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조선)/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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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목록
2.1. 드라마
2.1.1. 세종대왕
2.1.2. 황희 정승
2.1.3. 연지
2.1.4. 개국
2.1.5. 조선왕조 오백년
2.1.6. 용의 눈물
2.1.7. 대왕 세종
2.1.8. 뿌리깊은 나무
2.1.9. 대풍수
2.1.10. 정도전
2.1.11. 하녀들
2.1.12. 육룡이 나르샤
2.1.13. 장영실
2.1.14. 나의 나라
2.1.15. 조선구마사
2.1.16. 태종 이방원
2.1.17. 원경
2.2. 영화
2.2.1. 나는 왕이로소이다
2.2.2. 관상
2.2.3. 순수의 시대
2.3. 소설
2.3.1. 연못에 핀 목화 - 송경별곡
2.3.3. 신녕궁주전


1. 개요[편집]


아마도 훗날 세종이 조선조 최고의 성군이 된 것은 태종의 이러한 철저한 정지(整地) 작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로 볼 때 태종이 한 일이 어찌 세종보다 가볍다 할 수 있겠는가!

용의 눈물 마지막 회 나레이션 中


한반도 역사상 유일하게 역성혁명으로 통일왕조 교체가 이뤄졌던 여말선초라는 시대적 격변기에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다 간 인물이다. 이방원의 인생 자체가 여말선초의 격동기를 관통하고 있으며, 조선 왕조뿐만 아니라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하고 인상적인 행보를 보인 군주라 사극에서 인기가 많다. 조선 건국을 다루는 극에서는 주인공으로 나오는 확률이 높고 조연이더라도 주연급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의 높은 비중을 할애받는 경우가 많다. 현재까지 KBS 대하드라마만 기준으로 해도 태종 이방원까지 포함 무려 7번 등장했다.

한국사 희대의 격동기였던 여말선초 시기의 중심 인물이라 굉장히 다양한 모습들이 투영된다. 아버지와 같이 역성혁명을 일으켜 조선을 세운 혁명가이자, 왕좌를 차지 하기 위하여 형제최측근의 피를 직접 자기 손에서 묻힌 야심가, 왕이 되고 나서는 처가사돈 집안, 아끼던 부하까지 풍비박산을 내버리는 조선 역사상 가장 냉혹한 철혈 군주, 아들을 끔찍히 사랑하지만 신흥 왕조 조선의 종묘사직을 위해 장남을 폐위시킨 아버지, 후대 왕이 조선 최고 명군이 될 수 있게 기반을 닦아 놓은 또 다른 명군의 모습 등 실제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입체적인 인생을 살다 갔고, 이는 태종이란 인물을 굉장히 매력있게 만든다. 이처럼 조선 건국, 왕자의 난, 세종의 외척 숙청 등, 굵직굵직한 인물들을 죽여가서 패도의 길을 걷는 행보가 인상적이다. 그래서 2010년대 이후 생긴 별명 중 하나가 킬방원.[1] 모든 드라마에서 묘사된 태종을 관통하는 컨셉은 "평생 패도를 걸었지만 누구보다도 왕도를 염원했던 정치인"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이방원의 거친 면과 패륜적인 면이 강도면에서 더더욱 올라가고 있다. <용의 눈물>에서는 냉정하지만 절대 선은 넘지 않으며 아버지에게는 절대 반항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정도전>에서는 초반에는 고분고분하지만 가면 갈수록 아버지에게 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마지막에 자신의 아버지에게 어서 죽이라고 고래고래 소리까지 지른다. 그리고 가장 최근 드라마인 <태종 이방원>에서는 자신을 죽이겠다고 칼을 빼들고 다가오는 아버지를 병사들을 이용해 아예 무력으로 제압해버린다.[2]

세자인 방석을 죽이는 것 장면도 그 연장선으로 <용의 눈물> 에서는 세자 개인과는 심한 적개심을 가진 모습을 딱히 보여주지 않았으며 세자를 죽이는 것은 묵인하되 세자의 죽음을 목격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정도전> 에서는 직접 세자가 죽는 장면을 멀리에서 목격한듯 하며 세자의 시체를 보고 허수아비라며 조롱을 하고, <육룡이 나르샤>는 조롱은 없지만 세자를 직접 베어 죽인다. <태종 이방원>에서는 직접 죽이지는 않지만 죽이기 직전에 만나 서로 악담을 퍼붓고 그를 떠나자 병사들이 방석을 죽이는 방향으로 그려졌다.

