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피리오 디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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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합중국 제33대 대통령
호세 데라크루스 포르피리오 디아스 모리[1]
José de la Cruz Porfirio Díaz Mori


파일:포르피리오 디아스.jpg

출생
1830년 9월 15일
멕시코 합중국 오아하카 주 오아하카 시
사망
1915년 7월 2일 (향년 84세)
프랑스 파리
국적
[[멕시코|

멕시코
display: none; display: 멕시코"
행정구
]]

직업
정치인, 군인
정당
자유당 → 국민포르피리오당
서명



1909년 8월 15일에 녹음된 육성[2]

1. 개요
2. 생애
2.1. 대통령 취임 이전
2.2. 디아스 시대
2.3. 말년
3. 기타
4. 참고자료



1. 개요[편집]


멕시코의 제29대 대통령. 1876년에서 1880년 사이와 1884년에서 1911년 사이에 재임했다.


2. 생애[편집]



2.1. 대통령 취임 이전[편집]


1830년 9월 5일에 멕시코 오아하카 주에서 크리오요 아버지와 메스티소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베니토 후아레스가 지도하는 자유주의 혁명에 제2차 프랑스-멕시코 전쟁(1861~1867)에서 군인으로 활약했다.

그는 멕시코 내전과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자유주의자들의 편에 서서 싸웠지만,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보수주의자로 변모했다. 디아스는 프랑스의 괴뢰정권인 멕시코 제2제국이 무너지자 전쟁 때 얻은 인기를 토대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후아레스에게 밀려 당선에 실패했다. 이후 후아레스가 재임 2기 때 지병으로 사망하자, 디아스는 후임으로 취임한 호세 마리아 이글레시아스(1823~1891)를 내쫓고 치러진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2.2. 디아스 시대[편집]


1880년에 1차임기를 마친 디아스는 1880~1884년 사이에 꼭두각시 정부를 내세워서 통치했다. 이는 그가 전임자들의 재선에 반대해서 주도했던 반란에 대한 명분 때문이었다. 이후 디아스는 1884년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어, 1887년에는 연임을 허용하는 헌법개정과 1890년에는 중임을 허용하는 헌법개정을 통해서 1911년까지 30여 년의 기간 동안 멕시코를 통치했다. 이 33년간의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집권기간을 '포르피리아토 (Porfiriato)'라고 부른다.

디아스는 원주민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문명과 야만" 시선으로 바라보던 크리오요들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원주민들을 철저히 탄압했다. "멕시코! 외국인에게는 어머니, 멕시코인에게는 계모"라는 말도 있다.

집권 후 디아스는 기술관료 집단인 시엔테피코(Científico)의 지원을 받아 근대화 개혁을 시작했다. 먼저 해외 자본을 유치하여 철도망을 정비하면서 광업과 공업 투자를 받았고, 농업 부문에서는 대농장주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대농장(아시엔다)의 규모를 키웠다. 이 정책으로 멕시코의 경제력은 성장하기 시작했으나 원주민과 비지주 농민들은 타격을 입었는데, 디아스와 기술관료들이 대지주를 밀어 주면서 땅을 잃고 소작농이 됐기 때문이다.


2.3. 말년[편집]


1910년에 디아스는 대선 재출마를 결정했으나, 그의 연임을 반대한 상대측 후보인 프란시스코 마데로를 투옥하고 당선됐기 때문에 멕시코 혁명의 계기를 제공했다.

전국에서 일어난 혁명군의 기세에 눌린 디아스는 마데로와의 협상 끝에 대통령직을 사임한 뒤 프랑스로 망명했고[3], 4년 후인 1915년에 파리에서 향년 85세로 사망했다.


3. 기타[편집]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에 실린 단편 에피소드 등나무 집에서 언급되는 '산 페드로의 호랑이'란 별명의 독재자 돈 무리요가 아마도 디아스를 모델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불쌍한 멕시코! 하느님과는 이토록 먼데 미국과는 이토록 가깝구나!"

"Pobre México, tan lejos de Dios y tan cerca de los Estados Unidos."

- 포르피리오 디아스

포르피리아토 기간 동안 그도 딱히 인민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다스린 것 같지는 않지만, 미국과 멕시코 관계를 잘 표현한 말을 남긴 사람이기도 하다. 넘사벽으로 부유하고 힘센 위쪽 이웃과의 애증어린 관계에서 멕시코인들은 현재에도 위 발언을 종종 되뇌이곤 한다.


4. 참고자료[편집]


  • 백종국 저, <멕시코 혁명사> (2000년).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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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상 로망스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서 적도록 하고 있다.[2] 12초부터. 가장 오래된 멕시코 대통령의 음성 기록으로, 토머스 에디슨에게 보낸 음성 메시지이다.[3] 이 때 디아스는 "마데로는 호랑이를 풀어놓았다. 어디 잘 길들이는지 한번 지켜보자."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