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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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번디
Ted Bundy


파일:external/www.clarkprosecutor.org/106hbundy.jpg

본명
시어도어 로버트 번디[1]
Theodore Robert Bundy
출생
1946년 11월 24일
미국 버몬트주 벌링턴
사망
1989년 1월 24일 (향년 42세)
미국 플로리다주 브래드퍼드 카운티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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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78cm, O형[2][3], 왼손잡이[4]
IQ
136
학력
퓨젯 사운드 대학교 → 파일:워싱턴 대학교 아이콘.png 워싱턴 대학교[5]
정당


배우자
캐롤 앤 분 (1980년 ~ 1986년, 이혼)
자녀
1명
범죄 정보
혐의
납치, 살인미수, 살인, 절도
범행
1974년 ~ 1978년
체포
1975년 8월 16일[6]
처벌
전기의자형
피해자
30명 이상[7]
수감
플로리다주 교도소

1. 개요
2. 생애
2.1. 어린 시절
2.2. 살인의 시작
2.3. 두 번의 탈옥과 검거
2.3.1. 콜로라도에서 첫 번째 탈옥: 8일간
2.3.2. 두 번째 탈옥: 2개월간
2.3.3. 플로리다에서 세 번째 검거
2.3.4. 플로리다의 구금자가 테드 번디로 확인
2.4. 재판: 사형 구형
2.5. 사형집행 연기시도
2.5.1. 독점기사 출판시도
2.5.2. FBI와의 협력
2.5.3. 사형집행 연기 신청
2.5.4. 자백시도
2.6. 사형 집행
3. 어록
4. 특수성
4.1. 엄친아
4.1.1. 화려한 겉모습에 가려진 공허한 내면
4.2. 나르시시즘
4.3. 여성들에게서의 인기
4.4. 문화계의 영향
5. 사후
6. 기타



1. 개요[편집]


1970년대 미국연쇄살인범. 당시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 대표적인 인물로도 꼽힌다.[8]

타입을 나누자면 호감형 타입으로, ‘자신의 매력 속에 사악한 영혼을 감추는’ 형태의 반사회성 성격장애 연쇄살인범이다. 외모도 좋고 지적이며 말도 어느 정도 잘해서 겉으로 보기에 연쇄살인범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매력적으로 보였으며 임기응변까지 뛰어났다. 그에게 살해당한 피해자의 숫자는 현재까지도 불명확하다. 30명이라는 주장도 있고, 어떤 범죄 전문가는 50명 이상이 살해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테드 번디 본인이 피해자의 수를 밝히겠다고 했지만, 사형을 원하던 유가족들의 요구를 검찰이 받아들여 그 제안을 거절했기에 진실은 지금도 미궁에 빠져 있다.


2. 생애[편집]



2.1. 어린 시절[편집]


미국 버몬트벌링턴에서 태어났으며, 유복한 집안 출신은 아니지만 매주 주일학교에 참석하는 등 평범해 보이는 가정에서 성장했다. 당시 사진을 보면 소시지 굽기, 낚시 하기, 크리스마스 휴가 보내는 모습이 담겨 있다. 하지만 실제 성장환경은 매우 비정상적이었다.

사생아로 출생하였으며, 어머니누나로 알고 자랐고, 당시 외조부모인 샘과 엘리너 코웰 부부가 그의 부모 역할을 하였다. 외조부 샘은 악의에 찬 인종차별주의자였고, 애완동물과 자신의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다.[9] 누나로 알던 친모가 재혼하면서 외조부모에게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계부 또한 사생아인 그를 싫어하였고 친모는 계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챙기느라 그에게 냉담하였다. 그는 나중에서야 우연히 누나로 알던 사람이 친모인 것을 알았다고 한다.

성장환경이 이런 상황이니 바르게 자라는 게 신기할 지경일 것이다. 물론 이런 과거의 불우한 환경만으로 어른이 된 후 저지른 끔찍한 행동들을 옹호하거나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의 뒤틀린 내면을 형성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테드 번디의 성장 환경을 보면, 어릴 때부터 명백한 정서불안 증세를 나타냈고, 겨우 3세 때 잠든 이모의 침대 이불 밑에 칼을 밀어 넣었다. 초등학교 시절엔 머리도 좋고 성적도 뛰어났지만, 반복해서 사납게 역정을 내는 성질 때문에 교사들은 불안에 떨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그는 이미 상습적 관음증 환자였으며, 좀도둑이 되어 있었다.

