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하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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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하라어
kuśiññe
Tocharian 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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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굴절어
어순
주어-목적어-동사 (SOV)
서자방향
좌횡서 (왼쪽부터 가로쓰기)
문자
카로슈티 문자 및 브라흐미 문자
주요 사용 지역
(또는 공용어 지정 국가)
타림 분지
사멸
9세기 경
계통
인도유럽어족
토하라어파
언어
코드

ISO 639-3
XTO/TXB[1]

1. 개요
2. 특징
3. 문법
4. 기원 및 계통 분류
5. 문자
6. 기타
7. 듣기



1. 개요[편집]



토하라어는 현대의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쓰였던 인도유럽어족언어이다. 토하라인들이 사용했지만 8세기 이후에는 토하라인들이 위구르족들과 동화되면서 소멸되었다.


2. 특징[편집]


2019년 연구에 따르면 토하라어는 우랄어족, 예니세이어족, 유카기르어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되는데, 특히 유형학적으로 다른 인도유럽어족 언어들과 강한 차이를 보이는 반면 우랄어족, 특히 사모예드어파 언어들과 유사하다고 한다. 또한 모음 체계 부분에서 예니세이어족과 강한 유사성을 보인다고 한다.[2] 링크

토하라어는 인도유럽어족 토하라어파란 독자적인 계통의 언어였다. 토하라어는 Tocharian A[3], Tocharian B[4], Tocharian C[5]로 나뉘었다. 그리고 토하라어는 켄툼(Centum) 제어 계통에 속했다. 상고한어 중 몇몇 소수 단어들은 토하라어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예를 들어 , , 등 몇몇 소수의 단어들은 토하라어에서 유래되었다고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토하라인은 8세기 이후에 토하리스탄위구르 제국에게 정복되고 많은 사람들이 서쪽으로 흩어져 이동하였다. 남아있는 소수는 마니교로 개종하였으나 이들도 점차 서쪽으로 이동하였고 이후 소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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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하라어는 토하라어 A(아그니 방언)[6]와 토하라어 B(쿠차 방언),[7] 그리고 로프누르 호 서안에 있던 크로라이나(누란) 왕국에서 쓰인 토하라어 C(크로라이나 방언)[8]의 세 가지 방언으로 나뉜다.

토하라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지만, 토하라인의 영역인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서쪽에서 쓰이던 소그드어, 타지크어 등이 인도이란어파에 속하는 것과는 달리 토하라어는 독자적인 토하라어파를 이룬다.


3. 문법[편집]


토하라어 A와 B는 모음이 공통적이고 자음의 숫자가 같으며, 둘 다 장단이 없는 단모음을 사용했다.

토하라어 A는 단모음만 있지만 토하라어 B는 이중모음도 있었다. 또한 토하라어 B는 일반적으로 음절이 3개 이상인 단어는 두 번째 음절에, 음절이 2개인 단어에는 첫 번째 음절에 강세가 있지만, A는 그렇지 않았다.

토하라어 A와 B는 다른 인도유럽어족들처럼 문법적 성이 있었고 남성, 여성, 중성을 구별했으며, 그리고 인도유럽조어처럼 단수, 양수, 복수를 구별함은 물론이고 자연적으로 짝이 있는 것[9]과 낱개가 복수로 있는 걸 구별했다.

또한 사람과 관련된 명사와 그 이외의 명사를 구별했으며, 동사로는 세 사람과 세 집단을 구별하였다. 또한 능동태중간태가 있었고 몇몇 토하라어 동사는 중간태로만 나타난다.

동사 활용은 직설법이 있으며 시제는 현재와 과거시제(완료와 미완료)로 있었다. 접속법, 희구법, 명령법 역시 구별된다.

미래는 현재 시제로 표현되기도 하고, 접속법이나 동명사 형태로도 표현된다. 동사는 사동형기저형이 구별되었고, 기본 어순인도이란어파튀르크어족처럼 SOV 형태[10]이다.


