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이스라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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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2.2. 21세기
3. 외교 사안, 사건/사고
3.1. 과거사 갈등
4. 문화 교류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폴란드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폴란드는 이스라엘 건국 이후에 이스라엘과 수교했고 폴란드내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건너갔다. 오늘날 폴란드 유대인 대부분은 이스라엘에 거주한다. 폴란드에 남은 유대인은 1만에서 2만 정도다.

2. 역사적 관계[편집]


근세 폴란드-리투아니아는 한 때 전세계 유대인들의 60~80%가 모여살던 지역이었고 이러한 연유로 오늘날 아슈케나짐 전통 문화 상당부분의 폴란드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이를테면 하레딤들의 전통 복장인 털모자 등이 과연 건조한 이스라엘 사막 기후에 적합한 복장인지 아니면 전형적인 중유럽-동유럽 복식인지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같은 폴란드-리투아니아 내에서도 유대인들은 서로 종파 차이, 교리 해석 차이로 갈라지는 일이 흔했는데, 유대교 신앙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는 분파였던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빌뉴스를 중심으로 한 유대인들은 리트박 유대인(리타임)이라고 불렸고, 여기에 대립하는 폴란드의 유대인들은 이른바 하시딤이라고 불렸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하레디들은 이 하시딤 운동의 근본주의 분파로 볼 수도 있다.

2.1. 20세기[편집]


폴란드는 이스라엘 건국 이후에 이스라엘과 공식수교했다. 이미 폴란드가 1차대전 이후 독립하기 이전부터 상당수의 폴란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으로 건너갔으며, 폴란드 제2공화국 시절에도 이미 적지 않은 유대인 인구가 이스라엘로 이주하였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이전 전간기 약 75,000여 명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였다.

2차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로 폴란드 유대인 330만명의 최소 90%가 사망하였다. 당시 생존한 유대인들은 종전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이 건국하자 이스라엘 이민을 희망하기도 했다. 다만 2차대전 과정에서 폴란드가 소련의 위성국이 되면서 유대인들이 폴란드에서 이스라엘로 이민하는 절차는 그닥 자유롭지는 못했고, 이러한 연유로 상당수의 폴란드 유대인들이 폴란드 내 잔류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냉전으로 이스라엘과 공산권의 관계가 경색되자, 역시 공산주의 국가였던 폴란드도 이스라엘과 관계가 악화되었다. 심지어 1960년대 말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 정권은 경제위기로 인한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 반시오니즘이라는 명목하에 반유대인 캠페인을 펼쳐 1만 2천명을 추방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폴란드가 80년대에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90년대 탈냉전이후에 민주주의 국가가 되면서, 오히려 양국관계는 특히 국민 감정 부분에서 오히려 미묘한 긴장이 강화되는 추세이다.

현대 폴란드보다는 이스라엘이 경제 상황이 더 괜찮은 이유로 폴란드가 민주화된 이후로도 폴란드 내 유대인 일부가 이스라엘로도 건너갔다. 이스라엘 내에는 오늘날에도 폴란드어 화자가 일부 존재한다.

2.2. 21세기[편집]


양국은 현재 교류, 협력이 활발한 편이다. 그리고 미국과는 군사적인 협력을 포함한 여러 협력을 하고 있다. 다만, 과거사 해석 관련해서 갈등이 벌어지는 상황인데 특히 2018년 홀로코스트 법이 불거지면서 갈등이 생겼다.

