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니퍼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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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Nipperdey
(1927년 10월 27일 ~ 1992년 6월 13일)

1. 개요
2. 생애
3. 업적
4. 저서 목록
5. 기타


1. 개요[편집]


토마스 니퍼다이(Thomas Nipperdey)는 독일역사학자이다. 라인하르트 코젤렉, 한스-울리히 벨러와 함께 전후 독일 역사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2. 생애[편집]


니퍼다이의 아버지인 한스 카를 니퍼다이(Hans Carl Nipperdey, 1895-1968)는 노동법 쪽에서 유명했던 법학자였고[1], 여동생인 도로테 죌레(Dorothee Sölle, 1929-2003) 역시 저명한 신학자로 가문 자체가 학자 가문이었다. 아버지가 1925년부터 쾰른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였기에 쾰른에서 태어났고, 대학 역시 쾰른대학으로 진학하였다.

니퍼다이의 원래 전공은 철학이었다. 1953년에 그가 쓴 박사학위논문은 "Positivität und Christentum in Hegels Jugendschriften (헤겔의 청년기 저작 속의 실증성과 기독교)"으로 헤겔 철학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이후 테오도어 쉬더의 영향을 받아 역사학 연구를 시작하였고, 1961년 괴팅겐 대학교에서 교수자격논문으로 "Die Organisation der deutschen Parteien vor 1918 (1918년 이전 독일 정당의 조직)"을 제출하였다. 이후 기센하이델베르크를 거쳐 1972년 뮌헨 대학교의 정교수로 임용되었고, 1992년 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지내게 된다.

3. 업적[편집]


니퍼다이의 학문적 관심사는 19세기 독일의 역사에 있었다. 그는 벨러와 볼프강 몸젠, 위르겐 코카와 같은 사회사(Sozialgeschichte) 역사가들이 내세운 독일사의 '특수한 길(Sonderweg)'[2] 이론을 비판하였고, 사회사가들이 과거를 흑백의 이분법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점, 19세기 독일사를 그 자체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단순히 나치즘의 전사(Vorgeschichte)로 파악하고자 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19세기 독일 및 독일 제국의 그 고유한 특징을 이해할 것을 요구한 니퍼다이의 비판은 1980년대 영국의 제프 일리데이비드 블랙번이 특수한 길 테제에 제시한 비판과 상당 부분 같은 맥락에 위치하고 있었고, 1980년대 이후 사회사가들의 특수한 길 테제는 상당부분에 있어 학문적 영향력을 잃게 된다.

니퍼다이는 또한 독일 역사학의 역사주의 전통을 수호하고자 한 인물로써 유명하다. 그는 역사학의 사회과학화를 주창하면서 전통적인 정치사 중심의 독일 역사학을 비판하였던 사회사가들에 대항하여 전통적 독일 역사학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구축하고자 하였다. 그는 전통적인 독일 역사주의가 가진 상대주의와 정치성 등과 같은 한계점을 인정하면서 그에 따라 역사주의를 '탈신화화', '탈정치화', '탈민족화'하고자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마냥 보수적인 인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니퍼다이가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역사가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사회사 및 문화사와 같은 당대의 신조류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자신의 역사서술에 적극적으로 포함시키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클리포드 기어츠의 '중층 기술(Thick Description)' 기법을 수용하여 국가 기념비에 대한 상징 분석을 진행한 것은 그의 대표적인 연구 업적 중 하나이며, 또한 사회사가들의 주장 역시 수용하여 사회과학 분야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한 점은 1983년에 1권이 출판되고 1992년 사망 직전에 완성한, 19세기 독일사를 다룬 그의 <Deutsche Geschichte(독일사)> 3부작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는 이 책에서 19세기 독일사를 정치와 외교를 시작으로 경제, 사회, 일상, 학문, 예술, 종교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그려내고자 하였다. 현재까지도 19세기 독일사를 다루는데 있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책으로 여겨지는 이 책은 출판 이후 벨러를 비롯한 많은 역사가들의 극찬을 받았고, 니퍼다이는 <독일사>를 계기로 전후 독일 역사학을 대표하는 역사가로 우뚝 서게 된다. 이후 벨러가 경쟁적으로 <Deutsche Gesellschaftsgeschichte(독일 사회사)> 5부작을 1987년부터 2008년까지 연달아 내놓았고, 이후 90년대 독일에서는 볼프강 몸젠을 비롯하여 하인리히 아우구스트 빙클러의 <Der lange Weg nach Westen(서구로의 긴 여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사가들이 근대 독일사를 다룬 저작들이 많이 출판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역사 붐(Geschichtswelle)'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시작은 단연 니퍼다이의 <독일사>에 있었다.

니퍼다이의 독일사에 대한 비판 의견들도 존재하는데, 리처드 에반스는 서술에 있어 민족주의적 관점을 탈피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4. 저서 목록[편집]


  • Positivität und Christentum in Hegels Jugendschriften. Köln 1953. - 박사학위논문
  • Die Organisation der deutschen Parteien vor 1918. Droste, Düsseldorf 1961. - 교수자격논문
  • Reformation, Revolution, Utopie: Studien zum 16. Jahrhundert. Vandenhoeck & Ruprecht, Göttingen 1975.
  • Gesellschaft, Kultur, Theorie. Gesammelte Aufsätze zur neueren Geschichte. Vandenhoeck & Ruprecht, Göttingen 1976.
  • Nachdenken über die deutsche Geschichte. Essays. C. H. Beck, München 1986.
  • Religion im Umbruch. Deutschland 1870–1918. C. H. Beck, München 1988.
  • Deutsche Geschichte 3부작
Deutsche Geschichte 1800–1866. Bürgerwelt und starker Staat. C. H. Beck, München 1983.
Deutsche Geschichte 1866–1918. [Band I:] Arbeitswelt und Bürgergeist. C. H. Beck, München 1990.
Deutsche Geschichte 1866–1918. [Band II:] Machtstaat vor der Demokratie. C. H. Beck, München 1992.
  • Wie das Bürgertum die Moderne fand. Siedler, Berlin 1988.
  • Kann Geschichte objektiv sein? Historische Essays. Herausgegeben von Paul Nolte. C. H. Beck, München 2013.

5. 기타[편집]


  • Deutsche Geschichte 3부작의 첫 문장은 창세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Am Anfang war Napoleon(태초에 나폴레옹이 있었다.)'로 시작하였는데, 이를 두고 많은 갑론을박이 벌어졌으며 2021년 현재까지도 19세기 독일사를 다루는데 있어 한두번은 언급되는 문장이다. 참고로 벨러는 이를 조금 뒤틀어서 자신의 독일 사회사 첫 문장을 'Im Anfang steht keine Revolution(태초에 혁명이 없었다)'로 시작하였다. 두 역사가의 독일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대목.

  • 그동안의 여타 학자들과 달리 그는 일상 생활, 사회사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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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일 연방노동법원의 관점에 영향을 미친 기본권규정의 한정적 직접효력설을 주장하였다.[2] 특수한 길 개념 자체는 19세기 독일 역사학에서 유래하는데, 19세기 독일 역사학자들은 이를 긍정적인 개념으로 사용하면서 영국 및 프랑스와 대비되는 독일의 위로부터의 근대화 과정을 예찬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2차 대전 이후 벨러를 비롯한 사회사가들은 이를 부정적 개념으로 전환시키면서 영국 및 프랑스와 다르게 독일사는 시민혁명이 부재하였기에 경제적 근대화와 정치적 근대화 간의 격차가 생겼고, 이로 인핸 정치적 후진성이 나치즘의 대두로 귀결되었다고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