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나치 독일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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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나치 독일 관계 관련 틀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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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République française
Quatrième République
나치 독일
Großdeutsches Reich
Greater German Reich

1. 개요
2. 역사
2.1. 전간기
2.2. 제2차 세계 대전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부터 1945년 나치 독일이 패망할 때까지의 프랑스나치 독일의 관계에 관한 문서.


2. 역사[편집]



2.1. 전간기[편집]


1933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수권법이 통과되고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유럽에 전운이 고조되자 프랑스는 영국, 이탈리아 왕국과 함께 나치 독일의 재군비 선언에 대항하였다. 프랑스는 베르사유 체제에서 대독 온건노선을 고수했던 영국과 달리 대독 강경노선을 고수하였는데, 히틀러가 영국과 해군조약을 체결하고 베르사유 조약 파기와 재군비를 선언하자, 이를 공인한 영국에 분노하였지만 독일의 재군비를 막을 방법이 없었기에 결국 영국과 나치 독일이 체결한 해군조약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프랑스는 영국 이상으로 나치 독일과 전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기에 오스트리아 병합뮌헨 협정을 묵인할 수 밖에 없었다.


2.2. 제2차 세계 대전[편집]


나치 독일이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자 프랑스는 나치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프랑스는 전간기에 나치 독일의 침공에 대비하여 대규모 요새 지대인 마지노선을 설치하였으나, 나치 독일이 마지노선에서 우회하고 베네룩스를 거쳐 프랑스를 침공하면서 프랑스는 6주 만에 함락되었다.

이후 필리프 페탱이 귀국하고 나치 독일에 항복하면서 페탱은 비시를 수도로 하는 비시 프랑스의 수반이 되었다. 한편 샤를 드골을 비롯한 일부 세력은 됭케르크 철수작전 이후 자유 프랑스를 구성하고 나치 독일에 항거하기도 하였다. 자유 프랑스는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를 구성한 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수도 파리를 수복하였으며 1945년 나치 독일을 패망시키고 승전국이 되었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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