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프트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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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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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크
그리펜하겐

게오르크
본가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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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멤버 ]
플로리안 슈나이더 · 카를 바르토스 · 볼프강 플뤼어 · 프리츠 힐페르트 · 스테판 파페 · 페르난도 아브란테스

에밀 슐츠 · 피터 슈미트 · 칼 "찰리" 바이스· 토마스 로만· 안드레스 호만
클라우스 딩어 · 미하엘 로터 · 호우생 네자데푸어 · 에베르하르트 크레인만 · 플라토 코스틱 · 클라우스 뢰더 }}}



Disc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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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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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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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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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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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프트베르크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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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 펼치기 · 접기 ]
이름
크라프트베르크
KRAFTWERK

헌액 부문
개척자 (Early Influences)
입성 연도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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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RAFTWERK_THE-ROBOTS.jpg}}}
파일:kw_still.png}}}
왼쪽부터 랄프, 헤닝, 프리츠, 팔크
현 멤버
랄프 휘터 (Ralf Hütter)
헤닝 슈미츠 (Henning Schmitz)
프리츠 힐페르트 (Fritz Hilpert)[1]
팔크 그리펜하겐 (Falk Grieffenhagen)
게오르크 본가르츠 (Georg Bongartz)
전 멤버
[ 펼치기 · 접기 ]
플로리안 슈나이더 (Florian Schneider)
카를 바르토스 (Karl Bartos)
볼프강 플뤼어 (Wolfgang Flür)
스테판 파페 (Stefan Pfaffe)
페르난도 아브란테스 (Fernando Abrantes)
에밀 슐트 (Emil Schult)
피터 슈미트 (Peter Schmidt)
칼 "찰리" 바이스 (Karl "Charly" Weiss)
토마스 로만 (Thomas Lohmann)
안드레스 호만 (Andreas Hohmann)
클라우스 딩어 (Klaus Dinger)
미하엘 로터 (Michael Rother)
호우생 네자데푸어 (Houschäng Nejadépour)
에베르하르트 크레인만 (Eberhard Kranemann)
플라토 코스틱 (Plato Kostic)
클라우스 뢰더 (Klaus Röder)


결성지
파일:독일 국기.svg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뒤셀도르프
활동 시기
1970년 - 현재
장르
일렉트로닉, 신스팝, 일렉트로팝, 아방가르드
소속
Kling Klang, EMI, 워너 뮤직
관련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사운드클라우드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역사
2.1. 결성과 초기 3집(1969~1973)
2.4. Electric Café와 멤버의 변동 (1982~1989)
2.5. The MixEXPO 2000 (1990~2000)
2.6. Tour de FranceMinimum-Maximum 공연 (2002~2008)
2.7. 3D 공연의 시작과 더 카탈로그 공연 (2009~2016)
2.8. 3-D The Catalogue 공연 (2017~2022)
2.9. 새로운 시도들과 변화 (2023~현재)
3. 멤버
3.1. 현 멤버
3.1.1. 랄프 휘터
3.1.2. 헤닝 슈미츠
3.1.3. 프리츠 힐페르트
3.1.4. 팔크 그리펜하겐
3.1.5. 게오르크 본가르츠
3.2. 전 멤버
3.2.1. 플로리안 슈나이더
3.2.2. 카를 바르토스
3.2.3. 볼프강 플뤼어
3.2.4. 페르난도 아브란테스
3.2.5. 스테판 파페
3.2.6. 기타 멤버
4. 클링 클랑 스튜디오
6. 라이브
6.1. 내한공연
6.1.1. 2013년
6.1.2. 2019년
6.1.2.1. 논란
6.1.2.2. 반박
7. 기타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독일의 일렉트로닉 음악 뮤지션 그룹. 1970년 당시 서독이었던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결성된 밴드로 이름은 독일어발전소를 뜻하는 단어인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ˈkʁaftvɛɐ̯k)"에서 따왔다.

말 그대로의 전자 음악을 뜻하는 일렉트로니카 장르 음악을 처음으로 대중적인 혁신을 이끈 그룹이며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들을 때 필수적으로 존재하는 멜로디의 배치, 그리고 반복적인 리듬 등 우리가 이미 귀로 익어있는 다양한 문법들이 바로 크라프트베르크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들의 작품은 신스팝, 포스트 펑크, 힙합, 앰비언트 뮤직, 테크노 등의 다양한 일렉트로니카 음악 장르들, 그리고 현대의 EDM 씬의 음악까지 현존하는 모든 일렉트로니카 음악과 팝 음악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으며 마이클 잭슨, 콜드플레이팝 음악을 만드는 사람을 비롯해 아민 반 뷰렌, 에이펙스 트윈, 데드마우스일렉트로니카 씬 내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서 음악을 만드는 사람까지 많은 프로듀서에게 영향을 미쳤다. 또한 활동기간 기준으로 약 50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꾸준히 작업과 활동을 반복해 왔으며, EDM 씬을 통해 일렉트로니카 장르 음악이 주류 장르로 올라서게 된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러한 일렉트로니카 대중화에 공헌한 공을 인정받아 2014년 56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하였으며 영국 음악전문잡지 Q 매거진 선정, 음악사를 바꾼 21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또한 202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서 개척자 부문으로 헌액되었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일부, 프로그레시브 록 전문 팬 사이트인 프로그 아카이브에서는 이들을 프로그레시브 일렉트로니카 아티스트로 분류하는 편인데 노이!, 탠저린 드림, 클라우스 슐츠, 라 뒤셀도르프 등 많은 거장이 이 장르를 기반으로 나타났으며 이들 중 가장 유명하고 가장 대중적으로 흥행한 밴드가 바로 크라프트베르크이다.[2][3]

이들의 음악적인 특징은 초창기의 여러 실험적인 전자음악 밴드들과는 다른, 특유의 서정적인 멜로디에 있다. 초기작엔 거친 크라우트록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지만 짧고 강렬한 멜로디가 주제를 이루고 변주되는데, 지금 감성과도 잘 어울리는 선율이다.

발전소란 의미에서 따온 이름답게 음악뿐 아니라 가사의 주제도 기술 발전과 현대문명을 다룬 게 많아서 이 밴드에 대한 선입견[4]이 많이 퍼져 있는 편이다. 주된 논지는 노래 제목과 같이 마네킹, 로봇, 기계 인간 같은 감정 없는 음악만 줄곧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 하지만 'Radioactivity'의 The Mix 버전, 3-D The Catalogue 버전 가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마냥 찬양만 하는 건 절대 아니며, 앞서 언급한 인간의 모습을 한 물건들은 자신들을 연예인 취급하여 사생활을 캐묻는 언론들에 대한 반발심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70~80년대엔 멤버 넷이 같은 복장을 하고 기계같이 공연하는 컨셉을 고수했다. 오징어처럼 팔을 흐느적거리거나 무표정으로 발만 까닥거리는 식의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고, 나중엔 아예 공연과 인터뷰 등에 진짜 로봇을 내세우는 연출을 감행했다. 이런 태도들은 이후 다프트 펑크처럼 본인의 사생활 노출을 경계하는 뮤지션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2. 역사[편집]



2.1. 결성과 초기 3집(1969~1973)[편집]


1960년대 후반, 뒤셀도르프의 로베르트 슈만 국립 음악대학(Robert Schumann Hochschule)[5]을 다니고 있던 랄프 휘터와 플로리안 슈나이더는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음악을 듣고 초기 신디사이저 음악에 큰 충격을 받아 크라프트베르크의 전신인 '오가니제이션(Organization)'에 합류하여 1969년에 앨범 'Tone Float'을 발매했다.[6] 랄프와 플로리안은 오가니제이션에서 활동하면서 신디사이저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밴드 해체 뒤인 1970년에 신디사이저를 구입하며 스튜디오[7]를 설립하게 되고, 크라프트베르크를 결성한다.
파일:kw1970.png
1970년, 왼쪽부터 플로리안 슈나이더, 랄프 휘터, 칼 "찰리" 바이스.
크라프트베르크는 실험적인 록 앨범인 'Kraftwerk', 'Kraftwerk 2', 'Ralf und Florian'을 발매했다. 앨범 모두 기타, 베이스, 드럼, 오르간, 플루트, 바이올린을 포함한 다양한 악기를 사용한 앨범이었고, Ralf und Florian부터 신디사이저와 드럼 머신에 더 많이 의존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의 크라프트베르크는 본격적인 전자음악 밴드라기보다는 대학가의 전위음악 동아리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데, 그동안, 이 밴드를 거쳐 간 클라우스 딩어와 미하엘 로터는 또 다른 전설적인 크라우트록 밴드인 노이!를 만들었다.[8] 1972년부터 1973년까지의 라이브 공연은 대부분 전자 오르간에서 가져온 미리 설정된 리듬을 가진 단순한 비트박스형 드럼 머신을 사용하여 연주했다. 공연은 주로 독일에서 열었고, 프랑스에서도 가끔 공연하기도 했다. 1973년엔 볼프강 플뤼어가 독일 WDR TV 아트 쇼에 출연하려는 랄프와 플로리안에게 제안을 받고 크라프트베르크의 멤버로 활동하게 된다.

2.2. Autobahn, Radio-ActivityTrans-Europe Express (1974~1977)[편집]


파일:kw1974.jpg
1974년, Autobahn 앨범의 뒷면 커버.
왼쪽부터 랄프 휘터, 플로리안 슈나이더, 클라우스 뢰더, 볼프강 플뤼어.[9]
1974년 발매된 'Autobahn'[10]은 크라프트베르크의 실험 음악 성격이 강하던 전작들과는 달리 비교적 부드러운 소리가 돋보였다. 랄프와 플로리안은 미니무그(Minimoog)와 EMS Synthi AKS와 같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며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 냈고, 이 앨범으로 각국 싱글 차트에 랭크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게 된다. 랄프와 플로리안은 스튜디오 클링 클랑에 더 투자하며 외부 제작자에 대한 의존도를 낮췄다. 이 당시 잠깐 기타와 전자 바이올린을 맡은 적이 있던 화가이자 그래픽 아티스트인 에밀 슐트는 크라프트베르크의 정규 협력자가 되어 앨범 커버 등의 그래픽 디자인, 앨범 제작 및 작사에 참여하는 투어 매니저 역할을 담당했다.
파일:kw1976.jpg
1976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파라디소 공연.
왼쪽부터 랄프 휘터, 카를 바르토스, 볼프강 플뤼어, 플로리안 슈나이더.
197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크라프트베르크의 라이브 투어가 시작되었는데, 미국 Phonogram Inc.의 재정적인 지원으로 아우토반 앨범을 홍보하기 위한 투어를 시작할 수 있었고, 이 투어로 크라프트베르크는 처음으로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 공연하게 된다. 또한 1975년 2월엔 클라우스 뢰더가 탈퇴하고 카를 바르토스가 일렉트로닉 퍼커션 담당으로 가입한다. 이때부터 단정하게 깎은 머리[11]에 독일군 느낌의 딱딱한 수트를 차려입은 본격적인 전자음악 밴드로 변신했다. 라이브에서 랄프와 플로리안은 미니무그와 ARP 오디세이와 같은 키보드 신디사이저를 연주하였고, 플로리안의 플루트 사용은 점차 줄어들었다. 둘은 처음으로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슈나이더는 보코더를 사용했다. 볼프강과 카를은 직접 제작한 커스텀 일렉트로닉 퍼커션을 연주했으며 카를은 가끔 비브라폰을 연주했다. 이 라인업은 1986년까지 쭉 이어졌으며, '크라프트베르크'라고 하면 바로 떠올리게 되는 4인조가 바로 이 라인업이었다.

아우토반 투어 이후 크라프트베르크는 새로운 장비에 더 많은 투자를 하며 클링 클랑 스튜디오를 완전한 레코딩 스튜디오로 만들었다. 이후 다음 앨범인 'Radio-Activity'를 작업하기 시작했다. 크라프트베르크는 라디오 통신의 컨셉을 잡으며 새로운 앨범의 음악들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라디오 액티비티는 아우토반보다 상업적으로 덜 성공적이었지만, 이 앨범으로 크라프트베르크의 유럽 시장을 여는 데 기여했고, 프랑스에서는 골든 디스크를 받았다. 이후 1976년,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공연을 했다. 당시 데이비드 보위는 크라프트베르크의 팬이었고, 크라프트베르크를 Station to Station 투어에 초대했지만, 크라프트베르크는 거절했다(...).[12]
파일:81.kraftwerk_transeuropeexpress_151013.jpg
1977년, Trans-Europe Express의 국제 버전 구 앨범 커버.
이 사진은 크라프트베르크의 앨범 커버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표지로, 여러 대중매체에서 오마주 되었다.
왼쪽부터 볼프강, 카를, 플로리안, 랄프.
라디오 액티비티 투어를 끝낸 크라프트베르크는 클링 클랑 스튜디오에서 다음 앨범인 유럽 횡단 특급을 주제로 삼은 'Trans-Europe Express' 작업을 시작했다. 이 앨범은 그해 말 뉴욕에서 디스코 상을 받았으며, 이 앨범부터 독일어/영어로 다국어 녹음을 시작하였다. 이 무렵 랄프와 플로리안이 데이비드 보위를 만나고 인터뷰로 공동작업을 예고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다시 거절한 듯하다(...).

2.3. The Man-MachineComputer World (1978~1982)[편집]


파일:kw1978.jpg
1978년, 왼쪽부터 플로리안, 랄프, 볼프강, 카를.
이 사진은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 한국판 표지에도 인용되었다.
파일:kw19782.jpg
The Man-Machine 앨범의 부클릿.
멤버들을 본뜬 마네킹이다.
1978년 5월, 크라프트베르크는 'The Man-Machine'을 클링 클랑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이 앨범부터 카를 바르토스가 작곡가로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카를 바르토스는 크라프트베르크의 수많은 명곡을 작곡해 내며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검은색, 흰색, 빨간색으로 제작된 이 표지는 러시아 예술가 엘 리시츠키절대주의 운동에 영감을 받았다. 앨범 표지에 찍힌 빨간 셔츠와 검은 넥타이를 맨 멤버들의 모습과 본인들을 기계 인간이라고 지칭하며 로봇처럼 행동하는 모습은 크라프트베르크의 또 다른 상징이 되었다.

