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방글라데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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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튀르키예와 방글라데시와의 관계. 각국 총리나 대통령, 부통령 등 정치인들이 서로 방문했고, 교류도 활발하다. 양국은 이슬람 협력기구, 이슬람 개발도상국(D-8)#의 회원국들이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20세기 이전[편집]
튀르크계+타지크계(페르시아계) 국가였던 고르 왕조가 1280년대부터 벵골 일대까지 점령한 것을 시작으로 델리 술탄 왕국까지 일부 튀르크계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이 현상은 벵골 술탄국까지 유지되어 15세기, 튀르크계 장군이었던 울루 칸 자한은 벵골 술탄국 남부도시인 바게르하트(Bagerhat)에 여러 지붕이 천장을 장식한 모스크를 지었다.#[1]
2.2. 20세기[편집]
양국은 1970년대 방글라데시가 독립한 이후 본격적으로 외교를 맺었고 이후 경제적 교류, 왕래도 적지 않다.
2.3. 21세기[편집]
2014년에 일어난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사고와 튀르키예 탄광 사고가 모두 안전 불감증에서 발생된 인재라는 지적이 나왔다.#
2016년에 양국에서 다에쉬에 의한 테러가 발생했다.# 튀르키예와 방글라데시 양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국제사회의 협력을 촉구했다.# 방글라데시에서 근무중이던 튀르키예 공무원 2명이 미국으로 망명했다.#
2017년 9월에는 에르도안의 아내인 에미네 에르도안(Emine erdogan)이 치타공에 있는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했다. #
2019년 12월 26일에 튀르키예의 반호수에서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아프간에서 넘어온 난민들을 실은 배가 침몰해 7명이 사망했다.#
2020년 7월 8일에 튀르키예 당국은 아프가니스탄과 방글라데시, 시리아, 소말리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이란 등에서 온 난민 270명의 밀입국을 알선한 업자들을 적발했다.# 9월 14일에 인도가 양파 수출을 금지시키자 방글라데시는 튀르키예, 이집트 등에서 양파 수입을 검토했다.# 12월 23일에 튀르키예는 다카시에 새 대사관을 공식 개관했다.# 12월 28일에 샤를리 엡도가 에르도안 대통령 만평을 공개하자 튀르키예, 방글라데시 등 이슬람 국가들이 반발했다.#
2021년 6월 29일에 튀르키예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네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로부터 입국을 7월 1일부터 금지한다고 밝혔다.# 11월 5일에 튀르키예 경찰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주민들과 밀입국 알선업자들을 체포했다.#
2023년 2월 14일, 방글라데시의 로힝야 난민촌의 로힝야족들은 담요, 겉옷을 모아 강진이 일어난 튀르키예에게 기부했다. #
3. 경제 교류[편집]
양국은 AIIB에 가입돼 있다.# 양국간의 경제 교류가 활발하며 튀르키예 기업들이 방글라데시에도 진출했다.
4. 문화 교류[편집]
역사적으로도 간접적으로 연관돼 있기도 한데, 둘 다 순니파 이슬람 하나피파 법학파에 속한다. 그리고 양국은 무슬림 비중이 높은 편이다. 또한, 세속주의 경향이 강한 편이다.
5. 교통 교류[편집]
두 나라들을 잇는 항공 노선(샤잘랄 국제항공-이스탄불 공항)이 존재한다.
6. 대사관[편집]
다카 시에 주 방글라데시 튀르키예 대사관이 존재한다.
7. 여담[편집]
방글라데시는 튀르키예와 혈통적으로 어느 정도 비슷한 사람들도 있는데 역사적으로 벵골 지역으로 이주해온 튀르크계 이주민들이 벵골 지역에 살면서 문화적으로 동화되거나 혼혈이 되었기 때문이다.
8. 관련 문서[편집]
- 튀르키예/외교
- 방글라데시/외교
- 이슬람 협력기구 / AIIB
- 튀르키예/경제
- 방글라데시/경제
- 튀르키예인 / 방글라데시인 / 벵골인
- 튀르키예어 / 벵골어 / 이슬람교 / 순니파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서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남아시아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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