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표준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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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지정 과정
3. 화가
4. 문제점
4.1. 인물의 모습
4.2. 화가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논란
4.3. 저작권
5. 지정 목록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정부표준영정(政府標準影幀)은 일반적으로 줄여서 표준영정이라고 하며, 대한민국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한국사 역대 위인들의 용모를 표준으로 지정한 초상화를 가리키는 용어다. 즉, 현대 한국인들이 흔히 위인들의 얼굴이라고 알고 있는 그림들의 상당수는 실제 모습이 아니며 거의 1970년대 이후에 창작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영정동상심의규정(문화체육관광부훈령)을 근거로 삼는다.

원래 표준영정 지정 사업은 박정희 정부 시기에 시작한 충무공 이순신의 추숭 및 관련 사적 성역화 과정에서 비롯한 것인데, 이순신은 물론이고 옛 사람들의 얼굴을 당대에 그린 초상화가 현대까지 전해지는 사례가 극히 드물었다. 이 때문에 그때까지 기념사업회나 사당 등에서는 각자 적절히 영정을 그려 봉안하고 있어 같은 인물을 모시고 있음에도 그 장소에 따라 얼굴이나 자세 등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에 대통령(1973.4.28)과 총리지시(1973.5.8)에 의거하여 난립해 있던 영정과 동상의 형태를 통일하고 규제할 목적으로 국가에서 의뢰하여 그려진 초상화들이 표준영정이 된 것이다. 그해 장우성이 이순신의 영정을 그려 충청남도 아산시 현충사에 봉안함으로써 표준영정 1호가 탄생했으며 2012년 현재 총 82점이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어 있다.


2. 지정 과정[편집]


동상 및 영정이 필요한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와 그 산하공공단체에서 동상이나 영정 제작을 신청하면 문화체육관광부 내 동상영정심의위원회가 내린 제작과 관련된 전문적인 사항에 대한 권고 및 지도안에 따라 복식사항 등을 고증해 화백이 영정을 그리게 되고, 이 영정을 동상영정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하여 정부표준영정으로 지정한다. 단 동상은 표준으로 지정하는 제도는 없다.


3. 화가[편집]


당대에 이름을 날린 동양화가들이 표준영정을 그리는 과정에 참여한다. 김기창, 장우성, 김은호, 이종상이 유명하며 2000년대 후반에는 권오창, 윤여환이 주로 참여하고 있다.


4. 문제점[편집]



4.1. 인물의 모습[편집]


가장 큰 문제는 절대 표준영정이 실제 그 사람의 모습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동양화의 대가들이 그린 영정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전해지지 않는 얼굴의 형태를 국가에서 표준으로 공인한다는 점은 분명한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사실 조선시대 왕의 어진은 몇 차례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6.25까지 넘기고 약 10여 종류가 살아남았는데 1954년 부산 용두산 대화재로 다른 수많은 문화재와 함께 그 대부분이 타서 없어졌다. 이에 대한 자세한 것은 어진 문서 참조. 사진 자료도 거의 없었기에 있는 그대로의 복원은 불가능한 상태다.[1]

이 때문에 어진은 거의 대부분이 원래 모습과는 맞지 않는다. 세종대왕 어진을 그린 김기창자기 얼굴을 본따 세종대왕 얼굴을 그렸다는 이야기는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다. 거기에다 조선 정조의 경우 조잡하긴 하지만 선원보감 및 열성어진에 간략화된 어진이 남아있음에도[2] 불구하고 철저한 고증이 없이 완전히 상상도로 그렸다.[3] 거기에다 고려 태조 왕건의 표준영정과 판박이인 건 덤.[4] 하지만, 영조의 어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선원보감에 수록된 어진의 신뢰도는 매우 낮다.

사진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전근대 시기의 위인들의 경우, 당대에 그려진 초상화가 아닌 이상 실제 모습을 100% 담보한다고 장담할 수 없으니 표준영정은 어디까지나 '추정하고 있는' 인물 모습의 난맥상을 정리하고자 '편의상' 제정한 것이다. 한마디로 표준영정이 절대적 진리일 수는 없으며, 엄밀히 따지자면 하나의 약속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유물이 남아있지 않은 인물들의 경우에도 표준영정을 국가 공인씩이나 해가면서 제작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근본적인 비판이 거세다.#링크

고증과 관련해서도 이순신 영정의 흉배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은 형태를 화가가 임의로 그렸다는 비판이 있으며, 황희의 경우는 명벽히 당대에 그려진 원본인 상주 옥동서원 소장 영정 원본이 존재함에도 정작 표준영정은 진안 화산서원의 것이 등록되어 있다. 무슨 기준으로 선정이 이뤄지는 것일까?

가장 압권인 유관순 영정은 형무소 복역 과정에서 고문을 받아 얼굴이 부은 사진을 참조해 그린 영정이 문제가 제기되면서 표준영정 지정이 해제되어 다시 윤여환교수가 제작하여 새 표준영정으로 제정하는 등의 사례도 있다.


4.2. 화가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논란[편집]


간단히 말해서 친일화가의 그림 상당수가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어 있다. 해당인물들은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인물들로, 2014년 해당 그림들을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당시 문체부의 거부로 유지되고 있다.
이이, 신사임당을 그렸다. 진주 의기사에 있던 논개 영정은 표준영정이 아니었으며, 해당 영정이 철거된 이후에 새로 표준영정이 그려졌다.
  • 장우성
강감찬, 김유신, 이순신, 윤봉길, 정몽주, 정약용을 그렸다. 원래는 유관순 영정도 장우성이 그린 그림이었는데, 상단에 언급된 문제로 2007년 지정이 해제되고 윤여환이 그린 그림으로 교체되었다.

김구안중근, 이순신상(국회)을 만든 김경승 역시 친일문제로 말이 많은 등, 독립운동가나 항일인물들이 특히 친일 시비에 걸리는 예가 많다는 것이 블랙코미디이다.


4.3. 저작권[편집]


국가에서 지정된 사업이고 생활 곧곧 어디에나 표준영정이 그려져 있어서 흔히 오해하는 건데 표준영정은 자유 저작권이 아니다. 표준영정의 저작권은 해당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나 화가들의 가족, 재단에게 저작권이 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정작 역사인물 초상화 보라고 만든 걸 국민들이 인물의 영정을 자유대로 보여줄 수도 없고 위키백과와 같은 저작권에 민감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5]


5. 지정 목록[편집]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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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왕릉에 있는 뼈들로 복원해낼 수 있지만 발굴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2] 물론 철종이 원판 어진에 비해 열성어진의 간략본이 훨씬 삭아보이는 등 너무 대충 조잡하게 그리긴 했지만 코, 수염 등 기본적 형태는 어진과 비슷했다. 정조 역시 마찬가지일듯. 그리고 정조 어진이 다른 어진에 비해 가장 질이 좋다.[3] 표준영정이 아니지만 선원보감을 참고하여 그린 정조의 어진이 있기도 하다. #링크 [4] 거기에다 왕건 역시 얼굴을 유추 가능한 유물이 남아있다는 걸 감안해 보면....[5] 그래서인지 위키백과에서 한국인물들의 표준영정은 거의 안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