이 시기 동안 번디는 자신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데, 그건 자신에게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대표적인 특징인 양심, 타인을 욕망 충족을 위한 대상보다 우위에 두는 마음, 이타심 등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남들을 유심히 관찰했는데, 관찰을 통해 그는 정상인들의 행동을 흉내 내는 법을 배우는 데 성공했다. 그 때문에 그가 살인죄로 잡히기 전까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조차도 그의 어두운 기질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1965년 고등학교 졸업 후, 퓨젯 사운드 대학교(University of Puget Sound)에서 1년간 공부한 뒤에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워싱턴 대학교로 편입한다. 그는 워싱턴 대학교의 대학생으로 다니면서 정치에 관심을 가져 공화당에 입당, 넬슨 록펠러[10]의 선거운동을 지원했으며, 1972년 선거에서 워싱턴주 지사 다니엘 J. 에반스의 선거운동에도 참여,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2.2. 살인의 시작[편집]



2.2.1. 워싱턴주, 시애틀[편집]


번디는 대학생으로 지내는 동안 '다이앤 마조리 진 에드워즈(Diane Marjorie Jean Edwards)'라는 여자와 사귀게 되는데, 이것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한다. 문제는 훗날 그의 범행 대상으로 삼은 피해 여성들의 상당수가 이 다이앤과 막연하게 닮았다는 것인데, 이는 실연의 상처가 그에게 범행 동기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이유는 다이앤과 헤어지게 된 원인이 순수하게 성격차이나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이앤은 테드 번디가 능력적인 면에서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이별을 통보했다. 이는 테드 번디가 충분히 열등의식을 갖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여자에 대한 혐오감을 발생시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몇 년 후 테드 번디는 다이앤을 우연히 만나는데, 그녀는 180도로 변한 테드 번디와 다시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테드 번디는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다이앤은 이를 받아준다. 하지만 테드 번디는 다이앤이 그랬던 것처럼 갑자기 연락을 끊어 버린다. 그녀에게 복수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테드 번디의 살인이 일어난다.

피해 여성들이 전 여자 친구를 닮은 건 그저 테드 번디의 여성 취향으로 인한 것이다. 대학교 졸업 후, 일류 로스쿨을 가려다가 실패하고 퓨젓사운드 로스쿨 야간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다이앤에게 차이게 되고, 이로 인해 그의 자존감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 여기서 그의 주된 살인 목표가 정해지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사귀었던 다이앤 같이 아름답고 지적인 여대생이었다.[11]

이후로 워싱턴주에 거주하는 동안, 엘리자베스 클래퍼라는 싱글맘과 함께 살고 있던 테드 번디는 결국 살인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1974년 1월에 18세 여성 카렌 스팍스의 아파트 반지하방에 침입해 살해하려던 살인미수 사건을 시작으로, 1974년 2월 린다 앤 힐리, 조잰 호킨스, 게일 맨슨, 수잔 랜코트, 로버타 캐슬린 파크스, 브렌다 볼, 스테파니 모리스 등등을 여러 달에 걸쳐서 최소 7명을 살해했다.[12] 더하여 동년 7월, 축제 때에 데니스 내스런드와 재니스 오트라는 두 여성을 동시에 살해했으며, 이때 목격자에 의해 테드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경찰의 수사망에 잡히게 된다.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하고, 급기야 8월 동거했던 여자 친구인 엘리자베스 클레퍼는 수상한 모습을 보였던 테드 번디에 대해 경찰에 신고하게 된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경찰은 그를 수사망에서 놓치고 만다.


2.2.2.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편집]


이후 1974년 9월에는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로 이사, 유타 대학 로스쿨에 등록하는데, 여기서도 그의 살인은 그치지 않았다. 이때 캐럴 다론치라는 여성에게도 접근했지만, 구사일생으로 그녀는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녀의 사례는 운이 좋은 경우였다. 그녀를 놓친 후, 분노한 테드 번디는 겨우 4시간 후, 데비 켄트라는 여성을 납치해서 살해한다.

결국 솔트레이크 시티에서도 멜리자 스미스, 낸시 윌콕스, 로라 에이미, 엘리스 잭슨, 베티 록우드 등등의 젊은 여성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얼마 뒤 토막 난 시신이 협곡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이때 단순히 유타주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콜로라도주까지 진출, 리사 워커, 엘리자베스 마틴, 헬렌 던컨, 미셀 그레이, 마가렛 파커 등 최소 5명이 넘는 희생자들을 살해했다. 1974년 11월에도 켈리 알렌, 레베카 가르시아 등 여성 2명에게도 다가가 살해하려 했으나 두 여성은 간신히 도주했고 몇 시간 뒤, 메리 리 카 다비스라는 23세 여성 역시 살해하려 했으나 이도 살인 미수에 그친다. 그러나, 74년 9월과 같이 이에 분노한 테드 번디는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발버라 톰슨이라는 여성을 살해한다.

