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악셀 폰 페르센

덤프버전 :


한스 악셀 폰 페르센(Hans Axel von Fersen)[1]
(1755.09.10.~1810.06.20.)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927c0324cdc5cf386b7dc74341e20cc0.jpg
파일:external/de.academic.ru/Hans_Axel_von_Fersen1.jpg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



1. 개요[편집]


스웨덴귀족. 생전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의 염문으로 이름을 날렸다.


2. 생애[편집]


그는 프랑스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불륜상대이자 조력자로서 세상에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첫눈에 반한 운명적인 사랑은 아니었고, 과연 육체적 관계가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나, 왕비와 페르센 사이에는 깊은 정신적 사랑이 있었다는 증거가 많이 남아 있다. 특히 페르센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어머니이자 왕비라고 언급했다. 어쨌든 당시 프랑스 내에서도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소문은 공공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페르센은 염문을 피하고 또 경력을 쌓기 위해 프랑스군에 입대한 후 참전하는 등 베르사유에서 떠나있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온다.

페르센은 프랑스 혁명 발발 이후 철저히 왕당파[2]로의 소임을 지켰다. 페르센은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국내외적으로 고립된 루이 16세 일가에게 지원을 했다. 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가 주도했고 페르센이 도왔던 바렌 사건은 실패하고, 페르센이 프랑스 국외에서 왕가를 지키려고 시도했던 모든 노력들 역시 실패로 끝났다. 결국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형당한다.

이를 브뤼셀에서 전해듣고는 크게 슬퍼하고 절망한[3] 페르센은 본국으로 돌아가 정치가가 되었다. 그는 민중에게 잔인한 태도를 취했고 그로 인해 신망을 잃었다. 또 루이 16세 부부의 마지막 남은 후손인 마리테레즈 샤를로트가 포로 교환으로 프랑스에서 풀려나자 재산을 어느 정도 찾도록 도와주기도 했다고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받은 편지 관련은 2021년 11월 7일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기사

1810년 스웨덴 왕태자가 갑자기 사망하자 페르센이 왕태자를 독살했다는 루머가 널리 퍼졌는데, 그에 개의치 않고 장례식에 참석하려 거리로 나섰다가 분노한 민중들 중 선원인 오토 요한 텐더펠트에게 살해당했다. 그가 살해당한 6월 20일은 실패한 바렌 도주사건이 일어났던 날이기도 했다. 사후 오해가 풀렸으며 페르센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루어진다.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영향으로 흔히 미남으로 인식한다.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초상화에서도 이목구비가 뚜렷한데, 그가 워낙 미남이라 어디에서나 인기가 많았다는 당대 기록이 여럿 남아있다.


3. 대중매체[편집]



3.1. 베르사유의 장미의 등장인물 페르젠[편집]


파일:베르사유의 장미.페르젠.jpg
フェルゼン(ハンス・アクセル・フォン・フェルゼン)

이케다 리요코의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의 등장인물. 1의 인물에 근거했다. 성우는 호리 카츠노스케(극초반부)/노자와 나치/토미야마 케이(극장판)/김민석(KBS), 이정구(대원비디오판), 이규화(MBC 극장판), 양석정(EBS)

페르젠과 마리 앙투아네트의 첫 만남은 파리의 가면무도회에서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신분을 숨긴 채 근위대의 오스칼만 데리고, 무도회에 참석했다가 그곳에서 처음 페르센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첫 눈에 필이 꽂혔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신분이 발각되기 전에 도망치려 했는데, 페르센이 저지하다가 오스칼과 3자 대면을 한다. 이 자리에서 오스칼마저 페르센에게 반함으로서 3각, 아니 4각 관계(앙드레 포함)가 시작된다. 이후 오스칼의 마음을 꿈에도 모른채 성별을 초월한 우정을 느끼며, 각별한 친구가 됐고 나중에야 그녀의 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미 마리를 사랑하고 있던 페르센은 오스칼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 한다.

