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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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Turks and Caicos Islands
파일: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기.svg
파일:터크스 케이커스 제도의 휘장.svg
깃발
휘장
상징
노래
The Land of Ours
수도
콕번타운(Cockburn Town)
면적
616.3㎢
인문환경
국가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공용어
영어
인구
44,542명(2021)
인구밀도
80.0명/㎢
민족구성
흑인 88%, 백인 8%, 혼혈 4%
정치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국가 산하의 해외영토, 의원내각제, 단원제
국가원수
찰스 3세 영국 국왕
총독
디엘리니 다니엘-셀바라트남 (Dileeni Daniel-Selvaratnam)
부총독
애니아 윌리엄스(Anya Williams)
총리(Premier)
워싱턴 미식(Washington Misick)
경제
GDP
$10억 1700만(2017)
1인당 GDP
$28,689(2017)[1]
GDP(PPP)
$8억(2018)
1인당 GDP(PPP)
$25,326(2018)
화폐
미국 달러
ISO 3166-1
TC
도메인
.tc
시간대
UTC-5/-4(서머타임)
위치




1. 개요
2. 역사
3. 지리
4. 경제
5. 주민
6. 기타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TurksandCaicosOMC.png

북아메리카 카리브 지역에 위치한 터크스와 케이커스 군도로 구성되는 영국령의 제도다. 수도는 콕번타운(Cockburn Town)이이다.


2. 역사[편집]


기원전에 원주민 아라와크족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스페인인에 의해 발견되었을 때는 무인도였다. 제도의 발견은 149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발견하였다는 설이 있지만 1512년의 후안 폰세 데 레온이 발견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 스페인은 이 섬을 프랑스에 팔았고 시간이 흘러 영국으로 건너와 있었는데 스페인 선박을 습격하기 위한 해적 소굴로 이용한 것 이외에는 거의 무인도 상태였다. 1681년 버뮤다에서 소금 채취를 하던 영국인들이 채굴이 쉬운 그랜드 터크 섬에 정착하게 되면서 영국의 식민지화가 진행되었다. 1780년대에는 미국인들이 노예를 데리고 면화 재배를 시작했지만 태풍 피해로 1820년에 동행하고 있던 노예를 두고 떠나버렸다. 남겨진 노예는 고기를 채집해 생활했고 현재 대부분의 섬 주민들은 그들의 후손이다. 이후로도 버뮤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금 채취를 위해 계절적으로 그랜드 터크 섬과 버뮤다 본섬을 왕래했고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는 문화적으로 바하마보다는 버뮤다와 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1706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도중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이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를 점령했을 때 그들과 전투를 벌여 몰아낸 것도 버뮤다 군대로, 이는 영국 속령이 본토의 판단 없이 독자적으로 전투를 수행한 유일한 사례이다. 그러나 바하마 자치 정부는 지리적으로 더 가까운 본인들이 이 제도의 관리를 맡고 싶었고 이에 버뮤다와 바하마는 18세기 내내 이 제도의 영유권을 두고 분쟁을 벌였다. 같은 영국 왕관 아래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게다가 식민지 주제에 그 밑에 또 식민지를 거느리려는(...) 골때리는 상황에 영국 정부는 골머리를 앓았다. 1799년 바하마가 이 지역을 합병하고 세금을 걷자 버뮤다는 이에 반발했으나, 1815년 미영전쟁 이후로 터크스 섬 소금의 최대 수입처였던 미국이 영국과의 관계 악화로 소금을 사지 않게 되자 가치가 없어진 이 섬을 비로소 포기했다. 그러나 바하마와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의 문화적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자메이카의 관리 아래로 옮겨졌다. 1917년에는 캐나다 자치령이 합병을 제안했으나 당시 영국 총리였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가 거부했다. 1962년 자메이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혼자 영국 직할령이 되었고 1965년 다시 바하마에 편입되었으나 1973년 바하마의 독립으로 두 제도는 분리되어 총독을 두게 되었다. 1982년 독립 결정이 나왔지만 이후 취소되고 현재는 영국령이다.

마이클 미식(Michael Misick) 총리의 부정 축재 의혹으로 2009년 3월 영국 총리의 조언에 따라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추밀원령을 발동해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의 헌법 중 자치 정부에 대한 조항을 잠정적으로 중지하고 영국 본국에서 파견된 총독의 직접 통치를 실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미식 총리 사임 후임으로는 야당의 애니아 윌리엄스가 거론되었으나 8월에 추밀원령이 발효되면서 총독의 직접 통치 체제가 출범했다. 2012년 11월 9일 의회 선거 후 자치 제도를 회복했다.

2021년 6월 28일에 시신 20구(!)를 실은 선박이 인근 해역에서 발견됐다.#

3. 지리[편집]


바하마의 남쪽 40km에 위치해 있다. 크게 터크스와 케이커스로 나뉘고 40여개의 석회암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8개의 섬에 사람이 살고 있다. 많은 산호초가 있는 평탄한 모양의 섬으로 나무와 표토가 거의 없고 갯벌도 적다.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관련 영상



4. 경제[편집]


과거에는 어업과 소금, 해면 동물, 대마의 수출이 주된 산업이었고 현재는 관광과 해외 금융으로 번영하고 있다.

2022년 10월 4일, 유럽 연합바하마와 함께 조세 피난처 블랙리스트에 등록해 금융업에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5. 주민[편집]


아프리카계 카리브인이 88%를 차지하고. 유럽계 카리브인도 조금 있다. 기술을 가진 주민들의 대부분은 바하마에서 일을 찾는다. 아이티에서 온 아이티인 난민도 있지만 사회의 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다.

공용어는 영어이지만 아이티,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온 이주민들의 영향으로 아이티 크레올어, 스페인어도 이주민들 사이에서 사용된다.

종교는 개신교가 대부분으로 침례교가 41%, 감리교가 19%, 영국 성공회가 18%를 차지하고 있다.


6. 기타[편집]


  • 프로비덴시얼스(Providenciales)[2] 섬 인근에는 스스로 돌고래의 무리에서 떨어져 사람과 교류할 수 있게 된 야생 돌고래 조조가 살고 있다. 자연주의자 딘 버날과 교류를 15년동안 이어왔다. 2006년에 관련 동영상을 63빌딩 아이맥스에서 상영한 적도 있었다.[3] 그리고 1990년 6월 케이커스 제도의 북부, 중부, 동부가 람사 협약의 습지로 지정되었다.

  • 2013년 12월 부탄, 산마리노와 함께 FIFA 랭킹 최하위였다. 2014년 7월에 꼴찌를 탈출했다.

  • 캐나다 정부와는 관계가 매우 좋은 편이고 1917년 이후 캐나다의 합병 이야기가 근 100년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2003년에 실시한 선호도 조사에서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국민의 60% 정도가 캐나다와 합병하는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캐나다 정계에서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된다면 캐나다는 북극에서 카리브 해 까지 영토를 갖는 셈이 된다.

  • 미국의 예능 프로그램 투 핫 시즌 2가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프로비덴시얼스 섬에서 촬영되었다.

  • Turks는 '튀르크인'을 뜻하기도 하는데, 터크스 제도에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여기에 자생하는 선인장이 오스만 제국의 상징인 페즈를 쓴 것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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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2] 투 핫 시즌2의 촬영지이기도 하다.[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