1975년 3월 5일, 워싱턴주, 테일러 산에서 실종됐던 여성들의 시체들이 발견된다.


2.3. 두 번의 탈옥과 검거[편집]


그러한 번디의 살해 행각의 전환점이 1975년 8월 16일 밤에 찾아온다. 그날 밤 유타 고속도로에서 밥 헤이우드 순경은 전조등을 끄고 곡예운전을 하던 자동차를 세우고, 그 안에서 얼음송곳, 여성 팬티스타킹으로 만든 복면, 수갑 의심스러운 물건을 발견한다. 번디는 그렇게 첫 번째 체포를 당한다.

이때 체포된 29살의 테드 번디는 자신이 1년도 더 전에 납치를 시도했던 캐럴 다론치에게 범인 지목을 받고 납치죄가 가중되어, 1976년 2월 유죄가 선고되면서 15년형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콜로라도 살인사건에 대한 추가 징후도 발견되어 1977년 1월 콜로라도로 이감, 그의 인생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2.3.1. 콜로라도에서 첫 번째 탈옥: 8일간[편집]


하지만 1977년 6월 7일, 그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자료 수집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법원 도서관 출입을 허락받고, 경비원이 담배 피우러 복도에 나간 사이, 도서관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탈출했다. 하지만 8일 만에 다시 체포된다.


2.3.2. 두 번째 탈옥: 2개월간[편집]


그러나 같은 해 12월, 11kg를 감량하고 몰래 들여온 쇠톱으로 감방 천장 통풍구에 구멍을 내고 또다시 탈출한다. 그는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미국 남부인 플로리다주 탤러해시까지 거처를 옮기는데, 옮기던 도중에도 제시카 그린, 산드라 콕스라는 두 여성을 납치했다가 풀어주었고, 몇 주도 채 지나지 않아 셰릴 화이트라는 여성을 살해하기 직전까지 갔으나, 다행히도 셰릴은 테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탈출에 성공해 미수에 그쳤다. 이후 탤러해시에서도 크리스티나 포드, 줄리 하퍼, 패트리샤 베리, 로살리 클라크 등의 여성이 잇따라 실종된다. 이때 그가 법정 진술도 거부할 만큼 끔찍한 사건들을 수차례 저지르게 된다. 이때 상당히 많은 미제사건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2.3.3. 플로리다에서 세 번째 검거[편집]


결국 1978년 2월 15일, 그는 12세 소녀 킴벌리 리치를 살해, 확인사살까지 한 뒤, 시신을 돼지우리에 버린 지 1주일 만에 도난차량을 몰고 다니다 붙잡힌다. 교통경찰은 그저 교통법 위반으로 그를 잡았을 뿐, 살인범인지는 몰랐다.


2.3.4. 플로리다의 구금자가 테드 번디로 확인[편집]


1978년 2월 21일, 수감 중이었던 테드 번디가 워싱턴의 옛 여자 친구인 엘리자베스에게 수신자 부담 전화를 걸게 되면서, 경찰이 그들이 구금하고 있던 자가 바로 살인 혐의가 있는 탈주범, 테드 번디란 사실을 확신하게 됐고, 결정적으로 4월 15일에서 20일 사이에 킴벌리 리치 살인사건의 사체가 발견된다. 이후 탤러해시 여대생 살인사건에서 발견한 치아 자국과 대조해서 증거를 확보한 후, 결국 7월 기소된다.


2.4. 재판: 사형 구형[편집]


결국 1979년 5월 9일부터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재판이 진행되었고, 이는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그는 연쇄살인[13]으로 재판을 받았고, 사법거래(사전형량조정제도)를 하는 쪽으로 변호인과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6월 1일, 돌연 그는 사법거래(사전형량조정제도)를 거부하며 스스로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7월 24일, 배심원단의 6시간 30분 동안의 심리 끝에 최종적으로 사형이 확정되었다.

