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루즈 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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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혁의 소설 강철의 누이들에 등장하는 라스니아 전역 종전 직전에 일어난 사건.

일단은 나무위키에 툴루즈 폭격이라고 올라와 있지만, 사실 툴루즈만 폭격당한 건 아니다. 단순히 피해만으로 따지자면 툴루즈 폭격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 미끼로 공습한 셰르부르의 피해가 훨씬 컸다.

1. 개요
2. 전개 상황
2.1. 연합왕국의 최후통첩
2.2. 셰르부르 공습
2.3. 툴루즈 공습
3. 결과


1. 개요[편집]


미테란트와 라스니아의 전쟁이 사실상 미테란트의 승리로 끝난 상태에서 두 나라는 휴전 상태로 강화협상을 시작했는데, 미테란트는 라스니아에 대해 10년간 군비제한과 국경선 기준 100Km 비무장지대 설정이라는 조건을 걸었고 라스니아는 이런 조치가 사실상 국가의 자위권을 방폐하라는 강요, 즉 국가의 주권 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하여 강화협상 체결은 계속 지연되었다.

그러던 중, 공식적으로 참전을 선언하고 곧바로 미테란트의 수도인 르제프를 폭격하는 등의 제한적인 전략적 군사행동을 감행한 후 얼마간 침묵하던 연합왕국은 별안간 아무도 생각치 못한 일을 저질렀는데, 다름아닌 셰르부르와 툴루즈를 비롯한 라스니아의 도시들을 폭격해버린 것이었다.


2. 전개 상황[편집]



2.1. 연합왕국의 최후통첩[편집]


일의 진행 과정도 만만치 않은 게, 밤중에 갑자기 연합왕국 대사가 라스니아 대통령을 찾아와서는 지금 셰르부르 폭격 3시간 전이라며 강화협상의 진행을 위해 미테란트의 요구에 따라 평시 상태로 군항인 셰르부르에 정박 중인 라스니아 해군 함선들[1]을 연합왕국에 넘기거나 자침시키지 않으면 셰르부르를 폭격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연합왕국은 미테란트에 선전포고를 한 상대였으므로 라스니아는 적이 아닌데도 이런 식으로 협박을 했으니 사실상 미테란트에 항복한 라스니아를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2]


2.2. 셰르부르 공습[편집]


이 소식을 전해들은 라스니아는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미테란트가 요구한 휴전 조건에 따라 남아 있는 모든 군사력을 무장해제 상태로 대기[3]시켰던 터라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이에 라스니아는 미테란트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미테란트 역시 이렇다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4] 결국엔 셰르부르는 불바다가 되었고, 셰르부르에 정박해 있던 라스니아 해군 함정 다수가 파괴되고 말았다.

2.3. 툴루즈 공습[편집]


하지만 더 큰 일은 이 다음에 벌어졌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셰르부르 상공에 도착한 미테란트 공군의 공중조기경보통제함 프린츠 오이겐의 레이더에 라스니아의 주요 군수산업도시인 툴루즈로 향하는 대규모 폭격대가 포착된 것이다. 조금 전의 셰르부르 공습은 실은 라스니아와 미테란트 요격기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였던 것.
운 좋게도 뒤늦게나마 출격시킨 얼마 안 되는 비행기들이 툴루즈를 작전반경 안에 넣고 있었던 미테란트 공군과 함께, 연합왕국의 뒤통수[5]에 단단히 빡돌아버린 라스니아 공군은 무장조차 없는 전투기 다수를 이륙시켜 이의 저지에 나섰다. 특히 라스니아 공군은 비무장 상태인 전투기로 적기에 돌진, 날개로 폭격기 동체를 끊어버리고 조종사는 탈출하는 식으로 필사적으로 싸웠다고.[6] 그 결과 폭격대의 대오가 심하게 흐트러지고 다수가 격추되는 등 피해가 속출, 결국 툴루즈에 떨어진 폭탄은 약 40톤 정도에 불과했고,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3. 결과[편집]


이 사건으로 인해 지지부진했던 미테란트와 라스니아의 강화조약은 급물살을 탔다. 게다가 이 공습으로 단단히 빡돌아버린[7] 라스니아는 애초에 미테란트가 요구했던 조건보다도 훨씬 파격적인 조건을 라스니아 측에서 먼저 제시했다. 군사동맹 체결로, 육군과 공군의 지휘권을 미테란트에 통째로 양도[8]하고 라스니아가 우세한 해군력 운용에서도 자국 해군 사령관이 연합 해군사령관이 되어 미테란트 정부의 작전통제를 받겠다거나, 심지어 서부공화국연방에 대한 공동 투쟁도 불사하겠다는[9] 등등. 이후 라스니아의 방위산업체가 5식 고속전투전차 개량사업에 참가해서 계약을 따낸다든가 남부전역에 라스니아군이 투입되어 전선 붕괴를 막아내는 등의 사건은 모두 이 군사동맹 덕분에 가능했다.

[1] 전함 6척에 순양함 12척[2] 사건의 모티프는 영국이 wiki:"프랑스 침공" 이후 독일에게 프랑스 해군이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저지른 캐터펄트 작전이다. 당시 영국은 영국 항구에 정박한 프랑스 해군 함정을 접수하는 한편, 프랑스령 항구에 있는 프랑스 함정들도 강제로 영국에 끌고 가거나 정 안 되면 격침시켜버린다는 계획을 수립,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벌어진 대표적인 사건이 멜 엘 케비르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영국 해군은 아직 동맹관계가 유지 중이던 프랑스 함정 다수를 격침시키고 수천 명의 프랑스 해군 수병을 살상했다.[3] 지상군은 거의 괴멸된 가운데, 그럭저럭 온존했던 해군력은 모두 항구에서 기관을 정지시킨 채 대기중, 항공기는 아예 무장까지 탈거한 채 지상에 대기하고 있었다.[4] 미테란트 공군도 셰르부르까지 단시간에 보낼 수 있는 비행대가 하나뿐이었다. 그나마도 대기중인 비행기도 별로 없었다.[5] 해군만 넘기라는 것은 그나마 적이 즉각 이용할 수 있는 군사력의 양여를 차단한다는 차원에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조치였으나, 공업도시에 대한 전략공격은 사실상 전쟁을 틈타 라스니아의 경제력까지 파괴해 버리겠다는 조치로밖에 볼 수 없었다.[6] 이런 전술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전략폭격을 당한 모든 국가에서 사용됐다. 특히 독일 공군과 일본 육/해군항공대 및 독일 공군은 이런 공격을 위한 전문 부대까지 창설했을 정도다.[7] 이때 오죽 빡돌았으면 군사동맹 체결 이후긴 하지만 당장 라스니아를 공격한 적이 없는 아타만 제국 함대가 연합왕국으로 향하는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다짜고짜 폭격을 시도할 정도였다. 대놓고 "저들이 연합왕국과 손잡는다면 우리 적이다!"라고 대통령이 이를 갈 정도. 물론 그 기대에 걸맞게 그 직후 연합왕국 해군의 기습으로 라스니아 공군은 한 방 더 먹었다.(...)[8] 어차피 육군은 괴멸이고 공군도 전력이 대폭 감소해 있으니 하나마나 같지만...[9] 미데란트측에서 연합왕국만이 아닌 서부공화국연방과도 싸울지도 모른다고 살짝 언급하자 오히려 라스니아쪽에서 서부연방과 연합왕국이 공조한것에 대한 문서증거가 있다고 언급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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