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이북5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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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평안남도
平安南道
Pyeongannam-do


파일:평안남도(이북 5도).jpg

도청 소재지
평안남도 평양시 상수동[1]
서울특별시 종로구 비봉길 64[2]
하위 행정구역
2 14
면적
14,944㎢
인구
약 730만 명[추정]
인구밀도
488.49명/㎢[추정]
도지사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조명철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
2. 역사
3. 지역 특성
4. 교통
5. 특산물 및 산업
6. 관광지
7. 통일 후 전망
8. 출신 인물 (실향민)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한반도 서북부에 있는 대한민국의 명목상 행정구역. 이북 5도 중 하나. 인구는 약 73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북한에 의하여 확장된 평양에 포함된 지역을 제외하면 약 500만 정도.

북쪽에 평안북도, 동쪽에 함경남도, 남쪽에 황해도가 있다. 1896년 남북으로 분리되기 전까지는 평안도의 일부였다. 도청소재지는 평양시.[3]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은 덕천군영원군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을 실효지배한 적이 있다.

2. 역사[편집]


고조선과 고구려의 중심지였고, 고려 또한 서경을 두어 중시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북계였다가 조선 시대에 평안도가 되었고,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평안남도가 되었다.

해방 이전에는 한국 개신교의 중심지였다. 개신교계 신학 학교가 거의 다 이곳에 있었고 개신교 모임이 활발하여 안창호같은 인물도 나왔다. 평양에 있던 개신교단과 신학교들은 해방 이후 공산집권을 피해서 대거 남하하여 현재 한국 개신교의 주류가 되었다. 숭실대학교도 이때 서울로 이사 온 학교이다.

하지만 해방 당시 북한은 종교 신자 인구로 치자면 개신교는 천주교 신자와 수를 합쳐도 불교 신자에 비해 수가 부족했고 무엇보다 이 3종교 모두를 합친 인구는 천도교 신자의 인구의 절반도 채 안 되었다. 신자 인구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평양 하나라면 모를까, 평안남도가 기독교 신자 일색으로 가득한 곳은 아니었다. 분단 직후까지는 반 김일성 정치인인 조만식의 인기가 가장 많았지만 소련의 힘을 얻은 김일성에 의해 모조리 숙청당해 지금은 주체사상의 핵심지역.


3. 지역 특성[편집]


파일:평안남도(이북 5도).jpg
한국 북부에서 가장 발전된 지역이며 인구 밀도도 가장 높다. 1944년 당시 인구는 182만 6441명으로 함경북도를 뺀 다른 북한 지역들보다 인구가 적었으나, 북한 정권의 수도가 되면서 인구가 급속히 증가했다. 사실 평안남도는 북부 유수의 인구밀집 지역으로, 이북 5도 행정구역상 평안남도(인구 약 700만)는 경기도, 서울특별시에 이어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행정구역이 된다. 이건 그렇다쳐도 심지어 다 뗀 현 북한 행정구역상 평안남도를 가져다놔도 마찬가지로 인구 3위가 된다.

동쪽은 낭림산맥으로 함경남도와 접하기 때문에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을 띈다. 날씨는 냉량한 편으로 도내에서 가장 온난한 평양-남포 일대가 남쪽의 춘천-홍천의 연평균 기온과 비슷하고, 겨울 기온은 더 춥다. 동북쪽의 영원(寧遠)쯤 가면 날씨가 개마고원에 가까워진다.

주요 도시로는 평양시, 진남포시, 순천시(順川: 순천군), 안주시(안주군), 평성시(순천군 사인면), 개천시(개천군), 덕천시(덕천군) 등이 있다.


4. 교통[편집]


경의선, 평원선, 평남선, 만포선 철도가 있다. 북한에서는 평양원산간 고속도로, 개성평양간 고속도로, 평양희천간 고속도로를 깔았다.
대동강을 통한 수운교통도 이루어지고 있다.


5. 특산물 및 산업[편집]


이 지방의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평양냉면, 평양온반, 대동강숭어국, 녹두지짐 등이 있다. 참조 평양만의 음식은 아니지만 개고기 식용 문화가 활발한 지역이라 단고기 요리도 주요 음식으로 꼽힌다.

평양평야, 안주평야를 중심으로 농업이 활발하며 특산물로는 남포 일대의 사과, 성천,함종의 (평양약밤), 담배 등이 있다.

그리고 석탄(무연탄)이 많이 나는 지역으로 대동군, 강서군, 강동군 일대의 평남남부탄전와 순천군, 개천군, 덕천군, 맹산군, 평북 영변군 일대의 평남북부탄전을 이루고 있다. 북창 및 안주에 화력발전소가 있다. 한편 평남은 석회암 지대가 많으며 승호리(강동군)는 시멘트 생산지이다. 한편 대동강 하류는 강수량이 적어 연 800mm선까지 줄어든다. 따라서 이 지역은 진압농법[4]이 발달했었고[5], 남포, 용강 일대를 중심으로 제염업도 활발하다.


6. 관광지[편집]


평양에는 평양성, 대동문, 보통문, 을밀대, 대성산성 등이 있으며 그 외 평남 지역에는 동명왕릉, 안주성, 용강 쌍영총 고구려 고분군, 개천 송암동굴, 남포 와우도 해수욕장 등이 있다. 평안북도와의 경계선상에 묘향산이 있다.


7. 통일 후 전망[편집]


평양은 인구, 상징성, 인프라 같은 모든 면에서 봤을 때 서울 - 부산 다음으로 중요한 대도시가 된다. 일단 이북 5도 내 유일하게 100만 이상의 인구를 갖고 있고, 신의주 - 서울 중간에 있는 대도시다보니 발전 가능성이 높다. 단 평양은 광역시로 독립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평양은 과거 북한을 상징하는 도시였기 때문에 관광객의 증가로 인한 수입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머나먼 미래를 내다봤을 때는 수도권영남 대도시권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8. 출신 인물 (실향민)[편집]


탈북자이거나 1953년 휴전 협정 체결 이전에 태어난 사람에 한정하여 작성할 것



9.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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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목상 소재지[2] 이북5도위원회 소재지[추정] A B 추정치 기준[3] 현 북한 행정구역 기준으로는 평성시에 있다. 통일 후 평양이 광역시나 그에 상응하는 독립시의 지위를 얻는다면 이쪽에 도청을 두게 될 가능성이 있다.[4] 겨울철에 논밭을 발로 밟으면서 토양 속 수분의 증발을 억제하는 농법[5] 분단 이후에는 그냥 관개를 한다. 더 강수량이 적은 중국 만주 지역도 이런 식으로 농사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