다만 대중매체에서 태종이 실제 역사와 다르게 묘사되는 고질적인 부분들이 있는데, 그 중 거의 빠짐없이 나오는(용의 눈물 제외) 세종과 태종과의 대립은 명백한 왜곡이다. 실제 세종은 아버지 태종을 존경하고 진심으로 효심을 다했으며 태종도 그런 세종을 진심으로 아끼며 아들바보스러운 면모를 보였다. 보통 드라마에서 세종이 즉위 후에 갈등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나 실제 역사에서는 전혀 그런 점이 없었으며 태종은 항상 자신의 뒤를 이어 군왕이 된 세종을 입이 닳도록 칭찬하였으며, 세종 또한 그런 아버지를 진심으로 따르며 정치 후계 수업을 왕이 된 후에도 계속해서 받았다. 심씨 가문의 숙청 또한 세종 본인 또한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 정설.

이게 어쩔수 없는것이 드라마의 재미를 생각해 보았을 때, 역사처럼 마냥 이렇게 화기애애한 장면만 넣고 대립 구도가 형성되지 않으면 극중 긴장감이 전혀 없어져 보는 재미가 반감되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리깊은 나무> 같이 태종이 세종을 반말로 윽박지르며 자신의 정치관을 설명하고, 나중에는 아예 직접 세종의 목에 칼을 겨누며 죽는게 소원이라면 베어 주겠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대립은 애초에 퓨전사극이긴 하지만 전혀 하지 않았다. 이 대립에 대해서는 이방원을 다룬 드라마 중 가장 고증에 충실하다고 평가받는 <태종 이방원> 에서조차 나타나는데 이쯤 되면 드라마의 전개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작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위에 나온것처럼 용의 눈물처럼 마음속으로는 반대하지만 아버지에게 대들지 않으면서 막으려는 시도는 있었을 수 있다.[3]

또한 태종이 백성들에게는 매우 어진 임금이었다는 부분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대놓고 연산군과 같은 폭군의 모습을 보이지는 않고 단순히 백성들에게도 엄격하고 강경하게 대하는 정도로 묘사하지만, 태종의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2. 목록[편집]



2.1. 드라마[편집]



2.1.1. 세종대왕[편집]


1973년 KBS 드라마 <세종대왕>에서 배우 남성우가 연기했다.


2.1.2. 황희 정승[편집]


1976년 KBS 드라마 <황희 정승>에서 배우 남성우가 연기했다.


2.1.3. 연지[편집]


1978년 MBC 드라마 <연지>에서 배우 정욱이 연기했다.


2.1.4. 개국[편집]


1983년 KBS 드라마 <개국>에서는 배우 임혁주[4]가 연기했다. 이 배역이 2000년대 중반까지 많은 사극에 출연한 임혁주의 본격적인 사극 커리어의 시작이었다.


2.1.5. 조선왕조 오백년[편집]


1983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1부 <추동궁 마마> ~ 2부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배우 이정길이 연기했다.


2.1.6. 용의 눈물[편집]


지금까지 태종을 가장 잘 표현한 한국 사극으로는 1996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배우 유동근이 연기한 이방원이 꼽히고 있다. 사실 <용의 눈물>이라는 드라마 자체가 원작[5]에서 태종 부분을 들어내서 만든 것이니 진짜 주인공이며 <용의 눈물>이라는 제목 자체가 태종을 말하는 것이다. 배우 김무생이 주인공인 이성계 파트부터 조용하지만 강력한 카리스마를 잘 표현하였으며 본격적으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후반부에 와서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의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고증에 많은 신경을 써서 아버지 이성계와의 갈등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과 매우 유사하였다. 그 절정은 이른바 벼루샷이라고 불리는 장면. 분노한 이성계가 방원에게 벼루를 투척하여 머리에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장면이다. 이후에도 태종과 이성계의 갈등 장면에서는 꼭 나오는 장면이 되었다

이성계가 개성에서 한양으로의 재천도 이후[6] 한 동안 궁밖을 유람하다가 으로 돌아오자 그 앞에서 "아바마마! 소자의 춤을 보시옵소서!"라며 어린애처럼 을 추다가 아버지 품에 안기며 화해하는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 이후 이성계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를 떠올리며 용상 앞에서 "아바마마! 소자가 잘못했사옵니다!"하며 오열한 연기도 일품. 이성계의 죽음 이후 태종 집권기 내용 또한 볼만한데 이숙번을 쥐락펴락하는 모습, 가만히 지켜보다가 양위 소동을 일으켜 민씨 형제를 그물망 속으로 빠뜨리는 모습 등에서는 노회한 책략가의 모습 그 자체. 이숙번이 민씨 형제를 경계하라고 진언하니 되려 이숙번더러 "사람이 변했다. 제 몸보신을 위해 남을 헐뜯는 법도 배웠는가"라며 힐난하고는 듣는 척도 안하더니 이후에는 천연덕스럽게 민씨 형제를 장남과 차남, 그 뒤에는 삼남과 사남까지 사지로 밀어넣는다. 이 과정에서 원경왕후 민씨와 엄청난 갈등을 벌이면서도 태연하게 이숙번을 방패로 내세우는 장면에서는 소름이 끼칠 지경. 이숙번은 민씨 형제의 세력을 가볍게 견제하고 위축시킬 생각이었을 뿐인데 태종이 강경하게 박살을 내려고 하자 당황한다. 그래서 이숙번은 민씨 형제를 추궁하라는 태종의 명을 사양하는데 태종은 그런 그를 보며 "또 사람이 변했다"면서 핀잔을 준다. 표적이 된 자들은 철저히 몰아붙이는 것도 모자라서 반대편에 있는 신하들조차 오들오들 떨게 만드는 모습이 백미.