사실 테드 번디는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의 희생자 수가 최소 30명, 최대 100명까지 추정되는 등 정확하지 않은 점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피해자들을 정확하게 밝혀낼 수 있도록 협조하는 대가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제안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드 번디는 끝까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변호했고, 그 결과 그의 정확한 범죄 내역 및 희생자 수, 발견되지 않은 시신의 위치 등은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물론 테드 번디도 바보는 아니라, 얼마 후에는 변호인단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이미 어그로를 있는 대로 끈 상황이라 별 효과는 없어, 정신 이상 드립만 치다가 사형이 확정됐다. 물론 처음부터 변호인단의 전략대로 갔더라도 아동 살해까지 저지른 테드에게 플로리다 재판부 측이 과연 사형을 선고하지 않았을지는 의문.[14]


2.5. 사형집행 연기시도[편집]



2.5.1. 독점기사 출판시도[편집]


1980년, 자신이 누명을 썼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뉴스위크의 신참 기자 스티븐과 그의 옛 상사, 휴 애네스워스와 만나 책을 내려고 시도한다. 이 내용은 2019년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살인을 말하다: 테드 번디 테이프》로 만들어지게 된다.


2.5.2. FBI와의 협력[편집]


1984년, 연쇄살인범들의 범죄유형을 파악하기 위한 FBI의 조사과정에 도움을 준다. 이 과정이 후에 《양들의 침묵》에 영향을 준다.


2.5.3. 사형집행 연기 신청[편집]


1986년부터 1989년까지 그의 사형집행을 막으려는 시도가 성공하여 3년간 집형이 연기되었다.


2.5.4. 자백시도[편집]


더 이상 형이 연기되지 않을 것 같자, 그는 돌연 5개 주에서 벌인 30여 건의 자신의 범죄 사실들을 FBI에게 자백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번엔 이러한 시도도 그의 사형 집행을 더 이상 연기시킬 수 없었다.


2.6. 사형 집행[편집]


I would like you to give my love to my family and friends.

제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 테드 번디의 유언

결국 1989년 1월 24일 새벽, 플로리다주 교도소에서 사형 확정 10년 만에 마침내 처형되었다. 마지막 식사를 요청할 권리가 있었지만 이를 거부하였고 이에 교도소는 전통적으로 사형수들에게 주는 식단인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 해쉬 브라운, 달걀 프라이, 토스트, 버터와 잼, 우유, 오렌지 주스를 지급했지만, 이 역시 먹는 것을 거부했다. 일반적으로 사형집행이 있는 날은 어지간해서는 사형 집행에 대한 반대 시위가 있기 마련인데, 이날 번디의 사형집행 때는 워낙 그의 죄질이 나쁘기 때문인지[15] 사형 반대론자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찬성론자들만 들어와 최악의 범죄자의 최후를 축하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가 처형된다는 소식을 듣고, 교도소 앞에 캠프파이어를 피우고, 바베큐 파티를 열고, 그가 전기의자로 끌려가는 것을 반기는 노래를 부르며 그의 집행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리고 오전 7시 16분, 테드 번디의 사망이 확인되자, 교도소 앞에 모인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며, 그의 시신을 실은 차가 교도소 밖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환호했다고 한다.


3. 어록[편집]


"난 짐승이 아니야.

난 미치지 않았고, 다중인격도 아니지.

난 그냥 보통의 한 사람이야."

"I mean, I'm not an animal.

and I'm not crazy and I don't have a split personality.

I'm just a normal individual."


"우리 연쇄살인범들은, 너네들의 아들이고 남편이야.

우리는 어디에나 있어.

내일은 더 많은 아이들이 죽어 있을 거다."

We serial killers are your sons, we are your husbands.

We are everywhere.

And there will be more of your children dead tomorrow."[16]



4. 특수성[편집]



4.1. 엄친아[편집]


파일:external/www.allthingscrimeblog.com/ann4.jpg

테드 번디보다 끔찍하고 엽기적인 살인마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번디가 대중들로부터 주목받고 공포의 대상이 된 이유는, 테드 번디가 연쇄살인범들 가운데서는 드물게 '미남이고, 대인관계가 좋으며, 사회적 지위를 갖춘 출세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타입의 살인마는 픽션에서 살인마를 흔히 접한 21세기의 현대인들에게는 그리 특이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프로파일러들이 지적하듯이,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한니발 렉터는 연쇄살인범들의 워너비(wannabe), 혹은 대중 매체가 만들어낸 판타지에 가까운 캐릭터일 뿐이다. 현실의 연쇄살인범들은 정상적인 지능을 가졌다고 해도 산만한 경향으로 자기의 분야에서 성취가 부족한 경우가 많으며, 그 때문에 사회적 지위는 물론 자신의 직업 분야에서도 그다지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반사회적인 성향을 억제하지 못하여 대놓고 드러내기에, 따돌림 당하다시피 살며 인간관계가 거의 단절된 경우도 흔히 있다. 그러니까 '연쇄살인범'이라고 하면 준 히키코모리 수준의 사회 부적응자, 니트에 가까운 무직자인 하층민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테드 번디는 체포되면서 결국 법대를 졸업하지는 못했지만 법률적인 지식이 상당했고, 선거운동 같은 정치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공화당에서 일정한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영부인과 악수를 한 적도 있다. 전도유망하고 잘생기고 매력적인 젊은 정치인이 알고 보니 연쇄살인범이라니, 두고두고 이야기될 만한 화젯거리임이 확실했다.

