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파키스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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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2.1.1. 2010년대
2.1.2. 2020년대
3. 군사 교류
4. 문화 교류
5. 대사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튀르키예파키스탄의 관계에 대한 문서다. 양국은 이슬람 협력기구의 회원국이다. 파키스탄은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 튀르키예와 수교했다.

양국은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며 파키스탄은 아르메니아 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아르메니아와 수교를 맺지 않고 있다.

튀르키예내에는 파키스탄인 공동체가 소수 존재한다. 다만, 난민 문제에서 갈등이 존재하며 튀르키예 측은 파키스탄 난민들을 송환시키고 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파키스탄은 남아시아의 무슬림들이 인도의 힌두교도들과 분리독립하는 과정에서 건국된 국가로, 파키스탄의 건국에는 오스만 제국 그리고 튀르키예가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튀르키예에서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을 직접 책동한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남아시아의 무슬림 학자 상당수는 인도 제국의 무슬림들이 영국 여왕에게 충성하는 대신 당시 칼리파를 겸임한 오스만 제국 술탄에게 충성을 바쳐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스만 제국과 활발한 교류를 해왔다. 1909년 데오반드 대학의 학장이 오스만 제국과 직접 접촉하여, 오스만 제국이 아프가니스탄과 힘을 합쳐 영국을 인도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당시 오스만 제국은 국내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인도 무슬림까지 보살필 상황이 되지 못했고, 1922년부로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면서 정신적 지주가 사라진 데오반드 학파 운동가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대의명분을 상실한 이들은 이집트와 시리아-레바논 일대의 아랍인 살라프파 운동에 영향을 받게 되었고, 그 결과 남아시아의 무슬림들은 힌두교도들과의 공존 대신에 독자적인 이슬람 국가의 건설을 추진하게 되었던 것이다.

2.1. 21세기[편집]


2004년 7월 2일에 이라크에서 파키스탄인, 튀르키예인이 인질로 잡히다가 석방됐다.#

2005년에 에르도안 총리는 파키스탄 이재민에게 1억5천만 달러 규모의 지원을 밝혔다.#


2.1.1. 2010년대[편집]


2011년 9월 7일에 파키스탄 항공 소속 여객기가 테러위협을 받자 터키에 비상착륙했다.#

2012년 12월 11일에 튀르키예, 아프간, 파키스탄 정상간 핫라인이 개설됐다.#

2013년 9월 14일에 나와즈 샤리프 총리가 튀르키예를 방문해 경제협력을 강화했다.# 9월 18일에 양국은 경제협력을 강화키로 합의했다.#

2015년 샤를리 엡도 비판에 튀르키예와 파키스탄 등 이슬람권 국가들이 참여했다.#

2016년 11월 17일에 파키스탄 정부는 튀르키예인 400여명에게 출국을 명령했다.# 이에 튀르키예인 400여명이 반발해 항소했다.#

2017년에 튀르키예항공은 파키스탄항공과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2018년 7월 18일에 파키스탄에서 귈렌 운동 소속의 튀르키예인이 피랍됐다.# 7월 27일에 양국에서 경제위기설이 고조됐다.#

2019년에 귈 법무장관은 91개국에 504명에 대해 귈렌 운동 범죄인 체포·인도를 요청했다고 공개했고 이 가운데 우크라이나, 코소보, 아제르바이잔, 가봉,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이 튀르키예 정부의 요청에 응했다.#


2.1.2. 2020년대[편집]


2020년초부터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양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발생했다. 이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자 튀르키예, 파키스탄은 국경을 폐쇄한 적이 있었다.#

2021년 3월 21일에 파키스탄이 튀르키예행 화물열차 운행을 재개했다.# 4월 24일에 튀르키예, 아프간, 파키스탄 외무장관들은 탈레반이 평화협상에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11월 5일에 튀르키예 경찰은 에게해를 넘을려고 했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이주민들을 적발했다.# 8월 25일부로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장악하자 파키스탄, 튀르키예 등 주변국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아프간 난민들을 막기 위해 파키스탄, 튀르키예는 장벽을 세웠다.# 11월 6일에 튀르키예의 차우쇼을루 장관은 시리아인 470,000명이 시리아로 돌아갔고 귀국을 원하는 파키스탄인들을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2022년부터 식량위기가 발생하자 양국은 농산물 수출 금지 및 제한 조치에 들어갔다.#

2022년, 튀르키예는 홍수 피해를 입은 파키스탄에게 지원금을 고냈다.# 그리고 2023년 2월 튀르키예와 시리아 대지진에서 파키스탄이 튀르키예를 지원하였으며, 미국에 거주하는 익명의 파키스탄인이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위해 약 380만원을 기부하였다.#


3. 군사 교류[편집]


2010년 12월 25일에 튀르키예, 파키스탄, 아프간은 2011년 4월에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2017년 12월 29일에 파키스탄이 중국, 튀르키예로부터 신형 호위함 7척을 도입했다.#

2018년 7월 5일에 튀르키예는 파키스탄 초계함 4척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2021년 9월 12일부터 아제르바이잔, 튀르키예, 파키스탄은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4. 문화 교류[편집]


튀르키예의 주류 이슬람 학파는 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순니파 중에서도 하나피파에 속한다. 그러나 튀르키예의 경우 건국 직후부터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강력한 세속주의 정책이 펼쳐졌던 반면, 파키스탄의 경우 다민족 국가인 상태로 독립하였기 때문에 국민들을 단합시킬 수 있는 가치가 이슬람밖에 없는 상황이었고,[1] 파키스탄의 건국을 무함마드 알리 진나 등등 세속주의 성향 인사들이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힌두교 근본주의를 주장하는 인도 때문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이슬람 근본주의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오늘날 파키스탄에서는 에르도안주의로 대표되는 튀르키예의 범이슬람주의에 호응하는 상황이며, 오히려 튀르키예보다도 파키스탄에서 에르도안에 대한 지지여론이 더 높은 상황이다.

코로나19 등으로 중국에 대한 악감정이 상승한 파키스탄 국민들이 튀르키예를 좋아하는 쪽으로 다수 늘어났다.

5. 대사관[편집]


앙카라시에 주 튀르키예 파키스탄 대사관, 이슬라마바드시에 주 파키스탄 튀르키예 대사관이 존재한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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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튀르키예 역시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이 되어 있지만 국민 대다수가 튀르키예어를 모어로 사용하고 오스만 제국-튀르키예로 이어지는 국가적 정체성도 있었다. 이에 반해 파키스탄의 경우 지방마다 사용하던 언어가 다 달랐고, 파키스탄의 국어 우르두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소수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파키스탄 자치령이 수립되기 이전에는 파키스탄이라는 나라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국가적 정체성도 없다시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