이후 크라프트베르크는 1978년부터 1981년까지 'Computer World'를 녹음했고, 이 시간의 상당 부분은 밴드가 투어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스튜디오를 개조하는 데 사용되었다. 밴드의 라이브 세트는 점점 더 노래 기반에 초점을 맞추었고, 보컬의 활용도 더 많았으며, 랄프 휘터는 헤드 마이크를 장착하고 보컬을 하기 시작했다. 일렉트로닉 퍼커션과 음악 시퀀싱 장비의 사용도 더 많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크라프트베르크는 컴퓨터 월드를 녹음할 당시에는 스튜디오에 컴퓨터가 없었다고 한다.
파일:kw1980.jpg
1981년 12월 8일, 비엔나에서의 'Taschenrechner (Pocket Calculator)' 공연.
각자의 휴대용 소형 악기를 사용하여 공연하고 있다.
또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본격적으로 현재 크라프트베르크의 특징 중 하나인 스크린에 라이브 비디오를 틀기 시작했으며, 'Pocket Calculator'의 공연 도중의 휴대용 소형 악기의 사용, 그리고 'The Robots'의 공연 도중의 마네킹 사용 등 라이브 비주얼에 신경을 썼다.

2.4. Electric Café와 멤버의 변동 (1982~1989)[편집]


파일:kw1986.jpg
1983년경, 랄프 휘터의 회유로 자전거를 타러 나온 멤버들.
1982년, 컴퓨터 월드 투어 후 밴드는 오랜 기간 공백을 가졌다. 그동안 크라프트베르크는 테크니컬러라는 타이틀이 붙은 새 앨범을 작업하기 시작했으나 앨범 작업은 랄프 휘터의 자전거 취미와 랄프와 플로리안의 완벽주의적인 작업 성격으로 인해 쉽게 진전되지 않았다.

컴퓨터 월드 투어 이후, 랄프 휘터는 자전거에 대한 애착으로 멤버들에게 사이클링을 강요했다. 등산 강요하는 부장님 느낌 이 당시 녹음했던 곡 중 하나는 EMI가 1983년에 싱글로 발매한 'Tour de France'이다. 싱글 발매 당시 싱글 하나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랄프 휘터는 앨범 전체가 자전거에 관련된 앨범을 제작하고 싶다며 멤버들을 설득했지만,[13] 플로리안을 제외한 밴드의 다른 멤버들은 납득할 수 없었다. 실제로 랄프의 자전거 취미 때문에 앨범 작업도 지지부진했었다. 볼프강은 이 당시를 회상하며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데 랄프와 플로리안은 자전거만 타러 나가 있었다고 불만을 표했다.

크라프트베르크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앨범을 발매했는데, 상표권 문제로 이름을 'Electric Café'으로 바꾸어 발매했다.[14]

1983년, 볼프강 플뤼어는 점점 스튜디오에서 있는 시간이 적어졌다. 밴드가 시퀀서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드러머로서의 입지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볼프강은 여자친구와 여행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볼프강은 1981년 일렉트로닉 퍼커션 담당으로 월드 투어를 했지만, 컴퓨터 월드 앨범이나 일렉트릭 카페 앨범 제작에 관여하지 않았다. 결국 1987년, 볼프강은 밴드를 탈퇴하게 되고, 빈 일렉트로닉 퍼커션의 자리는 프리츠 힐페르트가 가입하게 된다. 프리츠 힐페르트는 라이브 일렉트로닉 퍼커션 활동 말고도 클링 클랑 스튜디오의 오디오 엔지니어 역할도 담당하게 되어, 크라프트베르크에게 있어 중요한 멤버로 자리 잡게 되었다.

2.5. The MixEXPO 2000 (1990~2000)[편집]


파일:kw1991.jpg
1991년, The Mix 발매 후 'The Robots'의 라이브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로봇.
왼쪽부터 랄프 휘터, 페르난도 아브란테스, 프리츠 힐페르트, 플로리안 슈나이더.
수년간 라이브를 하지 않던 크라프트베르크는 1990년에 다시 라이브를 하기 시작하지만 크라프트베르크의 주축이 되었던 카를 바르토스도 음악적 견해 차이를 이유로 탈퇴하고 만다. 이후 공석은 페르난도 아브란테스를 영입하고 컴필레이션 앨범/리믹스 앨범인 'The Mix'를 발매한 뒤 투어를 계속하지만, 1991년에 페르난도도 투어 도중 음악적 견해 차이로 밴드를 탈퇴한다. 이후 빈 자리는 크라프트베르크의 사운드 엔지니어로 활동했었던 헤닝 슈미츠를 라이브 멤버로 영입한 후 투어를 마무리했다. 이 당시 'The Robots'의 라이브에서는 멤버들이 잠시 퇴장한 후 실제 작동하는 로봇을 세워 공연하기도 했다.
파일:kw2000.jpg
2000년 3월, Top Of The Pops에서의 "Expo 2000" 공연.
크라프트베르크의 또 다른 상징이 되는 자전거 슈트를 착용한 로봇.
이후 1999년, 오랜 공백을 깨고 크라프트베르크는 독일 2000 하노버 엑스포 세계 박람회를 위한 징글을 만드는 데 위촉되었다. 이 징글은 이후 1999년 12월에 발매된 싱글 'EXPO 2000'으로 편곡되었고, 2000년 11월에 'EXPO Remix'로 리믹스 되어 발매되었다.

2.6. Tour de FranceMinimum-Maximum 공연 (2002~2008)[편집]


파일:kw2004.jpg
2004년, Minimum-Maximum 라이브 앨범의 "Tour de France Étape 2" 공연.
왼쪽부터 랄프 휘터, 헤닝 슈미츠, 프리츠 힐페르트, 플로리안 슈나이더.
2003년 8월, 크라프트베르크는 1986년 일렉트릭 카페 이후 오랜만의 스튜디오 앨범인 'Tour de France Soundtracks'[15]를 발매했다. 앨범 발매 후, 크라프트베르크는 소니 VAIO 노트북 컴퓨터 4대를 사용한 공연을 시작했고, 네 개의 대형 스크린을 대체할 새로운 비디오 스크린를 확보했다. 또한 밴드는 모든 시퀀싱, 사운드 생성 및 비주얼 디스플레이 소프트웨어의 실행으로 라이브 무대를 크게 간소화시켰다. 이때부터 밴드는 연주 전부를 직접 하지 않고 시퀀싱 장비로 라이브를 했다. 그래도 랄프는 여전히 키보드로 직접 연주하고 보컬을 담당하며 가장 수동적으로 연주했다. 플로리안의 보코더 보컬은 소프트웨어 제어 음성 합성 기술로 대체되었다.

2005년 6월, 밴드의 첫 공식 라이브 앨범인 'Minimum-Maximum'은 2004년 봄 투어부터의 라이브를 녹음한 앨범으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 앨범에는 기존 스튜디오 앨범에서 재작업 된 트랙이 포함되어 있으며, 'EXPO 2000'을 재작업한 'Planet of Visions'라는 곡도 포함되었다. 12월에는 Minimum-Maximum의 DVD가 발매되었다.

2008년 4월, 밴드는 투어를 발표했는데, 라인업에는 플로리안 슈나이더가 빠져있었다. 빈자리는 클링 클랑 스튜디오의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인 스테판 파페가 대타로 영입되었으며, 플로리안 슈나이더는 다른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랄프 휘터가 언급했지만 그해 11월 21일, 크라프트베르크는 공식적으로 플로리안 슈나이더가 크라프트베르크에서 탈퇴했음을 발표했다.

2.7. 3D 공연의 시작과 더 카탈로그 공연 (2009~2016)[편집]


파일:kw09.jpg
2009년, 영국 맨체스터에서의 'Numbers' 3D 공연.
왼쪽부터 랄프 휘터, 헤닝 슈미츠, 프리츠 힐페르트, 스테판 파페.
2009년 플로리안의 탈퇴로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 스테판 파페를 공식적으로 영입한 크라프트베르크는 독일 볼프스부르크, 영국 맨체스터, 덴마크 랜더스에서 특별한 3D 그래픽으로 콘서트를 열었다. 관객들은 3D 안경을 쓰고 3D 영상을 감상했다.

또한 2009년에는 Autobahn부터 Tour de France까지의 총 8개의 앨범이 리마스터되어 발매되었다. 일부 앨범들은 새로운 앨범 커버로 바뀌었으며, 위에서 언급했듯이 일부 앨범들의 이름도 바뀌었다.
파일:kw2011.png
2011년, 'The Robots' 3D 영상에 사용된 로봇들.
2011년, 크라프트베르크는 3D 그래픽을 뮌헨의 시립 미술관 렌바흐하우스에 전시하며 3번의 콘서트를 열었으며, 이때부터 라이브의 스크린을 더욱 크게 바꾼 뒤, 모든 곡의 영상을 3D로 영상화하며 밴드가 추구하는 '보여주는 음악'을 극대화했다.

다음 2012년 4월 10일 뉴욕 MoMA 공연부터 본격적으로 아우토반에서 투르 드 프랑스까지의 8개의 스튜디오 앨범을 하루에 한 앨범씩 8일에 걸쳐 공연하는 방식으로 더 카탈로그 월드 투어를 시작하였다. 또한 2012년 7월 7일 일본 도쿄 치바 마쿠하리 멧세에서 열린 No Nukes 2012 페스티벌에서는 'Radioactivity'를 일본어로 번안해 공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013년엔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으로 활동하던 스테판 파페가 탈퇴했다. 이후 클링 클랑 스튜디오에서 3D 영상 제작 담당으로 활동했던 팔크 그리펜하겐이 새로운 라이브 멤버로 활동하게 되며 더욱 향상된 3D 라이브를 개시했다. 또한 미니멈 맥시멈 이후 10년 만의 새로운 라이브 앨범을 예고했다.

2013년 4월 27일,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를 통해 첫 내한 공연을 진행했다.

2014년, 제56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하였다.

2.8. 3-D The Catalogue 공연 (2017~2022)[편집]


파일:kw2017.jpg
2017년, 'The Robots' 공연에 사용되는 로봇들.
왼쪽부터 랄프 휘터, 헤닝 슈미츠, 프리츠 힐페르트, 팔크 그리펜하겐.
2017년엔 블루레이 규격의 라이브 영상과 멀티미디어 매체인 '3-D The Catalogue'를 발매했다. 3-D The Catalogue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의 라이브에서 선보인 지난 8개의 앨범의 라이브 앨범과 비디오 녹화 공연을 CD, 바이닐, 디지털 매체, DVD, 블루레이로 담아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2018년 1월 28일 열린 그래미 어워드 최고의 댄스/일렉트로닉 앨범과 베스트 서라운드 사운드 앨범 후보에 올랐으며, 최고의 댄스/일렉트로닉 앨범 부문을 수상하며 크라프트베르크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파일:kw2018.jpg
2018년 7월 20일, ESA 소속 우주 비행사 알렉산더 게르스트와 함께한 'Spacelab' 합동 공연.
2018년 7월 20일,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콘서트에서는 ESA 소속 우주 비행사 알렉산더 게르스트가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Spacelab'을 합동 공연했다. 게르스트는 태블릿을 사용해 듀엣으로 랄프와 함께 멜로디를 연주했고, 관객들에게 짧은 메시지를 전했다.

2019년 4월 26일, 서울 올림픽홀에서 두 번째 내한 공연을 진행했다.

2020년으로 크라프트베르크 결성 50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대규모로 미국 투어를 포함한 라이브 계획이 있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여파로 미국/캐나다 공연들은 모두 취소 후 나머지 유럽에서 할 계획이었던 공연을 모두 2021년으로 미뤘다가, 다시 2022년으로 미루었다.

2020년 4월 21일, 크라프트베르크의 창립자 플로리안 슈나이더가 암 투병 끝에 7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2020년 12월 21일, 디지털 컴필레이션 앨범인 'Remixes'를 발매했다.

2021년 5월 12일, 로큰롤 명예의 전당 개척자(Early Influences)부문에 헌액되었으며, 전성기 시절의 멤버인 랄프 휘터, 플로리안 슈나이더, 카를 바르토스, 볼프강 플뤼어의 이름이 헌액되었다.

2021년 5월 13일, Computer World의 수록곡 'Home Computer'를 싱글 편집하여 발매했다.

파일:Kunstpalast_Electro.jpg
2021년, 'ELECTRO. VON KRAFTWERK BIS TECHNO' 포스터.
왼쪽부터 랄프, 헤닝, 프리츠, 팔크.
파일:kraftwerkzukunft.png
쿤스트 팔라스트 미술관에 전시된 로봇들.
2021년 9월 12일부터 2022년 5월 15일까지 뒤셀도르프의 쿤스트 팔라스트 미술관에서 'ELECTRO. VON KRAFTWERK BIS TECHNO[16]' 라는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회는 쿤스트 팔라스트 미술관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전자 음악을 주제로 한 전시회이며, 100년이 넘는 전자음악 역사와 예술을 전시하는 전시회로 크라프트베르크 외에도 수많은 아티스트[17]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어느 정도 완화된 2022년엔 다시 투어를 재개했으며, 미국, 캐나다, 유럽 등의 여러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2.9. 새로운 시도들과 변화 (2023~현재)[편집]


2022년의 공연을 모두 마친 크라프트베르크는 다시 2023년 남미/유럽/오세아니아 투어를 예고했다. 그렇게 2023년 5월 19일, 남미 투어의 시작인 리우데자네이루 공연을 진행했는데, 멤버 라인업에 변경이 있었다. 프리츠 힐페르트가 공연에 등장하지 않았고 새로운 멤버가 등장했다.