노련하고 냉정한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아들 양녕대군을 눈물겹게 위하는 아버지로서의 면모도 유감없이 묘사되었다. 양녕대군이 엇나가기 시작하자 호통을 치거나 매를 들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제발 정신 좀 차려라. 네가 원한다면 당장 내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다"며 빌기도 하며 경회루가 완공되고 양녕대군이 현판을 쓰는 장면에서는 호들갑을 떨며 관료들에게 아들을 자랑하는 아버지로서의 모습도 보였다. 이후 충녕대군의 사저로 잠행을 나왔을 때 "나는 재목이 아니니 일부러 미친 척을 하며 충녕에게 세자위를 넘기련다"라는 양녕대군의 본심을 엿듣게 되자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땅바닥에 주저앉아 "이것이 지난 죄업에 대한 벌이냐"고 독백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폐세자하라"는 어명을 받든 도승지가 대전에서 나가자 울기도 했다.[7] 양녕대군의 폐세자 이후 새로 세자로 책봉된 충녕대군에게 양위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표면적으로는 군왕의 자리에 앉혀두고 태종 자신은 군권만 쥔 채로 군왕의 수업을 직접 시키고자 한다는 이유로 신하들을 설득시킨다. 양위 전날에는 군권을 쥔 상태로 왕실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남아있는 인척이 누가 있는가를 곰곰히 생각하다가 충녕대군의 장인심온과 그 파벌을 지목하고 보위를 넘겨준 직후에 바로 심온 일파를 소탕하는 기염을 선보인다.[8] "모든 악업은 내가 지고 갈 터이니 주상께서는 성군이 되시오."라는 불후의 명대사를 남겼는데 태종의 성격군주관을 잘 나타내는 명언이 되고 있다.[9] 그리고 그는 세종 4년 나라에 가뭄이 극심하자 임금의 대례복인 구장복을 입고 기우제를 지내다가 쏟아져 내리는 비를 보고 승하한다. 이는 '태종우'라는 전설을 모티브로 각색한 것이다.

교묘한 정치술을 발휘하여 신하들을 가차없이 숙청해버리는 '심술의 군주'로서의 면은 물론 술자리를 벌이거나 사냥을 나가는 모습을 종종 묘사함으로써 '사냥 애호가'로서의 모습도 묘사되었으며 후궁 문제로 원경왕후와 지지고 볶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여성 편력'도 그려졌고 양녕대군과의 관계에서 '아들 바보'였던 측면도 충분히 소개되었다. 나오지 않은 것은 '부엉이 공포증'과 '관대한 면모'[10] 정도.


2.1.7. 대왕 세종[편집]


2008년 KBS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배우 김영철이 연기했다. 주인공이 세종이므로 '세종의 아버지'로서 고뇌하는 아버지에 초점을 맞춰 그려졌다. 그 때문에 신하들을 머리 위에서 농락하던 태종의 포스가 사라졌다고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사실 너무 공포스러운 이미지만 부각되는 태종을 가장 인간적으로 묘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마 시청자들이 원하던 태종의 포스는 여말에 정몽주를 암살할 때 혹은 왕자의 난을 일으킬 때 느낄 법한 그런 것이겠지만, 작중 태종은 이미 그 시점들은 물론 즉위한지도 한참 지난 중장년의 왕이다. 당연히 왕답게 조용함과 동시에 본래 이방원의 포스를 유지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본 드라마의 묘사는 매우 적절한 것이다. 정종에게도 잔소리를 듣고 원경왕후에게 치이고 조선의 국체를 부정하는 아들에게 까이는 건 그들이 좀 성가신 태도를 보여서 피곤해하는 것뿐이다.

