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니(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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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니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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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파일:라리가 심볼(2016~2023).svg

1973-74 · 1975-76 · 1979-80 · 1980-81 · 1981-82



스페인의 前 축구 선수


파일:Quini.jpg

이름
키니
Quini[1]

본명
엔리케 카스트로 곤살레스
Enrique Castro González
출생
1949년 9월 23일
스페인 오비에도
사망
2018년 2월 27일 (향년 68세)
스페인 히혼
국적
[[스페인|

스페인
display: none; display: 스페인"
행정구
]]

신체
176cm / 체중 74kg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소속
선수
CD 엔시데사 (1967~1968)
스포르팅 히혼 (1968~1980)
FC 바르셀로나 (1980~1984)
스포르팅 히혼 (1984~1987)
국가대표
35경기 8골 (스페인 / 1970~1982)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5. 사망
6. 여담



1. 개요[편집]


파일:Quini Legend.jpg

키니는 위대한 인간이자, 위대한 스포츠 스타였다.

비센테 델보스케


스페인의 前 축구 선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현역 시절 5번의 라리가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렇게 뛰어난 득점 능력 덕분에 '마법사(El Brujo)'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2. 클럽 경력[편집]


1967-68 시즌 스페인 3부 리그 팀인 CD 엔시데사에서 데뷔한 키니는 데뷔 시즌 22경기 17골을 기록하며 신인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3부 리그 수준을 뛰어넘는 기량을 선보였고 이듬해 2부 리그 팀인 스포르팅 히혼으로 이적한다.

1969-70 시즌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21골을 넣는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2부 리그 우승과 라리가 승격을 이끔과 동시에 커리어 첫 리그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하는 기쁨도 누렸다.

1970-71 시즌 라리가에서 13골을 기록하며 카를레스 렉사흐(17골), 호세 아우로지오 가라테(17골)에 이어 득점 공동 3위에 올라 1부 리그에서도 경쟁력 있는 선수임을 입증했다.

1973-74 시즌에는 20골을 터뜨리면서 커리어 첫 라리가 득점왕을 차지했다.[2]

1975-76 시즌에는 팀의 부진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21골을 기록, 2번째 피치치(득점왕)를 차지했지만 팀의 강등을 막을 순 없었다. 하지만 키니는 이러한 좋지 않은 상황에도 팀을 떠나지 않고 잔류를 택하는 충성심을 보였다.

1976-77 시즌 스페인 2부 리그인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무려 27골을 폭격하며 다시 한 번 리그 득점왕을 차지함과 동시에 팀의 2부 리그 우승,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다.

1977-78 시즌 라리가에서 15골을 기록하며 득점 순위 Top 10에 이름을 올렸고, 엔조 페레로, 엔리케 모란 등과 함께 팀을 리그 5위에 올려놓으며 UEFA컵 진출 티켓을 따내는 파란을 일으켰다.

1978-79 시즌 리그에서 23골을 넣으며 스포르팅 히혼 돌풍의 핵심이 되었다. 결국 스포르팅 히혼은 리그 2위라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1979-80 시즌 리그에서 24골을 기록하며 계속되는 팀의 돌풍을 이끌었다. 팀은 구단 역사상 2번째 최고 성적에 해당하는 리그 3위의 호성적을 거뒀으며 키니는 3번째 피치치를 차지했다.

1980-81 시즌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여 알란 시몬센, 베른트 슈스터와 호흡을 맞춰 바르셀로나의 공격을 이끌었고 20골로 4번째 피치치를 손에 거머쥐었다. 또한 코파 델 레이에서도 7경기 7골을 터뜨리며 대회 우승을 이끔과 동시에 득점왕을 차지했다.

1981-82 시즌 리그에서 무려 27골을 폭격하며 커리어 하이를 경신함과 동시에 압도적인(11골) 차이로 5번째 득점왕에 등극했다. 또한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결승 스탕다르 리에주전에서 1:1로 팽팽히 맞서던 63분, 시몬센의 코너킥을 헤더로 마무리하며 득점에 성공했고 이 골이 결승골이 되면서 팀에게 우승컵을 안겼다.

이후 노쇠화로 인해 급격히 폼이 떨어졌고 1984년 친정팀인 스포르팅 히혼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3시즌을 보낸 뒤 1987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스포르팅 히혼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1970년 10월 28일 그리스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그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당시 스페인 대표팀에는 오스카르 발데스, 카를레스 렉사흐, 호세 아우로지오 가라테, 아만시오 아마로, 산티야나 등 쟁쟁한 자원들이 버티고 있었고 키니 본인도 클럽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에 비해 대표팀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아쉬운 편이었던지라 리그 내 위상에 비해 대표팀 내 입지는 좋은 편이 아니었다.

1974 서독 월드컵은 팀이 예선에서 탈락하면서 참가하지 못했고,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유로 1980, 1982 스페인 월드컵에는 참가했지만 주전으로 뛰었다고 할 수 있는 대회는 유로 1980뿐이었다.


4. 기록[편집]



4.1. 대회 기록[편집]





4.2. 개인 수상[편집]


  • 라리가 득점왕: 1973-74, 1975-76, 1979-80, 1980-81, 1981-82
  • 라리가 최우수 스페인 선수[3]: 1978-79
  • 세군다 디비시온 득점왕: 1969-70, 1976-77
  • 코파 델 레이 득점왕: 1980-81


5. 사망[편집]


2018년 2월 27일 스페인 히혼의 집 근처에서 길을 걷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하였다.


6. 여담[편집]


1981년 3월 1일, 경기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무장 강도에게 납치된 적이 있다. 다행히도 무사한 상태로 구출되었지만 이후 법정에서 강도들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 항간에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린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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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ˈkini/[2] 스포르팅 히혼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배출한 라리가 득점왕이기도 하다.[3] 돈 발롱 어워드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