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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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us Andronicus.
티투스 안드로니쿠스[1]

1. 소개
2. 줄거리
3. 등장 인물
3.1. 앤드로니커스 가
3.2. 고트족
3.3. 로마 황가
4. 창작물



1. 소개[편집]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으로, 1590년대 초에 쓰여진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초기작품으로, 그가 집필한 첫 비극이며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전무후무한 가장 잔혹한 작품이다. 기본적으로 복수극 플롯인데, 그 묘사만 따지면 현대의 슬래셔 무비에 가깝다. 복수극의 귀재 박찬욱 감독은, 자신이 아는 가장 잔인한 복수극이라고 평한다. 초기작이라 조금 미숙한 부분이 있으나, 후기 4대 비극 작품의 원안이라 할 수 있는 요소가 군데군데 포함되어있다.

고트족로마 제국간의 분쟁이 치열하던 제국 말기를 배경으로 한다. 여느 셰익스피어의 사극들처럼 고증은 엉망이지만. 당대의 펄프 픽션에 해당하는 작자 미상의 잔혹극을 토대로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고트족을 격파한 개선장군인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가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었던 로마 제국의 황제 자리를 사양한 후에 황제가 된 선황의 장자가 품은 의심과, 그의 황후가 된 고트족 여족장이 벌이는 음모에 말려들어 자식들을 차례로 잃고, 자신도 한 팔을 잃은 뒤에 처절한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다.

이야기 중에 열네 번의 살인이 등장하며 강간과 수족 절단이 나온다. 다른 작품들에 비하여 플롯이 거칠고 성격묘사도 부족하며, 대사의 수준도 떨어지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아닌 그의 이름을 빌린 무명작가의 창작품이거나, 다른 작가와의 공동작업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며, 일단 정설로는 셰익스피어의 초기작으로 다뤄진다.

애초에 16세기 말 당대 영국 사람들의 취향이 이런 잔혹극이었고, 당시 유행했던 작품들도 유혈 비극이 상당히 많았다. 덕분에 이 희곡도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셰익스피어의 첫 히트작이 되었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은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의 인기를 능가하는 작품은 없었다.

하지만 왕정복고 이후 잔혹극의 유행이 지나자 곧 이 희곡의 인기는 뚝 떨어졌고, 지금은 셰익스피어 최대의 흑역사쯤으로 취급된다. 유행을 노리고 쓴데다가 작품 자체의 질이 떨어지는 탓인 듯하다. 그러나 당시에는 수없이 많았던 잔혹극들이 지금은 완전히 잊혀져버린 걸 떠올려보면 이 작품은 그나마 작가를 잘 만나서 대우가 높은 편이다.

현대의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셰익스피어와 다른 극작가가 같이 쓴게 아니냐'고 하거나, 아예 셰익스피어의 작품 목록에서 제외하기도 한다.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헨리 6세 1부의 경우도 잔 다르크에 대한 저열하고 추한 묘사 때문에 눈치가 보여서인지 한때 이 작품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래도 이 작품을 좋게 보는 한 비평가는 "셰익스피어의 심오한 비극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라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로부터 자라난 것이다."라고 평했다.

몇백 년 동안 거의 묻혀있던 작품이지만 20세기 중엽부터 공연 및 영상화가 다시 이루어지면서 '재평가'를 받기 시작한 작품이다. 세익스피어 작품 가운데서는 그동안 많이 안 다뤄지던 작품이다보니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지는 점'도 있었던 듯하다.


2. 줄거리[편집]


로마의 장군 티투스 안드로니쿠스가 고트 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개선하고, 포로로 잡은 고트족의 왕자 알라버스를 전사한 로마 병사들의 혼을 기리기 위해 제물로 바친다.[2] 원로원은 개선장군 타이터스를 로마 황제로 추대하지만 타이터스는 거절하고, 선대 황제의 장남인 사투르니우스(Saturnius)가 황제가 된다.

사투르니우스는 이미 자신의 동생과 약혼했던 티투스의 딸 라비니아를 자신의 황후로 삼을 것을 약속하고, 티투스도 이에 응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약혼자를 포기할 수 없는 바시아너스와 그를 지지하는 티투스의 아들들로 인해 다툼이 일어난다. 결국 티투스는 새 황제에게 반역한 죄를 물어 자신의 손으로 막내아들 무티어스를 죽인다.

한편 장남 알라버스를 잃고 티투스에게 복수할 마음을 품은 고트족의 여왕 타모라는 사투르니우스를 유혹해 로마의 황후가 된다. 타모라는 자신의 정부인 무어인 아론과 남은 두 아들 카이론과 디미트리우스의 힘을 빌려 티투스의 자식들을 죽여나가는 참혹한 복수극을 시작한다.