이처럼 지고지순하게 마리 앙투아네트만을 사랑하지만 프랑스의 왕비인 그녀와의 관계는 결국 불륜이었고,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젠의 추문은 프랑스 내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판이 더욱 떨어지는 계기가 된다. 결국 보다 못한 오스칼의 조언으로 페르젠은 잠시 프랑스를 떠나지만 불행하게도 마리 앙투아네트가 페르젠이 떠난 빈 자리를 채우고자, 폴리냑 부인 등의 간신들의 부추김으로 국정을 멀리하고 패션과 도박에 빠지면서 가뜩이나 위기에 처한 자신의 평판을 스스로 깎아 먹는 짓을 한다. 이후 목걸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찾아와 폴리냑 부인들을 멀리하고 오스칼과 메르시 백작 등을 비롯한 충신들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충고하나, 이미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연이은 무능한 행보 때문에 왕실을 향한 프랑스의 여론은 나락으로 떨어질대로 떨어졌고 결국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만다.

이 부분을 제외하면 대체로 실제 역사와 같은 노선을 밟는다. 다른 귀족들이 왕실에게 등을 돌리고 도피하는 반면 페르젠은 끝까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지켰으며 마리 앙투아네트가 궁에 유폐되고 난 다음에, 한 번 변장한 채 만나러 오고 짧은 만남 후 영원히 이별한다.[4] 앙투아네트와 이별하고 스웨덴으로 돌아간 뒤의 후일담이 짧게 그려졌다.

결국 마리 앙투아네트가 참수당한다는 소식에 반쯤 미쳐서 죽을 각오로 프랑스로 가려고 하지만[5], 어릴 적부터 페르센을 손수 맡아 돌보던 늙은 집사가 이미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며 그를 붙잡고 죽어라 놔주지 않는다. 분노한 페르센이 "안 놓으면 너부터 죽인다!"라고 소리치고 이에 집사는 울면서 "그럼, 이 늙은이부터 죽이고 가십시오. 백작님을 어릴 적부터 돌보며 손자 같이 느껴왔는데 그런 백작님이 죽으려고 가는 길을 이 늙은이는 볼 수 없습니다!"라고 애원하자, 차마 집사를 건드릴 수 없어 결국 마리 앙투아네트의 구명을 포기하고 바렌느 도주 사건루이 16세의 명을 거부해서라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곁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울부짖으며 절망한다. 그뒤 독신으로 살아가며 사랑하는 이의 목숨을 앗아간 민중에 대한 증오로 냉혹한 정치가로 돌변했다가, 결국 스웨덴의 민중들에게 맞아죽는 최후를 맞았다는 씁쓸한 에필로그와 함께 원작 본편의 막이 내린다.

이후 2018년에 발매된 최종 에피소드에서 페르젠의 최후가 상세하게 그려졌는데, 앙투아네트의 사후 냉혹한 정치가로 돌변하여 여동생 소피아의 말대로 동시에 살아있되 죽은거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스웨덴 왕의 요청으로 오스트리아의 외교 사절로 갔다가 빈 궁정에서 프랑스 혁명 정부와의 포로 교환으로 오스트리아에 망명해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딸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를 보며, 평생동안 사랑한 여인의 딸을 통해 오스칼과 앙투아네트와 함께하며 행복했던 젊은 시절이 생각나 몰래 오열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스웨덴으로 망명해 있던 로잘리의 아들 프랑소와[6]를 왕립도서관 법률고문으로 취업을 시켜주었다.

그리고 원작 마지막에서 언급된 페르젠의 살해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막이 드러나는데 사실상의 자살이었다. 당시 스웨덴은 구스타프 아돌프 4세가 폐위되고 그의 숙부인 칼 13세가 즉위했는데 페르젠은 구스타프 아돌프의 측근이자 반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파였기에 백성들에게 미움을 사고 있었다. 그러다 칼 13세가 양자로 삼은 덴마크 왕태자 칼 아우구스트가 낙마 사고로 사망하는데 스웨덴 민중들 사이에선 페르젠이 왕태자를 죽였다는 헛소문이 돌았고 결국 왕태자의 장례식이 있던 6월 20일 페르젠을 살해하는 계획이 시행되었던 것이다.

