수들을 빼고 젊은 선수 위주의 팀을 만들려고 하는데, 이 때문에 15-16 시즌 이후 크라우치는 스토크를 떠날 확률이 높아졌다고 한다. 리그 선발은 전혀 참가 한 적 없고, 몇 번의 교체 출전만 했던 크라우치인데 아마 크라우치로서도 선수 생활 지속을 위해서라면 시즌 이후 이적을 타진할것으로 보인다.


2.4.2. 2016-17 시즌[편집]


16-17 시즌 EFL컵 2R 4부 리그소속의 스티버니지 FC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팀의 4-0 대승에 기여했다,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듯, 그럼에도 전반기 월터스에게 밀려 출전 기회를 못 얻고 있었다.

그러나 월터스가 키패스에도 기회를 못 살리는 부진한 모습을 보여줘 프리미어리그 19R 경기에 오랜만에 출전했다. 풀리스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숫놈축구를 보여주며 독보적인 리그 1위인 첼시를 바짝 따라갔다, 비록 2-4로 패배했지만 36의 나이가 무색한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회를 많이 얻을것으로 보인다.

프리미어리그 20라운드 왓포드전에서 선발 티켓을 따내었고 팀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면서 안정적으로 2-0 승리를 거뒀다. 프리미어리그 21라운드 선더랜드와의 홈경기에서는 선발 출전하여 1골 1어시를 기록하면서 맹활약하여 3대1 승리를 이끌어내었다.

프리미어리그 23라운드 에버튼전에서 전반 7분만에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쇼크로스의 자책골로 1대1 무승부를 거두었다.

프리미어리그 34R 스완지전 자신의 헤더 통산 50골을 달성할 수 있는 경기(34R 당시 49골)에 선발 출전 했으나,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2-0 패배를 지켜봤다. 경기 막바지 흥분했는지 톰 캐롤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고 옐로우 카드를 받는 모습을 보여줬다.

2017년 2월 EPL역대 최고령 100호골을 달성했다.

프리미어리그 37R 아스날전에서 교체투입되어 신의 손으로 한 골 넣었다. 16-17시즌 프리미어리그 최종 스텟은 27출전(13선발) 7골 2어시.


2.4.3. 2017-18 시즌[편집]


이번 시즌은 주전보다는 제공권으로 인해 생기는 이점을 기반으로 후반 막바지에 교체되는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 1R 에버튼전 교체되어 자주 헤더를 땄으나 1-0 패배.

프리미어리그 3라운드 웨스트 브롬전 막 합류해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아메드 헤가지가 걷어낸다는 공이 공교롭게도 크라우치의 헤더 사거리로 날아왔다. 크라우치는 놓치지 않고 그대로 헤더로 마무리했고 1-1 무승부.

프리미어리그 7R 사우스햄튼전 후반 베라히노와 교체로 들어와 역전골을 따냈다. 베라히노는 페널티 킥 실축했다...

한국 시간으로 2017년 11월 4일 레스터 시티와의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 후반에 교체로 들어와 73분에 헤더 골을 넣어 동점을 만들며 2-2 무승부를 이끌어 냈다.

첼시가 알바로 모라타의 백업으로 앤디 캐롤을 영입명단에 올렸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있었으나, 캐롤의 부상으로 물건너가자, 더욱 충격적으로 크라우치를 영입한다는 소식이 들렸으나, 에딘 제코로 선회하였다. 그리고 올리비에 지루를 영입했다-...?-


2.4.4. 2018-19 시즌[편집]


여전히 백업 공격수로 후반전에 교체 옵션으로 주로 나왔다. 모든 대회를 합쳐서 26경기 2골 1어시로 표면적인 성적은 좋지 않아보이나 출전 시간이 612분에 불과하고 70분 이상 뛴 경기가 단 3경기 뿐인 점을 감안하자.


2.5. 번리 FC[편집]


2019년 1월 31일(현지시간) 강등권 경쟁을 펼치고 있는 번리 FC로 이적했다. 번리 주요 공격수들의 부진이 길어지는 상황이라 강등을 면하기 위해 공격진에 새로운 옵션이 필요했고, 장신의 크라우치를 낙점한 것. 크리스 우드애슐리 반스에게 주전을 맡기고 교체 멤버로 주로 나설 것으로 보이며, 크라우치 영입과 함께 스왑딜 형식으로 샘 보크스가 스토크 시티로 이적했다. 등번호는 15번으로 배정 받았다.

