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포이어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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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포이어바흐
Ludwig Feuerbach


파일:Feuerbach_Ludwig.jpg

본명
루트비히 안드레아스 포이어바흐
Ludwig Andreas Feuerbach
출생
1804년 7월 28일
바이에른 선제후국 란츠후트
사망
1872년 9월 13일 (향년 68세)
독일 제국 뉘른베르크 근처(레헨베르크)
국적
[[독일 제국|

독일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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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직업
철학자
모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
에를랑겐 대학교
분야
인식론, 유물론, 종교철학, 윤리학

1. 개요
2. 사상
2.1. 헤겔에 대한 비판
2.2. 종교 비판
3. 영향
4. 주요 저작
5. 관련 항목
6. 관련 링크



1. 개요[편집]


독일의 유물론자이자, 청년 헤겔학파의 대표격인 인물. 「예비테제」와 『기독교의 본질』, 「미래철학의 근본원리」 에서 전개한 헤겔 비판과 바뤼흐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은 특유의 인간학적 유물론은 형이상학적 유물론이 지배해오던 유물론사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단적으로 카를 마르크스의 그 유명한 변증법적 유물론은 바로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이 가진 한계를 비판하면서 나온 결과물이다. 헤겔에게 초기의 셸링이 있었다면 마르크스에게는 포이어바흐가 있었던 셈이다.

2. 사상[편집]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사상은 헤라클레이토스스토아 학파스피노자셸링헤겔로 이어지는 범신론적 철학의 계보에 속한다. 포이어바흐는 유신론의 논리적 귀결은 범신론이고, 범신론의 논리적 귀결은 무신론, 즉 유물론이라고 주장했다.[1]

포이어바흐의 사상은 요약하자면 인간의 본질은 자기 자신을 감각하는 존재이며, 자기 자신을 종(Gattung)으로 인식하여 자신의 본질을 의식할 수 있는 유적존재(Gattungswesen)이고, 이러한 인간의 본질이 종교란 형태를 통해 신에 투사되어 있으므로, 인간이 자신을 모방하여 만들어낸 신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고 그것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2.1. 헤겔에 대한 비판[편집]


헤겔은 감각적 의식의 대상을 형성하는 "여기"를, 즉 우리에게 순수사유와는 구분되는 것인 대상을 논파하지 않는다. 오로지 논리적인 "여기"를, 논리적인 "지금"을 논파할 뿐이다... ...현상학은 현상학적 논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2]


포이어바흐는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을 대신할 철학의 원리로 의식 외부의 대상에 대한 지각, 즉 감성[감각]을 내세우는데, 포이어바흐에 따르면 헤겔의 철학에는 감성적인 영역에 대한 설명이 부재한다는 것이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모든 감각적 지각은 이미 개념에 매개되어 있다는 것을 기반으로 하여 사유와 존재의 동일성[3]을 주장하지만, 헤겔의 주장대로 모든 감각적 지각이 개념에 매개되어 있다면, 애초에 헤겔에게서 감각적 지각이 존재하는게 맞기는 하냐는 것이다. 헤겔은 감각적 지각이 '이미' 개념에 매개되어 있다고 논하지만, 개념에 매개된 감각적 지각은 애초에 감각적 지각이 아니라 사변에 불과하고, 이러한 사변에서 시작하는 헤겔은 그저 사유 내에서 사유와 존재의 동일성을 보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즉 포이어바흐는 헤겔의 주장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동어반복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그렇기에 포이어바흐에게 헤겔의 체계는 감각적 대상, 즉 자연이 부재하는 체계인데, 그와 동시에 자연철학은 헤겔의 삼분적 학문 체계를 이루는 요소중 하나이고, 헤겔 철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따라서 포이어바흐는 헤겔의 체계가 불완전하다고 주장한다. 이 불완전한 헤겔의 체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정신의 현상학과 같은 사변철학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철학에서, 즉 감각적 대상인 자연, 물질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포이어바흐의 기획이다. 이러한 점이 포이어바흐 유물론의 기초를 이룬다. 즉 포이어바흐는 헤겔을 부정하기 위해서 유물론을 꺼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헤겔을 완성하기 위해 유물론을 꺼내든 것이다.

그리하여 포이어바흐는 헤겔의 절대정신을 물질로, 그리고 감각적 존재인 인간으로 뒤집었는데, 그 결과 포이어바흐는 인간학에, 그리고 감각적 지각의 최고봉인 '사랑'에 이른다.

2.2. 종교 비판[편집]


포이어바흐의 인간학은 종교 비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나아가 신학은 인간학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포이어바흐는 헤겔의 소외 개념을 받아들여 인간이 자신을 피안에 투사한 것이 바로 종교라고 주장한다.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추상화하여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에게 투사한 것이 바로 종교이고, 헤겔 철학과 같은 사변철학이다. 포이어바흐의 주장은 신이 신 자신의 형상을 본따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의 형상을 본따 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산물인 종교와 신이 인간의 위에 서서 인간을 억압하고 있으므로, 종교는 인간의 자기소외라는 것이 포이어바흐의 비판이다.