프리츠의 일렉트로닉 퍼커션 자리는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이었던 팔크 그리펜하겐으로 변경되었으며,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 자리엔 새로운 멤버인 게오르크 본가르츠가 들어왔다. 크라프트베르크 측에서는 프리츠가 탈퇴했는지, 잠시 활동을 중단한 것인지는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파일:kraftwerkacropolis.jpg
2023년,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공연.
왼쪽부터 랄프 휘터, 헤닝 슈미츠, 팔크 그리펜하겐, 게오르크 본가르츠.
파일:kraftwerkkarlsruhe.jpg
2023년, 독일 카를스루에공연.
현재 공연에선 3D 공연을 하지 않고 있다.[18] 하지만, 기존의 사각형 스크린의 틀을 벗어난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공연에선 무대 뒤의 석조 건축물을 스크린으로 사용한 공연을 했고, 독일 카를스루에 성 공연에선 성 벽면 전체를 스크린으로 사용하는 공연을 보여주기도 했다.

2023년 3월 30일,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즉위 후 첫 해외 순방이였던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 의사당 연설에서 비틀즈와 함께 크라프트베르크를 언급했다.

2023년 11월 8일, 랄프 휘터가 직접 디자인한 새로운 굿즈인 '로봇 백팩'을 발표했다. 라이브에서 착용하는 자전거 슈트에서 따온 디자인이며, 박스엔 랄프 휘터의 사인이 포함되어 있다.

3. 멤버[편집]



3.1. 현 멤버[편집]



3.1.1. 랄프 휘터[편집]


랄프 휘터
Ralf Hütter


본명
랄프 휘터
Ralf Hütter[19]
출생
1946년 8월 20일 (77세)
연합군 점령하 독일 라인란트주 크레펠트
(現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크레펠트)
국적
[[독일|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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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활동 기간
1970년 - 현재
포지션
보컬, 보코더, 신디사이저, 키보드
크라프트베르크의 창립 멤버이자 원년 멤버 중 유일한 현역이며, 지금까지의 멤버 중 가장 나이가 많다. 대부분의 곡에서 보컬[20]과 신디사이저, 키보드를 담당하고 있다. 라이브에서의 위치는 50년 동안 항상 관객석 기준으로 가장 왼쪽이다.

로베르트 슈만 국립 음악대학에서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으며 앙상블 동아리에서 플로리안 슈나이더를 만나 즉흥곡을 함께 연주했다. 이후 플로리안과 함께 크라프트베르크를 결성하고, 50년이 넘은 현재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21]

자전거에 대한 애착이 깊어 투르 드 프랑스를 주제로 곡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결국엔 수록곡 전체가 자전거와 관련된 앨범인 "Tour de France"를 내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다 사고가 나 혼수상태에 빠진 적도 있다고 한다.[22] 멤버들에게도 자전거의 매력을 전파했는데, 멤버들에게 자전거를 타자고 하면 멤버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탔다고 한다. 채식주의자이기도 한데, 채식 또한 멤버들에게 권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모국어인 독일어를 구사하는 인텔리이기도 하다.

또한 밴드의 컨셉 때문에 라이브에선 보컬과 마지막 인사를 제외한 다른 멘트는 일절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딱딱해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멤버들 말로는 꼭 한 번씩은 사람을 웃기게 만드는 말재주를 갖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연주 실수가 나면 재치 있는 멘트[23]를 하기도 하며, 한 공연에서는 곡 마무리에서 실수가 나자 그대로 키보드에 샷건을 날리고 이에 다른 멤버들이 빵 터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생활을 드러내기 꺼리는 밴드의 특성상 인터뷰를 잘 하지 않고 기묘하게 하기로 유명하다. 2009년 영국 인터뷰에서는 본인 대신 로봇으로 대리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2019년 내한 공연에서도 보그 코리아 측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인터뷰 요청에 대한 답신이 없다가 공연 바로 전날 극적으로 인터뷰가 성사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까지 응했다고 한다.[24]

가족으로는 아내와 음악가로 활동하는 딸인 엘사 휘터(Elsa Hütter)[25]가 있다. 그 외에도 키가 약 182cm로 큰 편이다.

파일:ralfconsole.jpg
2015년 경 랄프 휘터의 개인 콘솔. 커스텀 키보드, 크림웨어 미니맥스와 비디오 모니터링용 모니터, 아이패드가 확인되었다.

3.1.2. 헤닝 슈미츠[편집]


헤닝 슈미츠
Henning Schmitz


본명
헤닝 슈미츠
Henning Schmitz[26]
출생
1953년 12월 26일 (70세)
서독 라인란트주 부퍼탈
(現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부퍼탈)
국적
[[독일|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독일"
행정구
]]

활동 기간
1978년 - 1985년[27], 1991년 - 현재
포지션
신디사이저, 키보드, 마스터링, SFX, 일렉트로닉 퍼커션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신디사이저, 라이브 키보드를 담당하고 있으며[28], 마스터링 엔지니어도 담당하고 있다. 라이브에서의 위치는 전 멤버였던 페르난도 아브란테스의 자리를 계승한 관객석 기준으로 왼쪽에서 두 번째이다.

1978년부터 크라프트베르크의 스튜디오 클링 클랑에서 사운드 엔지니어로서 활동했었다.[29] 1985년엔 앨범 'Electric Café' 작업 도중 쾰른의 한 녹음 스튜디오에서 서부독일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쓰일 다양한 음악과 음향 효과를 제작하기 위해 고용되는데, 쾰른뒤셀도르프를 왕복하기 힘들었던 헤닝 슈미츠는 결국 클링 클랑 스튜디오를 떠나게 된다. 이후 1986년에 헤닝 슈미츠는 퀼른의 스튜디오를 그만둔 후 프리랜서로 활동하게 된다. 그러던 1991년, 'The Mix' 앨범 작업 도중 카를 바르토스의 탈퇴로 들어온 페르난도 아브란테스가 음악적 견해 차이로 투어 도중 탈퇴하자, 급하게 투어 멤버를 대신할 사람을 찾던 크라프트베르크는 프리츠 힐페르트의 전화로 헤닝 슈미츠를 불러 라이브 멤버로 세웠다. 당시엔 머리가 풍성했다.[30]

클링 클랑 스튜디오의 사운드 엔지니어로 활동하면서 라인란트 음악대학과 뒤셀도르프 전문대학에 다녔으며, 1980년에 사운드 및 이미지 기술 분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크라프트베르크 활동 외에도 로베르트 슈만 인스티튜트에서 프리랜서 강사로 일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다른 아티스트들의 프로젝트 제작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또한 2007년부터 쾰른의 녹음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X.1의 창립자이자 기술 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스튜디오 X.1에서는 2017년에 발매한 라이브 앨범 '3-D The Catalogue'의 스테레오 마스터링을 작업하기도 했다.

가끔씩 'Spacelab' 공연 도중에 화면에 날아오는 UFO를 주시하다 숙여서 피하는 유머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2022년 6월 텍사스댈러스 공연의 마지막 솔로 파트에선 스태프가 건네준 텐 갤런 모자를 착용하고 솔로 연주를 한 뒤 퇴장했다.

2000년대에 들어 탈모가 심하게 와 현재는 머리를 삭발대머리이다. 사실 2000년대엔 머리가 조금 남아있었기에 'The Robots' 라이브 시에 등장하는 로봇에도 머리카락이 있었지만, 2008년 이후부터 현실을 반영하여 로봇도 대머리로 변경되었다(...).

2005년 9월 The Electric Picnic 공연부터 2006년까지 안경을 착용한 적이 있었다. 이후 2011년 뮌헨 공연에서 한 번 착용하고 오랫동안 착용하지 않다가 2023년 5월 남미 공연에서 오랜만에 안경을 착용하고 등장했다.

1998년, 2012년~2014년엔 아랫입술 아래부터 턱까지 일자로 이어지는 소울 패치(Soul patch) 수염을 기른 적이 있다.

2016년에 솔로 일렉트로닉 앨범 Global Mind Prints를 발표했다.

가족으로는 아내인 시타라 슈미츠(Sitara Schmitz)가 있으며, 헤닝과 함께 스튜디오 X.1을 창립하였고, 현재는 프로듀서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파일:henningconsole.jpg
2015년 경 헤닝 슈미츠의 개인 콘솔. 누마크의 Orbit 무선 DJ 컨트롤러노베이션 ZeRO SL MkII, M-Audio Oxygen 8[31], 소니 바이오 탭 20 등이 확인되었다.

3.1.3. 프리츠 힐페르트[편집]


프리츠 힐페르트
Fritz Hilpert


본명
프리드리히 "프리츠" 힐페르트
Friedrich "Fritz" Hilpert[32]
출생
1956년 5월 31일[33] (67세)
서독 바이에른주 암베르크
(現 독일 바이에른주 암베르크)
국적
[[독일|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독일"
행정구
]]

활동 기간
1987년 - 2022년
포지션
신디사이저, 일렉트로닉 퍼커션, 사운드 엔지니어링, 믹싱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일렉트로닉 퍼커션을 담당했던 볼프강 플뤼어가 탈퇴한 후인 1987년부터 일렉트로닉 퍼커션으로 멤버 활동을 시작했다. 일렉트로닉 퍼커션 외에도 그룹의 사운드 및 믹싱 엔니지어링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라이브 멤버로 참여한 기간은 원년 멤버였던 랄프와 플로리안 다음으로 오래되었으며, 라이브에서의 위치는 전 멤버였던 볼프강 플뤼어의 자리를 계승한 관객석 기준으로 오른쪽에서 두 번째이다.

1976년까지 독일 암베르크의 학교 막스 레거 김나지움에서 트럼펫과 타악기를 전공했다. 또한 당시 여러 라이브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하기도 했다. 1978년부터는 라인란트 음악 대학과 FH 뒤셀도르프에서 음향 공학을 공부하였으며, 1986년엔 사운드 및 이미지 기술 분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87년 크라프트베르크와 인연을 맺기 전까지 뮌헨의 바이에른 스튜디오와 유니언 스튜디오에서 사운드 엔지니어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크라프트베르크에 들어오고 나서는 디지털 신디사이저인 '싱클레비어(Synclavier)'를 사용하여 크라프트베르크의 사운드 아카이브 전체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담당했다. 스튜디오 작업 외에도 크라프트베르크가 투어 활동을 재개하자 탈퇴한 볼프강 플뤼어를 대신하여 라이브에 섰으며, 1991년 발매된 앨범 'The Mix'에도 이름을 올렸다. 1999년에 발매한 싱글 앨범 'EXPO 2000' 이후부터 크라프트베르크의 곡을 작곡했으며, 'Tour de France' 앨범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에 공동 작곡자로 이름을 올렸다. 2017년에 발매한 라이브 앨범 '3-D The Catalogue'에선 5.1 서라운드 사운드 믹싱뿐만 아니라 키보드 프로그래밍을 맡기도 했다. 또한 헤닝 슈미츠와 함께 클링 클랑 스튜디오의 사운드 엔지니어 및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으며, 크라프트베르크와 클링 클랑 공식 홈페이지 관리자이기도 하다.

1990년엔 랄프 휘터의 3년간의 설득 끝에(...) 결국 사이클링을 취미로 시작하게 되었으며 이는 'Tour de France' 앨범 제작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2008년 11월 22일, 크라프트베르크가 글로벌 게더링 헤드라이너로 호주 투어 준비 도중 심부전 증세가 왔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날 멜버른 쇼 시작 20분 전 급하게 공연을 취소했지만, 치료를 받은 프리츠는 다음 날 투어를 계속하기로 했다. 공연 취소를 공지하는 랄프 휘터

여담으로 라이브에서 표정이 가장 풍부한 멤버로, 리본 컨트롤러를 조작하며 일렉트로닉 퍼커션 비트의 피치를 조절하는 모습이 시그니처이기도 하다. 또한 역대 멤버 중 최단신이다.

2000년대에 들어 백발이 되었는데, 헤닝 슈미츠의 사례와 같이 'The Robots' 라이브 시에 등장하는 로봇도 백발로 변경되었다. 또한 백발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2006년 한 해 동안 안경을 착용했었던 헤닝 슈미츠처럼 2011년 한 해 동안 라이브에서 안경을 착용한 적이 있다.

가족으로는 아내와 딸, 아들이 있으며, 아들인 막스 힐페르트(Max Hilpert)는 현재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다.

2023년 5월 19일 리우데자네이루 공연부터 갑작스럽게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프리츠의 일렉트로닉 퍼커션 자리는 팔크 그리펜하겐이 대신 들어갔으며, 팔크의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 자리엔 새로운 멤버인 게오르크 본가르츠가 들어왔다. 크라프트베르크 측에서는 프리츠가 탈퇴했는지, 잠시 활동을 중단한 것인지는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파일:fritzconsole.jpg
2015년 경 프리츠 힐페르트의 개인 콘솔. 네이티브 인스트루먼츠 사의 머신소니 바이오 탭 20, Doepfer R2M 리본 컨트롤러, 스타인버그 CMC AI 컨트롤러, 아이패드[34]를 사용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3.1.4. 팔크 그리펜하겐[편집]


팔크 그리펜하겐
Falk Grieffenhagen


본명
팔크 그리펜하겐
Falk Grieffenhagen[35]
출생
1969년 2월 26일 (55세)
서독 니더작센주 아우리히
(現 독일 니더작센주 아우리히)
국적
[[독일|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독일"
행정구
]]

활동 기간
2013년 - 현재
포지션
신디사이저, 일렉트로닉 퍼커션2023년 - 현재,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2013년 - 2022년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사운드클라우드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신디사이저 및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을 맡고 있었다가 2023년 5월 남미 공연부터 프리츠 힐페르트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일렉트로닉 퍼커션으로 포지션을 바꾸었다. 라이브에서의 위치는 전 멤버였던 스테판 파페의 자리를 계승한 관객석 기준으로 가장 오른쪽이었다가 2023년 공연부터 프리츠 힐페르트의 자리였던 관객석 기준으로 오른쪽에서 두번째 자리로 옮겼다.[36]

2007년부터 스튜디오 클링 클랑에서 비디오 제작 담당으로 활동했으며[37], 2012년 말에 전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이었던 스테판 파페의 탈퇴로 2013년부터 정식 멤버가 되어 라이브 무대에 서게 되었다.[38] 라이브에서는 3D 비디오를 모니터링하면서 MIDI 컨트롤러를 조작하여 FX 음향을 조절하며 3D 비디오와 음향을 동기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비디오를 모니터링하다 비디오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는 자리를 이탈하여 해결할 때도 있었다.