4. 기원 및 계통 분류[편집]


토하라어는 인도유럽어족 내에서 홀로 독자적인 어파를 이루고 있다. 또한 같은 어족에 속하는 다른 어파들과의 관계가 활발하게 연구되었는데 2021년 기준으로 가장 유력한 설에 의하면 켈트어파이탈리아어파와 가장 가까운 근연 관계에 있다고 추정된다.

이와 관련하여 아르메니아 가설이 주목을 받았다. 아르메니아 가설은 그리스어로 대표되는 헬라어파와 아르메니아어로 대표되는 아르메니아어파가 공통조어의 후예라는 가설에서 출발했다. 가설에 따르면 크게 헬라어파·아르메니아어파·인도이란어파가 동계가 되고, 켈트어파·이탈리아어파·토하라어파가 동계가 되며, 발트어파·슬라브어파·게르만어파가 동계가 된다.

이에 따른 구체적인 인도유럽어족의 분화 과정은 다음과 같다. 기원전 4000년 무렵 캅카스 지역을 출발지로 인도유럽조어에서 맨 처음 아나톨리아어파[11]가 갈라져 나왔고, 서쪽으로 이동해 대략 기원전 3000년 무렵에 아나톨리아 반도에 정착했다. 이후 헬라-아르메니아-인도이란 조어가 분리되었다가 기원전 3000년 쯤에 각각 헬라어파, 아르메니아어파, 인도이란어파로 분리된 뒤 헬라어파 사용자들은 서쪽으로 이동해 아나톨리아와 남유럽 방면으로 진출하였고 인도이란어파, 켈트-이탈리아-토하라 조어, 발트-슬라브-게르만 조어 사용자들은 카스피해 동안을 따라 캅카스 산맥을 넘어 북상한다. 기원전 2000년 무렵에는 켈트-이탈리아-토하라 조어에서 토하라어파가 분리된 뒤 흑해 북안을 거쳐 중앙아시아 방면으로 이동한다. 기원전 2000년에서 기원전 1000년 사이 켈트-이탈리아 조어 및 발트-슬라브-게르만 조어 사용자들은 카스피해 북쪽의 동유럽 초원지대를 거쳐 서쪽으로 이동하여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인도이란어파의 경우 원시 인도이란어파 사용자들의 유전자에서 유럽 토착 농경민의 혈통이 일부 섞인 걸로 나타났는데 일단 상기 집단들과 함께 초원지대를 거쳐 서쪽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동쪽으로 이동해 흑해 북안을 거쳐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남아시아 방면으로 이동했던 걸로 보인다.[12]

따라서 아르메니아 가설에 따르면 토하라어는 넓게는 켈트어파아일랜드어, 스코틀랜드 게일어, 웨일스어, 브르타뉴어, 그리고 이탈리아어파라틴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등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셈이다.

2021년 네이처의 발표에 의하면 토하라인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졌던 타림 분지에서 출토된 미라들은 유전자 검사 결과 마지막 빙하기 말엽 널리 퍼졌던 플라이스토세 인구[13]의 직계 후손이라는 것이 확인됐으며, 다른 지역 주민들과는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한다. 즉, 유전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토착민이라는 것이다. 고대 유라시아인 형질을 가진 대표적인 고인골인 말타뷰렛 소년(일명 MA-1)[14]과 이들의 관계가 어느 정도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예니세이 강 상류의 아폰토바 고라[15] 유적의 3호 고인골 샘플과 가장 가깝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따라서 이 연구 결과에 의하면 토하라어는 켈트족의 자매 민족인 아파나시에보 문화[16]의 주민들이 오늘날의 동튀르키스탄으로 유입되면서 현지의 선주민들을 동화시키면서 성립된 언어로 추정된다.


5. 문자[편집]


파일:Tocharian.jpg

브라흐미 문자토하라 문자를 사용했다. 해당 글자가 적힌 유물들은 신장 위구르 지역의 건조한 기후 덕에 보존이 잘 된 상태로 발견되는데, 주로 쿠처 및 카라샤르 지역에서 많이 출토된다고 한다.