사우스햄튼 전에 첫 출전을 해서 후반전 추가 시간 극적인 페널티킥을 얻어내는데 기여했고, 그 덕에 팀은 1-1 무승부를 기록해서 무패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다.

18-19 시즌이 끝나고 계약이 만료되었다. 번리의 감독 션 다이치는 라커룸에서의 영향력과 그의 경험, 공중볼 싸움 능력 때문에 그를 계속 데리고 있고 싶어했고, 계약 만료 이후에도 꾸준히 크라우치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원하면 계약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하였으나, 결국 2019년 7월 12일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사우스햄튼 FC에서의 활약으로 스벤예란 에릭손 잉글랜드 감독의 눈에 띄어 2005년 5월에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발탁되었고, 콜롬비아전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2006년 3월에 우루과이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했고, 그해 6월 자메이카와의 친선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렇듯 리버풀 FC 입단 이후 계속해서 대표팀에 발탁되어 장신을 통한 서브 옵션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던 크라우치에겐 정말 천운이 따른 기회가 주어졌는데, 2006 FIFA 독일 월드컵 직전에 웨인 루니가 부상을 당하며 조별 예선 초반 투입이 불투명해지자 마이클 오언과의 투톱 파트너로 낙점받아 당당히 주전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루니가 여러 노력 끝에 조별리그 3차전에서 빠르게 복귀를 하자 크라우치는 다시 벤치로 돌아갔는데 시작한지 3분만에 오웬이 부상당하여 크라우치가 다시 투입되었다. 토너먼트에서는 스티븐 제라드-프랭크 램파드 라인의 공존을 위해 투톱 대신 홀딩 미드필더를 1명 더 넣는 전술로 인해 벤치에서 시작했지만 후반전에 교체로나마 투입되었다. 어쨌든 독일 월드컵 32강 조별예선 트리니다드 토바고전에서 골을 넣기도 하는 등 주전 스트라이커로 자기 역할은 했다.

2006년 8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진행된 UEFA 유로 2008 예선에서는 총 5골을 뽑아내며 주 득점원으로서 제 몫을 해냈으나, 정작 잉글랜드는 크로아티아러시아에 밀려 조 3위를 기록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파비오 카펠로가 부임 첫 경기부터 득점을 뽑아내는 등 카페요 체제에서도 계속해서 발탁되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 총 4골을 기록하며 본선 진출에 기여했다. 본선 진출 확정 이후 친선경기에서도 골 맛을 이어갔으며, 본선 명단 23인에 포함되었다. 본선에서는 에밀 헤스키웨인 루니의 백업 역할을 맡았으나, 16강 독일전에서 4-1로 패배해 탈락했으며, 크라우치도 단 2경기 교체 출전에 그쳤다.

토트넘 홋스퍼 FC에서 2010-11 시즌에 리그 34경기 4골에 그치는 등 부진하자 점차 국대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2011년부터 카펠로 감독이 경질되던 2012년 2월까지 단 한 경기도 나오지 못했다. 2011-12 시즌에는 스토크 시티 FC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UEFA 유로 2012 본선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이후 로이 호지슨 당시 잉글랜드 감독의 말에 따르면 원래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이것을 크라우치가 거부했다고 하는데, 크라우치는 이에 반박하며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후 크라우치는 공식적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지 않았지만 쟁쟁한 자원들에 밀려 아예 소집조차 되지 않으며 국가대표 커리어가 자연스레 종료되었다. 결국 크라우치의 공식적인 국가대표 마지막 경기는 2010년 11월 17일 프랑스와의 친선경기가 되었다.[6]

4. 플레이 스타일[편집]


2m가 넘는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발재간과 볼 트래핑이 꽤나 안정적이며 주력도 괜찮고 점프력을 비롯한 각종 운동 능력도 좋은 편이었다. 다만 엄청나게 마른 체형(2010년 월드컵 당시 제출한 프로필상에선 79kg이다.)[7] 이 때문에 피지컬이 약하다는 편견이 있지만 그러나 경기를 지켜본다면 공중볼 다툼에 몸싸움이 불가피하므로 몸싸움도 꽤 하는 선수. 세트피스 상황에서 큰 키를 이용해서 상대 수비를 완전히 깔아뭉개며 헤더를 하고, 몰래 손도 쓰는 등 거칠고 더러운 플레이를 보여준다.[8][9] 키 때문에 나머지 부분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경우가 있다. 단, 최전방 공격수 치고는 슈팅(헤더 제외)정확도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헤더에 한해서는, 프리미어리그 최다 헤더 골 보유자일 만큼 키 값을 충분히 했다.

