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로 페라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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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로 페라리스의 수상 이력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파일:Pietro Ferraris.jpg
이름
피에트로 페라리스
(Pietro Ferraris)
생년월일
1912년 2월 15일
사망년월일
1991년 10월 11일 (향년 79세)
국적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출신지
이탈리아 왕국 베르첼리
포지션
아웃사이드 포워드
신체조건
174cm | 70kg
소속팀
FC 프로 베르첼리 1892 (1929-1932)
SSC 나폴리 (1932-1936)
암브로지아나 인테르 (1936-1941)
토리노 FC (1941-1948)
노바라 FC (1948-1950)
국가대표
14경기 3골 (1935-1947)



1. 개요
2. 생애[1]
2.1. 선수 생활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4. 뒷이야기
5. 수상
5.1. 클럽
5.2. 국가대표



1. 개요[편집]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2][편집]



2.1. 선수 생활[편집]



2.1.1. 클럽[편집]


1929년 고향팀 FC 프로 베르첼리 1892에서 데뷔한 페라리스의 데뷔전 상대는 트리에스티나였는데 베르첼리는 1대3으로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하지만 페라리스의 데뷔골 상대 역시 트리에스티나였고 1930년 4월의 경기에선 베르첼리가 6대0으로 대승을 거둬 지난번의 패배를 설욕했다.

프로 베르첼리에서 실비오 피올라와 호흡을 맞추며 3시즌간 86경기 출전, 19골을 넣은 페라리스는 1932년부터 SSC 나폴리의 선수가 되었다. 나폴리에서 페라리스는 3번째 시즌까지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4번째 시즌에는 1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1936년에 페라리스는 암브로지아나 인테르로 이적, 세리에 A코파 이탈리아 등에서 우승 기록을 쌓아나갔다. 암브로지아나에서는 주세페 메아차와 함께 세리에 A 2번, 코파 이탈리아 1번의 우승 기록을 남겼고 1941년부터 토리노 FC로 다시 팀을 옮겼다.

비록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잠시 축구 대회들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페라리스는 발렌티노 마촐라 등과 4번 더 세리에에서 우승하며 그란데 토리노의 전설을 써내려갔다. 그러다가 1948년, 페라리스는 노바라 FC에서 실비오 피올라와 재회,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냈다.[3]


2.1.2. 국가대표[편집]


페라리스의 이탈리아 대표팀 데뷔전은 1935년 2월 17일에 있었던 프랑스전이었고 이탈리아는 주세페 메아차의 2골로 2대1 승리를 챙겼다.

1938년 월드컵 전까지 2경기의 A매치에 더 출전한 페라리스는 포초 감독이 이끄는 월드컵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어 프랑스에 갔다. 페라리스는 첫 경기였던 노르웨이전에서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로 선발 출전, 경기 시작 2분[4] 만에 이탈리아의 1938년 월드컵 첫 골이자 자신의 A매치 마수걸이 골을 넣었다. 이탈리아는 노르웨이를 상대로 연장까지 치른 끝에 실비오 피올라의 결승골로 2대1 승리를 챙겼다. 하지만 페라리스는 지노 콜라우시에게 자리를 내주며 그의 월드컵 출전은 이 경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페라리스는 1947년까지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뛰었으며 출전한 14경기에서 3골을 넣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페라리스의 주 포지션은 아웃사이드 포워드로 센터 포워드도 소화할 수 있었다.

빠르고 효율적이며 직관적이면서 지능적인 선수였다. 기술적으로 뛰어났고 창의성과 득점을 노릴 수 있는 시야도 갖춘 선수로 정확한 슈팅을 구사했다.


4. 뒷이야기[편집]




5. 수상[편집]



5.1. 클럽[편집]


  • 세리에 A 우승 6회: 1937-38, 1939-40(이상 암브로지아나 인테르), 1942-43, 1945-46, 1946-47, 1947-48(이상 토리노 FC)
  •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1938-39(암브로지아나 인테르), 1942-43(토리노 FC)
  • 세리에 A 준우승 2회: 1940-41(암브로지아나 인테르, 1941-42(토리노 FC)


5.2. 국가대표[편집]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3] 이 이적으로 페라리스 역시 피올라와 마찬가지로 비행기 사고를 피할 수 있었기에 결과적으로 그의 목숨을 살린 선택이 되었다.[4] 페라리스의 골은 이탈리아의 월드컵 본선 역사상 가장 빠른 시간에 기록된 골로 1962년 월드컵에서 브루노 모라가 2분 만에 골을 넣어 타이 기록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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