따라서 테드 번디를 학력위조나 하고 말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그는 워싱턴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교수들의 좋은 평가를 받은 학생이었다. 즉, 테드는 평균보다는 우수한 지적 능력을 가진 인간이었고, 정신 상태를 가다듬으면 분명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4.1.1. 화려한 겉모습에 가려진 공허한 내면[편집]


그러나 테드 번디의 이러한 이미지는 어느 정도 '도금'된 것이다. 테드 번디는 겉모습만 번드르르하지, 내실이 수반되지 않는 속이 텅 빈 인간이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다는 점에 있었다. 그의 LSAT 성적은 평이한 수준이었고, 법이라는 학문 자체가 적당히 머리 굴려서 때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공부하고 또한 그걸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며, 거기에 새로운 해석이나 판례 등을 계속 덧붙여 나아가야 하는 분야다. 그런데 자기 머리만 믿고 졸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부만 했을 가능성이 큰 번디가 법률 지식을 제대로 알고 있었을 리가 없다. 이 때문에 그는 대학교도 두 번이나 입학했고, 로스쿨 역시 두 번이나 입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테드 번디는 로스쿨 재학생이고 머리가 좋았지만, 정작 법률 지식은 놀라울 정도로 천박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테드 번디는 자가변호를 선택했고 스스로를 변호사로 삼아 '자기 자신을 변호'하는 쇼맨십을 보여줬다. 하지만 배심원들은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번디가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 자신을 변호하면서 큰소리치는 걸 보고 크게 분노했다. 심지어 판사까지 "젊은이! 나한테 손가락질하지 말게!"하면서 그를 제지했다.

얼마 후 바로 변호인단에 도움을 청하는 한편, 사형이 확정된 뒤에는 사형을 미루려고 계속 추가 자백과 범죄 관련 자문을 한 걸 보면 뒤늦게나마 실수를 깨달은 듯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번디는 철저하게 무능하고 실패한 법조인 지망생이었다. 결국 그 역시 산만함과, 학업 내지는 자신의 분야에서의 성취가 부족하다는 전형적인 연쇄살인범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테드 번디의 이와 같은 행동은 자신의 지성을 과신하는 사이코패스들에게서 굉장히 흔히 볼 수 있는 행동이며, 실제로 상당수의 사이코패스들이 자신의 변호사나 법률 자문가를 해고하고 스스로를 변호하다 오히려 형기가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미래를 생각하고 말을 던지지 않기 때문에 언뜻 들으면 달변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순식간에 이전의 자신의 말과 전혀 모순되는 말을 늘어놓는 경우가 흔하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등쳐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17] 단련된 법조인들을 이길 수는 없다.[18]

결정적으로,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 측에서 정신과 의사와 번디가 면담을 통해 정신 건강 진단을 요청했는데, 그 결과 번디는 조울증을 앓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재판 과정에서 한창 자신감 있고 나서길 좋아할 때에는 조증 삽화가 발현되고 있었던 것. 반대로 우울증 삽화일 때는 하필 본인의 실책 탓에 재판 양상이 불리하게 돌아갈 때와 겹쳐서,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마냥 재판장에서 소극적이고 가만히 앉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저 우울증 삽화일 때의 의욕 없는 모습이 번디의 진짜 내면일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실제로 과거 그가 대학교를 다니며 사귄 여자친구는 배경이 평범한 그에 비해 매우 부유했으며, 자신감도 넘쳤고, 미래의 변호사가 될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어, 그는 속으로 주눅 들고 불안해했었다. 결국 여자친구와는 헤어졌으며, 집안의 형편도 기울어져 대학교도 정상적으로 졸업하지 못하다시피 했다.

