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 브라이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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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 브라이언트의 수상 이력





















파일:kobe 8,24.jpg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영구결번
No. 8 & No. 24[1]
댈러스 매버릭스 영구결번
No. 24[2]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명예의 전당 코비 브라이언트.jpg
코비 브라이언트
헌액 연도
2020년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파일:oscar_logo.svg
단편 애니메이션 상
제89회
(2017년)


제90회
(2018년)


제91회
(2019년)

파이퍼

디어 바스켓볼
(글렌 킨, 코비 브라이언트)

바오
(도미 시)




파일:kobe-bryant.jpg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No. 8 & No. 24
댈러스 매버릭스 No. 24
코비 빈 브라이언트
Kobe Bean Bryant

출생
1978년 8월 23일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사망
2020년 1월 26일 (향년 41세)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칼라바사스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학력
로워 메리언 고등학교
신장
198cm (6' 6")[1][2][3]
체중
96kg (212 lbs)[4][5]
윙스팬
211cm (6' 11")
후원사
아디다스나이키
포지션
슈팅 가드
드래프트
1996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3순위
샬럿 호네츠 지명
[6]
소속 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996~2016)
등번호
8번 - 레이커스[7]
24번 - 레이커스[8]
10번 -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종교
가톨릭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3. 수상 내역
5. 가족
6. 이야깃거리
6.1. 신발
6.2. 맘바 멘탈리티 (Mamba Mentality)
8. 코비와 다른 선수들의 말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미국의 前 농구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슈팅 가드였다.

20년 동안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한 팀에서만 활약하며 5차례의 우승을 거머쥔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원클럽맨으로, 그의 현역시절 등번호 8번과 24번은 둘 다 영구결번되었다.[9]

선수시절 쌓은 업적 뿐만 아니라 맘바 멘탈리티(Mamba Mentality)로 회자되는 강인한 정신력과 치열한 노력이 많은 선수들과 팬들에게 귀감이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2. 생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코비 브라이언트/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수상 내역[편집]


수상 내역
파일:nbachampionfts.png NBA 챔피언 5회 (2000-2002, 2009-2010)
파일:nbachampionfts.png NBA 파이널 MVP 2회 (2009-2010)
파일:NBA 로고.svg NBA 정규시즌 MVP (2008)
파일:NBA 로고.svg 올-NBA 퍼스트 팀 11회 (2002-2004, 2006-2013)
파일:nbaallstatfts.png NBA 올스타전 MVP 4회 (2002, 2007, 2009, 2011)[10]
파일:nbaallstatfts.png NBA 올스타 18회 (1998, 2000-2016[11])
파일:NBA 로고.svg 올-NBA 세컨드 팀 2회 (2000-2001)
파일:NBA 로고.svg 올-NBA 서드 팀 2회 (1999, 2005)
파일:NBA 로고.svg NBA-올 디펜시브 퍼스트 팀 9회 (2000, 2003-2004, 2006-2011)
파일:NBA 로고.svg NBA-올 디펜시브 세컨드 팀 3회 (2001-2002, 2012)
파일:NBA 로고.svg NBA 올-루키 세컨드 팀 (1997)
파일:NBA 로고.svg NBA 올해의 득점왕 2회 (2006-2007)
파일:NBA 로고.svg NBA 슬램덩크 콘테스트 챔피언 (1997)
파일:lower-merion-high-school-logo-basketball-nike-png-favpng-iUR2GgqernXUQTwruin9cYex6.png 네이스미스협회 선정 올해의 선수상 (1996)[12]
파일:Academyfts.png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 (2018)
파일:hofftsfts.png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20)
파일:오륜기(여백X).svg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파일:오륜기(여백X).svg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코비 브라이언트/플레이 스타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가족[편집]


아내인 바네사는 1982년 5월생인데 처음 만났을 때 둘은 만 20세와 17세였다고 한다. 바네사는 Tha Eastsidaz[13]라는 그룹의 백댄서로 활동했던 것 같다. 이 둘은 결혼해서 두 딸을 두고 있다. 그후 잘 사나 싶더니... 2011년 12월 결국 아내가 이혼을 신청했다. CNN에서는 이래서 고등학생 끝나자마자 결혼을 하면 안된다는 뉴스를 내보내기도. 그러나 2013년 01월 11일에 SNS를 통해 이혼소송은 취하할 것이며 다시 재결합할 것이라는 발표를 했다. 이후 2016년 12월과 2019년 1월 딸 두명이 더 태어났고 총 네 딸을 두고 있다. 2003년 생인 첫째 나탈리아는 모델 활동도 하면서 아버지와 죽은 동생을 추모하기도 했다.# 헬기 추락 사고에서 코비와 함께 목숨을 잃은 아이는 2006년생인 둘째 딸 지아나 '지지' 브라이언트였다. 여자 농구에 상당히 재능이 있었으나 아깝게 이른 나이에 아버지와 함께 사망했다.영상

