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하시 오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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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橋お伝


1. 개요[편집]


타카하시 오뎅(1850년?~1879년[1])은 카에이[2]~메이지 시대에 살았던 일본범죄자(살인자)이다.
일본의 악녀로 유명하지만, 실제로 악녀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극악한 범죄자는 아니었다고 한다.


2. 경위[편집]


고즈케 국 토네군 시모마키무라에서 생후 곧바로 입양된 오뎅은, 게이오 2년, 12월(1867년 1월)에 같은 고향 사람이었던 타카하시 나미노스케와 결혼한다.[3]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나미노스케는 오뎅을 놔두고 급사,[4] 그리고 이후에 야쿠자 단원이던 오가와 이치타로와 사랑에 빠진다.

이후 1876년, 이치타로와의 생활에서 생긴 빚에 대해 상담하려 고물상의 고토 키치조에게 가니, 키치조는 자신의 애인이 된다면 돈을 보태주겠다고 제안한다.

오뎅은 이 제안을 수락했고 가명을 사용해 신분세탁을 한 뒤 도쿄아사쿠사 쿠라마에의 여관인 마루타케(丸竹)에서 동침한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자 무슨 일인지 키치조는 돈을 보태주지 않겠다며 약속을 어겼고, 극도로 분노한 오뎅은 면도칼로 키치조의 목을 그어버려 살해하고 만다.

다음날 오후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고 지갑의 돈을 훔쳐 몰래 달아난 오뎅의 범죄행각은, 또 다음날 아침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숙소의 종업원에게 발각당한다.

현장에는 누이의 복수다 라고 적힌 쪽지가 발견되었고, 곧 경찰의 수사로 오뎅은 잡히고 만다.

9월 9일 살인 혐의로 구속된 오뎅은 뻔뻔하게도 키치조를 누이의 적 이라고 칭하며 좀처럼 자백하지 않고, 키치조가 눈이 뒤집혀 스스로 목을 그었다고 주장한다.

이 일은 오뎅이 당시 희대의 악녀라는 소문이 퍼지게 된 주요 계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진단서 관계자의 증언으로 범행이 입증, 결국 오뎅은 스스로 범인을 자백한다.

그리고 1897년 1월 13일 참수형을 선고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3. 논란[편집]


가장 많은 논란은 정말로 오뎅이 희대의 악녀인가? 라는 것이다. 실제로 오뎅은 희대의 악녀라는 별명으로 퍼져있는데, 그녀의 삶을 보면 생각보다 논란거리가 많다.

오뎅은 남편인 나미노스케가 나병에 걸려 끙끙 앓기 시작하자, 누구보다 지극정성으로 간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오뎅이 나미노스케를 독살했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위키피디아에서는 오뎅을 악녀가 아닌 상대방의 잘못으로 인해 탄생한 비운의 여성 으로 서술한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그를 은폐하려 한 것은 명백한 잘못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참고로 이런 '악녀로서의 오뎅'의 이야기는 카나가키 로분의 [고교아전야인담]의 모델이 되었다.

또한 오뎅의 참수가 '일본의 마지막 참수 집행'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는 확실치 않다.


4. 기타[편집]


일본에는 이를 모델로 한 1958년 영화, <독부 타카하시 오뎅>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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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년월일에 대해서는 1848년 8월 27일, 1848년 9월 10일, 아예 1851년이라는 설도 있다[2] 일본의 연호[3] 일본은 아내가 남편을 따라 성을 바꾸기도 한다. 오뎅의 성이 타카하시인 이유이기도 하다.[4] 후술하겠지만, 독살이라는 설도 있고, 병에 걸려 죽었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