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즈키 카게마사

덤프버전 :



코즈키 카게마사
上月景正 | Kagemasa Kozuki


파일:Kozuki_Kagemasa.jpg

출생
1940년 11월 12일 (83세)
일본 도쿄 [1]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가족
코즈키 타쿠야 (차남) [2]
학력
오사카전기통신대학고등학교 (1959년 졸업 )
간사이대학교(경제학부 /1966년 학사)
종교
무종교
직업
코나미 홀딩스 대표이사회장, 코즈키 재단 이사장,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협회 초대회장 및 명예회장
소속
코나미(1969년 ~)

1. 개요
2. 경력
3. 수상
4. 비판



1. 개요[편집]


나카무라 요시노부, 미야사코 타츠오와 함께 코나미를 공동으로 창업한 창업주.

사업가로서의 기획력이 뛰어나다. 특히 당시에도 유명한 기업인 토에이(정확히 말해서 반다이)가 쓸모없다고 가차없이 버린 유희왕의 모든것과 더불어 만화가 타카하시 카즈키까지 영입해서 인수해버린 결단력만 봐도 알수있다.[3][4]


2. 경력[편집]


  • 1969년 3월 - 오사카 부 도요나카시에서 코나미를 창업
  • 1973년 3월 - 코나미 공업 주식회사(현 코나미 그룹 주식회사)를 설립, 어뮤즈먼트 기기 제조를 개시
  • 1982년 6월 - 개인 자산을 기부하여 재단법인 고즈키 교육 재단(효고현 허가)을 설립. 이사장으로 취임
  • 1984년 10월 - 업계 최초로 상장회사(오사카 증권거래소 신2부 상장)
  • 1988년 8월 - 도쿄 증권거래소 제1부 상장
  • 1992년 - 오사카 전기통신대학 이사
  • 1996년 8월 -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협회(CESA)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으로 취임(현: 명예 회장)
  • 1999년 9월 - 런던 증권거래소 상장
  • 2001년 - 오사카 전기통신대학에 코나미홀을 기증
  • 2002년 5월 - 일본 경제 단체 연합회 이사 취임
  • 2002년 9월 - 뉴욕 증권거래소 상장
  • 2005년 3월 - 설립한 공익법인 3재단을, 일반 재단법인 고즈키 재단(문부과학성 허가)으로 통합
  • 2012년 6월 - 코나미 홀딩스 대표 이사 회장 취임

3. 수상[편집]


  • 1992년 8월 - 감수포장[5] 수상
  • 1993년 10월 - 통상산업대신 표창(정보화 촉진 공헌 개인 표창) 수상
  • 1996년 5월 - 효고현 문화공로자 지정
  • 1998년 3월 - 학교법인 오사카 전기통신대학 명예 박사 학위
  • 2006년 11월 - 남수포장 수상
  • 2011년 1월 - 감수포장 2번째 수상
  • 2011년 3월 - 네바다 대학 라스베이거스교 명예 박사 학위
  • 2011년 11월 - 욱일중수장 수상
  • 2013년 3월 - 빅토리아 여왕 기념 포상 수상
  • 2022년 5월 - 미시시피주 게이밍 명예의 전당 입성


4. 비판[편집]


주요 비판점으로는 회사 초기부터 직원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갑질, 그리고 명의 권리 박탈, (왜곡되었긴 하지만) 몇몇 실언들과[6], 과도한 저작권법 관련 대응이 있다.

코나미에 영입된 네임드중 미노☆타로의 경우는 코나미쪽으로 관련될시를 제외하고 이름을 쓸 수 없다. 물론 해당 이름의 경우 처음 입사할 때부터 사측에서 부여받은 이름이기에 당연히 권리는 코나미가 가지지만 네티즌들은 시마다 후미카네가 회사를 떠나 스트라이크 위치스로 대박나게 된 영향으로 이러한 이름을 처음부터 딴 곳에게 잘 먹고 살지 말라고 못 쓰게 만든 것 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회사와 관련된 사업을 타사에서 전 직원이 하게 되는 경우 강렬하게 반발하는 것 같다.

이미 이러한 박대 경향은 초기부터 조짐이 있었는데, 코나미/비판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초기 캡콤사의 성장에 지대한 발전을 한 오카모토 요시키의 경우에는 코나미에 근무하며 걸출작을 나 탄생시켰음에도 봉급이 오르지 않아 직원들 몇몇을 같이 데리고 이적했는데,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코나미 사에 출입금지라고 하며, 위와 같은 일은 트레저의 직원들도 똑같이 받았다. 물론 이후엔 트레저는 코나미와 그라디우스 제작을 같이 하는 듯 어느 정도 개선이 되었지만 말이다.

코지마 히데오의 경우, 2015년 4월 1일, 코지마 프로덕션 이사 자리를 박탈당하고 평사원으로 강등되었다 12월 15일 공식적으로 퇴사 조치가 되었는데, 하필 메탈기어 솔리드 팬텀 페인을 개발하고 있던 즈음이라 개발 관련해서 이사회와 갈등을 빚었고, 이로 인해 개발을 금지당하고 토사구팽 되었다는 의견이 많다.

너무 수익 중심의 사업 방식도 문제이다. 2000년대 중반 플레이스테이션 3의 부진으로 새로운 게임 발매 방식을 내놓은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내놓은 프랜차이즈의 작품들이 흥행에서 좋지 못하여 과감하게 오와콘화 시켜버리는 방식도 게이머들이 반발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 그리고 상술한 코지마 히데오가 퇴사하게 된 논란 이후 뻔뻔하게 코나미는 메탈기어 솔리드 브랜드로 파칭코를 제작해 팔았고, 이 점은 게이머들의 분노를 샀다.

[1] 태어난 곳은 도쿄이나 어릴 때부터 효고현과 오사카에서 자랐기에 사실상 그 지역 출신.[2] 코즈키 타쿠야는 후계자로 낙점되기 전부터 대외적인 활동을 해왔는데, 코즈키 카게마사의 장남은 대외활동은 물론 이름도, 무얼 하는지도 알 수 없다.[3] 지금이야 유희왕은 엄청나게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토에이판이 인기가 낮은편이었다. 코나미판 유희왕인 듀얼몬스터즈의 방영과 전폭적인 지원으로 대박이 났다.[4] 거기에 타카하시 카즈키는 홈런왕 강속구 빼고는 당시에 아무것도 내세울게 없는 만화가였다.[5] 공익을 위해 사재를 기부한 사람에게 천황이 주는 감색 리본 기장[6] 대표적으로 ''게임 사업이 부끄러웠다. 게임 사업 이외에 다른 사업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발언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2 07:56:53에 나무위키 코즈키 카게마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