또한 코비의 6촌 형으로 NBA의 농구선수였던 세드릭 세발로스가 있다. 할아버지가 코비의 할아버지와 형제였다고 한다. 코비가 죽고나서 세드릭은 크게 슬퍼하며 애도했다.#

유명한 얘기지만 NBA 선수 2세대다. 아버지 조 "젤리빈" 브라이언트는 54년생으로 75년에 데뷔해 8시즌간 필라델피아 76ers, 샌디에이고 클리퍼스(현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휴스턴 로키츠에서 뛰다가 이탈리아 리그로 이적해 8시즌 더 뛰고 은퇴했다. 이탈리아에서 뛸 때 조의 상대팀 선수로 뛰고 있던게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브라이언 쇼로, 어린 꼬마였던 코비와 재밌는 인연이 있는데 코비 브라이언트/생애 참고. 코비가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고 이탈리아에서 자란 건 이 때문[14] 빌 월튼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가 필라델피아를 업셋하며 화룡점정을 찍은 77년 파이널에서도 뛰었다. 조 브라이언트는 커리어 통산 8.7점, 커리어 하이가 11.6점일 정도로 평범 그 자체인 선수로 파워포워드 겸 스몰포워드로 뛰었으나, 당시로선 상당히 개인기가 좋고 무엇보다 운동능력이 어마어마했던 선수였다. 클리퍼스 소속이던 79-80시즌 개막전 당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의 경기에서 리그 최강의 센터 카림 압둘자바 위로 꽂은 슬램덩크가 유명한데, 50초부터 볼 수 있다. 리플레이로 보면 카림과 부딪히고도 계속 올라가는데 거의 머리가 림 높이만큼 올라간다. 아들이 비교불가로 실력은 앞서지만, 206cm에 장신, 괴물같은 점프력 등 신체조건만큼은 조가 더 뛰어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추가로 코비의 외삼촌, 조에게는 처남이 되는 John Arthur "Chubby" Cox도 NBA에서 잠깐 뛰었다. 7경기, 총 78분 뛰면서 평균 4.1점 기록했으니 정말 잠깐(...) 뛰었다.


6. 이야깃거리[편집]


  • 미국 현지에서는 인기를 넘어 팬들에게 사랑을 받는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15] 농구를 멋있게, 잘 하는 것도 분명 큰 요소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가장 인기가 많은 팀 중 하나에서 20년을 몸담으며 보여준 인간적인 성장의 스토리[16]에서 많은 팬들이 감정이입하며 지켜본 선수이기에 당시 농구의 아이콘이자, 가장 사랑받은 선수로 평가받는다. 때문에 사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코비를 무척이나 기리는 사람이 많다.

  • 사실 코비가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서 멋있고 특이한 이름으로 받아들여지는 거지, 따지고 보면 꽤나 별난 이름이다. 먼저 코비(Kobe)의 경우 코비의 아버지가 일본에서 고베 와규 스테이크를 먹고 감격받아 지었다고 하며,# 미들네임인 빈은 아버지의 별명인 젤리빈에서 따온 걸로 말 그대로 콩을 뜻한다. 고베 콩 브라이언트[17]

  • 코비가 신인이던 시절, 경기 중에 마이클 조던에게 가서 조언을 구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조던은 당시 이미 역대 최고 선수로 칭송받던 시절인데다 성격이 까칠한 것도 충분히 유명해서 신인들이 함부로 말을 걸 정도의 선수가 아니었는데 코비는 주저하지 않고 먼저 다가섰다고. 본인도 코비의 서슴없고 당당한 행동에 깜짝 놀랐고 그 덕에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고 한다.

