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 학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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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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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여담



1. 개요[편집]


인천상륙작전 이후 후퇴하던 북한군평양시에서 시행한 학살극.


2. 상세[편집]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과 대한민국통계연감[1]에 따르면, 1950년 9월 15일 ~ 1950년 9월 28일에 있었던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한군은 후퇴하면서 북한 지역에서도 숱한 학살극을 벌였다. 김일성은 6.25남침 때에 북한지역에서 이른바 북한 내 불순분자 색출을 모토로 '예비검속'(豫備檢束)을 했는데, 이들에 대한 성분조사는 악명높은 '정치보위부'에서 실시했다. 김일성은 미군이 압박해 들어오자마자 모조리 이들을 학살했다. 관련 기사

김일성의 북한정권은 사람들을 새끼줄로 묶어 총살한 다음 시체를 우물 속이나 창고, 방공호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구체적으로는 평양시의 칠골리에서 2,500여명, 평양시의 승호리 인근의 사도리 뒷산에서 4,000명 정도가 학살당했고, 평양의 기림 공동 묘지터와 용산 공동묘지에서도 학살이 있었다.

다음은 북한 지역에서 일어난 북한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책임이 김일성에게 있다는 근거며 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김일성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후방을 철옹성같이 다져야 한다. 도피분자, 요언(妖言) 전파 분자와 무자비하게 투쟁하며 밀정 및 파괴분자를 적발, 가차없이 숙청하고 반역자는 무자비하게 처단해야 한다" [2]

3. 여담[편집]


KBS 드라마 2010년작 전우에서 학살 사건을 묘사하는듯한 장면이 나왔다. 극중 1화에서 평양 전투에서 패배한 인민군이 모두 후퇴하는 가운데 인민군 장교인 이수경과 부사관인 천용택이 방공호를 통해 후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과정에서 이수경이 방공호로 지나가다가 널부러진 시체를 밟고 실성하는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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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대한민국통계연감(1952년 발간)[2] 1950년 6월 26일, 방송을 통한 김일성의 지시하달, 출처: "남북한 관계 사료집 2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