2017년에 발매한 라이브 앨범 '3-D The Catalogue'에선 3D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래밍과 애니메이션을 담당했다. 또한 3D 비디오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프로그램으로 3ds Max블렌더3D를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2023년부터는 프리츠 힐페르트의 부재로 인해 일렉트로닉 퍼커션을 대신 담당하고 있으며[39],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 자리는 새로운 멤버인 게오르크 본가르츠에게 인계했다.

13살 때부터 색소폰을 연주했다고 하며, 군 복무 시절엔 군악대를 했었다고 한다. 20대 때부터 사운드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며, 2000년에 로베르트 슈만 국립 음악대학과 뒤셀도르프 전문대학에서 사운드 및 비디오 공학을 전공하였고, 재즈 색소폰 전공과 클라리넷, 플루트, 피아노 전공으로 쾰른 음악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이후 1996년부터 프리랜서 음악가, 작곡가, 오디오 및 비디오 엔지니어로 일했으며 '휴먼 인터페이스 디자인과 비주얼 아트(Human Interfaces Design and Visual Arts)'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또한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응용과학대학 뒤셀도르프의 오디오 및 비디오 엔지니어링 프로그램에서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르쳤고, 2010년부터 2014년까지는 음악 정보학 과정과 오디오 엔지니어링 및 작곡을 데트몰트 음악 대학교에서 가르쳤으며 뒤셀도르프의 도르트문트 전문대학 디자인학과, 폴크방 예술대학, 쾰른 미디어 예술 아카데미, 브라질의 유니버시아드 연방 대학에서 워크숍과 강의를 했다.

현재는 2016년부터 뒤셀도르프의 로베르트 슈만 국립 음악대학의 음악 및 미디어 연구소에서 강사로서 오디오 시각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연구소 강사직 외에도 프리랜서 음악가, 작곡가, 음향 및 영상 엔지니어,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탈모와 백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처음 라이브 멤버로 선 2013년도와 현재의 라이브를 비교해 보면 차이가 심하게 난다.

파일:falkconsole.jpg
2015년 경 팔크 그리펜하겐의 개인 콘솔. 비디오 모니터링용 블랙매직 디자인의 스마트뷰 HD, 비디오 편집용 셔틀프로 V2, 아이패드[40]QuNeo 3D 멀티-터치 MIDI 패드 컨트롤러를 사용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파일:falkconsole2.jpg
공연 도중 아이패드로 딴짓하는 것이 스파이캠을 통해 확인되었다.[41]

3.1.5. 게오르크 본가르츠[편집]


게오르크 본가르츠
Georg Bongartz


본명
게오르크 본가르츠
Georg Bongartz
국적
[[독일|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독일"
행정구
]]

활동 기간
2023년 - 현재
포지션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2023년 5월 19일 리우데자네이루 공연부터 프리츠 힐페르트 대신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멤버. 라이브에서의 포지션은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으로, 전 라이브 테크니션이었던 팔크 그리펜하겐의 자리인 관객석 기준으로 가장 오른쪽을 맡았다.[42]

라이브에서는 비디오를 모니터링하면서 MIDI 컨트롤러를 조작하여 FX 음향을 조절하며 비디오와 음향을 동기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쾰른 주립 음악 대학에서 음악 공부를 마쳤으며, 이후 뒤셀도르프 전문대학에서 사운드 및 비디오 공학을 전공하였다. 또한 현재는 오보에 연주자로서 활동하기도 하며, ARD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제 라벨에서 프리랜서 사운드 엔지니어로 활동하고 있다.

팔크 그리펜하겐 이후로 10년 만에 새롭게 들어온 멤버이다. 크라프트베르크 측에서는 프리츠 힐페르트의 후임 멤버인지, 임시 대타 멤버인지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사시가 있다.

3.2. 전 멤버[편집]



3.2.1. 플로리안 슈나이더[편집]


플로리안 슈나이더
Florian Schneider


본명
플로리안 슈나이더 에슬레벤
Florian Schneider-Esleben
출생
1947년 4월 7일
자르 보호령 외닝겐
(現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외닝겐)
사망
2020년 4월 21일 (향년 73세)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뒤셀도르프
국적
[[독일|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독일"
행정구
]]

활동 기간
1970년 - 2008년
포지션
신디사이저, 백킹 보컬, 보코더, 음성 합성, 플루트
크라프트베르크의 창립 멤버이며, 2008년 11월 은퇴하며 밴드를 탈퇴했다. 라이브에서의 포지션은 관객석 기준으로 가장 오른쪽이었다. 라이브에서는 백킹 보컬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보코더 및 음성 합성 기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쾰른-본 국제공항을 설계한 유명한 독일 건축가[43] 폴 슈나이더 에슬레벤의 아들이다. 플로리안의 친가는 나치 성향이었는데, 폴 슈나이더는 이에 반대하며 유대인 혼혈이었던 플로리안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여 플로리안을 낳았다.

플로리안은 레미체드에 있는 예술원에서 공부하다가 1968년에 뒤셀도르프의 로베르트 슈만 국립 음악대학에서 랄프 휘터를 만나며 앙상블 동아리에서 즉흥 음악을 함께 연주했다. 휘터를 만나기 전에는 1967년부터 1968년까지 밴드 'Pissoff'에서 에베르하르트 크레인만과 함께 활동했고, 1968년부터 1969년까지는 플로리안이 플루트, 랄프 휘터는 하몬드 오르간, 에베르하르트 크레인만은 베이스, 폴 로벤스는 드럼을 맡아 함께 연주했다.

원래 플로리안의 주 악기는 플루트였는데, 플루트에 전자 효과를 넣어 베이스 악기로 개조하여 사용했다. 바이올린, 전기 기타, 신디사이저를 쓰기도 했지만 1974년 앨범 'Autobahn'이 발매된 후, 어쿠스틱 악기의 사용은 점차 줄어들었다. 나중에는 자신만의 커스텀 전자 플루트를 만들기도 했다.

크라프트베르크 멤버로 활동하던 당시 랄프 휘터와 같이 인터뷰를 잘 하지 않고, 막상 하더라도 기묘하게 하기로 유명했다.

1988년카를스루에의 국립 디자인 대학교(HFG)의 미디어 예술 및 공연 교수로 임명되었지만, 교수직을 실제로 맡지는 않았다고 한다.

데이비드 보위의 앨범 "Heroes"에 수록된 곡 'V-2 Schneider'는 데이비드 보위가 플로리안 슈나이더에게 헌정한 곡이기도 하다.

2001년엔 독일 영화 'Klassentreffen – Mordfall unter Freunden(동창회 - 친구들 사이에서의 살인 사건)'에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를 연기했다.

2006년 11월 스페인 공연을 마지막으로 마친 후 2008년 공연에 참석하지 않다가[44] 2008년 11월에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으며, 크라프트베르크는 그의 탈퇴 후, 새로운 직책인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을 만들어 클링 클랑의 비디오 테크니션 스테판 파페를 라이브에 세웠다.

2015년 12월 9일, 댄 랙스먼(Dan Lacksman)과 함께 새로운 곡을 발표하였다. 곡명은 Stop Plastic Pollution. 댄 랙스먼은 70년대 말 벨기에에서 활동하던 텔렉스(TELEX)의 멤버이기도 하다.

뒤셀도르프 주변과 피렌체에 살고 있으며 딸이 하나 있다고 한다.

2020년 5월 6일, 73번째 생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4월 21일에 암으로 사망한 것이 알려졌다. 준 멤버를 제외한 역대 멤버 중 처음으로 타계한 인물이 되었다. 세상을 떠난 직후 네덜란드의 우트레히트 성 마르틴 대성당의 돔 타워의 종소리가 The Man-Machine 앨범의 수록곡 'The Model'의 음으로 울렸다.

여담으로 탈모가 멤버 중 가장 빠르게 왔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모자를 애용했으며, 라이브 공연에서도 종종 모자를 착용하고 등장했다.[45]

3.2.2. 카를 바르토스[편집]


카를 바르토스
Karl Bartos


본명
카를하인츠 바르토스
Karlheinz Bartos
출생
1952년 5월 31일 (71세)
서독 바이에른주 베르흐테스가데너
(現 독일 바이에른주 베르흐테스가데너)
국적
[[독일|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독일"
행정구
]]

활동 기간
1975년 - 1990년
포지션
일렉트로닉 퍼커션, 신디사이저, 키보드, 보컬[46], 비브라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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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2월에 클라우스 뢰더의 탈퇴 이후 크라프트베르크에 일렉트로닉 퍼커션 담당으로 영입되었다가[47] 신디사이저와 라이브 키보드, 보컬, 작곡도 담당하게 되었다. 이후 1987년에 볼프강 플뤼어가 탈퇴한 뒤 1990년 8월에 음악적 견해 차이로 탈퇴했다. 라이브에서의 포지션은 관객석 기준으로 왼쪽에서 두 번째였다. 현재는 'Electric Music'이라는 밴드에서 활동 중이다.

독일 베르흐테스가덴에서 태어났으며, 로베르트 슈만 국립 음악대학에서 피아노, 비브라폰, 드럼을 배웠다. 본명인 카를하인츠는 친가와 외가 할아버지의 이름인 카를과 하인츠를 딴 이름이라고 한다. 1965년부터 1972년까지 'The Jokers'라는 대학 밴드의 드러머로 활동했다. 이 당시에는 '카를로스 바르토스(Carlos Bartos)'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카를이라는 이름은 카를하인츠라는 이름이 너무 길어 네온사인으로 표시하기 힘들다는 랄프 휘터의 의견을 따라 바꾸었다고 한다.

1975년에 크라프트베르크의 아우토반 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일렉트로닉 퍼커션 담당으로 영입되었다. 그러다 'The Man-Machine' 앨범 이후부터는 신디사이저, 라이브 비브라폰, 라이브 키보드도 담당하게 되고, 연주뿐만 아니라 The Man-Machine, Computer World, Techno Pop 앨범에 수록된 크라프트베르크의 여러 명곡을 작곡하며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다. 'Techno Pop' 앨범에서는 수록곡 'The Telephone Call'의 보컬을 맡기도 했다.

이렇게 크라프트베르크 내에서 작곡가로서 입지를 다지며 한 축을 담당했던 카를은 랄프 휘터와 플로리안 슈나이더의 완벽주의적인 작곡 태도로 인해 밴드의 활동과 앨범 작업이 점차 느려지고 있다고 생각했다.[48] 또한 랄프 휘터의 자전거 취미 때문에 작곡에 할애할 시간 또한 뺏기기 시작했다. 카를은 크라프트베르크를 탈퇴하고 싶지 않았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랜 고민 끝에 1990년, 결국 카를은 자신의 영감을 발산할 수 없었던 크라프트베르크를 탈퇴하게 되었다.

1992년 카를은 'Elektric Music'라는 밴드를 만들었고 후에 'Electric Music'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활동했다.[49]

2004년부터 2009년까지는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석사과정인 '음향 연구 - 사운드 커뮤니케이션'의 공동 창립자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청각 미디어 디자인 과목의 객원교수로서 활동했다.

3.2.3. 볼프강 플뤼어[편집]


볼프강 플뤼어
Wolfgang Flür


파일:kwwf4.jpg

본명
볼프강 플뤼어
Wolfgang Flür[50]
출생
1947년 7월 17일 (76세)
연합군 점령하 독일 통합 헤센 프랑크푸르트
(現 독일 헤센주 프랑크푸르트)
국적
[[독일|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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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활동 기간
1973년 - 1987년
포지션
일렉트로닉 퍼커션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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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부터 1987년까지 일렉트로닉 퍼커션을 담당했으며, 크라프트베르크의 무대 세트 디자이너도 겸했다. 라이브에서의 포지션은 관객석 기준으로 오른쪽에서 두 번째였다.

뒤셀도르프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했으며, 여러 대학 밴드의 드러머로 활동하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려 했으나 1973년에 독일 WDR TV 아트 쇼인 'aspekte'에 출연하려는 랄프와 플로리안에게 일렉트로닉 퍼커션을 연주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크라프트베르크의 멤버로 활동하게 된다.[51]

그렇게 크라프트베르크의 멤버로서 활동을 계속하지만, 밴드가 시퀀서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밴드 안에서 자신이 맡은 드러머로서의 입지는 점차 줄어들었고,[52] 애인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좀 더 따듯한 느낌의 전자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음악적 견해 차이로 1987년 밴드를 탈퇴했다. 탈퇴한 이후엔 음악가 활동 외의 원래 전공이었던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기도 했고 로보캅 2의 사운드트랙을 작곡했다는 루머나 사망했다는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후 플뤼어는 그의 젊은 시절, 음악가로서의 초기 경력, 크라프트베르크 활동 시기의 일 등이 수록된 자서전 '나는 로봇이었다(Ich war ein Roboter)'[53]를 집필하여 2000년에 출판했다. 하지만 휘터와 슈나이더는 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밴드 안에서 그가 했던 활동과 관련해 허위 정보가 포함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의 출판과 재필을 중단시켰다.[54]

최근엔 클럽에서 디제잉을 주로 하고 있으며, 2020년 9월 4일엔 독일 유로 댄스 그룹 U96과 콜라보한 앨범 Transhuman을 발표했다.