그는 사형 전날까지도 범죄 심리학자 겸 프로파일러와 면담할 때 '나는 그 인간들에게 죽지 않고 지금 당신의 눈앞에서 펜으로 가슴을 찔러 죽겠다'라고, 단순 협박인지, 특유의 자존심 때문인지, 허세를 부리다가 프로파일러가 "당신이 여기서 자살한들 당신 스스로 31번째 희생자가 될 뿐 달라지는 것도 없으며, 그것이 당신이 읽었던 성경에 부합하는 것이냐"는 뉘앙스로 충고하자 아무 말 못하다가 "당신에게 또 졌네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4.2. 나르시시즘[편집]


전형적인 나르시스트로, 자신에 대한 왜곡된 자부심과 사랑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다. 자신의 변호를 자신이 하기로 한 것에서 어이없는 근자감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또 다른 끔찍한 살인마 '그린 리버 킬러'라 불린 게리 리언 리지웨이를 추적할 때, 담당 수사관이었던 '데이비드 레이처트'가 테드 번디에게 자문을 구한 적이 있었는데,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에 적극적으로 자문에 협조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소설 《양들의 침묵》에 영향을 줬다.

그리고 하는 말이 창녀가 아니라 예쁘고 젊은 대학생만 죽였다면서, 자신이 그린 리버 킬러보다 낫다고 자뻑을 시전했다. 이외에 자신이 저지른 짓을 다른 자가 저지른 것처럼 돌려서 이야기했다가 나중에 드러난 경우도 있었는데, 당시 그를 심문한 프로파일러는, 그린 리버 킬러에게 쏟아진 관심을 돌리는 한편, 사형을 어떻게든 미뤄보려는 생각으로 자신의 범죄를 계속 추가 자백한 게 아닌가 추정하기도 했다.

로스쿨 재학생이었기 때문에 집행을 미룰 정도의 법률 지식 자체는 충분했고,[19] 더욱이 머리도 좋아서 자백 내지 수사 조언을 미끼로 사형을 몇 년이고 계속 미루게 했는데, 그것이 더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다만 그가 한 자백의 상당 부분은, 타인이 저지른 것인 양 적당히 돌려서 말한 형태이긴 해도 결국 사실로 밝혀졌다. [20]


4.3. 여성들에게서의 인기[편집]


당시 언론들이 로스쿨 재학생이자 잘생긴 번디를 연쇄살인의 귀공자니 뭐니 하면서 띄워주고, 일부 대중이 거기 동조하는 현상이 있었다. 테드 번디가 언론에 노출된 이후, 엄청난 양의 팬레터가 날아들고, 많은 여성들이 그를 보기 위해 재판장을 찾아갔다고 한다.

위싱턴 대학 시절부터 친분 관계가 있던 '캐럴 분'(Carole Ann Boone)은 테드 번디의 무죄를 확신하며 번디를 후원했고 재판 기간 도중 번디는 그녀와 옥중 결혼까지 한다. 심지어 테드 번디가 프러포즈를 한 방식은, 재판장에서 분을 증인으로 세운 뒤 청혼하는 것이었다. 이 재판은 무려, 킴벌리 리치라는 12세 어린이가 번디에게 살해된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내려지는 재판이었다. 그냥 살인도 아니고 아동 성폭행 살인을 저지른 상황에서, 사형을 면하기 위해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재판을 대놓고 모독했다.

결국 캐럴은 번디와의 사이에서 딸까지 낳게 된다.[21] 결혼을 한 이후에도 많은 여성들이 팬레터를 보내오고, 번디를 보기 위해 감옥까지 찾아갔다고 한다. 다만 캐럴은 나중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는지, 7년 후 이혼하고 자신과 딸의 성을 바꿨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번디를 좋아하던 여성들도 점차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번디가 미남형이라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연쇄살인범이라면 외모 수준에 상관없이 흔하게 나타나는 일이다. 지나치게 큰 거구에 볼품없는 외모 때문에 여성에게 인기가 없었던 에드먼드 켐퍼도 오히려 체포된 후에, 감방인데도 여성을 사귀는 데 어려움을 전혀 겪지 않는다니 황당할 정도. 참고로 켐퍼는 여성들의 시신을 굉장히 잔혹하게 훼손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런 현상을 설명한 심리학 용어가 있다. 'Hybristophilia'(위키피디아 항목) 참고. 이 항목에서 든 예시들 중 하나가 바로 이 테드 번디의 일화이다.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를 쓴 프로파일러 로버트 K. 레슬러는 이런 현상을 아주 야멸치게 깠다. 레슬러가 직접 면담해 본 번디는 인간으로서의 양심이 없는 변태 쾌락 살인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제프리 다머의 변호 측 고문을 맡았을 때는 다머에게 동정적인 입지를 취했기 때문에, 보는 입장에선 골 때린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제프리 다머는 누가 봐도 명백한 정신병자라는 점에서, 인간으로서의 양심만 없었을 뿐 명백한 정상인이던 테드 번디와는 많이 다르긴 하지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둘을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심해서, FBI 시절 동료였던 존 더글라스도 자신의 저서에서 레슬러를 대차게 깠다. 게다가 성장 과정에서의 문제점만 따지면, 오히려 테드 번디 쪽이 더 끔찍하게 불우했다.