  • 한국에는 세 번 방문했다. 98년도에 한창 젊을 때 방문해서 당시 아디다스 주간의 3 대 3 농구대회를 방문해 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태권도 도복을 입고 자세도 잡아보고 방문기간에 자신의 생일파티도 하기도 했다. 두 번째 방문 때는 대스타가 되어서 농구 클리닉을 하기도 했는데, 정말 자세하나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당시 클리닉에 참석했던 어린 선수들을 지도해줬다. 세 번째 방문에서는 한국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클리닉을 개최했다. 기자회견에서 댈러스에게 패배한 후의 근황을 묻는 질문에 "7일 쉬고 바로 다음날에 훈련 시작했어요."라고 대답하며 진성 농덕후임을 다시 한번 인증했다. "나는 지는게 너무 싫다"라는 말까지 더하면서, 직장폐쇄로 인해 오히려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더 길어졌다고 하면서 철저하게 준비하겠다고 했다. 최고의 선수는 오직 연습뿐 직장폐쇄기간 동안 KBL에서 뛸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고려해보겠다"라는 립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사실 말이 좋아 고려해보겠다지, KBL 구단 전부를 매각해도 코비 1년 연봉이 안된다.(...)[18]

  • 중국에서 인기가 엄청나다. 때문에 중국에서도 여러번 광고에 나왔는데 물론 돈은 두둑이 받았다. 중국에는 한국보다 훨씬 더 많이 여러번 가서 시범경기에서도 뛰기도 하고 유소년 농구팀을 보러가는데 일절 소식없이 어느 학교 농구부에 잠깐 들렀는데 7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금새 모여들었다고. 르브론 제임스나 여러 NBA 유명선수들과 같이 중국에 간 적도 있는데 압도적으로 코비에게 사람들이 모여들어 사인을 받는다든지 여러모로 너무 차이가 나서 르브론 제임스가 웃으면서 중국에서는 아주 황제라고 말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 NBA 데뷔할 때만 해도 건방진 신인의 이미지가 강했다. 가능성은 보였으나 많기도 많고 실속이 적은 포스트 조던(Post Jordan) 중 하나로 여겨졌다. 플레이오프에서도 막판 클러치 에어볼을 날리는 플레이로 안티팬을 모았다. 또한 제스쳐나 플레이 스타일, 언론 플레이 등을 통해 의도적으로 조던을 따라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이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NBA 데뷔 당시 신장을 201cm로 발표했으나, 이후 조던이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한 뒤에 신장 프로필을 조던의 신장과 같은 198cm로 바꾸기까지 했을 정도.

  • 놀랍게도 무려 아카데미상 수상자다. 2018년 자신의 농구 인생을 담은 단편 애니메이션 "Dear Basketball"을 제작하여 호평을 받았는데, 이 작품이 오스카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후보로 오르더니 덜컥 수상까지 했다. 프로 농구인으로서 오스카 트로피를 받은 유일무이한 사람이다.


  •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로, 마이클 잭슨과도 인연이 있다. 마이클 잭슨이 데뷔 초기의 코비를 네버랜드로 초청해 이런저런 조언들을 해 주었으며, 이후로도 계속 연락을 했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마이클 잭슨의 뮤비에 출연했던 매직 존슨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하기도했다.

  • NBA 한 경기 득점 2위 기록을 가지고 있다. 81점. 저거보다도 그 날 득점이 적은 팀들이 있는 마당에...[19]

  • 나름 힘든 기간을 거치면서 나름 독실한 천주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혼 역시 이러한 이유에서 결사적으로 피했다고...

  • 출퇴근을 헬리콥터로 한다고 한다. 소화불량이 있는지라 그 지옥같은 로스앤젤레스 고속도로에서 2시간 동안 차안에 앉아 있을 수가 없기 때문. 그런데 이후 헬기 추락사고로 요절할 줄 누가 알았으랴...

