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튀니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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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2.2. 20세기
2.3. 21세기
3. 대사관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튀르키예튀니지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양국은 문화, 종교에서 공통점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이슬람 협력기구의 회원국들이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20세기 이전[편집]


튀니지 지역은 16세기 말에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574년 오스만 제국은 튀니지를 제국의 한 지방으로 만들었고, 아나톨리아 출신 병사들 그리고 이탈리아, 스페인 출신 개종자로 이루어진 병력들도 주둔시켰다. 1591년에는 현지의 예니체리 장교들이 오스만 제국에 반기를 들고 술탄이 임명한 총독 대신 그들 스스로 자신들 중에서 사람을 '데이'로 추대했다. 데이가 튀니스를 지배하는 동안, 나머지 지역은 코르시카 출신의 징세관(베이) 무라드와 그 후손들이 지배했다. 두 진영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여졌다. 예니체리와 베두인들은 데이 세력이 합류했고, 도시와 농민들은 베이의 편에 섰다. 결국 무라드가 이끄는 베이 세력이 승리하여 1705년까지 튀니지를 지배했으며, 이후 후사인 이븐 알리가 왕조를 세웠고, 이 왕조는 1957년까지 튀니지를 다스렸다.

이론상 튀니지는 오스만 제국의 가신이었으나 상당한 수준의 자치를 인정받았다. 금요일 예배는 오스만 술탄의 이름으로 근행되었고, 술탄을 기념하는 자체 화폐가 주조되었으며 해마다 외교사절이 이스탄불 술탄에게 선물을 바쳤다. 오스만 제국은 그 이상의 복종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알안달루스에서 튀니지로 피난 온 무슬림이나 유대인 이주자들은 펠트 모자를 만들어서 팔았는데 이는 오스만 제국에서 크게 유행하였고, 튀니지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샤시야'는 지중해 전역의 기독교인,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무슬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즐겨 쓰던 제품으로 오스만 제국 각지로 팔려나갔다.

하지만 18세기 후반 튀니지의 경제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1784년부터 1820년까지 흉작과 전염병이 이어졌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튀니지 공장에서 생산되는 모자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종주국인 오스만 제국 역시 세력이 약해졌고 결국 튀니지는 1867년 파산 선고 이후 1881년부로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


2.2. 20세기[편집]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몰락하고 신생 터키 공화국이 출범했다. 튀니지 지역은 이당시에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다른 프랑스령 지역들과 함께 독립했다. 그리고 양국은 공식수교했다.


2.3. 21세기[편집]


양국은 현재 교류가 많은 편이다. 종교, 문화에서 공통점이 많은 편이고 이슬람 협력기구의 회원국들이다. 튀르키예 드라마는 튀니지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이다. 그리고 튀니지와 튀르키예는 세속국가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오스만 제국 시절의 튀르키예는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를 지배할 때 동시에 북아프리카의 영향을 받기도 했는데 북아프리카 전통음식인 쿠스쿠스를 튀르키예에도 먹는 것이 대표적이다. 튀니지도 튀르키예의 영향을 받았는데 대표적으로 국기가 비슷하다. 그래서 터키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일부 아랍인들에게 튀니지 국기도 부정적으로 볼 때도 있었다. 물론 튀르키예 국기와의 차이점을 찾으면 튀니지 국기는 하얀 원 안에 붉은 초승달과 별이 있다는 것이고, 튀르키예 국기는 붉은 바탕에 흰 초승달과 별이 있는게 차이점이며, 튀니지 국기는 페니키아 여신을 상징하는 문양에서도 유래되었다.


3. 대사관[편집]


튀니스에 튀르키예 대사관, 앙카라에 튀니지 대사관이 존재한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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