3.2.4. 페르난도 아브란테스[편집]


페르난도 아브란테스
Fernando Abrantes


본명
페르난도 프롬 아브란테스
Fernando Fromm-Abrantes[55]
출생
1960년 10월 14일 (63세)
포르투갈 리스본
국적
[[포르투갈|

포르투갈
display: none; display: 포르투갈"
행정구
]]

활동 기간
1990년 - 1991년
포지션
일렉트로닉 퍼커션, 신디사이저, 키보드
독일계 포르투갈인으로, 탈퇴한 카를 바르토스를 대신해 일렉트로닉 퍼커션 및 신디사이저 담당 멤버로 활동했다.[56] 라이브에서의 포지션은 전 멤버였던 카를 바르토스의 자리를 계승한 관객석 기준으로 왼쪽에서 두 번째였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나 학교를 졸업하고 독일로 이주하여 크라프트베르크의 현 멤버인 프리츠 힐페르트, 헤닝 슈미츠와 함께 뒤셀도르프에서 음악과 전자학을 공부했으며, 1990년 카를 바르토스의 탈퇴 직후 앨범 'The Mix' 제작 도중 크라프트베르크에 가입했다.

1991년에 랄프 휘터와 밴드의 예술적 방향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인해 The Mix 투어 도중 탈퇴하였고, 이후 투어를 마무리하기 위해 스튜디오 클링 클랑의 전 사운드 엔지니어였던 헤닝 슈미츠가 라이브 멤버로 들어가게 된다.

탈퇴 후엔 리스본으로 돌아와 음악 제작 스튜디오를 설립하였으며, 1998년엔 포르투갈 1998 리스본 엑스포의 공식 음악 프로듀서로 위촉되었다.

탈퇴했음에도 크라프트베르크와는 계속 교류하고 있다고 하며, 현재까지 크라프트베르크 멤버로서 활동했을 때 사용했던 로봇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

3.2.5. 스테판 파페[편집]


스테판 파페
Stefan Pfaffe


본명
스테판 파페
Stefan Pfaffe[57]
출생
1979년 10월 22일 (44세)
동독 에어푸르트구
(現 독일 튀링겐주 에어푸르트)
국적
[[독일|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독일"
행정구
]]

활동 기간
2008년 - 2012년
포지션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58]
2008년 라이브부터 등장하지 않았던 플로리안 슈나이더의 대타로 활동했으며 크라프트베르크의 원년 멤버인 플로리안 슈나이더가 은퇴하며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이라는 직책으로 2008년 11월에 정식 멤버가 되었다. 라이브에서의 포지션은 전 멤버였던 플로리안 슈나이더의 자리를 계승한 관객석 기준으로 가장 오른쪽이었다.[59]

라이브 멤버로 활동하기 전부터 클링 클랑 스튜디오의 라이브 비디오 제작 담당으로 활동했으며, 'Minimum-Maximum' 앨범에도 이름을 남겼다. 이후 2012년 말까지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을 담당하였다. 후임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인 팔크 그리펜하겐과 함께 대부분 곡의 3D 영상들을 제작하여 크라프트베르크의 3D 영상화 라이브에 큰 토대를 쌓은 인물이다.

현재까지의 크라프트베르크의 멤버 중 가장 나이가 어렸으며,[60] 가장 장신이었다.

크라프트베르크를 탈퇴한 후 2014년부터 'Basherz'라는 밴드의 라이브 테크니션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현재는 수염을 기르고 있다.

3.2.6. 기타 멤버[편집]


대학가의 전위음악 동아리 형식을 취하고 있었을 시절의 멤버들.
  • 에밀 슐트
Emil Schult. 1946년 10월 10일생. 화가, 시인, 시각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크라프트베르크 멤버로서는 1973년에 잠깐 기타와 전자 바이올린을 맡은 적이 있다.
이후엔 전면에 나서지 않고 투어 매니저로 활동하며 1982년까지 크라프트베르크의 앨범 제작 및 가사, 앨범 커버 및 아트에 도움을 주었다. 이때 제작된 그래픽 디자인들은 현재까지도 라이브 비디오에 사용된다.
  • 피터 슈미트
Peter Schmidt. 1970년부터 1971년까지 드럼을 담당했다.
  • 칼 "찰리" 바이스
Karl "Charly" Weiss. 1939년 2월 2일생. 베를린 출신. 1970년에 드럼을 담당했으며 2009년 12월 31일 사망했다.
  • 토마스 로만
Thomas Lohmann. 1970년에 드럼을 담당했다.
  • 안드레스 호만
Andreas Hohmann. 1970년에 드럼을 담당했다.
  • 클라우스 딩어
Klaus Dinger. 1946년 4월 6일생. 1970년부터 1971년까지 드럼을 담당했으며 2008년 3월 21일에 사망했다. 크라프트베르크를 나간 뒤 미하엘 로터와 함께 신스팝/크라우트록 밴드 노이!를 창설했다.
Michael Rother. 1950년 9월 2일생. 1971년에 기타를 담당했으며 크라프트베르크를 나간 뒤 클라우스 딩어와 함께 노이!를 창설했다.
  • 호우생 네자데푸어
Houschäng Nejadépour. 이란 출신이다. 1970년부터 1971년까지 기타를 담당했으며, 노이!의 창설 멤버이기도 하다.
  • 에베르하르트 크레인만
Eberhard Kranemann. 1945년 3월 7일생. 1970년부터 1971년까지 베이스 기타를 담당했으며 크라프트베르크를 나간 뒤 노이!에 합류했다.
  • 플라토 코스틱
Plato Kostic. 1973년에 베이스 기타를 담당했다.
  • 클라우스 뢰더
Klaus Röder. 1948년 4월 7일생. 슈투트가르트 출신. 1974년에 기타와 전자 바이올린을 담당했다.

4. 클링 클랑 스튜디오[편집]


파일:klingklangmusikfilm.jpg
파일:Klingklang3d.jpg
Trans Europa Express 앨범 뒷면 커버에 그려져 있는 클링 클랑 스튜디오의 로고.
3-D The Catalogue에서 3D화 된 클링 클랑 스튜디오의 로고.
에밀 슐트가 디자인했으며, Ralf und Florian 앨범의 포스터에서 초기 디자인을 찾아볼 수 있다.

파일:klingklangStudio.jpg
독일 뒤셀도르프 민트로프스트라세 16번지에 위치한 클링 클랑 스튜디오의 옛 자리. 내부
'클링 클랑(Kling Klang)'은 크라프트베르크의 개인 음악 스튜디오이다. 이름은 Kraftwerk 2 앨범의 첫 곡에서 따왔다.[61] 스튜디오는 원래 뒤셀도르프 중앙역과 인접한 독일 뒤셀도르프의 민트로프스트라세 16번지에 있었으나, 2009년 중반 뒤셀도르프에서 서쪽으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메에르부슈-오스테라스로 이전했다. 이전한 이유로는 기존 녹음실에다 공연 리허설을 준비하는 장소가 필요해서라고 알려졌다. [62] 이전한 이후 클링 클랑 스튜디오의 옛 자리는 그대로 방치되었다가, 2015년부터 '오픈 소스 페스티벌'의 설립자인 필립 마이버그가 스튜디오를 사들여 독일의 젊은 일렉트로닉 뮤지션이 2~4주 동안 대여하여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클링 클랑 스튜디오는 1970년에 설립되었는데, 크라프트베르크는 이것을 크라프트베르크의 진정한 시작으로 여겼다. 스튜디오는 뒤셀도르프의 산업 지역에 위치한 작업장의 빈방을 개조한 것이였는데, 메인 스튜디오 크기는 약 18평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스튜디오를 처음 사용했을 때, 크라프트베르크는 스테레오테이프 기계와 카세트 녹음기로 녹음했었다. 그러고 나서 테이프들은 마지막 믹싱을 위해 상업용 녹음실로 옮겨졌다. 그 이유는 앨범을 직접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PA 장비는 자체 제작되었으며 합판 베이스 스피커와 주조 알루미늄 미드 레인지 스피커로 구성되어 있었다. 1971년 크라프트베르크는 여전히 드러머가 없었기 때문에 값싼 드럼 머신을 구입했다. 사운드를 에코와 필터링으로 처리함으로써 두 번째 앨범의 리듬 트랙을 녹음했다. 1973년에 볼프강 플뤼어가 밴드에 합류하고 나서 커스텀 전자 드럼 시스템을 사용했고, 카를 바르토스가 밴드에 합류한 후, 네 명의 멤버 모두가 스튜디오 장비를 디자인했다. 이후 설계 및 새 장비 구입을 지원하기 위해 전임 엔지니어가 고용되었다.

현재는 Kling Klang Konsumprodukt를 통해 크라프트베르크의 음반과 굿즈를 판매하고 있다.


5. 디스코그래피[편집]



파일:external/kraftwerk.com/KRAFTWERK_1.gif

[[파일:external/kraftwerk.com/Start-1024-30-3D.gif



헤닝
슈미츠

팔크
그리펜하겐

게오르크
본가르츠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argin: 0px; min-width: 100%"
[ 전 멤버 ]
플로리안 슈나이더 · 카를 바르토스 · 볼프강 플뤼어 · 프리츠 힐페르트 · 스테판 파페 · 페르난도 아브란테스

에밀 슐츠 · 피터 슈미트 · 칼 "찰리" 바이스· 토마스 로만· 안드레스 호만
클라우스 딩어 · 미하엘 로터 · 호우생 네자데푸어 · 에베르하르트 크레인만 · 플라토 코스틱 · 클라우스 뢰더 }}}



Discography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argin: -3px 0px 0px; min-width: 33.3%"
[ Studio Albums ]
1
2
3


파일:external/www.coolibri.de/cover_kraftwerk_autobahn.jpg


파일:5099996601952_1417x1417_300dpi.jpg


파일:5099996602058_1500x1500_300dpi.jpg


파일:5099996602256.jpg


(1974)


(1975)


(1977)


(197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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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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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dj.tsofxvmn.jpg


파일:5099969959356_1417x1417_300dpi.jpg



(1981)

(1986)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order: 1px solid #9D9B9C; background: #FFFFFF; font-size: .8em"
The Mix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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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 de France
(2003)
<-4><#000><color=#fff>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 초기 3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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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2front.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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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1972)

#!end(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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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ve Album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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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ngles / Compilation Album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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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크라프트베르크/디스코그래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라이브[편집]



Meine Damen und Herren, Ladies and Gentlemen, Heute Abend Die Mensch-Machine, Kraftwerk.[63]

[64]

공연을 시작할 때 하는 보코더 인트로가 매우 유명하다.[65] 이 보코더 인트로의 "신사 숙녀 여러분" 부분이 일본어로 녹음되었던 적이 있고, 아예 전체를 프랑스어로 녹음한 버전도 있으며, 2002년 마쿠하리 멧세 공연에선 특이하게도 엄청나게 긴 보코더 인트로가 나왔다. 1981년 9월 11일 오사카, 9월 13일 나고야 공연에선 보코더 인트로가 끝난뒤 오리엔탈 컴퓨터라는 기묘한 추임새가 들어간 적도 있었다.[66] 9월 7일 도쿄 공연에선 이 추임새가 없었다.

공연 시작 10분 전에 이른바 'Pre-show Music'이라는 걸 트는데, 1981년부터 1998년까지 'Home Computer'의 인트로[67]와 컴퓨터 비프음을 무작위로 재생한 음악을 틀었지만, 2002년부터 현재까지 2집 앨범인 Kraftwerk 2의 수록곡 'Klingklang'을 편곡한 음악을 틀어준다.

크라프트베르크의 라이브는 참으로 특이한 사항이 많고, 멤버들의 위치는 항상 고정이다.[68] 또한 당시 최첨단의 장비를 이용해서 곡을 연주하며, 스크린으로 영상을 보여주는 '보는 음악'을 구현하는 밴드이다. 이 점은 컴퓨터월드 투어 때부터 시작되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특징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기술적으로 진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초창기에는 무식하게 큰 기계에 그와 반비례하는 작은 스크린을 무대에 올렸으나, 90년대에 들어 스크린이 점차 커졌으며 2000년대에는 프로젝터의 대형화에 맞춰 공연장을 꽉 채우는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공연한 국가에 맞춰 인사말을 하기도 하며[69], 가사를 해당 국가 언어로 바꿔 부르는 등 이제 그만 방사능 다양한 팬서비스를 발휘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매우 구수한 발음으로 "안녕안-니옹, Auf wiedersehen(또 만나요), Good night."이라며 퇴장했다.[70]

하지만 그들이 한 수많은 라이브 공연 중 앨범으로 제대로 나온건 아래의 'Minimum-Maximum'과 '3-D The Catalogue' 뿐인데, 팬들의 목마름을 대변하듯 수많은 부틀렉들이 나오고 있다.[71]

누가 독일인 아니랄까봐 칼같은 시간감각으로 유명한데, 한국 공연을 예시로 들면 08:00 입장. 08:30 불 꺼지고 앞의 커튼에 영상 송출. 08:50부터 프리 쇼 뮤직 송출. 09:00 공연 시작 10:30분 공연 끝 같은 철저한 일정 그대로의 공연 진행을 보여준다. 2013년 일본 아카사카 블릿츠 공연 이후부터는 가끔씩 앵콜 공연을 하기도 했지만, 2015년 이후부터는 하지 않는다.

파일:Ralf_und_Florian_1973.jpg
라이브 포지션
랄프 휘터
플로리안 슈나이더
1973년도의 Ralf und Florian 시절의 모습. 드러머는 세션을 사용했다.

파일:kw74.png
라이브 포지션
랄프 휘터
카를 바르토스
볼프강 플뤼어
플로리안 슈나이더
1975~1976년도의 라이브 모습.

파일:kw77.jpg
라이브 포지션
랄프 휘터
카를 바르토스
볼프강 플뤼어
플로리안 슈나이더
1977~78년도의 라이브 모습.

파일:kw78.jpg
라이브 포지션
랄프 휘터
카를 바르토스
볼프강 플뤼어
플로리안 슈나이더
1978년도의 라이브 모습.

The Man-Machine 앨범 특유의 붉은 셔츠, 점멸등이 달린 넥타이의 복장을 하고 공연을 한 것이 특징. The Robot을 공연할 때는 멤버들 옆에 멤버들의 모습을 한 마네킹을 같이 세워두고 공연한 적도 있다.

파일:kw81.jpg
라이브 포지션
랄프 휘터[72]
카를 바르토스
볼프강 플뤼어
플로리안 슈나이더
1981년도의 라이브 모습.

