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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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팔도강산 시리즈
영화
팔도강산 (1967)
속 팔도강산 (1968)
팔도 며느리 (1970)
내일의 팔도강산 (1971)
아름다운 팔도강산 (1972)
우리의 팔도강산 (1972)
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 (1974~1975)
종착역 (2008)



팔도강산 (1967)
Six Daughters


파일:팔도강산 포스터.jpg

감독
배석인
각본
서근배, 신봉승
촬영
배성용, 허동학
조명
이계창, 양찬종
편집
이지완
음악
정윤주
미술
송백규
제작사
국립영화제작소
제작
주동진
각본
서근배
촬영
배성룡
출연
김희갑, 황정순, 김승호, 김진규, 최은희,
박노식, 허장강, 고은아, 신영균, 조항
개봉일
1967년 2월 9일
개봉관
국도극장
관람인원
325,904명

1. 개요
2. 줄거리
3. 배역
4. 기타



1. 개요[편집]


1967년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제작한 국정 홍보 영화다. 근대화의 성과를 선전하기 위한 계몽 영화로 제작되었지만 호화판 배역에다 관광 영화의 성격을 띄어 팔도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훈훈한 가족애까지 곁들이면서 그해 국산영화 흥행 1위에 오르며 성공했다. 이후 국립영화제작소와 문화공보부의 공동제작으로 속편 속 팔도강산이 만들어졌고 이후에도 민간영화사를 통해 후속작들로 이어졌다.

1974년에는 KBS 일일 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으로 만들어져 방영되었다. 꽃피는 팔도강산은 이후 2008년 중국판으로 리메이크되어 MBC에서 종착역이란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2005년에는 여운계, 백일섭, 전원주 등을 주연으로 한 뮤지컬로 리메이크되었다. 황정순 역시 이 연극에 합류했다.


2. 줄거리[편집]


1남 6녀를 둔 노부부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아들, 딸들의 초대를 받고 자식들을 방문한다. 전국을 돌면서 발전된 모습을 보며 놀라워 하던 노부부는 아들, 딸 들이 건실하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더욱 흐뭇해한다. 그러나 그 중 사업에 실패한 딸이 있어서 노부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형제들의 도움으로 노력하는 딸을 보고 마음을 놓는다. 유랑을 마치고 돌아온 노부부에게 아들 딸들이 우애있게 회갑잔치를 마련해 노부부의 마음은 여한이 없다.


3. 배역[편집]


  • 김희갑 - 김희갑(한의사) 역
  • 황정순 - 황정순 역
  • 김승호 - 첫째 사돈 역
  • 최은희 - 청주 첫째 딸 역
  • 김진규 - 청주 첫째 사위 역
  • 이민자 - 부안 둘째 딸 역
  • 박노식 - 부안 둘째 사위 역
  • 김혜정 - 울산 셋째 딸 역
  • 이수련 - 울산 셋째 사위 역
  • 고은아 - 부산 넷째 딸 역
  • 허장강 - 부산 넷째 사위 역
  • 조항 - 다섯째 아들(군인) 역
  • 강미애 - 속초 여섯째 딸 역
  • 신영균 - 속초 여섯째 사위 역
  • 강문 - 일곱째 딸 역
  • 이대엽 - 사윗감(자전거 선수) 역


4. 기타[편집]


박정희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선거 홍보용으로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김희갑은 자전회고록인 '어느 광대의 사랑'에서 "1966년 공보부장관이 자신을 찾아와 '《팔도강산》을 공보부에서 제작하려고 한다. 내년 6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데 잘 찍으면 홍보용으로 아주 걸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보통 국책 영화는 인기가 없는 게 정상인데, 큰 흥행을 한 이유는 산업 사회의 문물을 보여줘서 여기에 신기함을 가지고 관객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에서는 공화당의 치적을 선전하는 영화로 선거법 위반이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워낙 인기가 있어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 영화와 관련된 연구 서적도 내놓았을 정도. 또한 이 영화는 만주국의 근대적 발전상을 과시한 영화 《개대환희(皆大歡喜)》[1]의 복사판이라는 연구결과가 많다.#[2]

원래 팔도라 하면 조선 시대부터 남북한의 여덟 개 도를 말하는 것인데, 이 영화 이후 북한을 빼고 남한만 남도 북도 따로 쳐 가며 8도로 세는 거라고 잘못 인식되기 시작했다.[3]

현재 이 작품을 보면 마치 북한 영화 같은 느낌을 준다. 60-70년대 당시의 서울 사투리가 평안도 억양과 비슷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데 한 몫 하고 있다. 사실 이는 당연한 것이, 북한 영화라는 게 99.99% 사회주의(훗날 주체사상) 프로파간다 체제선전이나 기록 영화인데 팔도강산도 박정희 정부 산업화 치적의 프로파간다 영화라는 점에서 구조나 느낌이 같을 수밖에 없다. 상술하였듯 이 영화는 공산주의 예술 영향은 안 받았지만 만주국의 프로파간다 영향은 짙다.

이 작품에서는 학교 선생님인 아들네를 방문했을 때 며느리가 가난한 형편을 견디다 못해 미제 물건을 몰래 팔다가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과 같이 당시의 당시의 시대상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 시리즈의 공통적인 내용은 주로 국가의 발전상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시리즈 제3편인 내일의 팔도강산에서는 유명 가수들이 각 지역을 배경으로 노래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노래 '하숙생'으로 유명한 최희준이 부른 팔도강산 주제가 또한 인기를 얻었다.

팔도강산 시리즈는 김희갑황정순이 공통적으로 출연하며 이후의 속편들에서도 유명한 배우들이 겹쳐서 등장하는 데다 기본 설정이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작품 간에 혼동하는 경우가 자주 있으며, 영화를 소개하는 자료들 중에서도 작품 간에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노 부부가 팔도에 흩어진 자식들을 찾아다닌다는 설정은 같지만(팔도 며느리 제외) 시리즈의 내용이 직접 이어지지는 않아서 따로 따로 보아도 문제는 없다.


1976년 영화 돌아온 팔도강산은 30년만에 고국을 찾은 조총련계 재일동포 모국방문단을 소재로 한 반공 영화로 팔도강산 시리즈와는 제목만 비슷할 뿐 관련이 없다. 이외에도 '팔도 노랭이', '팔도 사위', '팔도 식모', '팔도 유람', '팔도 사나이', '팔도 기생', '팔도 가시나이', '팔도 주방장' 등 '팔도'가 붙은 유사 제목의 영화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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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2년 제작되었으며 당시 만주국에 설치된 고속철도 등 온갖 신문물을 홍보하는 영화였다고 한다.[2] 한석정, '박정희, 혹은 만주국판 하이 모더니즘의 확산', 「일본비평」 참조[3] 옛날 행정구역이나 나중의 인식이나 제주도가 빠지고 없는데, 조선시대에는 제주도가 전라도 소속이었고, 나중에는 잘못 인식한 것이라 개수가 안 맞는 것이다. 제주도는 본토도 아니고 얼른 연상도 떠오르지 않는다. 하물며 제주도 가는 것도 해외여행이라 인식하던 저 시절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