  • 한 인터뷰에서 뜬금없이 2012년 런던올림픽 농구대표팀이 1992년 원조 드림팀보다 낫다는 주장을 했다. 2012년 드림팀에 자신감을 주려는 발언인 줄 알았으나, 원조 드림팀은 유잉과 로빈슨등 센터진은 우리팀보다 낫지만 나이가 많은 선수들 중심이라 단판승부로 이길 수 있다는 논지. 그러자 찰스 바클리를 비롯한 당시 현역들이 돌아가면서 코비의 개드립을 맞받아치기 시작했다.[20][21][22]

  • 사실상 시대와 룰이 다르다보니 실제 매치업을 비교해보는 것은 애매한 가정일 뿐더러, 애초에 농구는 각 포지션간의 단순비교로 승패가 정해지는 스포츠가 결코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미국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아르헨티나. 드림팀1과 2012년팀은 어쨌건 NBA 슈퍼스타들을 모아둔 최강급 전력의 팀끼리 비교가 되는거지만, 아르헨티나는 지노빌리 외엔 NBA 선수조차 없는, 즉 드림팀에 비해 전력면에서 절대적 열세에 있는 팀이었다. 그런데도 던컨-아이버슨이 이끄는 압도적 오버롤의 미국을 꺾고 우승을 해냈다. 즉, 둘 중 어느팀이 이길지는 당연하게도 매우 어렵고 예측불가한 주제인게 사실이다. 다만 시대가 달라 직접적으로 맞붙여놓을 수 없는 팀끼리 비교할 땐 선수레벨의 총합을 우선적으로 따져보기 마련이고, 적어도 선수 재능과 기량의 합에 있어선 드림팀 1은 그야말로 역사상 최강의 농구팀 그 자체였기에 뜨거운주제가 된 것.[23][24]

  • 그의 모습을 본뜬 레고 미니피겨가 레고 스포츠 시리즈 3563 제품으로 출시된 적이 있었다.


  • 데뷔 이후 처음 몇 년은 아프로 헤어스타일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빡빡 밀고 다녔다.

  • 코비가 신던 신발인 하이퍼덩크 광고영상인데 코비가 하이퍼덩크를 신고 애스턴 마틴을 뛰어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그것도 달려오는 차를!). 이 영상을 두고 조작이냐 아니냐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당사자인 코비는 간접적으로 조작을 시인했다.[25](영상에서 코비가 차를 뛰어넘자 같이 좋아하는 남자는 당시 팀 동료였던 로니 튜리아프) 여기까지는 별문제 없었는데...

  • 2008년 Inside the NBA라는 프로그램[26]에서 코비를 인터뷰 하던 중 패널로 등장하는 케니 스미스가 자기도 저 영상을 따라해보겠다고(...) 직접 신발도 신고 시도했으나 실패(물론 웃기려고 만든것이고 실제로 치인 건 아니다). 스미스가 차에 치이는(...) 순간 진행자인 어니 존슨과 패널인 찰스 바클리, 그리고 코비까지 그야말로 정신줄을 놓고 웃었다. 참고로 저 영상에도 나오지만 스미스를 친 범인은 저 프로그램 진행자인 어니 존슨. 그후에 잭애스에 출연해서(...) 뱀을 풀어놓은 튜브욕조(...)를 뛰어넘어 덩크를 성공시켰다. 애스턴 마틴을 뛰어넘을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제대로 성공했다.어지간히 뱀이 싫었는가 보다. 블랙맘바가!

  • FC 바르셀로나리오넬 메시의 팬으로도 유명하다. 터키 항공의 광고를 메시와 함께 찍기도 했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는데, 메시가 10대이던 시절 코비와 친분이 있던 호나우지뉴가 코비에게 언젠가 세계 최고가 될 선수라며 메시를 소개해줬다. 당시 호나우지뉴의 실력은 독보적인 세계 최고였고, 코비는 당연히 코웃음치며 호나우지뉴가 농담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나우지뉴의 말 그대로 메시가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된 지금은 코비 역시 호나우지뉴 못지 않게 메시의 광팬이자 친구가 되었다.


  • 로스앤젤레스 의회에서 Aug. 24. 2016을 "Kobe Bryant Day"로 의결 하였다. 20년 동안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한 팀만을 위해서 뛴 프랜차이즈 스타이기 때문에. 날짜를 8월 24일로 한 이유는 코비가 8, 24 두개의 백넘버를 썼기 때문에 해당 일자로 정했다고 한다.