물론 지병으로 환후가 깊어지던 와중 병조판서 조말생에 의해 군권을 빼앗기고 충격에 쓰러지는 장면은 대왕세종의 대표적인 역사 왜곡 중 하나로 비판받기는 한다. 실제 역사에서 조말생은 태종이나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관료였을 뿐이지 군권을 빼앗는 등 태종이나 세종의 뜻을 크게 거스른 바는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11]

그래도 외롭게 지존의 자리를 지켜가는 군왕의 모습과 원경왕후와의 애증 어린 부부 관계, 아들에게 조선의 내일을 맡기는 선왕의 모습 등이 잘 표현되었다. 상왕 등극 이후에는 대마도 정벌을 단호하게 추진하는 등 원래 태종에 가깝게 나온다.

이외에도 어찌 보면 주인공인 세종보다 명대사가 많다. 정치에 대해, 특히 선위 전에는 "군왕이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선위 후에는 자신의 아들인 "세종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논할 때 이런 대사가 많이 나온다.

(세자(양녕대군)가 방 안의 물건을 때려부수다가 태종을 보고는 멈춘다.) 마저 해. 그렇게 해서 분기가 풀릴 것 같거든 이 전각을 통째로 날려도 괜찮아. 분기와 노여움은 풀되, 오늘은 두 사람의 목숨을 네 손으로 끊어 얻은... 오늘의 그 값비싼 가르침만은 잊지 말거라. 함부로 신하들에게 마음을 열고 측근으로 두지도, 벗을 자처하지도 마라. 그런 호사는 군왕의 몫이 아니다. 벗 하나 마음 놓고 가질 수 없는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자, 그 자가 바로 군왕이다.[12]

- 외숙(민무휼, 민무회)들을 스스로 숙청하고 화가 난 양녕에게 (32회 중)


태종 : (잠에서 깨어난 세자(충녕대군)의 방에 입장해 좌정한다) 식음을 전폐하고 서책에 매달리고 있다구? 과시... 현자는 현자로구나. 백성들 고충이 안타까워서냐? 그래서 고통을 덜어줄 길을 찾고 있었던 것이냐?

세자 : 아니옵니다, 아바마마... 소자는 그저 책 속에... 책 속으로 숨었을 뿐이옵니다. 기우제를 지내는 것 외에는 달리 길은 없는데 소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입을 모아 소자가 왕재가 아니라는 백성들 앞에 설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늘도 이길 자신이 없었습니다.

태종 : 도야.

세자 : 그래서 책 속으로 숨은 겁니다. 뭔가 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세상이 소자를 또 못났다, 왕재가 아니다 할까 두려워 허세를 부린 겁니다. 용서하십시오, 아바마마. 소자에겐 국본의 자격이 없습니다.

태종 : 자격이 없으면 이제부터 자격을 갖춰야지. 상선! (밖에 있던 상선이 들어와 궁녀들에게 고갯짓하자 푸짐한 수라상이 들어온다.) 수저를 들어. 그리고 단 한 톨도 남김없이 다 먹어라.

세자 :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아바마마.

태종 : 못나 빠진 녀석.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게야? 그리 도망을 다닐 요량인데 현자가 되겠다는 말은 왜 했고, 형제간의 정리마저 등지면서까지 국본의 자리는 왜 갖겠다 했어?

세자 : 소자가...

태종 : 잘못했다는 말은 하지 마라! 네가 아무리 용서를 빌어도 이젠 번복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세자 : 하오나 아바마마...

태종 : 군왕이라는 자는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자가 아니다. 백성들 다 굶어죽게 생겼어도, 형제를 죽이고, 벗처럼 아끼는 신하를 내치고, 내자의 가슴에 대못을 치고 와서도, 그 지경이 되어서도... 입안으로 밥을 욱여넣고 잠을 자야하는 염치없는 사람들이 군왕이다. 수저를 들어. 마르지 않는 눈물에 밥을 말아먹든, 씻을 수 없는 노여움에 밥을 말아먹든 어쩌든 이기고 견뎌내야 하는 게야. 어떤 상황에서도 강건함을 잃어서도 안 되고, 옥체를 상하게 해서도 아니 되느니. 그는 군왕이 곧 이 나라 조선이기 때문이다.

- 연이은 가뭄으로 해결책을 찾다가 쓰러진 세자(충녕대군)에게 (39회 중)


태종 : (황희의 앞에 나타나 인사를 받고는 집에 들어선다) 삼고초려라...

황희 : 언제부터 저기에...

태종 : 좀 됐어.

황희 : 송구하옵니다.

