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리크 바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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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프레데리크바지유0001.jpg
장프레데리크 바지유
Jean-Frédéric Bazille
1841 ~ 1870

1. 개요
2. 생애
3. 군복무 및 최후
4. 관련 자료


1. 개요[편집]


프랑스인상주의 화가.


2. 생애[편집]


어렸을 적 미술과 의학을 병행해 공부했다. 하지만 의사 면허 시험에는 낙방하였으며 그 이후 그림 외길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는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를 존경해서 그림체를 외젠과 거의 유사하게 그렸다.

바지유는 인상파 회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외광(en plein air – 영어 Outdoor)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는데 바지유는 이 원칙에 매우 충실하여 그의 작품 대부분은 외광에서 그려졌다.

1862년 그의 나이 21세 때 파리로 진출한 바지유는 그의 인생을 바꿀 몇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아직 유명해지지 않은 인상파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느와르(Pierre-Auguste Renoir)와 알프레드 시슬리(Alfred Sisley)였다. 이들과 교류 중에도 바지유는 의학 공부를 계속하여 1864년 의사면허시험에 응시하였으나 실패한 뒤 본격적으로 화가 수업을 받게 된다.

아틀리에라는 개인 작업실을 구비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유복했다.

파일:콩디만 가의 화가의 작업실.jpg
콩다민 가(街)에 있는 화가의 작업실 (L'Atelier de la rue Condamine 1870). 이 작품을 끝으로 그는 프랑스군에 입대했다.


3. 군복무 및 최후[편집]


바지유는 프랑스군에 입대해서 부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가 입대한 지 불과 한달만에 보불전쟁이 발발했다. 전투 중에 지휘관이 전사하자 그를 대신해 부대를 지휘했으나 그 역시 전사하고 말았으며 그의 부대는 궤멸당했다.


4. 관련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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