어린 시절에는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지만, 30살에 가까워지면서 스타일을 타겟맨으로 완전히 굳힌 유형이다. 따지자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플레이 스타일 행보가 유사하다.

압도적인 신장을 이용한 제공권 장악력을 통해 팀원들에게 세컨볼 찬스를 내어주는 플레이에 굉장히 능하다. 일반적으로 장신 선수들이 서전트 점프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크라우치는 점프력 자체도 굉장히 뛰어난 편이다. [10] 공중볼을 이용한 전개 방식, 등지는 플레이를 통한 전개 방식에 한해서 월드 클래스로 불리울 자격이 충분했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느린 주력과 2% 부족한 발밑이다. [11] 또한 큰 경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지만 약팀과의 경기에서 기복을 보이는 날이 많았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다소 아쉬운 득점력과는 다르게 유럽 클럽대항전에서의 기록은 매우 좋다. 총 50경기 24골로 거의 2경기 당 1골에 육박한다. 8경기 0골이었던 2005-06 시즌을 제외하면 유럽 클럽대항전만큼은 준수한 득점 기록을 보여주었다. 리버풀 FC가 라파 베니테스 시절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데 기여했다. 또한 토트넘에서도 2010/11시즌 리그보다 챔스에서 더 많이 득점했고 소속팀의 챔피언스리그 8강을 이끌기도 했다. 국가대항전에서도 2경기 1골에 가깝게 좋은 기록을 보여주었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2. 개인 수상[편집]


  • 퀸즈 파크 레인저스 올해의 선수: 2000-01
  • 포츠머스 올해의 선수: 2001-02
  • 스토크 시티 올해의 선수: 2011-12
  • 스토크 시티 올해의 골: 2011-12


5.3. 개인 기록[편집]




5.4. 클럽 기록[편집]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0-01
QPR
-
-
-
1
-
-
-
-
-
-
-
-
1
-
-
1시즌
합계
-
-
-
1
-
-
-
-
-
-
-
-
1
-
-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1-02
포츠머스
37
18
-
-
-
-
-
-
-
-
-
-
37
18
-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1-02
아스톤 빌라
7
2
2
-
-
-
-
-
-
-
-
-
7
2
2
2002-03
14
-
-
-
-
-
-
-
-
-
-
-
14
-
-
2003-04
16
4
3
2
-
1
-
-
-
-
-
-
18
4
4
3시즌
합계
37
6
5
2
-
1
-
-
-
-
-
-
39
6
6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3-04
노리치
15
4
-
-
-
-
-
-
-
-
-
-
15
4
-
1시즌
합계
15
4
-
-
-
-
-
-
-
-
-
-
15
4
-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4-05
사우스햄튼
27
12
6
4
3
-
-
-
-
-
-
-
31
15
6
1시즌
합계
27
12
6
4
3
-
-
-
-
-
-
-
31
15
6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12]
기타 컵 대회[13]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5-06
리버풀
32
8
5
7
3
1
8
-
-
2
2
-
49
13
6
2006-07
32
9
6
2
1
1
15
7
-
1
1
-
50
18
7
2007-08
21
5
1
7
2
1
8
4
2
-
-
-
36
11
4
3시즌
합계
85
22
12
16
6
3
31
11
2
3
3
-
135
42
17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14]
기타 컵 대회[15]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8-09
포츠머스
38
11
5
4
1
-
6
4
-
1
-
-
49
16
5
2시즌
합계
75
29
5
4
1
-
6
4
-
1
-
-
86
34
5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16]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9-10
토트넘
38
8
6
9
5
1
-
-
-
-
-
-
47
13
7
2010-11
34
4
6
1
-
-
10
7
2
-
-
-
45
11
8
2011-12
1
-
-
-
-
-
-
-
-
-
-
-
1
-
-
3시즌
합계
73
12
12
10
5
1
10
7
2
-
-
-
93
24
15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17]
기타 컵 대회[18]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11-12
스토크
32
10
2
5
2
-
3
2
1
-
-
-
40
14
3
2012-13
34
7
4
4
1
-
-
-
-
-
-
-
38
8
4
2013-14
34
8
5
4
2
-
-
-
-
-
-
-
38
10
5
2014-15
33
8
2
5
2
-
-
-
-
-
-
-
38
10
2
2015-16
11
-
1
7
2
-
-
-
-
-
-
-
18
2
1
2016-17
27
7
2
2
3
-
-
-
-
1
-
1
30
10
3
2017-18
31
5
2
3
1
-
-
-
-
-
-
-
34
6
2
7시즌
합계
202
45
18
30
13
-
3
2
1
1
-
1
236
60
20
18시즌
통산
514
130
58
67
28
5
50
24
5
5
3
1
636
185
69


