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밍턴 광산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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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파밍턴 광산 참사.jpg

1. 개요
2. 사고 내용
3. 사고 이후



1. 개요[편집]


Farmington Mine Disaster

1968년 11월 20일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파밍턴에서 일어난 광산 화재.


2. 사고 내용[편집]


1909년에 채굴이 시작된 콘솔 No.9 광산은 파밍턴의 북쪽에 위치했던 석탄 광산으로, 아팔라치아 유역에서 가장 큰 광산이었다. 원래는 재미슨 석탄(Jamison Coal)과 코크 회사(Coke Company)에서 운영했으나, 1956년 콘솔리데이션 석탄 회사(Consolidation Coal Company. 현 Console Energy)에서 구입했다. 규모는 무려 35.4 평방 킬로미터나 되었고, 입구 수직 갱로는 98m 깊이에 달했다. 규모가 큰 만큼 채굴되는 석탄의 양도 엄청났는데, 1911년엔 1년에 무려 9만톤에 달하는 석탄이 나오던게 1916년엔 110만 톤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위험성도 커졌는데, 1954년에는 메탄 가스 폭발로 16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조사 결과 가스를 환기시키는 시스템이 있으면 사고를 예방할수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후 환기 시스템이 설치 되었으나, 사고 전 환기 시스템이 고장나 안에 조금씩 가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1968년 11월 20일엔 광부 99명이 광산 안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전 5시 20분 경 광산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로 19km 밖의 땅이 흔들리고, 광산 근처의 바위가 날아갈 정도였다. 폭발을 들은 인근 주민들은 혹시 누군가 다쳤는지, 도울 수는 있는지 알아보려고 광산으로 향했다. 폭발은 이내 대형 화재로 번져나갔다. 오전 6시, 광부 13명이 광산에서 무사히 빠져나왔다. 9시엔 수백명이 구조를 도우러 왔다. 하지만 불이 너무 거세 어찌 할 여지가 없었다.

일단은 수직 갱 아래로 전화기를 내려보내 혹시 모를 생존자와 통화를 시도했고, 방독면 여러개도 내려보내 생존 가능성을 올렸다. 오전 10시엔 광부 8명을 구조하는데 성공했다. 그 중 5명은 일산화탄소 중독 증세를 보였으나 다행히 전부 무사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여러차례 폭발이 더 일어났다. 연기가 너무 심해 안의 사람들은 숨을 쉬는게 불가능 하다는 판단도 나왔다. 사고로 부터 9일이 지난 29일, 불은 계속해서 타올랐다. 불을 끄는 유일한 방법은 입구를 막아 산소 공급을 완전 차단하는 방법 외엔 없었다.

결국 화재로 78명이 사망했다. 화재가 간신히 진압된 이후, 시신을 어떻게서든 회수해보려 했으나, 몇년간의 노력 끝에도 19명의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다.


3. 사고 이후[편집]


1969년, 웨스트 버지니아의 광부 4만여명이 모여 더 안전한 업무 환경을 보장해달라, 광산에서 일하면서 생기는 병에 대한 치료 보장을 해달라며 시위를 벌였고, 같은 해에 관련 법안이 통과됐다.

사고 현장 인근엔 사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져 매년 추모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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