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레바논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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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2.2. 중세
2.3. 근세
2.4. 20세기
2.5. 21세기
3. 경제 교류
4. 문화 교류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키프로스레바논의 관계에 대한 문서다. 양국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어서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고대[편집]


지중해 동부에 위치한 키프로스와 레바논은 역사적으로 교류가 활발한 지역이었다. 다만 레바논 일대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일파의 페니키아인들이 주로 거주한 것에 비해 키프로스의 경우 기원전 8세기 전후하여 이오니아 일대의 그리스인들이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그리스어가 주로 사용되는 지역이 되었다.

알렉산드로스 3세아케메네스 페르시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레바논 일대는 헬레니즘 제국으로 편입되었고 이후 양 지역은 모두 헬레니즘 문화권으로 묶이게 되었다. 고대 로마가 동방으로 확장하며 셀레우코스 제국이 병합하는 과정에서 키프로스와 레바논 일대 역시 로마 공화정의 영토가 되었다. 로마 제국 시대가 되면서 양 지역은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2.2. 중세[편집]


중세 이슬람 제국의 확장 과정에서 레바논은 이슬람 제국의 영토가 되었고 키프로스는 동로마 제국과 이슬람 제국이 공동관리하는 형태로 타협이 이루어졌다. 압바스 칼리프조가 분열, 약화되면서 키프로스에서 동로마 제국의 입지가 커지는가 싶더니 십자군 전쟁 당시 12세기 말 리처드 1세가 키프로스 섬을 점령하고 이를 다시 다른 십자군 지도자 기 드 뤼지냥에게 넘겼다.

물론 십자군 기사들 혼자서는 키프로스를 온전히 경영하기 힘들었고 이후 키프로스는 사실상 베네치아의 속국화 되었다. 키프로스가 동로마 제국에서 이탈한 지 1백년이 되지 않아 1270년대부터 1280년대 레반트의 십자군 국가가 맘루크 왕조의 침공으로 수세에 몰리면서 십자군 패잔병들이 대거 키프로스로 망명하였다. 당시 망명한 사람들 중에서는 라틴 십자군 외에도 마론파아르메니아인, 가톨릭으로 개종힌 시리아인 등등도 많았는데 키프로스 왕국은 이들에게 산기슭을 개간하고 정착할 권리가 주어졌다. 이러한 연유로 키프로스 내에는 키프로스 마론파 아랍어라는 고유의 아랍어 방언을 사용하는 마론파 신자들이 일부 거주한다.

13세기에 키프로스에는 약 50,000명의 마론파 인구가 60여개 마을에 흩어져 거주하였다 한다. 1571년 오스만 제국이 키프로스를 정복하기 이전에는 마론파들이 정착한 마을이 33개로 나오는데 이를 통해 아랍어를 사용하는 서아시아 출신 난민 인구가 현지 가톨릭 지배 계층과 동화되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2.3. 근세[편집]


16세기 오스만 제국은 남으로 팽창하여 맘루크 왕조를 격파하고 레바논 일대를 포함한 레반트 지역을 정복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1571년부로 동지중해에서 베네치아의 식민지였던 키프로스를 점령하였다. 고대 로마 제국의 영토로 묶였던 양 지역은 다시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동일한 한 지역으로 묶였다.

그리스어가 우세하였던 키프로스 내에는 터키인 인구들이 대거 이주하거나 그리스계 혹은 라틴계 인구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북부 인구 상당수가 터키화되었다. 반면 아랍어가 주로 사용되었던 레바논 일대에 이주한 터키인들은 소수자에 머물렀고 드루즈교, 마론파 혹은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교회 신도 같은 여타 아랍계 주민들이 아랍 무슬림들과 함께 지역 주민의 주류를 구성하게 되었다.

2.4. 20세기[편집]


키프로스 내전 과정에서 약 2천여 명 가량의 키프로스 마론파들이 레바논으로 망명하였다.

2.5. 21세기[편집]


양국간의 교류, 협력이 활발하다. 이에 레바논인들중에는 키프로스로 이주해 정착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2006년에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자 레바논 난민들이 키프로스로 이주했다.# 7월 23일에 EU는 레바논을 탈출해 키프로스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지원을 한다고 밝혔다.#

키프로스는 터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레바논, 이집트와 지중해 경제수역 협정을 체결했다.#

2012년 7월 14일에 키프로스 보안당국은 이스라엘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테러 공격을 모의한 혐의를 가진 레바논인 남성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2013년 3월에 키프로스 법원은 헤즈볼라 소속의 레바논인 남성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2015년에 레바논, 키프로스에 모래폭풍이 몰아쳐 최소 8명이 사망하고 1,000명이 병원에 입원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유럽 난민 사태가 일어나 키프로스에는 난민들이 늘어났다. 2015년 9월 6일에 키프로스 구조대는 난민 100여명을 구조했고 이중에는 레바논, 팔레스타인 출신 난민들이 일부 있었다고 밝혔다.# 11월 9일에 키프로스 주둔 영국군은 시리아, 팔레스타인, 레바논 출신 난민들을 추방한다고 밝혔다.#

키프로스가 난민들의 루트로 떠오르고 있다.# 2019년 8월 21일에 키프로스 해안경비대는 시리아인 32명과 레바논인 1명을 태운 난민보트를 발견해 구조했다.#

키프로스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레바논, 시리아 난민 밀항이 잇따르고 있다.#


3. 경제 교류[편집]


탄자니아에 본부를 두고 있는 중동연방은행은 레바논의 부호인 아유브 파리드 사브와 파디 미셸 사브 형제가 소유했고 거래의 90%가 키프로스다.#


4. 문화 교류[편집]


키프로스는 결혼 여행객들이 많이 찾아오며 이중 레바논, 이스라엘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1#2

2019년 4월 23일에 그리스, 키프로스, 레바논 3개국이 국제스포츠관광조직(ISTO) 설립을 위한 조인식에 참가했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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