Computer World 월드 투어부터 본격적으로 스크린으로 영상을 틀기 시작했다. 무대 세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경력이 있던 볼프강 플뤼어가 설계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 멤버들의 구성이 수평이 아닌 V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또한 뒤의 커다란 콘솔이 특징이며, 'Pocket Calculator'를 공연할 때는 콘솔을 내버려 둔 채 개조된 휴대용 전자악기를 들고 관객 앞으로 나와 공연을 했다. 이는 1998년까지 이어졌다. 또한 팔을 흐느적거리거나 리듬에 맞춰 무표정으로 몸을 흔드는 특이한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파일:kw91.jpg
라이브 포지션
랄프 휘터
페르란도 아브란테스
프리츠 힐페르트
플로리안 슈나이더
1991년도의 The Mix 라이브 투어 모습. 음악적 견해 차이로 탈퇴로 인한 멤버의 변동이 일어나면서 멤버들 앞에 있던 멤버들의 이름이 써진 네온사인이 사라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프리츠 힐페르트는 드럼 시퀀서를 사용하면서도 드럼 스틱으로 직접 치는 일렉트로닉 퍼커션을 사용했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The Robots'을 공연할 때 처음부터 멤버들이 퇴장한 뒤 'Rabótnik'이 연주되며 뒤의 스크린이 내려가면서 진짜 로봇이 등장하게 된다. 영상 참조.[73]


당시의 콘솔 부스의 자세한 모습이 나온 영상. 자기 찍지 말고 로봇이나 찍으라는 프리츠(아, 막내야!)

파일:kw97.jpg
라이브 포지션
랄프 휘터
헤닝 슈미츠
프리츠 힐페르트
플로리안 슈나이더
1997년도의 라이브 모습.

"The Robots"의 로봇 공연으로 멤버들이 잠시 퇴장한 뒤부터 자전거 슈트 유통업체 Bioracer에서 특별제작해 준 기하학적 야광 선이 배치된 자전거 슈트와 스포츠 고글을 착용한 뒤 무대에 올랐으며, 이 당시엔 현재까지도 공개하지 않은 미발매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로봇들에게 자전거 슈트를 입혀두고 공연을 한 전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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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포지션
랄프 휘터
헤닝 슈미츠[74]
프리츠 힐페르트
플로리안 슈나이더
2004년도의 라이브 모습.

사진은 Minimum-Maximum 공연이며, 2002년부터 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사운드를 가상 기술로 대체하여 공연을 했다. 곡의 컴퓨터 프로그램화가 진행되며 뒤의 거대한 콘솔이 사라지고 멤버들의 개인 콘솔의 소니 VAIO 노트북으로 대체되었다. 이때부터 연주 전부를 직접 하지 않고 시퀀싱 장비로 라이브를 했다. 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인지 마우스로 트랙볼을 사용했으며, 현재까지도 로지텍 사의 트랙맨 마블을 사용하고 있다. 콘솔은 수평으로 보이지만 사실 약간 V자 형으로 배치되었다.

의상은 3버튼으로 된 투피스 수트로 통일.[75] 여기에 The Man-Machine 앨범의 붉은[76] 셔츠와 점멸등이 달린 넥타이를 하고 나왔으며 2006년까지 이어졌다. 또한 "The Robots"의 로봇 공연으로 멤버들이 잠시 퇴장한 뒤부터는 야광 선의 자전거 슈트로 갈아입은 상태로 다시 등장했다.

또한 4개로 작게 나눠져 있었던 스크린이 본격적으로 가로로 3분할되어 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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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포지션
랄프 휘터
헤닝 슈미츠
프리츠 힐페르트
스테판 파페
2009년도의 라이브 모습.

공식 라이브 복장으로 라이더용 검은색 재킷을 착용했으며, 야광 선이 배치된 자전거 슈트를 착용하기도 했다.

플로리안 슈나이더의 은퇴로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이란 직책을 새로 만들며 클링 클랑 스튜디오의 라이브 비디오 제작 담당이었던 스테판 파페가 라이브 멤버로 영입되었다.

스테판 파페가 정식 멤버로 편입되고 나서 독일 볼프스부르크, 영국 맨체스터, 덴마크 랜더스 등 일부 공연엔 3D 영상을 틀어 주면서 공연을 보는 관객들에게 3D 안경을 나눠주었다. 사진은 3D 영상화의 과도기적 연출.
파일:kw11.jpg
라이브 포지션
랄프 휘터
헤닝 슈미츠
프리츠 힐페르트[77]
스테판 파페
2011년도의 라이브 모습. 이때부터 노트북 대신 터치식 태블릿과 패드를 사용하게 되어 콘솔이 더 깔끔해졌으며, 콘솔 구성이 V자에서 완전한 수평으로 변경되었다.

2011년부터 가로로 3분할이던 스크린을 2x2형태로 총 4개의 스크린으로 더욱 크게 바꾼 뒤 완전히 3D로 공연을 진행하게 됨에 따라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있다. 이 점은 플로리안 슈나이더가 은퇴한 뒤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이라는 그룹 내 직책을 새로 만들면서 생긴 변화로, 그들이 말하는 "보여주는 음악"을 극대화하는 장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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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포지션
랄프 휘터
헤닝 슈미츠
프리츠 힐페르트
팔크 그리펜하겐
2015년도의 라이브 모습.

기하학적 선이 배치된 자전거 슈트가 시그니처이자 공식 라이브 복장이 되었으며, 흰색 야광, 초록색 야광으로 총 두 버전의 슈트가 있다. 3-D The Catalogue 프로젝트의 시작인 2012년 뉴욕 MoMA 공연부터 착용하는 흰색 선이 배치된 자전거 슈트를 더 자주 착용한다.[78]

2013년부터 스테판 파페의 탈퇴로 인해 팔크 그리펜하겐이 영입되며 'Autobahn'부터 'Tour de France'까지의 모든 곡의 3D 영상이 제작되었고, 앨범 8개 전부를 앨범마다 8일 동안 따로 라이브 하는 3D 더 카탈로그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뉴욕 MoMA 공연을 시작으로 2013년엔 그들의 본거지인 뒤셀도르프, 영국 테이트 모던, 일본 아카사카 블릿츠, 오스트레일리아 오페라 하우스를 거쳤다. 2014년엔 로스앤젤레스에서 공연을 무사히 끝마쳤다.[79] 그 이후에 11월엔 프랑스 파리에서, 그리고 2015년에는 베를린과 암스테르담, 코펜하겐의 무대에 서기도 했다.

2013년부터 독일어 공연/영어 공연이 명확하게 정리되었다. 이전엔 네덜란드나 스위스처럼 독일어 영향이 강한 동네에선 독일어 라이브를 했었지만, 2013년부터는 영어 버전으로 공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2023년부터는 헝가리, 스위스 등의 독일어권 국가에서 다시 독일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영상은 보잉 붐 짝, 테크노 팝, 뮤직 논 스톱.
2015년 스파이캠으로 크라프트베르크의 콘솔부스가 공개되었다. 멤버 4인방의 전용 커스텀 콘솔부스가 자세하게 확인되었다.

2013년 서울 공연에서는 FOH(음향 컨트롤부스)에 맥북 2대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현재 FOH의 엔지니어는 서지 그라페이며, 서지 그라페의 인터뷰 영상에서 FOH의 모습과 하는 일들을 자세하게 볼 수 있다.

2015년 9월부터 더욱 향상된 3D 라이브를 개시했다. 또한 이전과는 다른 영상과 사운드를 보여줄 것이라고 언급했다. 롤링스톤지에 언급된 랄프 휘터의 말은 이렇다. "우리는 공연을 3D로 완전히 전환하려 한다. 사운드 역시 서라운드 사운드로, 3D 사운드를 보여주려 한다. 이미지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고 이를 정리하고 음악과 맞추었다. 프로덕션에 많은 노력을 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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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포지션
랄프 휘터
헤닝 슈미츠
팔크 그리펜하겐
게오르크 본가르츠
현재(2023~)의 라이브 모습.

2023년 남미 투어부터 프리츠 힐페르트의 부재로 인해 팔크 그리펜하겐이 프리츠의 자리로 옮겨졌으며, 빈자리엔 새로운 멤버인 게오르크 본가르츠를 영입했다. 또한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는 3D 공연을 더 이상 선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있다. 하지만 기존에 있던 스크린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의 무대 뒤 석조 건축물이나 독일 카를스루에 성 벽면 전체를 스크린으로 쓰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줬다.

또한 흰색 선, 초록색 선밖에 없었던 자전거 슈트는 곡의 분위기에 맞추어 직접 선의 색이 바뀐다. 위의 사진은 ' Home Computer'의 라이브 사진으로, 영상에 맞춰 슈트의 선이 가지각색으로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2023년은 지난 공연들보다 라이브 실수나 오류가 많은 해이기도 하다. 프리츠의 부재로 인한 포지션 변경 때문인지 영상 송출 오류는 기본에 연주에 실수가 잦다. 2023년 7월 7일 이탈리아 피렌체 공연에선 'Music Non Stop' 진행 도중 정전이 일어나 랄프 휘터가 어쩔 수 없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퇴장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2023년 9월 14일 스위스 취리히 공연에선 공연 내내 영상이 나오지 않기도 했다.[80]

6.1. 내한공연[편집]


2013년, 2019년 총 두 차례의 내한 공연을 가졌다.


6.1.1. 2013년[편집]


2013년 4월 27일 자로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를 통해 첫 내한이 확정되었고, 3월 25일에 현대카드 소지자 한정으로 인터파크에서 티켓 예매를 열었는데 100여 석이 순식간에 동났고, 다음 날 12시에 시작된 일반 판매에서도 700여석이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국내에도 크라프트베르크의 내한을 바란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어쩌면 국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하면 다시 찾아와서 한글번안된 Radioactivity를 연주할 수 있을지도... 전혀 좋은 게 아니잖아


공연 녹음 부틀렉. 공연 진행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The Robots[81]
2. Spacelab
3. Metropolis
4. Numbers
5. Computer World
6. It's More Fun To Compute
7. Home Computer
8. Pocket Calculator
9. Dentaku[82]
10. Computer Love
11. The Man Machine
12. The Model
13. Neon Lights
14. Autobahn
15. Tour de France
16. Prologue
17. Tour de France Etape 2
18. Vitamin
19. Geiger Counter
20. Radioactivity
21. Trans-Europe Expeess
22. Metal On Metal
23. Abzug
24. Planet of Visions
25. Aéro Dynamik
26. Boing Boom Tschak
27. Techno Pop
28. Music Non Stop

'Radioactivity'는 2012년 일본 NO nuke 공연부터 1절을 사카모토 류이치가 작사해준 일본어로 개사해 불렀는데, 한국에서도 일본어 버전으로 공연했다. 그러다 2절에서는 "Stop Radioactivity" 부분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불렀는데, 랄프 휘터 본인이 직접 번역을 한 건지 아니면 번역기를 돌렸는지 몰라도 이제 그만 방사능이라는 왈도체스러운 표현이 나와 버렸다. 대만에선 "台灣核能停止吧" 라고 한자의 축약 버프를 받아 나름 깔끔하게 번역. 일본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어로 바꿔서 해결했다.


6.1.2. 2019년[편집]


2019년 공연 소식이 들리기 전까진 크라프트베르크의 연령상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은 2013년 공연이 마지막일 거란 의견이 확고했었다. 따라서 크라프트베르크의 공연을 보고 싶으면 다시 내한하길 마냥 기다려서는 안 되고 직접 독일로 가야 할 줄 알았는데, 2019년 월드 투어에서 아시아 지역도 다시 방문하는 것이 확인되어 2019년 4월 26일 올림픽홀 일정으로 두 번째 내한 공연이 확정되었다.[83] 그러나 이번엔 홍보가 적었는지, K-POP 등의 대중가요의 위상에 묻힌 건지 공연 시작 1주일 전 기준으로 좌석이 절반도 채 차지 않았다.[84] 때문에 공연 취소에 대한 우려도 곳곳에서 흘러나왔는데, 정반대로 한국 공연 1주일 전 일본 오사카, 도쿄 공연 때는 티켓 오픈 하루 만에 전 일정이 매진되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공연 몇 시간 전을 앞두고 매진에 가까울 정도로 예매가 되어 좌석이 거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현장 예매로 들어온 관객도 엄청 많아 공연장이 가득 찼다.

2019년 공연 역시 순조롭게 진행된 듯했으나, 몇몇 관객들에게는 3d 안경이 거꾸로 접힌 채 지급되었다. 또 보안요원이 동영상 촬영을 금지하는 바람에 실랑이가 벌어진 듯 했으며[85], 특히나 이번 공연은 엄연히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찍는 관객들이 많았다.[86]

관객들이 매너를 잘 지키지 못했단 평도 들려오고 있다.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친다거나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처럼 뛰어대고, 곡이 연주되는 도중에도 함성을 지른다거나 등등.[87] 비트가 흥겨운 'Numbers'나 'Music Non Stop'이면 몰라도, 분위기가 차분한 'Autobahn'이나 'Neon Lights'가 나올 때마저 관객들이 억지로 비트에 맞춰 춤을 추거나 하는 장면을 보고 외국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 심지어는 캔맥주까지 마셨다고 한다.

또한 1주 전 일본에서 진행한 라이브와 비교했을 때 서울 라이브의 규모가 너무 작다는 평도 있다.[88] 그래도 공연 시설 자체는 2013년보다 좋았다는 평이 대세다. 2013년엔 음향은 좋았지만 대형 천막 공연이라 말이 좀 있었던 편.