2017년 11월에 폴란드에서 반유대주의 집회가 일어나자 이스라엘측이 우려를 표명했고 이에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극우 집회의 반유대주의, 인종차별을 비판했다.#

2018년 2월 홀로코스트에 폴란드의 책임이 있다는 발언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자 양국은 갈등을 빚었다. 그러다 폴란드와 이스라엘이 이에 가담한 폴란드인도 있어 부분적인 책임은 있지만 이에 맞선 폴란드인도 있다는 전제로 합의하면서 독일에 공동광고를 내기도 했다.#

2019년 5월 13일에 이스라엘 대표단이 폴란드를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폴란드 외무부는 방문 취소를 발표했다.# 5월 16일에는 이스라엘에서 시위대가 폴란드 대사에게 침을 밷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시 양국간 갈등이 생겼다.#

2020년 1월 7일에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이스라엘측이 홀로코스트 행사연설에서 폴란드를 배제하자 불참한다고 밝혔다.#

홀로코스트 피해자 몰수 재산 환수 제한법 제정에 반발해 자국 대사 철수라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1#2

3. 외교 사안, 사건/사고[편집]



3.1. 과거사 갈등[편집]


폴란드 대통령 '나치부역 역사 부정 법안' 재검토 방침
폴란드 상원 '나치 부역 부정' 법안 통과…이스라엘 반발

폴란드나치 독일의 피해자였지만, 일부 폴란드인은 나치 독일에 부역한 과거를 지니고 있다. 이스라엘측은 폴란드에 설립된 강제수용소는 독일인들이 만들고 운영했기에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에 협력한 폴란드인들도 책임이 있다는 것. 바르샤바에 있는 홀로코스트 폴란드 연구센터에 따르면 유대인 18만~20만 명이 폴란드인에 의해 살해되거나 밀고로 인해 숨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 중에는 대독 부역의 일환으로 학살된 것이 아니라 폴란드의 자생적인 반유대주의 학살로 희생된 유대인도 상당하다.[1]

이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게 된 계기는 폴란드의 '나치부역 역사 부정 법안' 움직임이다. 폴란드 하원은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때 폴란드를 점령했을 당시 운영했던 수용소 시설 등을 부를 때 '폴란드의(Polish)'라는 표현이 들어가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에 이스라엘은 '진실 왜곡'이라고 반발하며 항의하는 등 외교적 마찰로 이어졌다. 법안은 아우슈비츠 등 폴란드에 있는 나치 시절 강제 수용소를 '폴란드의' 수용소라고 부른 자에 대해서는 폴란드인이든 외국인이든 벌금 또는 최대 징역 3개월에 처하도록 하며 또 "나치 독일이 저지른 범죄 혹은 다른 반인도적, 반평화적 범죄와 전쟁범죄에 대해 폴란드 국민이나 국가에 책임이나 공동책임"을 돌리는 자에 대해서도 같은 처벌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스라엘은 이렇나 폴란드의 움직임에 즉각 반발했는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이스라엘은 진실을 왜곡하고 역사를 고치고,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스라엘 외무부도 자국 주재 폴란드 대사 직무대행을 불러 항의했다. 홀로코스트에 관한 폴란드의 관점은 나치 독일에 의한 폴란드인의 학살을 강조하면서 나치 독일뿐 아니라 폴란드인들에게도 희생당한 유대인의 희생을 고의로 무시해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스라엘과 총리등이 분노하여 폴란드에게 폴란드의 홀로코스트 부정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하는 것이 이 때문.

이후로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 정권에 의해 국유화한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재산 환수 실현을 30년간 제한하는 입법으로 갈등이 불거졌다.


4. 문화 교류[편집]


오늘날 폴란드는 이스라엘인들의 인기 관광지 중 하나인데,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하는 이스라엘인 관광객 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 거주민들이 사라졌던 크라쿠프 근교 유대인 지구 역시 오늘날 유대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하는 주요 관광지화되면서 일부 이스라엘인들이 정착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듯 하다. 크라쿠프 근교에는 세파르딤들이 운영하는 아랍식 코셔 푸드 레스토랑 등등이 성업 중이다.

근세 당시 전 세계 유대인들의 3/4 가량이 폴란드-리투아니어에 거주했던 영향으로 오늘날 아슈케나짐 문화에는 폴란드 문화의 영향이 적잖이 남아있는 편이다. 같은 이유로 오늘날 이스라엘 문화에도 폴란드 문화의 영향이 적잖이 남아 있는 편이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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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잘 알려진 사례로 예드바브네 학살이 있지만 이것만 있는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