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디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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Πρόδικος ὁ Κεῖος
Prodicus
기원전 465~395

1. 개요
2. 생애
3. 학문적 면모
4. 여담



1. 개요[편집]


고대 그리스소피스트. 케오스 섬 출신으로 케오스의 프로디코스라고도 불렸다.

2. 생애[편집]


케오스 섬을 위해 아테네에 여러 차례 찾아갔으며, 한 번은 공개적인 연설을 했다고도 한다. 연설을 한 시기가 그리스 전역을 뒤흔들던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이며, 이 때 각 폴리스의 명사들이 정치적인 설득을 위해 연설을 하는 일이 잦았으므로,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관련된 연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프로디코스는 해당 연설을 통해 존경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런 반면, 신체적으론 마르고 허약했다고도 전해진다. 필로스트라투스는 그에 대해 돈이 많고 탐욕스럽다고 저평가한 바 있으며, 이외에도 프로디코스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남긴 적이 있다.

3. 학문적 면모[편집]


프로디코스가 언어학과 그에 깃든 형이상학을 어느 정도 탐구한 까닭에 소크라테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계열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학자 거스리에 따르면, 프로디코스와 소크라테스의 차이는 로고스의 기술. 즉 언어학이나 화술은 윤리학적인 의미를 담아 연관을 짓기 마련인데,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프로디코스는 그에 관한 고찰이 없었던 점이라고 한다.

특히 동의어에 관련된 프로디코스의 연구나 강의가 유명했는데, 프로디코스의 견해는 모든 사물에게는 적절한 이름이 있고, 또 모든 이름에게는 그에 걸맞은 적절한 사물이 있다고 생각했다. [1]

언어학을 가장 특출난 장기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프로디코스의 언어를 다루는 솜씨에 대해서 잘 언급된 자료로는,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에서 미의 여신이 헤라클레스를 교육하는 우화가 있다. 신과 종교에 대해서도 고찰한 바가 있는데, 원시인들은 자연의 조화나 은혜에 감동해 신들의 인격을 만들어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10세기에 작성된 백과사전 "수다"에서는 프로디코스를 자연학자이자 소피스트로 기록했다. 갈레노스 역시 프로디코스를 자연학자이면서 생리학 전문 용어의 등장에 공헌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자연철학이나 생리학 등에 대한 언급은 추가적으로 발견되지 않고 있다.

4. 여담[편집]


  • 현재는 대체적으로 프로타고라스의 제자격되는 인물일 것이라 생각되고 있다.
[1] 헌데 프로디코스의 이런 견해는 또다른 문제로 발달되게 된다. 이런 견해를 진행시켜 나간다면, ~이지 않은 것(혹은 존재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면 모든 명사, 동사, 문장 등등에는 그에 걸맞은 지시체가 실제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명사, 동사, 문장은 그것을 가리키는 지시체들과 대응관계를 이룬다. 그런데 ~이지 않은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 것이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지, ~이지 않은 것이 어디 현실에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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