  • 조지 칼이 약물 이야기를 했을 때 언급한 내용 중 하나가 오프시즌 독일로 가던 선수라 언급을 했는데 조지 칼이 언급한 내용 전체를 대입하면 그 대상이 진짜 독일인인 노비츠키를 제외하면 코비 뿐이다. 코비는 실제로 오프시즌에 무릎 치료를 위해 독일로 자주 가곤 했다.[27]

  • 농구 게임인 2K시리즈의 최신판인 2K8의 마이플레이어에서 레이커스를 상대하다보면 게스트 해설자로 코비가 나오는데, 이때 코비가 자신의 은퇴후 행보에 대해 언급한다(물론 게임이지만 음성 파일 자체는 실제 인물이 녹음한 것이므로 당연히 코비 본인의 얘기가 맞다). 해설자인 케빈 할런이 감독할 계획이 있냐고 하자 딱 잘라 전혀 없다고 하며, 어느 팀에서 기술 자문으로라도 일할 생각이 있다고 묻자 그럴 계획도 없다고 얘기한다. 현재처럼 후배들이 가끔 물어보고[28] 자기가 도와주는 식이 좋다고. 또한 우승을 할 당시에 아기였던 딸들이 이제 컸는데, 딸들을 돌볼 수 없었던것이 아쉬웠다며 가족들과 더 시간을 보내겠다고 했다. 조던처럼 감독할 생각은 전혀 없는듯. 근데 딸 농구팀을 감독하며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썼다고 한다(...) [29]

* 신발에 대한 일화를 이야기 하자면 아디다스와 계약 만료후나이키로 넘어오려는 순간 그당시에는 사건 사고 혹은 흑역사도 있었고 져지도 아디다스 였는데 아디다스 측에서는 8번 백넘버를 이용하여 투자도 해서 스타를 만들어주었는데 타브랜드로 갈아탄다는 소식을 듣자 아디다스 측에서는 배신감을 느껴 원래 백넘버 8번을 떼고 24번으로 바꿈 결국 8번보다 24번이 상징적인 번호로 각인되었다. 코비가 배번을 24번으로 바꾼건 스폰서 계약과 아무 관계 없다. 애초에 나이키로 갈아탄 직후에도 8번으로 뛰었고, 2시즌 후에야 24번으로 바꾼다. 나이키 허라치 2k4나 줌코비1 시리즈를 신고 뛰는 8번 코비는 검색만 하면 금방 찾아볼 수 있다.

  • 마이클 조던의 마지막 시즌 백 스테이지 영상이 남아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를 만들 수 있던 것처럼 브라이언트 역시 은퇴를 앞두고 있던 2015~2016 시즌 ESPN 팀과 영상을 찍은 상태라고 한다. #

  • 페라리를 좋아했던 걸로도 잘 알려져있다. 유명한 일화중에 오토기어 일화가 있는데, 코비 브라이언트는 자동차 운전을 할때 수동기어보다 오토기어를 더 편하게 생각하고 좋아해서 페라리를 구입할때 페라리 측에 문의를 했다고 한다. 페라리측에서 코비를 위해 특별히 오토기어 기능이 있는 페라리 제작했다고 한다.[30]

  • 사후에 레딧의 한 유저가 부검서를 뿌렸는데,[31] 팔 절단, 뇌 손실, 하체 절단[32] 등 크게 손상을 입은 모습에 여러 팬들이 충격을 받았다.



  • 코비는 바디아머에 지난 2013년부터 총 600만달러를 투자한 가장 적극적인 투자자였으며, 사망하기 직전까지 이 회사의 이사회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사망 1년 10개월이 지난 2021년 11월 바디아머가 코카콜라에 인수되면서 받은 지분 총액이 총 4억달러에 달하는 잭팟이 터지면서 유족들에게 엄청난 금액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 카운터 스트라이크 시리즈의 유서 깊은(?) 유행어이기도 한데, 한 유저가 수류탄에 정확히 맞아 죽으면 다른 유저들에 의해 채팅창이 KOBE로 도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코비처럼 슛을 잘 넣는다는 것에서 착안한 것.[33]


6.1. 신발[편집]


조던처럼 신발로 유명한 선수중 한명이었는데, 초창기에는 아디다스의 전속 모델이었으나 나이키로 바꿨다. [34]