하지만 법률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정신병자인 제프리 다머는 법적책임능력이 없으므로 레슬러의 태도는 틀린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법률적인 처벌근거가 없는 사람을 '괘씸하고 밉고 끔찍하니까 처벌한다'고 하면, 인민재판을 하면 되지 법률이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감정적으로 레슬러를 비난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만, 레슬러는 법률적, 학문적으로는 분명 올바른 판단을 한 셈이다.


4.4. 문화계의 영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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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번디는 문화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아메리칸 사이코》의 패트릭 베이트먼(크리스찬 베일), 《공공의 적》의 조규환(이성재) 등 그리고 《Fate/Zero우류 류노스케 까지 등장하는, 사회적으로는 번듯한 모습을 보이며 성공한 길을 걷고 있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캐릭터들의 모티브가 되었다.

2019년 5월 테드 번디의 사건을 다룬 영화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원제 : Extremely Wicked, Shockingly Evil and Vile)》가 개봉하였다.


5. 사후[편집]


죽은 뒤 테드 번디 본인의 유언에 따라 화장되었고, 그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곳이라고 말하던 산에[22] 유해가 뿌려졌다. 강제화장 등은 사실무근한 낭설에 지나지 않는다.

참고로 이는 대부분 사형수의 가족이나 담당 변호사가 행하는데[23] 존 웨인 게이시처럼, 일부 사형수는 장례 이후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조차 밝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6. 기타[편집]


  • 소설가 앤 룰은 자살방지지원센터에서 번디와 함께 근무한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자살을 시도하는 이들의 목숨을 몇 번이고 구했는데, 룰은 사람들을 성심성의껏 돕던 번디가 그렇게 잔혹한 살인마라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한다. 번디와 같은 하숙집에서 살았던 댄 라자레스도, 좀 오만한 면이 있었지만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지는 않을 정도였고, 자신감이 넘치고 카리스마 있는 지적인 미남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 사형집행 18시간 전, TV 폭력에 관한 공익광고를 찍었다고 한다.[24]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게리 리지웨이가 한참 살인을 저지르고 다닐 당시, FBI가 그에게 프로파일 작성을 요청하였고 작성을 해주었다. 그의 프로파일링은 전문가 프로파일링보다 더 정확했다고 한다. FBI와 테드 번디의 대화를 다룬 노 맨 오브 갓라는 영화가 있다.

  • 사이코패스 테스트 PCL-R에서 40점 만점에 39점이라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25]