그러나 포이어바흐는 종교를 비판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포이어바흐는 신학을 뒤집는다. 본디 헤겔 철학에서 소외, 즉 외화는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그 바깥에서 인식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외부의 대상으로 만들어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그럼으로서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정립하는 과정의 일부이다. 즉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신에게 투사했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신에게서 인간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헤겔이 신에 대한 인간의 의식, 즉 종교는 신의 자기의식이라고 주장했듯이, 포이어바흐는 신에 대한 인간의 의식은 인간의 자기의식이라고 주장한다. 포이어바흐에게 종교는 단순한 현실의 부조리를 넘어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포이어바흐는 인간이 실현해야할 자신의 본질을 종교에서 발견한다. 그것은 타자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하여 포이어바흐의 인간학은 사랑의 공동체를 최종적인 결론으로 내놓는다.

3. 영향[편집]


헤겔을 겨냥한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은 프로이센 어용철학으로 전락한 헤겔의 관념론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청년 헤겔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모두 포이어바흐에 열광했고, 단숨에 포이어바흐주의자가 되었다."[4](엥겔스)

대표적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처음에는 포이어바흐의 문제의식과 유물론에 찬동했으나, 이후 슈티르너가 『유일자와 그 소유』를 통해 포이어바흐가 추상적인 인간 개념에 매여있다는 비판을 전개함으로서 벌어진 논쟁[5]을 통해 포이어바흐 유물론의 비역사주의적 한계를 지각하고, 포이어바흐가 헤겔을 좀 더 철저화하기 위해 헤겔을 수정했듯이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좀 더 변증법적으로 수정하게 된다. 포이어바흐는 무매개적인 지각에 집착한 나머지 자신이 인식한 사회와 인간이 역사적 산물임을 보지 못하여 형이상학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6]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거꾸로 세워진 헤겔의 변증법을 뒤집어 바로 세우겠다는, 즉 관념변증법을 유물변증법으로 전도시키겠다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기획은 헤겔을 완성하기 위해 헤겔을 비판한 포이어바흐의 기획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 밖에도 사유 바깥의 감각적 존재, 즉 자연에 주목해야 한다는 포이어바흐의 주장은 사유라는 동일성 바깥의 비동일자에 다가가야 한다는 아도르노의 사상과 어느정도 맞닺는 측면이 있다.

4. 주요 저작[편집]


제목
발간 연도
「헤겔 철학 비판을 위하여」
Zur Kritik der Hegelschen Philosophie
1839년
『기독교의 본질』
Das Wesen des Christenthums
1841년
「철학의 개혁을 위한 예비테제」
Vorläufige Thesen zur Reform der Philosophie
1843년
「미래철학의 근본원리」
Grundsätze der Philosophie der Zukunft
1843년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
Das Wesen der Religion
1846년

5. 관련 항목[편집]



6. 관련 링크[편집]


[1] "Der »Atheismus« ist der umgekehrte »Pantheismus«. Der Pantheismus ist die Negation der Theologie auf dem Standpunkt der Theologie." (철학의 개혁을 위한 예비 테제들 Vorläufige Thesen zur Reform der Philosophie)[2] Hegel does not refute the “here” that forms the object of sensuous consciousness; that is, an object for us distinct from pure thought. He refutes only the logical “here,” the logical “now"... ...The Phenomenology is nothing but a phenomenological Logic." #[3] 『정신현상학』의 결론이 바로 사유와 존재의 동일성이다. 이 결론은 이후 『논리의 학』의 시작점이 된다.[4] "Enthusiasm was general; we all became at once Feuerbachians."[5] 슈티르너가 평생 쓴 저술보다 더 긴 분량으로 슈티르너를 "성 막스" 타령을 하면서 까댔다는 일화로 유명한 『독일 이데올로기』가 나오게 된 원인이 바로 이 논쟁이다.[6]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본질을 '인간적' 본질 안에서 해소시킨다. 그러나 인간적 본질은 어떤 개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ensemble)이다. 이렇듯 현실적 본질에 대한 비판으로 들어서지 못한 포이어바흐는 그러므로 불가피하게 : 1. 역사의 진행을 도외시하고 종교적 심성(Gemüt)을 그 자체로서(für sich) 고정시키며, 따라서 하나의 추상적인―'고립된'―인간 개체를 전제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2. 따라서 그 본질은 단지 ‘유(Gattung)’로서만, 다수의 개인들을 '자연적으로' 결합시켜주는, 내적이고 침묵을 지키는 보편성으로만 파악될 수 있을 뿐이다"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 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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