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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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중국 동부 산둥성의 지급시. 성도인 지난에서 남쪽으로 35km, 취푸에서는 북쪽으로 50km 떨어져 있는 인구 6백만명의 도시이다. 시가지는 타이산(泰山)의 남쪽 기슭에 위치해 있어 등산객 및 순례객들이 모여든다. 명나라 때부터 현재의 지명으로 불렸으며, 역대 황제들이 봉선 의식을 올리던 산 기슭의 대묘(岱庙)가 유명하다.[1] 송나라 (북송) 대에 지어진 대묘의 천황전은 자금성의 태화전, 취푸 공묘의 대성전과 함께 중국의 3대 목조 건축물로 손꼽힌다고 한다. 관할 구역 내의 동평현은 송나라 대에 동평부가 위치하던 곳이다. 그밖에 춘추전국시대에 지어진 제 장성(齐长城) 역시 잘 남아있다. 또한 펑위샹의 묘도 타이안에 있다.
2. 명칭[편집]
이름 그대로 오악의 하나인 타이산(泰山)에서 따온 이름이다. 중국의 속담 중에 태산이 안정적이면 모든 바다가 안전하다(泰山安,则四海皆安)라는 말이 있는데, 이 명칭이 타이안(泰安)이라는 명칭의 유래가 된다.
3. 역사[편집]
춘추전국시대 제(齐)가 통치하던 지역이었으며,진(秦)대에는 제북군(济北郡) 소속의 박양현(博阳县)이었다. 이후 전한(西汉)대에 제북군이 인근 명산인 타이산에서 이름을 딴 태산군(泰山郡)으로 명칭이 개칭되었고 박양현 역시 박현(博县)으로 개칭되며 박현에 태산군의 군치(郡治)가 위치 해 있었다가 한무제 시기에 현 타이안 시가지 동쪽에 고봉현(奉高县)이 설치되고 군치가 이동하였다고 한다.
북위(北魏)가 들어서면서 박현은 명칭이 박평현(博平县)으로 교체되고 태산군 군치를 다시 박평현으로 옮긴다. 당시 태산군 군치는 현 타이안 시가지 동남부 부근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수나라가 들어서자 박평현은 명칭이 문양현(汶阳县)으로 교체되었으며, 얼마안가 박성현(博城县)으로 다시 개칭되고 당나라 때에 현 박성현을 동태주(东泰州)로 개칭한다.
이후 당나라 치하에서 타이안은 상당히 명칭변경이 잦아지는데, 당태종이 동태주를 폐지시키고 박성현(博城县)을 복귀시켰으며 당고종이 명칭을 당시 연호인 건봉(乾封)에서 딴 건봉현(乾封县)으로 잠시 개칭시켰다가 2년 뒤에 개원함과 동시에 다시 박성현으로 되돌린다. 그러다가 당중종이 다시 건봉현으로 환원시킨다.
송진종 대에는 건봉현을 습경부(袭庆府) 산하의 봉부현(奉符县)으로 개칭하였고 금태종이 태안군(泰安军)을 봉부현에 설치하면서 본격적으로 타이안(泰安)이라는 명칭이 등장한다.
금세종은 태안군을 태안주(泰安州)로 승격시켜서 봉부현을 태안주 밑으로 넣었으며, 홍무제 때는 제남부(济南府) 소속이었다가 옹정제 대에 직예주(直隶州) 소속으로 변경, 얼마안가 태안부(泰安府)로 재승격시킨다.
중화민국이 들어서자 타이안을 해체시키고 각각 지난도(济南道), 지닝도(济宁道), 둥린도(东临道) 소속으로 나누어서 통치하였으며, 도가 폐지되고 성이 환원되면서 일괄 산둥성 소속으로 들어간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면서 타이안에 타이산전구(泰山专区)가 설치되었으며, 1950년 타이산전구를 타이안전구(泰安专区)로 개칭하고 1967년에 타이안지구(泰安地区)로 변경하였다가 1992년에 지급시가 되면서 현재에 이른다.
4. 교통[편집]
지난에서 타이안 가는 고속버스는 30분마다 한 대씩 운행하고 1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공항은 없고 인근 도시의 공항을 주로 이용하며, 주요 철도는 징후철도와 징후고속철도가 타이안을 지나가고 그 외 재래선으로는 타이페이철도(泰肥铁路), 츠라이철도(磁莱铁路), 와르철도(瓦日铁路), 신타이철도(辛泰铁路)가 지나간다.
5. 기타[편집]
도시 명칭이 대한민국 충청남도 태안군과 같으며, 자매결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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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묘는 태묘(岱庙) 로도 불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