타이터스의 딸 라비니아는 타모라의 두 아들들에게 약혼자가 살해당하고 본인은 겁탈당한 뒤 손과 혀가 잘리는데, 범인이 누군지 말하거나 (손가락으로) 지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3] 타이터스의 두 아들 퀸터스와 마티어스는 라비니아의 약혼자이자 새터니어스의 동생 바시아너스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한다. 타이터스 본인도 아들들을 살려주겠다는 제안에 속아서 한쪽 손을 잃고 미쳐버린다. 한동안 신중하게 행동하며 형을 진정시키려던 타이터스의 동생 마커스도 남은 가족들과 함께 끝내 이성을 잃고 분노한다.

아버지의 명으로 로마 밖으로 도망쳐 과거의 적인 고트족과 협력해 군사를 일으켰던 타이터스의 장남 루시어스는 자신과 타모라의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던 아론을 사로잡아 진상을 알게 된다. 이 모든 비극이 타모라의 복수였다는 것을 깨달은 타이터스는 반격을 꾀하여, 타모라의 두 아들을 사로잡아 죽이고 시체에서 살을 발라내 고기파이로 만든 후에 그것을 향연의 자리에서 타모라에게 먹여버린다.

연회에서 타이터스는 딸 라비니아와(더 이상 딸이 비참하게 사는걸 견딜 수 없어서) 고트족 여왕 타모라를 죽이고, 그 자신은 새터니어스에게 살해당한다. 그리고 새터니어스는 타이터스의 장남인 루시어스에게 살해당한다. 이 아수라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루시어스는 로마의 새로운 황제에 즉위한 후에 아론을 생매장하는 등 모든 상황을 정리한다.


3. 등장 인물[편집]


극이 진행함에 따라 사망하는 인물은 † 표시.


3.1. 앤드로니커스 가[편집]


  •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Titus Andronicus) †
로마의 귀족이자 장군. 아들만 25명이었지만, 대부분 전사하고 작 중 시점에서는 4명만이 생존한 상태.

  • 마르쿠스 앤드로니커스 (Marcus Andronicus)
타이터스의 남동생. 로마의 호민관이다. 전쟁에 활발히 참전하는 다른 앤드로니커스 가의 구성원들과 다르게 전쟁에 참전한 적이 없다.

  • 루시우스 (Lucius)
타이터스의 장남.

  • 퀸터스 (Quintus) †
타이터스의 아들.

  • 마셔스 (Martius) †
타이터스의 아들.

  • 무티어스 (Mutius) †
타이터스의 막내 아들.

  • 라비니아 (Lavinia) †
타이터스의 고명딸. 새터나이너스에게 황후 자리를 제안받지만 그녀는 약혼자 바시아너스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절한다.

  • 어린 루시우스 (Young Lucius)
루시우스의 아들이자 타이터스의 손자.


3.2. 고트족[편집]


  • 타모라 (Tamora) †
고트족의 여왕.

  • 알라버스 (Alarbus) †
타모라의 아들.

  • 카이론 (Chiron) †
타모라의 아들.

  • 데메트리우스 (Demetrius) †
타모라의 아들.

  • 아론 (Aaron) †
타모라의 애인인 무어인(Moors). 둘 사이에는 사생아도 있다.


3.3. 로마 황가[편집]


  • 새터나이너스 (Saturninus) †
전 로마 황제의 장남. 원칙대로라면 황제가 되지 못할 운명이었으나, 타이터스가 황제 자리를 거부함에 따라 황제가 되었다. 앤드로니커스 가를 방해물로 여기고 있다.

  • 바시아너스 (Bassianus) †
전 로마 황제의 차남. 라비니아의 약혼자.


4. 창작물[편집]


파일:external/www.freeclassicimages.com/titus_1999.jpg
1999년 타이투스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안소니 홉킨스 주연으로, 내용의 잔혹함은 원작 묘사를 충실하게 따른 덕에 수위가 높고, 쓰여진 당대의 기준에 맞춰서 배경 자체가 모호하고 몽환적으로 그려져 고증을 따질 수는 없는 작품이다. 사실상 현대 스타일로 공연되는 연극을 영화화한 것에 가깝다.

애니메이션 PSYCHO-PASS에서는 6~8화에서 사건 내용에 대한 비유로 계속 언급되고, 마키시마 쇼고가 낭독한다.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가 워낙 안 알려진 작품이라, 셰익스피어가 이런 작품을 썼다는 걸 PSYCHO-PASS에서 처음 알고 충격을 받은 사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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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마식으로 읽을 경우.[2] 고증대로라면 유배를 가야 옳다. 승자의 여유 혹은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치가 있어서, 로마는 포로로 잡은 적의 고위층은 타지로 유배를 보내 여생을 보내도록 했다. 심지어 서기 69년에 트리어에서 게르만족 봉기(바타비아 반란)를 주도한 율리우스 키빌리스 조차도 처형당하진 않았다. 예외적으로 베르킨게토릭스카이사리온은 처형했는데, 이들은 살려주기엔 정치적으로 너무 위험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처형한 케이스다.[3] 그리스 신화의 필로멜라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후투티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