  • 그에게는 어머니와 재혼한 계부에게서 태어난 3명의 이부남매[26]가 있는데, 셋 다 신변을 알리는 걸 꺼려서 사건 이후 매체에 공개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복 남동생 리치 번디는 2020년 아마존 프라임의 테드 번디 다큐에 인터뷰로 등장하면서 최초로 공개되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테드와는 나이차가 꽤 났으며 당시 초등학생 나이였던 자신을 여자친구와의 캠핑에 데려가 함께 놀아주는 등 다정한 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형이 30여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란 게 알려졌을땐 처음엔 믿지 않았으며, 이후 굉장히 괴로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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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생명 시어도어 로버트 코웰 (Theodore Robert Cowell), 시어도어의 애칭이 테드 또는 테디이다.[2] "... Ted Bundy had type O positive blood" / Ann Rule, "The Stranger Beside Me" (1980), #[3] Theodore Robert Bundy: Executed January 24, 1989 by Electric Chair in Florida", clarkprosecutor.org[4] Anne-marie Dorning, "Ted Bundy's DNA Could Help Solve Cold Cases", 「ABC 뉴스」, 2011.8.15.[5] 퓨젯 사운드 대학교에서 1년간 공부한 뒤 워싱턴 대학교로 편입을 했다.[6] 중간에 탈옥 (1977년 6월 7~13일, 1977년 12월 30일 ~ 1978년 2월 15일) 했다.[7] 세 차례의 살인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고, 사형 집행 직후 30명 넘게 살해 했음을 자백했다.[8] 베트남 전쟁오일 쇼크1970년대 미국은 사회 문제, 경제 문제가 악화되었고 1960년대까지만 해도 극소수였던 연쇄살인이 갑자기 대규모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70년대에 체포되거나 사살당한 유명 연쇄살인마들 중에는 테드 번디 외에도 에드먼드 켐퍼, 딘 코를, 폴 존 놀스, 존 웨인 게이시, 로드니 알칼라 등이 있다.[9] 훗날 그의 아내 엘리너는 오랜 세월의 시달림 끝에,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했다.[10] 1958년부터 1974년까지 뉴욕주지사로 재직했으며 1974년부터 1977년까지 부통령으로 재직했다.[11] 흑발 머리에 가운데 가르마의 단정한 미모의 여대생을 주로 노렸다. 책에 따라서 검은 머리가 아니라 검은 피부라고 쓰여 있는 경우가 있는데, 오역 아니면 오타다. 실제로 테드 번디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들의 사진들을 보면, 대부분이 상당한 미모에 흑발의 긴 생머리를 가진 공통요소가 확인된다.[12] 테드 번디가 성인이 되기 전부터 살인을 저질렀을 것으로 추측하는 수사관도 있다. 실제로, 테드 번디가 14살이었던, 1961년에 그가 이웃에 살던 8살 앤 메리 버를 납치·살해했을 정황 증거가 있다. 다만, 테드 번디는 이에 대해 부정했으며, 그의 사후에 실시된 DNA 수사는 DNA 확보 실패로 중단되어, 앤 메리 버 실종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13] 정확히는 플로리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2건으로 재판을 받았는데, 하나는 탤러해시의 대학 기숙사에 침입하여 그 안에 있던 애슐리 몬티, 로라 무어, 사라 존슨, 제인 테일포드(영국인) 등 여대생 4명을 무참히 폭행, 애슐리 몬티와 로라 무어(로 추정되는) 2명을 살해하고 사라와 제인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과, 마지막으로 12세 소녀 킴벌리 리치를 살해한 사건.[14] 특히 플로리다 주는 몇몇 지역들과 함께 미국에서 아직까지 사형 집행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주 가운데 하나다.[15] 참고로 미국 연방정부 차원에서 사형집행이 이뤄진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사건의 범인인 티모시 맥베이의 처형 때조차도 사형 반대 시위가 열렸음을 생각하면, 미국 사회에서 테드 번디가 얼마나 최악의 살인마로 받아들여졌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16] 사실 테드 번디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고 인터뷰에서 그는 음란물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가 인터뷰에서 "there are lots of other kids playing in streets around this country today who are going to be dead tomorrow"와 "We are your sons and we are your husbands and we grew up in regular families, and pornography can reach in and snatch a kid out of any house today"라고 말한 것을 합친 것이다.[17] 게다가 이런 자들은 손쉽게 등쳐먹을 수 있는 순진하고 약한 사람들, 속된 말로 '호구'들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18] 사이코패스들의 천박한 지적 깊이와 산만함, 진술의 모순에 대한 내용은 《진단명: 사이코패스》(로버트 D. 헤어)에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19] 테드 번디의 법률 지식이 '천박한 수준'이란 것은 현역 판검사 같은 숙련된 베테랑 법조인들에 비해서라는 것이다. 나름대로 법대를 다닌 전적이 있던 준 엘리트였기에 법에 문외한인 평균적인 일반인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한 마디로 여기서 말하는 테드 번디의 충분한 법률 지식이란 것은, 법망을 피해서 나름대로 꼼수를 부릴 정도의 수완은 갖췄었다는 얘기이다.[20] 리지웨이도 비슷한 케이스라고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는 실제로 자백 내지 수사 조언을 미끼로 형량 거래를 생각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 검거되자마자 자신이 저지른 죄를 아주 정직하게 털어놓은(물론 양심상 찔려서가 아니라 테드 번디처럼 죽기 싫어서)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21] 감옥에서 아이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할 수 있는데, 면회실에서 성관계를 했다고 한다.[22] 피해자들의 시신을 주로 유기하던 그 산이기도 하다.[23] 사형 집행 이후 사형수의 시신은 간단한 검사만 하고, 무조건 가족에게 인도하여 장례를 치르도록 되어 있다. 사형당한 것은 아니지만, 자살을 택한 사형수 정남규의 시신도 가족들에게 인도한 뒤, 화장하여 장례를 치렀다.[24] 가네코 히데유키 지음. 《세계의 공익광고》 p.56~57.[25] 단, PCL-R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과 선천적 사이코패스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가 소시오패스였다는 주장도 있다. 사이코패스는 평소에 짜증 정도의 감정밖에 느끼지 못한다면, 소시오패스는 약간의 감정을 인식할 순 있기 때문에 감정에 대해 잘 연기할 수 있다.[26] 남동생 1명, 여동생 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