공연 녹음 부틀렉. 공연 진행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Numbers
2. Computer World
3. It's More Fun To Compute
4. Home Computer
5. Computer Love
6. The Man Machine
7. Spacelab
8. The Model
9. Neon Lights
10. Autobahn
11. Geiger Counter
12. Radioactivity
13. Electric Café
14. Tour de France
15. Prologue
16. Tour de France Etape 1
17. Chrono
18. Tour de France Etape 2
19. Trans-Europe Expeess
20. Metal On Metal
21. Abzug
22. The Robots[89]
23. Robotronik[90]
24. Pocket Calculator
25. Dentaku
26. Aéro Dynamik
27. Planet of Visions
28. Boing Boom Tschak
29. Techno Pop
30. Music Non Stop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는 'The Robots' 순서에서 무대 위에 로봇을 세워두고 퍼포먼스를 펼쳤다는 점이 있다. 최근 공연까지는 본인들이 나와 직접 진행했지만 이번 한국, 일본, 중국 공연에서는 간만에 로봇을 무대 위로 등장시킨 셈. #

또한 지난 내한 때와 같이 'Radioactivity'의 "Stop Radioactivity" 부분을 한국어로 번역한 이제 그만 방사능을 불러야 할 때 랄프 휘터가 J 발음을 독일어 식으로 헷갈렸는지 "이여 그만 방사능"이라고 발음했다.[91] #

라이브 도중 발생한 실수로는 'Numbers'에서 'Computer world'로 넘어갈 때 박자가 살짝 밀린 것과 'Spacelab'에서 랄프 휘터가 잘못된 음을 연주한 것, 위에서도 언급한 "이여 그만 방사능", 'Tour de France Etape 2'에서 박자가 잠시 반 박자 밀린것이 있다. 하지만 모두 수십년의 라이브 경험으로 인한 대처로 부드럽게 넘어갔다.

'Spacelab' 공연에서는 여느때랑 같이 지도에서 한국을 클로즈업 하며 팬서비스를 하였으며, 마지막에는 UFO가 서울 위로 비행하는 듯한 장면이 나오더니 당일 공연이 이루어진 올림픽 홀 앞에 착륙하면서 곡을 마무리.[92] #

맴버들은 공연이 끝나고 다음날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 들리는 등 잠깐의 서울 구경을 하고 바로 다음 국가로 출국했다고 한다.

공연 이틀전날 오사카발 서울행 아시아나항공 비행기 안에서 이들을 목격했다는 목격담이 있다. 비즈니스클래스에 타고 있었다고 한다.

공연 직후 트위터의 실시간트윗 랭킹 1위가 '크라프트베르크' 였는데 2위가 아이러니하게도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였다. 때문에 이를 본 팬들이 트위터에서 '이제 그만 방사능'을 외치며 드립을 치는 바람에 '이제 그만 방사능'도 3위로 나란히 실트에 오르는 웃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6.1.2.1. 논란[편집]

크라프트베르크의 공연 방식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다들 'Radioactivity'의 초반부의 일본어로 "日本でも放射能"가 나올 때와 'Pocket Calculator' 스크린의 일본어 '電卓'가 나올 때, 일본어가 나왔다는 이유로 기분이 상했다는 혐일 한국인 팬들에 의해 논란이 제기되었다. 심지어 크라프트베르크가 일본과 한국을 헷갈린 게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하고[93], 빈정이 상해 공연 도중 나간 사람이 있었을 정도. 크라프트베르크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관객조차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생각해 적어도 한국에서 공연을 하려면 영어로 했어야 한다."는 주장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팬들 사이에서도 이번 내한공연 만큼은 극찬하는 분위기지만 라이브 도중에 일본어가 나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 걸 보면 꽤나 복잡한 모양새다. 또한 공연 날짜가 더 늦었다면 반일감정이 최고로 고조되던 7월 2019년 일본 상품 불매운동시기와 맞물려 비난이 더욱 커지는 상황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또한 혐한 일본인 팬들 역시 반일감정이 기본인 한국인들 앞에서 'Radioactivity'를 일본어 및 Fukushima가 들어간 버젼으로 연주한 것에 대해 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유는 이 곡에 대한 관객들의 함성과 호응이 연주에 대한 게 아니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조롱하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기 때문. (덧글 참고) 또한 5ch에서는 크라프트베르크의 이 행보에 대해 "한국인의 반일감정만 더욱 심화시킨다."며 크라프트베르크에게 실망했다는 반응이 올라왔다. 더불어 "한국 따위 아예 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주장과 "Radioactivity를 연주 리스트에서 빼거나 최소한 영어 버전으로 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해외 아티스트의 한국 공연에서 비슷한 사례로는 Porter Robinson이 한국에서 내한공연을 하는 도중 마찬가지로 일본어 가사로만 이뤄진 'Flicker'를 틀었다가 욕을 먹었던 사례와 비슷하다.


6.1.2.2. 반박[편집]

크라프트베르크의 공연 방식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공연 도중 등장하는 일본어가 뜬금없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비난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이, 'Pocket Calculator'는 발표 직후의 월드 투어에서 공연이 진행되는 지역 언어[94]로도 번역되었고, 나중에 싱글 커트될 때는 A사이드는 'Pocket Calculator', B사이드는 'Dentaku(電卓)'로 영어와 일어 버전이 양면에 수록되었다. 이후 공연에서도 'Pocket calculator - Dentaku'는 곧잘 연속되는 곡처럼 연주되었다. 딱히 일본에서만 팬서비스 삼아 일본어로 공연한게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공연 셋리스트에 'Pocket calculator'가 포함되면 'Dentaku'도 그 다음 곡으로 거의 따라 왔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공연한 것이다. 또한 현재 라이브 공연 음원의 표준이 되는 '3-D The Catalogue'에서도 'Pocket calculator / Dentaku'로 둘이 서로 믹스되었다. 애시당초 일본, 한국을 감안해서 넣고 뺄 게 아니었을 것이며, 곡이 발표되었던 80년대 초반의 분위기와 당시 전자계산기를 가장 많이 찍어 내던 나라가 어딘지를 생각한다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Radioactivity'가 시작할 때, "이제 그만 방사능"이 나올 줄 알고 카메라를 들었다가 일본어를 보고 실망한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Radioactivity도 2012년 NO NUKE 공연 이후로 1절이 일본어 가사로 바뀌며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라이브에서도 일본어로 공연을 했으며, 2017년도에 발매된 '3-D The Catalogue'에서도 Radioactivity는 일본어 가사 그대로 수록되었다. 크라프트베르크가 일본과 한국을 헷갈린 게 아니냐는 주장이나 일본권이나 한국권이나 비슷한 문화라 생각하고 일본어 버전을 넣은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7. 기타[편집]


  • 데이비드 보위는 랄프 휘터와 플로리안 슈나이더를 위한 헌정 음악을 낸 적이 있고, 크라프트베르크가 Trans-Europe Express 앨범으로 활동하던 시절 직접 공동 작업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한(...) 전적이 있다.[95] 크라프트베르크는 다른 뮤지션과의 개인적인 친분에 따른 협연과 공동작업을 전부 마다하진 않았지만[96] 그룹 간의 공동작업은 모두 거절했다. 밴드 자체의 독립적인 성향으로 여기는게 옳을 것이다. 때문에 크라프트베르크의 곡을 다른 아티스트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리믹스하는것을[97] 철저하게 거부한다. 그러나 아마추어가 비상업적으로 사운드클라우드나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하는 것까지는 눈감아주는 듯하다.

  • 사생활을 편집증적으로 알려주려 하지 않는 그룹인데다, 당장 멤버들이 뭘 하고 지내는지 알 수 있는 정보도 별로 없었다. 랄프 휘터는 채식주의자이다, 자전거 타는 게 취미다 등 단편적. 전 멤버 플로리안은 그나마 좀 알려져 있는 편인데, 뒤셀도르프 주변과 피렌체에 살고 있으며 딸이 하나 있고 아버지가 쾰른-본 국제공항 설계를 담당한 건축가라고 한다. 이는 자기들을 대신하여 로봇들에게 공연을 시키거나 인터뷰장에서 로봇을 내세우고 대리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98] 그 정점에 도달한다.(..) 물론 멀쩡한 인터뷰도 많긴 하다. 전 멤버 플로리안 슈나이더도 인터뷰 한 번 따기 힘든 데다 심지어 기묘하게 하기로 유명했다.

  • 페르난도 아브란테스는 29세[99], 프리츠 힐페르트는 33세[100], 헤닝 슈미츠는 37세, 스테판 파페는 29세[101], 팔크 그리펜하겐은 무려 43세에 영입했다. 반대로 플로리안 슈나이더는 61세에[102], 카를 바르토스는 38세에, 볼프강 플뤼어는 40세에 나갔다.

  • 일본에서는 Computer World의 Dentaku(電卓) 표지에서도 나와 있듯이 'クラフトワーク'로 표기하며, 독일식 발음으로 "크라프트베르크"라고 발음하는 한국과는 달리 영어 발음으로 "쿠라후토와-쿠"라고 발음한다.

  • 중국어로는 '发电厂乐团(fādiànchăngyuètuán)'라 하는데 직역하면 '발전소악단'(...).

  • 사실 'Autobahn' 시절만 해도 머리 덥수룩하게 기른 히피(?)비스무리한 모습이었지만 제대로 밴드의 로봇스러운 컨셉을 잡은건 'The Man-Machine'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이 공연영상은 'RadioActivity'를 로봇 같은 움직임으로 연주하는 그들의 모습.


  • 80년대 당시 공연. 영상이 좀 많이 충격적이다. 주의! 노약자 및 심약자 시청 금지[103]
1981년 12월 8일의 비엔나 공연으로, 오스트리아 방송국에서 방영하였다. 이 영상의 베타맥스 리마스터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하임컴퓨터
타셴레시너

  • 과거 한국 뉴스에도 음악이 나온 적이 있다. 사용된 배경음악은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Autobahn, Die Roboter 2개, Metropolis, Spacelab 2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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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브 도중 실수 모음집, 압권은 'Autobahn' 연주 도중 오류가 나서 반주가 나오지 않자 랄프가 기름이 다 떨어졌다고 드립을 치거나(...) 'Spacelab'에서 블루스크린이 뜬 것.

  • 고두익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뻘글중에 어셔는 아버지가 야속해는 의미불명의 키워드 나열중[104] 크라프트베르크에 대한 레퍼런스가 좀 있는듯 하다. 'Boing Boom Tshack'이 언급된다거나, 마지막에 지금은 없어진 락 관련 사이트의 크라프트베르크 가사해석으로 추정된 링크를 걸어놓은것도 있고. 사실 고두익에게 큰 영향을 준 음악조류중 하나가 80년대의 인더스트리얼(특히 독일의 노이바우텐)이었고,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들도 독일 인더스트리얼, 크라우트록과 간접적으로 연관되어있다보니 크라프트베르크의 영향도 다소 받았을것으로 추정된다.

  • 이렇듯 기계처럼 딱딱한 분위기와, 현재도 전 세계에 걸쳐 많은 팬을 거느린 ‘일렉트로니카’라는 장르의 사실상 창시자라는 점 때문에 픽시브에선 하츠네 미쿠케이온!, YMO[105]와 엮어 그린 팬아트가 종종 보인다.

  • 현재 멤버들이 탈모가 있는 편인데, 전성기 시절의 멤버들은 플로리안을 제외하곤 탈모가 없지만, 현재 활동하고 있는 멤버들은 랄프 휘터를 제외하고선 탈모가 심한 편이다. 헤닝 슈미츠는 탈모로 인해 아예 머리를 삭발했으며, 팔크 그리펜하겐은 U자 탈모가 진행 중이다. 게오르크 본가르츠는 원형 탈모가 있다.


8. 관련 문서[편집]