태종 : 부실한 놈으로 여겨 지존으로 세우고도 병권마저 이 손으로 다 틀어쥐고 있었건만, 오늘 보니 쓸 만한 구석도 있구만. 지인지감 하나는 쓸 만해. 아들놈, 이젠 자네가 좀 맡아야겠어. 어쩌면 말이야, 자네는 아마도 나하고보단 저녀석하고 배짱이 더 잘 맞을 게야.

황희 : 하오나, 전하.

태종 : 토 달지 말고 들어. 오늘 와서 지껄이고 간 말은 마음쓰지 마라. 진심이 아니니까.[13]

그저 죽을 날 받아놓은 아비 딱해서 그런 거 뿐이야.

황희 : 전하, 그 무슨...

태종 : 그렇게 됐어.

황희 : (무릎을 꿇으며)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전하.

태종 : 그 버릇은 고쳐.

황희 : 전하.

태종 : 되지도 않는 일에 희망을 품는 짓 따윈 하지 말라고. 내일 관복을 보내주지, 그러니...

황희 : 송구하오나... 그 명만은 받들 수가 없사옵니다.

태종 : 또다시 반기를 들겠다는 겐가?

황희 : 소신에겐 자격이 없사옵니다.

태종 : 양녕 지지한 거, 후회하나?

황희 : 후회하고 있다면은 복귀하라시는 명, 받들었을 것이옵니다. 외람되오나 양녕대군은 저에게도 자식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비라는 자들은 본시 자식이 수렁에 빠지면 죽을 자리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구할 수 없다면은 같이 빠져주기라도 하려드는 자들이옵니다. 후회 안 합니다.

태종 : 이봐.

황희 : 허나 반성은 하고 있습니다. 정치가는 그 어떤 경우에라도 사감에 빠져 판단을 그르쳐서는 안 되는 일, 하물며 이 나라 조선의 차기 지존을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소신을 다시 찾아주신 것으로 감사드립니다, 전하. 하오나, 소신에겐... 소신에게는 자격이 없습니다.

태종 : 별 수 없지. 그대의 고집을 누가 말리겠나.

황희 : 송구하옵니다.

태종 : (자리에서 일어나며) 허나, 이거 하나는 밝혀두지. 과인은 알고 있어. 그대가 밖으론 양녕을 두호했으나 안으론 반대하고 고언하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 아무리 나어린 자라도, 자식 같이 마음이 가도... 양녕은 그대의 자식이 아니라 주군이었다. 그러니 책임은 그대에게가 아니라 양녕에게 있는 게다. 부탁이다, 공판. 금상에게도 한 번은... 한 번은 기회를 줘. 그 아인... 금상은 아비인 내가 가장 잘 알아. 양녕하고도, 또한 과인하고도 다른 아이야. 사람 아낄 줄 알고, 뭣보다 듣는 귀는 아주 제대로 열어둔 인사지. 부디 이 나라 지존을 너무 오랫동안 외롭게 두지 마라.

- 황희를 만나 세종의 힘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태종 (54화 중)


태종 : 여기가... 좋겠다. 천문대는 여기 세우는 것이 좋겠어. (세종이 매우 놀란 표정을 짓는다.) 들어와 하소연이라도 하지 그랬니.

세종 : 아바마마...

태종 : 알고 있었어. 매일 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네 발길이 수강궁 언저리에 머무는 것... 알고 있었어. 아비가 원망스럽진 않았느냐?[14]

세종 : 아니옵니다, 아바마마.

태종 : 도야, 아비는 말이다, 여유가 없었다. 나라를 세우고, 이 나라가 휘청일까 두려워 칼을... 참으로 쉼없이 칼을 휘둘러대느라... (의자에 앉는다) 나라를 세우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차서... 이 아비는 여유가 없었다.

세종 : 소자, 잘 알고 있습니다.

태종 : 허나, 아비처럼 살아야한다는 뜻은 아니다. 도야.

세종 : 예, 아바마마.

태종 : 네가... 옳다. 아니, 네가 옳았으면 좋겠다. 이젠 아비를 밟고 넘어 서. 부디 너는 이 아비보다 더 크고 넓은 꿈을 품어라. 조선의 하늘은 마땅히 조선의 것이니, 백성들에게 돌려주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해도 좋겠지. 이 나라, 잘 부탁한다. 이 나라는 아비의 나라도, 또한 너의 나라도 아닌 만백성의 나라... 조선이어야함을 잊지 말거라. (일어나 세종의 손을 잡는다) 힘이 들 게야.

세종 : 아바마마.

태종 : 허나, 잘 해낼 거다. 아비는... 아비는 말이다. 네가... 자랑스럽구나.[15]

- 직접 천문대 터를 잡아주고 세종에게 후대를 부탁하는 태종 (55회 중)[16]


세자(이향) : (활쏘기 연습을 하며) 오늘 영실이는 명국으로 떠난답니다.

