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브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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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브롤린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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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94_fifa_world_cup_logo.png







스웨덴의 前 축구선수


파일:contentmedium.png

이름
토마스 브롤린
Tomas Brolin
본명
페어 토마스 브롤린
Per Tomas Brolin
출생
1969년 11월 29일 (54세) /
스웨덴 후딕스발
국적
스웨덴 파일:스웨덴 국기.svg
신체
178cm / 69kg[1]
직업
축구선수 (미드필더, 공격수[2] / 은퇴)
소속
선수
네스비켄 IK (1976~1983 / 유스)
네스비켄 IK (1984~1986)
GIF 순스발 (1987~1989)
IFK 노르셰핑 (1990)
파르마 AC (1990~1995)[3]
리즈 유나이티드 (1995~1997)
FC 취리히 (1996 / 임대)
파르마 AC (1997 / 임대)
크리스탈 팰리스 (1998)
후딕스발 ABK (1998)
지도자
크리스탈 팰리스 (1998 / 플레잉 코치)
국가대표
파일: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47경기 27골[4] (스웨덴 / 1990~1995)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기록
5.1. 대회 기록
5.1.1. 클럽
5.2. 개인 수상
6. 여담
7.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스웨덴 국적의 前 축구선수.

흔히 스웨덴 축구하면 떠올리는 헨리크 라르손이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이전, 90년대 초중반을 풍미했던 스웨덴 축구의 전성기를 이끈 에이스였으나 선수로 활동하는 동안 많은 부상을 겪으며 이른 나이에 추락해버린 비운의 선수이다.


2. 클럽 경력[편집]


1984년 스웨덴의 네스비켄 IK에서 데뷔했으며, 이후 GIF 순스발, IFK 노르셰핑 등을 거치면서 자국의 리그 알스벤스칸에서 활약했다.

그러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세리에 A파르마 AC로 이적하였다. 이적 이후에는 주전을 차지해 팀의 스트라이커 알렉산드로 멜리와 완벽한 호흡으로 좋은 활약을 보였으며, 팀의 1991-9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및 1992-93 시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994-95 시즌 UEFA컵 우승, 1993 시즌 UEFA 슈퍼컵 우승 등에 공헌하며 "미라클 파르마"라고 불리웠던 당시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1994년 11월 16일에 있었던 헝가리와의 UEFA 유로 1996 예선 경기에서 발목 부상을 입어 1994-95 시즌 팀의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발목 부상을 기점으로 그의 커리어는 하락을 걷기 시작한다.

시즌 종료 이후 팀에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가 영입되어 주전 자리를 잃었으며, 199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리즈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였다. 하지만 과체중[5] 등으로 인해 자기 관리에 실패하여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 FC 취리히 및 전 소속팀인 파르마 AC 등으로 임대를 떠났으며, 결국 1998년 크리스탈 팰리스 FC로 팀을 옮겼다. 그 뒤 시즌이 종료되자 스위덴으로 복귀해 후딕스발 ABK에 입단했으며, 골키퍼로 한 경기를 소화한 뒤 만 29세의 이른 나이에 쓸쓸히 선수 은퇴를 선언하였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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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에 정식으로 데뷔한 뒤, 1995년까지 총 47경기에 출전했으며, 1990년 웨일스와의 친선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데뷔골을 넣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 1990년 FIFA 월드컵UEFA 유로 1992, 대표팀의 전성기였던 1994년 FIFA 월드컵,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등 각종 대회에 참가했다.

UEFA 유로 1992에서는 3골로 대회 최다득점자에 오르며 팀의 UEFA 유로 4강을 이끌었고, 1994년 FIFA 월드컵에서 올스타 팀에 선정되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팀의 FIFA 월드컵 3위에 기여한 뒤 그 해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게오르게 하지와 함께 공동 4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다만 상술했던 발목 부상으로 인해 1995년 이후에는 안타깝게도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없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창의적이고 훌륭한 개인기술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폭발적인 움직임을 보여줬던 천재적인 선수로, 전성기때는 스웨덴 최고의 선수는 물론 당시 최고의 선수들 중 하나였다.

주 강점은 군더더기 없는 드리블 능력과 패싱 능력, 그리고 강력한 파워의 슈팅이었으며 풍부한 활동량을 겸비하고 있는 등 감독으로서 좋아할만한 능력은 거진 모두 갖고 있었다. 포지션적으로도 꽤나 다재다능했던 선수로, 패스 능력때문에 공격형 미드필더에 주로 배치되었지만 스트라이커, 윙어, 중앙 미드필더, 연계형 포워드까지 맡았던, 그 다재다능함에 있어서는 말년에 미드필더로도 기용되었던 웨인 루니와 비슷할 정도로 강점이 많은 선수였다.

다만 1994년에 발이 골절되는 큰 부상을 당한 이후에는 이전의 폼과 플레이 스타일을 완전히 상실하여 2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커리어가 급변하게 된다. 이후 거듭된 부진, 부상과 체중 관리에도 실패하는 등 끝모를 추락을 보여주다가 2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은퇴를 선언한 비운의 인재였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1.1. 클럽[편집]





5.2. 개인 수상[편집]




6. 여담[편집]


  • 은퇴 이후 고향인 스웨덴에서 요식업 사업가 및 진공 청소기 판매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2006년부터 포커 선수로 활동하며 2007년 월드 시리즈 오브 포커 등에 출전하였다.
  • 전성기 시절 유명한 나이키 광고였던 '지옥의 전사'에 출연했다.[6] 24초 부분에서 앞줄 맨 좌측에 있는 선수가 브롤린이다.
  • EA Sports 의 신작 FIFA 23의 새로운 Heroes 레전드 선수로 출시됐다.

7. 같이 보기[편집]


[1] 선수 시절[2] 공격형 미드필더섀도우 스트라이커[3] 그가 활약하던 당시에는 팀명이 파르마 AC였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4] 대표팀 역대 득점 공동 9위.[5] 발목 부상이면 움직이는거 자체가 치명적이라서 과체중이 되는 경우가 있다.[6] 여담으로 아시아 버전에는 브롤린 대신 최용수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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