5.5. 국가대표 기록[편집]


소속 대표팀 }}}
연도 }}}
경기 }}}
득점 }}}
도움 }}}
잉글랜드
2005
4
-
1
2006
12
11
-
2007
8
3
1
2008
6
-
1
2009
6
4
-
2010
6
4
1
통산
42
22
4


6. 여담[편집]


  • 외모로 보면 잘생긴 편에 속하지만 영미권에서는 체형 때문에 그리 외모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파일:잘생긴 크라우치.jpg

  • 생긴 건 영락없는 농구선수 내지는 배구선수인데 축구선수를 하고 있다. 키가 2m가 넘는데 전성기 시절엔 점프 자체도 사기였다. 상대 수비보다 머리 몇개가 위에 더있다.
파일:크라우치제공권.jpg

  • 트위터로 방탄소년단 인증을 했다.#[19]


  • 영국에서 태어난 순수 영국인이지만 부모님 일 때문에 어린 시절 싱가포르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

  • 노동계급 출신인 대부분의 축구선수와는 달리 광고업체 BBH의 디렉터의 아들인 중류층 출신으로 어릴 때 사립학교 입학시험에 응시했으나 떨어진 적도 있다.

  • 2007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을 앞두고 디르크 카윗을 치어 죽일 뻔했다고 한다.# 결승을 일주일 앞두고 동료들과 놀러가 레이싱 카트를 탔는데, 트랙에서 피트로 빠르게 돌아올 때 뒤늦게 카트에 브레이크가 없다는 걸 알아서 속도를 늦추지 못했다. 그 때 자기 앞에 샤비 알론소디르크 카윗이 보이자 누가 더 가치있는 선수인지 판단하고는 카윗 쪽으로 방향을 꺾었다.[20] 카윗이 다리를 들고 점프로 피해서 가까스로 다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 2018년 아직 현역 선수임에도 축구 칼럼을 쓰고 있는데, 손흥민을 아주 마음에 들어하는 듯하다. 호베르투 피르미누와 함께 언급하며 "피르미누와 손흥민은 끊임없는 활동량을 통해 축구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최고의 팀들을 더욱 향상시키고 있다. (중략)... 이들은 최근 축구에서 기대를 주고있는 새로운 유형의 선수들이다." 며 극찬하였다.

  • 여러 일화에서 보이듯 국가대표, 빅클럽 경력에 모델 아내를 가진 부자 스타 선수인데도 축구선수 생활에 대해 가식적인 부분 없이 위트있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 인기가 많다. 축구선수로서의 생활에 대한 유머스러운 책을 쓴 적이 있다.

  • 은퇴 후에는 BBC에서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주에 한 번 축구 관련 방송일도 하고 있다.

  • 크라우치 하면 흔히 언급되는 유명한 인터뷰가 한 가닥 있는데...
Q: 축구선수가 안 되었으면 뭐가 되었을 거라 생각하는가?
A: 동정.
  • 본인의 자서전의 93%를 본인이 구매하였다. 판매량이 4,300부였는데 그 중에서 4,000부.