태종 : 잘 됐구나.

세자 : 보내고 아바마마께서 일로 오신다 하셨습니다. 그런데요, 할바마마. 저에게도 이런 일이 있으면 어찌합니까? 아바마마와 할바마마처럼 서로 뜻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으면 어찌해야 합니까?

태종 : 반대해야 한다.

세자 : 하오나, 그리 되면...

태종 : 그래도... 너에 대한 아비의 사랑은 변함이 없을 거다.

세자 : 참말이옵니까?

태종 :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세자 : (신중히 과녁을 노려 화살을 날리자, 그 순간 태종이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군다. 화살은 과녁의 정중앙에 명중한다.) 할바마마! 보셨습니까? 관중입니다! 소손이 관중을 하였습니다! (태종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할바마마, 주무십니까? (태종을 흔들어 깨우려 한다.) 할바마마, 주무십니까? 할바마마. 할바마마! (때마침 세종이 도착한다.) 아바마마, 할바마마께서 깨어나질 않으십니다. 소손이 관중을 하였다고 고했는데, 어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세종 : (세자를 안으며) 너무... 힘이 드셔서 그러는 게다. 이젠... 편히 쉬고 싶으신 게야... (태종에게 다가선다.) (평생... 참으로 고단하셨습니다... 아버지... 이제... 이제는 편히 쉬십시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의자를 붙잡고 오열하자,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도 따라서 엎드려 통곡한다.)

- 태종의 승하 (55회 중)



2.1.8. 뿌리깊은 나무[편집]


2011년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배우 백윤식[17]이 연기했다. 초반부터 세종과 다른 정치 노선으로 대립하는 포지션을 취하는데 태종과 세종간의 관계에 주목한 점이 특이점. 세종의 아버지라기보다는 세종에게 군주로서의 도를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한 편. 태종이 내린 빈 찬합에 대한 해석을 세종이 자기 멋대로 해버리면서 자신만의 제왕학을 완성한다. 죽기 직전에 자신과는 다른 왕도를 걸으려는 세종에게 "이놈... 해내거라, 해내! 그래야 네놈을 왕위에 세운 것이 나의 제일 큰 업적이 될 것이니."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2.1.9. 대풍수[편집]


2012년 SBS 드라마 <대풍수>에서는 배우 최태준이 연기했다. 청소년기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첫 등장이 꼴사나운데 주인공 목지상이 건물을 짓지 말라고 했던 곳에 무리하게 공사를 한 데다가 인부 하나 다치는 것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식의 태도로 나오다가 목지상에게 싸닥션을 맞는다. 그러다가 목지상에게 자기가 누군지 아느냐고 찌질대다가 결국 뒤에서 나타난 아버지에게 펀치를 맞는 것이 첫 등장. 흔히 노회하고 카리스마 있는 정치가의 모습으로 조명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대풍수에서의 등장은 이례적인 등장이다. 그래도 명나라에 인질로 잡혀있을 때 담대한 모습을 보였고 이성계의 부장과도 팔씨름을 이길 때까지 해서 왼손으로 해서라도 이겨버리며 이성계도 무학대사를 불러 아들들 중 처음으로 이방원의 관상을 보게 하는 것을 보면 이성계가 아끼는 비범한 아들이기는 하다. 계모 강씨 부인과의 미묘한 알력도 묘사되고 있다.


2.1.10. 정도전[편집]


2014년 KBS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배우 안재모[18]가 연기했다. 자세한 것은 이방원(정도전) 항목 참고.


2.1.11. 하녀들[편집]


2014년 JTBC 드라마 <하녀들>에서는 배우 안내상[19]이 연기했다.


2.1.12. 육룡이 나르샤[편집]


2015년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배우 유아인[20]이 연기했고 남다름이 아역을 연기했다. 자세한 건 이방원(육룡이 나르샤) 항목 참조.


2.1.13. 장영실[편집]


2016년 KBS 드라마 <장영실>에서는 배우 김영철[21]이 연기했다. <대왕 세종>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여기서는 조선의 왕권을 다지기 위해 힘쓰는 카리스마 철혈 군주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같은 배우가 연기한 2011년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의 수양대군과 비슷해보이기도 한다.


2.1.14. 나의 나라[편집]


2019년 JTBC 드라마 <나의 나라>에서는 배우 장혁[22]이 연기했다. 자세한 것은 이방원(나의 나라) 참조.


