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헤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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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헤슬러의 수상 이력



토마스 헤슬러의 기타 정보




BFC 프로이센
Berliner Fussball Club Preußen 1894 e.V.

파일:Thomas Häßler.jpg

이름
토마스 헤슬러
Thomas Häßler
본명
토마스 위르겐 "이케" 헤슬러
Thomas Jürgen "Icke“ Häßler[1]
출생
1966년 5월 30일 (57세) /
서독 서베를린
국적
[[독일|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독일"
행정구
]]

신체 조건
166cmㅣ체중 67kg
직업
축구 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BFC 메테오어 06 (1976~1979 / 유스)
라이니켄도르퍼 퓌흐제 (1979~1984 / 유스)
1. FC 쾰른 (1984~1990)
유벤투스 FC (1990~1991)
AS 로마 (1991~1994)
카를스루어 SC (1994~1998)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8~1999)
TSV 1860 뮌헨 (1999~2003)
아우스트리아 잘츠부르크 (2003~2004)
감독
1. FC 쾰른 (2006~2009 / 기술코치)
나이지리아 대표팀 (2007 / 수석코치)
1. FC 쾰른 U-17 (2009~2010 / 기술코치)
1. FC 쾰른 U-19 (2009~2010 / 기술코치)
1. FC 쾰른 II (2009~2010 / 기술코치)
1. FC 쾰른 (2010~2011 / 기술코치)
샤어 코드루 FC (2014~2015)
베를린 유나이티드 (2016~2019)
BFC 프로이센 (2019~ )
국가대표
101경기 11골 (독일 / 1988~2000)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2.2. 국가대표
3. 플레이 스타일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4.3. 수훈



1. 개요[편집]


“헤슬러는 기술적으로 완벽합니다. 2~3년 후에는 마라도나에 근접할지도 모릅니다.”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독일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월드컵유로 우승을 모두 경험하는 행운아였음에도 클럽에서는 단 한 개의 트로피도 들지 못하고 준우승만 일곱번[2]이나 한 다소 특이한 경력을 가진 선수. 물론 세계적인 강호인 독일 대표팀에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고, 1992년 FIFA 올해의 선수 3위 및 발롱도르 4위,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 2회 수상 등 그 기량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편집]


헤슬러는 18살이라는 나이에 1. FC 쾰른에 입단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한 시즌만에 주전으로 도약하였고, 이내 팀의 핵심으로 성장하게 된다.

1985-86 시즌에는 쾰른이 구단 역사상 최초로 UEFA컵 결승에 진출하기도 했다.[3] 팀은 우승후보로 거듭났고, 1988년엔 3위, 1989년과 1990년엔 분데스리가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덕분에 헤슬러는 국대에 승선할 기회도 얻게 되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세리에 A의 강자 유벤투스 FC로 이적한다. 유벤투스는 헤이젤 참사 이후 트라우마로 인해 일찍 플라티니가 은퇴하는등 전력에 큰 손실을 입고 휘청대는 중이었다. 그런고로 헤슬러에게 기대를 걸었고, 헤슬러는 1990-91 시즌에 31경기를 출전하였다. 그러나 유벤투스는 7위에 그쳤고, 헤슬러는 한 시즌만에 AS 로마로 떠난다. 로마에서 3시즌을 뛰었으며 88경기에 출전하여 11골을 넣었다. 다만 국대와는 다르게 팀은 항상 중위권에 쳐졌고 1994년엔 카를스루어 SC로 이적하여 다시 분데스리가에 복귀한다.

소속팀이 만년 하위팀인 카를스루어였지만, 헤슬러의 기량은 이에 상관없었고 UEFA 유로 1996에도 출전하였다. 그는 여기서도 독일의 우승을 이끌지만, 소속팀은 강등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헤슬러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결국 1997-98 시즌에 팀이 강등된다.

헤슬러는 자유계약으로 풀려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하였지만 도르트문트의 핵심 중 하나였던 안드레아스 묄러와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했고, 주전에서 밀린 헤슬러는 TSV 1860 뮌헨으로 이적하였는데 이미 30대 중반을 넘겼음에도 4년동안 주전으로 활약하였다.

그리고 선수 말년엔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뛰었으며, 38살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한다. 그는 현역 시절 독일의 레전드급 미드필더로서 활약을 하였으나, 아이러니하게 소속팀에서는 단 한 개의 메이저 타이틀도 얻지 못하였다.


2.2. 국가대표[편집]


파일:11301_ori_thomas_haessler.jpg

헤슬러는 1988 서울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우승을 차지하였다. UEFA 유로 1992에서는 2골을 넣으며 맹활약을 했는데, 특히 스웨덴과의 4강전에서 골을 넣으며 결승 진출에 공헌하였으나 덴마크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어쨌든 이 대회에서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헤슬러 본인도 같은 해 FIFA 올해의 선수 3위를 기록하였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총 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위르겐 클린스만이 환상적인 터닝슛을 어시스트한 선수가 헤슬러였다. UEFA 유로 1996에서는 체코와의 결승전에서 올리버 비어호프골든 골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8강에서 크로아티아에게 3:0으로 패해 탈락했고, UEFA 유로 2000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광탈한다.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1990년대전차군단의 공격을 책임진 플레이메이커로 신장 166cm로 축구선수로서는 단신에 꼽히지만 키에 비해 괜찮은 피지컬을 지녔고, 넓은 시야를 가진데다 뛰어난 패싱력과 강력한 킥력을 보유하였으며, 강철 체력까지 갖춘 선수였다.


4. 기록[편집]



4.1. 대회 기록[편집]




4.2. 개인 수상[편집]




4.3. 수훈[편집]


  • 은월계수잎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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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ß움라우트를 풀어서 Thomas Haessler라고도 쓴다. 헤슬러 본인의 인스타그램에서도 이러한 표기를 쓰고 있다.[2] 분데스리가 준우승 2회, UEFA컵 준우승 1회, DFB-포칼 준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 1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준우승 1회[3] 다만 레알 마드리드에게 져서 준우승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