  • 리버풀에 첫 입단했을 때 일주일을 호텔에서 지냈는데, 그 호텔 직원에게 반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걸 다른 선수들에게 얘기하고 다녔더니 팀 동료였던 제이미 캐러거가 사람들을 불러모은 후 다시 말해보라 했는데, 사실 그 직원은 당시 같은 리버풀 선수였던 샤비 알론소의 아내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캐러거에게 물 먹은 셈.#

7. WAGs[편집]


파일:피터 크라우치 부인.jpg
파일:피터 크라우치 부인1.jpg
파일:피터 크라우치 부인2.jpg
파일:피터 크라우치 부인3.jpg
파일:피터 크라우치 부인4.jpg
파일:피터 크라우치 부인5.jpg

1986년생 영국 톱모델 아비게일 클랜시와 2000년대 중반부터 사귀기 시작해 2011년에 결혼했다. 애비 클랜시도 175cm나 되어 상당한 장신이지만 2m를 넘는 피터 크라우치에 비하면 꽤 많이 작다.당연하지 피터 크라우치와의 슬하에 아들이 2명, 딸이 2명 있다.-크라우치..... 마른장작.....-

세계적인 남성잡지 FHM이 선정한 2010년 세계 최고 섹시녀 10위에 올랐을 정도의 미녀. 그야말로 아름답다. 몸매도 상당히 글래머러스하고 다리도 길다. 모델인 만큼 비율역시 좋다.


[1] #[2] 2위는 46골의 앨런 시어러[3] 그리고 이 시즌 경쟁자였던 지브릴 시세, 페르난도 모리엔테스는 크라우치보다 더 부진했다. 그나마 겨울 이적 시장에 리버풀로 돌아온 로비 파울러가 적절한 활약을 보였지만 나이가 있어서 주전으로 오래 쓰기엔 무리였다.[4] 저메인 데포는 웨스트햄 유스 출신으로 토트넘이 로비 킨-디미타르 베르바토프 투톱 체제를 가동하던 시절 국내 팬들에게 "小포"라고 까일 만큼 낮은 결정력 때문에 포지션 경쟁에서 밀렸었다. 하지만, 베르바토프가 오기 전까지는 로비 킨과 함께 주전이었다. 베르바토프가 오면서 로비 킨과 호흡이 상당히 좋으니 밀려버린 것이다. 어쨌든 그 뒤 포츠머스에서 기량을 회복하여 토트넘에 복귀했다는 점에서는 크라우치와 닮았다. 크라우치처럼 10년 넘게 못 돌아온건 아니지만 1년 반 걸렸다.[5] 2012년 3월 26일 기준으로 아직 한 경기를 덜 치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승점이 같은 상태며 골득실차도 4점차에 불과. 게다가 맨유의 다음 경기는 풀럼이다.[6] 이 경기에서 골도 기록했다.[7] 키에 비해 굉장히 마른 편이다. 역시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유명한 케빈 듀란트가 208cm에 109kg, 더스틴 니퍼트가 203cm에 105kg이다. 이 둘보다도 30kg가 덜 나간단 소리다. 실제 체중은 프로필상보다는 많이 나가겠지만 그래도 90kg이 채 안 될 것으로 추정된다.[8] 대표적으로 2006년 독일 월드컵 조별예선 잉글랜드 Vs 트리니다드 토바고 전. 경기 내내 상대 중앙수비수 산초와 로렌스 듀오에 완전 쳐발렸지만 심판의 눈을 속이며 산쵸의 머리끄댕이를 완벽하게 잡아당겨 득점에 성공했다.[9] 이 양반이 스토크로 이적하는 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체형을 걱정하며 “스토크에 가면 같은 팀에 치어죽는거 아니냐” 등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독보적인 팔길이를 이용하여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타격하며 스토크 시티에 완벽히 적응하여 또 하나의 싸움꾼이 되었다.[10] 골키퍼의 손보다 그의 머리가 더 위에 있는 경우도 많이 보였다.[11] 2m에 육박하는 얀 콜러, 슈테판 마이어호퍼, 보그단 밀리치 보다는 좋은 발재간을 가졌다.[12] UEFA 챔피언스 리그[13] FIFA 클럽 월드컵, FA 커뮤니티 실드[14] UEFA 컵[15] FA 커뮤니티 실드[16] UEFA 챔피언스 리그[17] UEFA 유로파 리그[18] EFL 트로피[19] 사진에서 엄청나게 키가 큰 사람이 크라우치다.[20] 아이러니하게도 카윗이 챔스 결승전에서 만회골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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