6. 기타[편집]


안록산이 토하라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토하라인들이 불교를 믿었기에 토하라어 불경도 있다.


7. 듣기[편집]



고대 인도 불교 설화집인 자따까(Jataka)[17]의 한 부분을 토하라어로 낭독하는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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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하라어 A/B[2] 이러한 현상은 원시 토하라어 화자들이 아파나시에보 문화권 시절에 원시 사모예드인, 원시 예니세이인과 접촉하여 생긴 결과로 보이며, 동시에 사모예드어파의 원향은 아파나시에보 문화권 지역 또는 그 인근으로 추정된다.[3] 카라샤르 지역 방언[4] 쿠처 방언[5] 크로라이나(누란) 왕국의 방언[6] 주로 카라샤르, 고창 지역에서 통용되었고 발견된 사본에는 불전 등의 불교와 관계된 것들이 많다. 이를 통해 해당 언어는 라틴어고트어처럼 학술어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7] 주로 쿠처 지역에서 발견된 자료에는 의학 관계 기록, 스님의 출납부, 여권 등이 많으며 학자들은 토하리스탄 전체에서 쓰이는 언어였을 거라고 추정한다.[8] 약 3세기에 간다라 문자로 쓰인 문서 내 kilme(구역), ṣoṣthaṃga(세리), ṣilpoga(문서) 등의 100개 단어들을 바탕으로 T. 버로우가 1930년대에 처음 제안한 방언으로 2018년 클라우스 T. 슈미트는 토하라어 C는 토하라어 A보다 B와 더 밀접하게 연관되었는데, 예를 들어 탈격에서 토하라어 A는 -Vṣ이지만 B와 C는 각각 -meṃ, -maṃ라던지, 혹은 3인칭 단수 현재 접미사가 서로 A –ṣ, B –ṃ, C –ṃ라는 유사성 등을 통해 쿠차의 토하라어 B에서 누란의 토하라어 C에 이르는 방언연속체가 있었을 것이라는 내용을 사후 논문에서 시사했다. 하지만 2019년 9월 15일과 16일에 조르주 피노(Georges Pinault)와 미카엘 페이롯(Michaël Peyrot)이 이끄는 언어학자들이 네덜란드 라이덴에서 만나 슈미트의 원문과 녹취록을 조사하여 잘못 기록되었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토하라어 C 가설은 힘을 잃었다.[9] 예: 이나 [10] 물론 한국어, 일본어, 만주어, 몽골어와도 어순이 같다.[11] 히타이트 문명에서 쓰이던 히타이트어가 여기에 속한다.[12] Nash, Alexander (2015), The Proto-Indo-European Urheimat: The Armenian Hypothesis.[13] 이들은 시베리아의 침엽수림 지역인 타이가 지대에서 살던 고대 북유라시아인으로, 매머드 초원이라 불린 이곳에서 대형동물을 사냥했던 사람들이다. 당시 타이가 지역은 오늘날엔 건조하고 추운 지역이지만, 그 당시에는 세렝게티같은 초원지대로, 매머드나 털코뿔소 등이 돌아다니던 곳이었다. 시베리아 원주민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약 40%에게서 고대 유라시아인의 유전자가 발견된다고 한다.[14] 바이칼 호 부근의 작은 마을 말타와 뷰렛 마을 근처의 후기 구석기 유적에서 발굴된 24000년 전 소년의 유골로 아메리카 원주민 연구에 큰 도움을 준 샘플이다.[15] 지금으로부터 15,000년 전 사람의 유골 2구가 발굴되었으며, 그중에서도 3호 고인골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발벽안 상염색체 형질을 보유한 고인골 샘플이라고 한다.[16] 기원전 3300년경에서 기원전 2500년경까지 오늘날의 러시아시베리아 지방의 미누신스크 분지에서 발원한 문화다.[17]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 모음집이다. 한자어로 본생담(本生譚)이라고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