마침 이 계획을 프랑소와의 친구 파비앙 노벨[7]에게 들은 로잘리 모자는 페르젠을 찾아가 내막을 알리고 장례식 참석을 말린다. 그러나 6월 20일[8]이 자신에게 어떤 날인지를 알았기에 페르젠은 굴욕적인 삶을 스스로 끝내고자 장례식에 참여해 생을 마친다. 당시 나이가 든 페르젠의 모습은 얼굴에 주름이 지고 콧수염을 기른 상태였고 로잘리에게 마지막까지 마리 앙투아네트를 지켜준 것에 고마움을 표하며 동시에 아들 프랑소와에게 힘껏 살아남아, 우리의 시대의 결말을 지켜봐달라고 당부하고 죽음에 이르렀을 때 자신을 맞이하러 나온 오스칼과 앙투아네트를 보게된다.

다카라즈카판 뮤지컬 버전에서의 페르젠은 오스칼과 앙드레 스토리를 제외하면 거의 작중의 진주인공으로 활약한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여주인공으로서 등장하기는 하나 초판과 2000년대 이전 공연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페르젠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그와 밀애하며 얼굴 비추고, 최후반부에 콩시에르쥬리에서 단두대 행으로 직행하는 것을 제외하면 앙투아네트의 비중은 밀리다 못해 거의 쩌리 수준으로 떨어졌다(...)

3.2. 타임 프린세스[편집]


게임 타임 프린세스의 '마리 왕비' 편의 주요 인물 중 하나로 나온다.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재구성되면서도 베르사유의 장미의 페르젠에서 약간의 영향을 받았는지 마리 앙투아네트를 연모하면서도 충성을 바치는 인물로 나온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행보가 바뀐다.

[1] 흔히 베르사유의 장미의 영향으로 페르 백작으로 알려져있지만, 페르센 백작은 독일계이긴 해도 엄연히 스웨덴 국적이었기 때문에 엄밀히는 한스 악셀 폰 페르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2] 당시 유럽 각국들의 왕실은 프랑스 혁명을 자신들에 대한 위협으로 느꼈으므로 외국인이 프랑스 왕실을 도왔다고 이상하게 볼 수만은 없다.[3] 얼마나 슬퍼했는지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에 마리 앙투아네트를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였고 사랑하지 않는 순간이 한순간도 없었으며 내 모든 것을 다 바쳐 깊이 사랑했고 수천 번이라도 내 목숨과 바꿀 수 있었던 여인'이라고 표현하면서 어떻게 살지 모르겠고 그녀의 곁에서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할 정도였다.[4] 애니메이션판에선 바렌느 도주사건을 끝으로 루이 16세 일가와 이별하고 벨기에로 망명하는 걸로 나오지만, 원작에선 루이 16세 일가가 파리로 다시 돌아왔을 때, 오스칼의 아버지인 자르제 백작의 도움으로 변장을 하고 앙투아네트와 짧은 만남과 이별을 가지는 걸로 그려지고 있다. 오스칼 사망 이후에도 이야기 전개에 상당분량을 할애했던 원작만화와 달리, 애니메이션판은 오스칼 사후의 이야기를 1화로 압축을 해버렸기 때문이다.[5] 이미 마리 앙투아네트의 내연남으로 프랑스 전체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지라 혁명 정부의 주요 감시 대상이였고, 이후 바렌느 도주 사건을 진두지휘하며 루이 16세 일가의 도주를 적극 도와주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현상금까지 걸린다.[6] 페르젠이 절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오스칼의 미들네임에서 따온 이름이다. 당시 아버지가 아랑과 함께 나폴레옹 암살 미수로 처형당하자 어머니와 함께 스웨덴으로 망명해 있었다.[7] 성도 그렇고 자신 빼고 가족들 모두 과학자라는 걸 보면 알겠지만 알프레드 노벨의 조상 중 한명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파비앙 본인도 공화파이지만 페르젠에 대한 소문을 민중들이 비뚤어진 선동에 넘어간 거라고 냉정히 판단하고 있었다.[8] 전술했듯이 바렌 도주 사건이 있던 날이며 페르젠은 그때 자신은 죽었다고 회고하였다. 로잘리도 파비앙에게 암살 음모를 듣자마자 바로 눈치챘으며 그의 선택을 이해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5 13:32:25에 나무위키 한스 악셀 폰 페르센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