2.1.15. 조선구마사[편집]


2021년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에서는 배우 감우성이 연기했다. 그간 태종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에서 조명되지 않은 태종의 부엉이 공포증을 토대로 구마 사극을 만들어냈으나 드라마 내에서 부각된 심각한 고증오류역사왜곡을 비롯한 수많은 문제점들로 인해 종친회를 비롯한 여러 시청자들에게 거세게 항의를 받았고 결국 드라마는 단 2회만에 강제로 폐지되는 사상 초유의 수모를 당했다. 조선구마사/논란 및 사건 사고조선구마사/논란 및 사건 사고/고증 오류 및 역사 왜곡 문서 참조.


2.1.16. 태종 이방원[편집]


2021년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는 배우 주상욱이 연기했다. 자세한 내용은 이방원(태종 이방원) 문서 참조.


2.1.17. 원경[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원경(드라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영화[편집]



2.2.1. 나는 왕이로소이다[편집]


2012년 개봉한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는 배우 박영규가 연기했다. 매우 터프한 성격의 임금으로 등장하는데 시작부터 면전에서 땡깡부리는 양녕대군에게 이단옆차기를 날린다던지, 옆에다 철봉 두고 턱걸이를 하면서 정무를 본다던지, 충녕대군이 세자 자격이 없다고 까는 황희[23]를 발로 차서 넘어뜨린 다음 프락치를 한다.


2.2.2. 관상[편집]


2013년 개봉한 영화 <관상>에서는 작중 시점에서 이미 고인이 된지 오래라 이름만 언급되는데 주인공 김내경에 따르면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된 역모의 상"이라고 한다. 그의 손자들중 한 명인 수양대군 역시 역적의 상으로 나오는데 정확히는 이리의 상이다.

그의 가상의 어진은 태조 이성계의 전주 경기전 어진을 거의 본떴지만 사백안에 네모난 눈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2.2.3. 순수의 시대[편집]


2015년 개봉한 영화 <순수의 시대>에서는 배우 장혁이 연기했다.


2.2.4. 해적: 도깨비 깃발[편집]


2022년 개봉한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에서는 한재영이 연기했다. 분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


2.3. 소설[편집]



2.3.1. 연못에 핀 목화 - 송경별곡[편집]


네이버 웹소설 이방원(송경별곡) 참조. 형 정종이 왕위에 등극하는데 주동자는 정종이며 방원은 행동대장이자 책사이다.


2.3.2. 킹방원 메이커[편집]


대체역사소설 킹방원 메이커에서는 정도전에 빙의한 주인공이 살아남으려고 이방원 라인으로 급선회를 하자 자초지종을 모르기에 의심하나 하륜의 중재를 통해 그가 정말 자기를 지지하기로 했음을 알자 그 후 역사와는 달리 피를 흘리지 않으며 왕위에 오르고 왕권을 다지며 더더욱 조선의 발전을 앞당긴다. 그리고 이제 좀 편히 살려는 정도전이 세종 밑에서도 일하게 만들어 결국 주인공은 단종 시대까지 일하는 원인이 된다.


2.3.3. 신녕궁주전[편집]


정비의 지밀나인 금영에게 승은을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만난 정비의 지밀나인 신아지에게 관심을 두었다. 이후 아지를 후궁으로 맞이한다.

