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정안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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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元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편집]


단공 2년(989년), (정안국) 왕자(王子)가 여진의 사신을 통하여 말과 새깃으로 장식된 명적을 바쳤다.

端拱二年, 其王子因女眞使附獻馬·雕羽鳴鏑.

순화 2년(991년), (정안국) 왕자(王子) 태원(太元)이 여진의 사신을 통해 표를 올렸는데, 그 뒤로는 다시 오지 아니하였다.

淳化二年, 其王子太元因女眞使上表, 其後不復至.

송사 외국열전 정안국


정안국의 왕자. 문헌통고에는 대원(大元)으로 기록되어 있다.


2. 생애[편집]


989년 정안국의 왕자가 여진족을 통해 송나라에 공물을 바치는데, 이 인물이 태원과 동일인인지는 알 수 없다.

991년 여진족의 사신을 통해 북송에 표를 올린 기록이 남아있고, 이는 정안국 열전에서 송과 마지막을 교섭한 기록이다. 다만 국왕이 아닌 왕자가 표를 올린 점을 볼 때, 당시 정안국은 요나라의 여진정벌(984년 ~ 985년) 때 큰 타격을 입어서 와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991년 이후 정안국 - 북송의 교섭이 중단된 것은 같은 해 2월 요나라가 압록강 하구에 성을 쌓은 것도 영향이 컸을 것이다.[1]

3. 기타[편집]


태원이 열만화 이후 정안국의 왕족인 오씨(烏氏)였는지 아니면 정안국의 와해 이후 새로 일어난 부흥운동 세력의 왕자라 성씨는 발해의 국성인 대(大=太)씨였고 이름만 원이었는지는 기록의 부재로 불분명하다. 다만 정안국 멸망 이후에 들어선 올야국에서도 여전히 오씨가 주도권을 차지했던 것으로 보아 오씨 왕족의 후계였을 가능성이 더 높은데, 이럴 경우 그의 전체 성명은 오태원(烏太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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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二月 甲子, 建威寇・振化・來遠三城, 屯戍卒.”- 출처: 요사(遼史) 권13, 본기13, 성종 통화 9년(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