[1] 현재 활동 중단 상태.[2] 다만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한 조르조 모로더장 미셸 자르처럼 앨범을 내지는 않는 상태.[3] 각종 인터넷에선 이들의 장르를 크라우트록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엄밀히 따지면 크라우트록은 파우스트 등 밴드 사운드 위주로 구성된 음악이며 신디사이저 사운드에 기반한 유명 독일 밴드들은 최초의 크라우트록 사운드와는 거리가 있다. 크라프트베르크에 크라우트록이라는 말을 쓴다면 정통 프로그레시브에 가까운 독일 밴드도 크라우트록, 당시 독일 일렉트로니카도 크라우트록, 팝스런 곡도 난해한 곡도 크라우트록이다. 당장 비교해 보고싶다면 크라프트베르크와 캔의 아무 곡이나 들어볼 것. 그러나 크라우트록이 딱히 어떤 장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1970년대 서독 대중음악을 묘사한 여러 표현들 중 하나라는 의견도 있다. Ulrich Adelt(2012)의 Machines with a Heart: German Identity in the Music of Can and Kraftwerk나 John T. Littlejohn(2009)이 쓴 Kraftwerk: Language, Lucre, and Loss of Identity 참조.[4] 지나친 기술문명 예찬론자들일 거라는 생각[5] 현재 라이브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팔크 그리펜하겐이 음악 및 미디어 연구소에서 강사로서 오디오 시각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6] 하지만 독일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영국 RCA에서 겨우 출시했지만, 앨범이 발매된 당시 오가니제이션은 해체된 후였다.[7] 이 스튜디오는 훗날 크라프트베르크의 개인 음악 스튜디오인 클링 클랑 스튜디오가 된다.[8] 이들이 작업한 음악 중에 블랙 사바스를 연상시키는 헤비메탈 풍의 곡도 포함되어 있는데, 잘 들어보면 노이!의 느낌이 살짝 풍겨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9] 자세히 보면 볼프강의 얼굴이 다른 멤버들의 사진에 비해 어색해 보이는데, 이는 원래 에밀 슐트의 사진이었으나 볼프강이 정식 멤버로 편입되고 에밀 슐트가 투어 매니저로 빠지면서 에밀 슐트의 얼굴을 볼프강 플뤼어의 얼굴로 바꿔 붙였기 때문이다.[10] 동명의 타이틀 곡인 'Autobahn'은 22분 47초에 달하는 대곡이다. 현재 라이브에서는 3-D The Catalogue 앨범에 수록된 버전에서 더 줄인 9분 버전을 사용하고 있다.[11] 플로리안 슈나이더를 제외한 초기의 크라프트베르크 멤버들의 모습은 머리를 기른 전형적인 히피 사이키델릭 록 뮤지션에 가까웠다. 그런데 여기에 안경까지 쓴 랄프 휘터의 모습이 대서양 건너의 손자뻘 후배 뮤지션인 스크릴렉스와 비슷해 잠깐 재조명되기도 했다.[12] 대신 크라프트베르크는 다음 앨범 타이틀곡 'Trans-Europe Express'의 가사에 Station to Station, 데이비드 보위와 이기 팝을 언급하며 화답했다.[13] 결국 랄프 휘터는 2003년에 자전거 앨범 'Tour de France'를 제작하게 된다.[14] 원래 앨범을 'Techno Pop'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하려고 했으나, 수록곡 제목이기도 한 'Electric Café'로 바꾸어 발매했다. 이후 2009년 리마스터 때 제목을 'Techno Pop'으로 다시 정정한다.[15] 이후 2009년 리마스터에서 'Tour de France'로 이름을 줄인다.[16] 전자. 크라프트베르크부터 테크노까지[17]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다프트 펑크, 장 미셸 자르 외에도 많은 전자음악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전시되었다.[18] 3D 공연을 시작한 후 크라프트베르크의 공연 포스터나 공식 사이트의 공연 정보란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항상 "3-D"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는데, 2023년 공연에선 표기되지 않았다.[19] 'Ralph'가 아니라 'Ralf'로, 일본에서는 ラルフ・ヒュッター로 표기.[20]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헤드 마이크를 장착하며, 노래를 부를 때 마이크 반대편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는 버릇이 있다.[21] 1971년 당시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8개월 동안 크라프트베르크 활동을 잠시 중단한 적도 있었다.[22] 카를 바르토스의 증언에 따르면, 1981년 월드 투어를 마친 후 랄프 휘터는 자전거를 타며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 날 라인강 댐에서 사이클팀과 자전거를 타다 어떤 라이더와 충돌하는 사고가 났고 두개골이 골절돼 거의 사망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이후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랄프 휘터의 첫마디는 "내 자전거 어디 있어?"(...)였다고 하지만, 이는 랄프 휘터가 인터뷰에서 약간 과장된 것 같다며 부정했다.[23] 영상에서는 아우토반 공연 중 반주가 잠깐 멈추자 기름이 다 떨어졌다며 드립을 친다.[24] 랄프 휘터는 공연 활동을 제외한 평상시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25] 크라프트베르크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의 관리자이기도 하다.[26] 일본에서는 ヘニング・シュミッツ로 표기.[27] 라이브 멤버가 아닌 스튜디오 사운드 엔지니어 활동[28] 라이브에선 보통 키보드로 베이스 라인이나 메인 멜로디를 연주하거나 이펙터, 이퀄라이저 등을 조정한다.[29] 앨범 'The Man-Machine', 'Electric Café'에서도 크레딧에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30] 파일:hs1991.jpg[31] 2017년부터 Arturiaminilab mk2로 바꾸었다.[32] '힐퍼트'가 아니라 '힐페르트'로 부르며, 일본에서는 フリッツ・ヒルパート로 표기.[33] 전 멤버였던 카를 바르토스와 생일이 같다.[34] 사진에서 사용하는 앱은 MIDI 컨트롤러 프로그램인 'Lemur'이다.[35] 일본에서는 ファルク・グリーフェンハーゲン으로 표기. 독일식 발음으로는 '포크'가 아닌 '팔크'로 발음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특이한 이름이지만 실제 본명이라고 하며, 많은 사람들이 성인 그리펜하겐의 철자를 틀린다고 언급한다.[36] 한 번 정해진 자리를 옮긴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Music Non Stop'의 마지막 솔로 파트는 원래 맨 끝자리에 있었던 팔크가 퇴장하며 시작되는 것이었는데, 2023년부터 게오르크가 퇴장하며 팔크가 솔로를 시작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0년만에 공개된 팔크의 일렉트로닉 퍼커션 솔로는 프리츠 힐페르트의 솔로와는 확실히 다른 샘플 위주의 화려한 연주이다.[37] 2011년 발매한 크라프트베르크의 아트북인 'KRAFTWERK 3-D'의 크레딧에도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38] 이 때문에 스테판 파페가 활동했던 당시에 만든 'The Robots'의 비디오에선 스테판 파페의 로봇이 그대로 나온다. 2015년 1월엔 나중에 나오는 로봇 단독샷에서 스테판의 머리를 팔크의 3D 모델링 머리로 합성(...)하다가 4월 이후부터 제대로 찍은 단독샷을 사용한다. 하지만 단체샷은 새로 찍지 않았다.[39] 프리츠 힐페르트의 장비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나, 리본 컨트롤러나 페달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40] 사진에서 사용하는 앱은 MIDI 컨트롤러 프로그램인 'Lemur'이다.[41] 공연 후 다 같이 먹을 피자를 주문하려고 했다는 듯 하다(...). 사실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이라는 직책이 라이브 연주엔 큰 관여를 하지 않는 특수한 직책이기 때문에 딴짓하는 모습이 가끔 포착된다.[42] "Music Non Stop"의 퇴장 전 솔로 파트에선 예전 팔크의 포지션처럼 솔로를 하지 않고 퇴장하며 남은 멤버들의 솔로 파트 시작을 알렸다.[43] 플로리안의 집안은 대대로 내려오는 건축 및 조각가 집안이었다.[44] 랄프 휘터에 증언에 따르면, 플로리안은 이미 오래 전부터 크라프트베르크에 관여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플로리안의 은퇴는 예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는지 2008년 공연엔 스테판 파페의 로봇이 바로 등장한다.[45] 2004년 아르비카 공연에서는 털모자를, 2006년 독일 Sonne Mond Sterne 공연에서는 베레모를 쓰고 나왔다.[46] 'The Telephone Call' 한정[47] 크라프트베르크에 가입할 당시엔 밴드의 막내였다.[48] 카를은 이 당시를 회상하며 랄프 휘터와 플로리안 슈나이더를 "핸드 브레이크를 잡은 자동차"라고 비유했다. 당시 카를은 작곡 영감들이 넘쳤고 앨범을 빠르게 작업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소하려 했으나, 랄프와 플로리안은 음악을 완성하거나 발표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어 보였다고 언급했다.[49] 현재 카를 바르토스의 밴드인 Electric Music은 크라프트베르크에서 카를이 작곡했던 곡들을 편곡하여 라이브에서 연주하고 있다. 랄프 휘터와는 확실히 다른 카를 바르토스의 감성적인 보컬이 특징.[50] 일본에서는 ヴォルフガング・フリューア로 표기. 독일식 발음으로는 '울프강'이 아닌 '볼프강'으로 발음한다.[51] 당시 출연했던 방송. 연주하는 음악은 Ralf und Florian 앨범의 'Tanzmusik'이다.[52] 자신과 똑같이 일렉트로닉 퍼커션으로 가입했다가 작곡까지 담당하면서 입지가 커진 카를 바르토스와는 정반대였다. 또한 앨범 Computer WorldTechno Pop에선 표지엔 얼굴이 등장하지만 녹음엔 참여하지 않았다.[53] 영어 버전: I Was a Robot[54] 크라프트베르크가 1970년대에 사용한 일렉트로닉 퍼커션을 발명했다고 적혀 있지만, 정작 특허 기록에는 플로리안 슈나이더와 랄프 휘터가 창작자로 올라가 있는 상태.[55] 포르투갈식 이름으로, 'Fromm'은 어머니의 성이고, 'Abrantes'는 아버지의 성이다.[56] 그 당시에는 크라프트베르크 내에서 막내였다.[57] 일본에서는 シュテファン・プファフェ로 표기.[58] 비공개 계정이지만 팔로우 신청은 가능하다.[59] 대부분 라이브의 마지막 곡 'Music Non Stop'이 끝나갈 때 쯤 솔로 연주를 하고 퇴장하던 플로리안과는 달리 솔로 연주를 하지 않고 바로 퇴장한다. 이는 후임 라이브 테크니션 멤버들도 동일.[60] 무려 'The Man-Machine' 앨범이 나오고 1년 후에 태어났다. 크라프트베르크의 정식 멤버가 되었을 땐 29세였으며, 32세에 탈퇴했다.[61] 현재 공연 시작 전 틀어주는 프리 쇼 음악이기도 하다.[62] 이외 예전 스튜디오는 머천다이징 판매나 사무실 같은 게 따로 놀고 있어서 하나로 합칠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메에르부슈-오스테라스는 휘터의 고향인 크레펠트 바로 남쪽에 붙어있는 동네기도 하다.[63] 신사 숙녀 여러분,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밤의 기계인간, 크라프트베르크.[64] 원래는 뒷 문장이 Heute Abend Aus Deutschland(오늘 밤 독일에서 온) Die Mensch-Machine, Kraftwerk였지만, 3D 공연을 처음 시작한 2009년부터는 빠지게 된다.[65] 이 보코더 인트로가 제일 처음 확인되는 시점이 1976년이다. 그 때부터 자신들을 기계 인간이라고 자칭해 온 듯 하다.[66] 부틀렉 이름도 그래서 오리엔탈 컴퓨터. 다만 2000년대 후반부터는 안 한다.[67]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사의 장난감 Speak & Spell의 부팅음과 종료음을 샘플링했다.[68] 멤버가 탈퇴하면 후임 멤버가 그 자리를 맡는다. 때문에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랄프 휘터는 50년 동안 변함없이 제일 왼쪽의 포지션을 맡고 있다. 다만 이 전통은 2023년 프리츠 힐페르트의 부재로 인한 팔크 그리펜하겐의 포지션 변경으로 깨지게 되었다.[69] 간혹 엔딩곡 도중 퇴장 시 시크하게 그냥 나간 적도 있다. 대략 'The Mix'를 발매한 뒤인 1990년대 중후반부터 'Tour de France' 발매 전인 2002년까지는 랄프 휘터가 아무런 작별인사 없이 퇴장했었다. 'Minimum-Maximum' 이후부턴 다시 작별인사 후 퇴장한다.[70] 2013년 한정. 2019년 공연에선 특별한 멘트 없이 "Good night, Auf wiedersehen."라며 퇴장했다.[71] 2013년 4월 27일에 한 서울 공연과 2019년에 한 라이브도 부틀렉이 있다.[72] 이때부터 헤드 마이크를 착용하고 나오기 시작했다.[73] 이후 2004년부터 2018년까지 곡 시작 전 미리 로봇을 세운 뒤 'The Robots'을 틀어놓지만 2019년부터는 이 당시의 라이브처럼 멤버들 퇴장 후 'Rabótnik'부터 스크린이 내려가 스크린 뒤의 로봇이 등장하는 식으로 돌아왔다.[74] 2005년 The Electric Picnic과 2006년 모든 공연에서는 안경을 착용했다.[75] 공연 시작 시점이 겨울이었기 때문.[76] 2005~06년 공연에서는 회색[77] 2011년도 당시는 안경을 쓰고 나왔다.[78] 보통은 'The Robots'의 로봇 공연으로 멤버들이 잠시 퇴장해 있을 때 초록색 선 슈트로 갈아입는다. 2019년부터는 초록색 선 슈트를 로봇에 착용시켜서인지 흰색 선 슈트만 착용했다.[79] 빈 공연은 뒤셀도르프 공연 이후의 독일 버전 공연이었다.[80] 하지만 오히려 영상이 없기 때문에 멤버들의 모습과 사운드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평이 있다.[81] 로봇이 등장하는 버전이 아닌 본인들이 직접 라이브하는 버전으로 진행되었다.[82] 시간문제상 축약되었다.[83] 공교롭게도 제시 제이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올림픽 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2차 내한 공연을 진행했다. 그래서 SNS에서는 관객들이 길을 헷갈렸다는 얘기가 종종 나왔다.[84] 그래서 그런지 일부 팬들은 이 공연이 열리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고 참여를 못 해 굉장히 안타까웠다는 댓글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85] 공연 초반에는 보안요원들이 영상 촬영을 단속했지만, 찍는 사람이 너무 많아 공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아예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86] 이는 분명한 저작권 침해이다.[87] 하지만 스타인버그와 프리츠 힐페르트의 인터뷰에서 프리츠는 예상치 못한 호응을 해준 나라에서 한국을 언급하며 자신은 무대 위의 음악가로서 관객들이 호응하거나 감동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발언했다. 랄프 휘터 또한 'Minimum-Maximum' 발매 당시 호응이 좋았던 칠레 관객들을 언급하며 칠레 공연을 앨범에 넣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표현한 적이 있었다. 또한 일본에서 'Dentaku'를 공연할 때, 관객들의 환호와 떼창에 멤버들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애초에 이들의 고향인 독일에서도 크라프트베르크가 공연할 때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는 기본이다.[88] 당장 일본 라이브의 영상을 보면 스크린이 엄청나게 크다.[89] 멤버들이 퇴장한 뒤 노래와 영상만 나왔다.[90] The Mix 시절의 라이브처럼 스크린이 내려간 뒤 로봇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91] 독일어의 J발음은 영어의 Y발음이 난다. 랄프가 영어로 Ije Geuman Bangsaneung 같이 발음을 영어로 적어 놓아 실수를 한 듯 하다.[92] 이 퍼포먼스는 대부분 공연이 이루어진 장소가 삽입된다.[93] 뒤에서 후술하겠지만 전혀 근거없는 주장이다.[94]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일본어[95] 대신 크라프트베르크는 앨범의 타이틀 트랙 가사에 데이비드 보위를 이기 팝(당시 보위와 함께 서유럽을 돌며 음악 작업 중이었다)과 함께 등장시켜 화답했다. 하지만 The Mix 버전에선 짤렸다.[96] YMO사카모토 류이치[97] 예를 들어 EDM 풍으로 리믹스한 뒤 EDM 페스티벌에서 곡을 트는 행위까지[98] 2009년 당시 BBC 인터뷰[99] 30세에 나갔다.[100] 66세에 개인사정으로 빠졌다.[101] 32세에 개인사정으로 나갔다.[102] 은퇴 후 12년만인 2020년 타계.[103] 영상 중간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거나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이 나오며, 희생자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104] 다만, 상당부분은 고두익의 관심사와 연관이 크다.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라던가 KOF 시리즈 같은것.[105] 이 쪽은 개인적인 친분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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