[1] 아예 킬방원으로 검색하면 태종(조선)으로 리다이렉트 될 정도.[2] 천하의 이성계가 이렇게 무력하게 제압당한 것도 의문이겠지만 실제 병사들도 이성계를 죽일 생각은 없었기에 창을 거꾸로 들어서 창 끝이 아닌 창대로 제압했고 이성계 역시 병사들이 제지하자 곧바로 멈추는 걸 봐서는 어쩌지 못했던 것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태조 병환설을 채택하였는데 아무리 천하무적인 이성계라도 정상인 컨디션도 아니었을 것이니 제압당하는게 딱히 이상한 건 아니다. 또 당시 굉장히 고령이었던 점도 무시 못할 부분.[3] 안재모의 세종은 죽이지 말고 차라리 멀리 귀양을 보내라고 사정한다.[4] 2002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장택상 역.[5] 월탄 박종화의 <세종대왕>. 하지만 사람 사는건 똑같아서 태종이 훨씬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제목만 <세종대왕>이고 대부분의 내용은 태종에 대한 이야기이다.[6] 즉위식은 개성에서 했지만 이후 한양으로 천도를 했다가 2대 정종(조선)시절 다시 개성으로 천도를 했다가 태종이 왕위에 오르고 조사의의 난 이후 돌아온다[7] 어명을 내릴 때도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이 떨어지기 직전이였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다가 도승지가 나가고 나서야 참았던 눈물을 쏟고 말았다.[8] 작중 원경왕후는 "야차나 귀신 그 자체다"라는 폭언을 퍼부을 정도.[9] 이 말은 실제 태종이 상왕으로 물러나고 새로운 왕으로 즉위한 세종에게 한 말이다.[10] 이마저도 정몽주영의정에 추증한다거나 정도전과 그 일파를 멸족시키지 않은 점 등을 소개하면서 보여주었다. 특히 정도전 숙청 당시 그를 "아저씨"라 부르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관대함의 편린을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11] <용의 눈물>에서는 소헌왕후 심씨를 폐출해야 한다는 공론에 조말생도 동참했다는 보고를 받은 태종이 "그래...? 쯧쯧, 그 친구도 많이 컸구먼?"이라고 한 마디 하고 마는데, 딱 이 정도가 적절한 묘사다.[12] 조선이 건국된지 30년이 채 안된 상태에서 정도전 같은 신하가 나오지 않고 튼실한 왕권을 유지하려면 태종 입장에서는 당연한 발언이다. 문제는 이 일로 양녕대군이 너무 지나칠 정도로 마음을 닫아 걸고 신하들에게 무조건적인 복종만을 요구하게 된 탓에 지지를 잃었고, 결국 저위에서 내려오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13] 황희의 집에 찾아가 반대하는 자들은 모조리 숙청하는 폭군이 되겠다는 발언을 했는데, 말 그대로 진심이 아니라 상왕 태종이 깊은 병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술에 취한 채로 주정을 부린 것이다.[14] 사실 원망스럽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던 것이 극중 태종은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 계속 세종의 가장 큰 정적으로 작용했다. 핵심 권력인 인사권과 군권을 틀어쥐고, 이제 엄연히 자신의 신하가 아닌 금상인 세종의 신하가 된 이들을 포함해 장인되는 심온까지 숙청해버렸으니.[15] 공포스럽기만 하던 태종의 매우 인간적인 모습을 잘 그려낸 부분이다. 실제로 많은 아버지들이 자식이 무엇을 하던 못마땅하게 여기다가 종국에 인정해주는 것을 생각하면.[16] 가장 큰 정적으로 작용하던 태종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종의 과감한 정책에 손을 들어준 순간이다.[17] 백윤식은 1980년 <파천무>에서 태종의 손자 문종을 연기했었다. 참고로 여기서의 수양대군김흥기가 연기했다.[18] 1996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안재모가 세종 역을 맡아 태종 역의 유동근과 부자지간을 연기한 것을 감안할 때 <정도전>에서 이성계 역을 맡은 유동근과 함께 가히 최강의 배우개그이다. 2002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안재모의 미래 모습을 연기한 김영철이 KBS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태종 역을 맡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태종이 김두한으로 환생한다는 배우개그도 가능하다.[19] 2014년 개봉한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서는 정도전을 연기했었다.[20] 여기서도 배우개그가 생기니 유아인이 2013년 SBS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는 숙종 역, 2015년 개봉한 영화 <사도>에서는 사도세자 역인데 이방원과 먼 후손 2명이 같은 얼굴이라는 배우개그가 된다. 용비어천가 시리즈 세계관에서는 유아인과 한석규가 각각 태종과 세종을 연기하면서 서로 부자 관계가 되는데 유아인이 숙종 역을 맡았고 한석규가 2014년 SBS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는 영조 역을 맡았으니 두 사람은 부자 관계에 있는 조선 임금들을 2번 연기한 셈이 된다. 공통점은 유아인이 연기한 태종숙종은 모두 강력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왕들이었고 한석규가 연기한 세종영조는 모두 대단한 학구열과 신하들과의 논쟁에서도 밀리지 않는 논리력을 갖춘 왕들이었다.[21] 2008년 KBS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태종을 맡았던 배우 김영철이 다시 맡게 됨으로서 김영철은 남성우, 이정길에 이어 2번이나 태종을 맡게 된 배우가 되었다. 김상경도 <대왕 세종>에서 세종을 맡았는데 <장영실>에서도 맡게 됨으로서 세종을 2번 맡은 배우가 되었다. 여담으로 2021년 방영된 태종 이방원 기념 역사저널 그날에서 이 부분을 보여주자 이방원 역의 배우 주상욱이 당황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해당 작품에서 배우 김영철은 태조 이성계 역을 맡았는데, 이방원에게 너무 비정한 아버지였다.[22] 장혁은 남성우, 이정길, 김영철에 이어 태종을 2번이나 맡은 배우가 되었다. <대왕 세종>과 <장영실>에서 태종, 2011년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세조를 맡았던 김영철이 이번에는 태조를 맡으면서 조선 전기의 3대 국왕들인 태조, 태종, 세조를 모두 연기한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23] 1980년 KBS 드라마 파천무에서 문종을 연기하고 2011년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태종을 연기한 백윤식이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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