아디다스 시절 초창기에는 이큅먼트가 적용된 농구화를 신다가 코비1을 시작으로 시그니처가 나왔다. 코비1은 당시 가죽대신 신소재로 폼포짓을 활용하던 나이키에 대항하여 synthetic 레더로 갑피를 제작하여 폼포짓과 비슷하게 단단한 맛이 있다. 이후 코비가 나이키로 넘어간 후부터는 '크레이지 1' 이란 이름으로 발매중.
코비1에 이어 나온 코비2는 역대 최악의 농구화 디자인에서 고정 1순위로 놓고 그 아래 2인자를 다투는 지경의 충격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나이키로 이적한 직후에 코비 시그니처가 발매 예정이었으나 성폭행 사건이 터지면서 시그니처 프로젝트는 전면 중단되고, 코비의 나이키 첫 시그니처가 될뻔했던 신발은 '줌 허라치 2k4' 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허라치 2k4의 마케팅은 시그니처 농구화가 아닌 일반 농구화치고 엄청났는데, 그 이유가 바로 코비의 시그니처가 될 뻔 했던 신발이었기 때문. 이후 2k5까지 시리즈가 이어지고, 마침내 나이키에서도 줌 코비1 이름을 달고 시그니처가 이어진다.

나이키의 수석 디자이너 Eric Avar와 긴 상의 끝에 Nike Zoom Kobe IV를 내놓자 모든 농구계가 술렁였다. 그 당시 대부분의 농구화는 하이탑의 육중한 느낌의 모델이였는데 [35] 코비가 축구화처럼 얇고 날렵해 보이는 농구화[36]를 원한다고 말한 것이 반영된 디자인이였다. 나이키에서는 처음에는 코비의 의견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허라치 2k4, 2k5, 줌코비1~3까지는 전통적인 디자인이지만 허라치 핏을 이용한 유연한 농구화로 타협을 보았다. 이 때 전환점이 된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아디다스의 길버트 아레나스의 시그니처인 길제로의 출시. 길제로는 최초의 로우컷 전용 농구화[37]로 발매되어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공을 거두자 [38] 로우컷 전용 농구화도 시장에서 먹힌다는 것을 확인한 나이키는 줌코비4를 로우컷으로 개발하게 된다.

런닝화처럼 생긴 신발로 어떻게 발목 부상을 안입고 82경기를 뛸 수 있냐는 말이 나왔으나,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엄청난 활약을 하고 우승도 거머쥐면서 그 이후 코비 시그내쳐 신발 라인은 [39] 다 로우컷으로 제작되었으며, 매쉬나 플라이니트처럼 가벼운 소재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사실상 줌코비4 이후로 줌코비 시리즈는 마이너 체인지, 다시 말하자면 줌코비4의 완성도를 다듬는 수준에 그쳤다. 그만큼 줌코비4가 대단한 신발인것.[40] 가장 먼저 런닝화나 크로스 트레이닝 신발에 많이 쓰는 나이키 플라이니트 테크놀로지를 농구화에 접목한 것도 코비였다. 코비 은퇴 이후 폴 조지나 존 월이 16/17시즌 까지 코비 10을 착용했고, 토마스와 드로잔은 코비 AD를 신고 뛰었다. 최근 론조 볼과 데빈 부커도 코비를 자주 신고 뛴다. 현재 NBA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신발들이 바로 코비 라인업이다. 21/22시즌 현재 선수들도 코비 시리즈를 구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물량이 한정적이다 보니 앞으로도 구하기 더 어려워질 예정인듯 하다.


6.2. 맘바 멘탈리티 (Mamba Mentality)[편집]


그를 상징하는 특유의 정신력을 이르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같은 종목 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 종목뿐만 아니라 스포츠와 전혀 관계없는 분야의 사람들에게도 귀감과 존경이 될 만큼 코비는 훌륭한 멘탈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는 농구를 좋아하다 못해 사랑했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때 여자친구랑 집에서 마이클 조던 경기를 보면서 데이트를 했다고 한다. 그의 아내 바네사는 다른 여자가 아니라 농구를 최고의 연적으로 여겨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 이렇게 농구를 사랑했기 때문에 코트 위에서 완벽하고자 했고, 코비하면 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맘바 멘탈리티라고 불리는 그의 근성이다.

그는 항상 코트 위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이려고 최선을 다했으며, 그 중 하나로 카메라 플래시 때문에 슛을 놓치자 6시간 동안 태양 아래서 햇빛을 보면서 슛을 하는 연습을 한 일화도 있다. 부상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는데, 오른손을 다쳤을땐 왼손을 집중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고 다리가 부러졌을땐 휠체어를 타고와 슛을 던졌다고 한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이처럼 승부근성이 어마어마하였기 때문에 엄청난 훈련을 하였으며, 그의 정교한 슛들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의 이러한 모습 때문에 국내에선 농구 오타쿠라 하여 '농덕후'라 불리고 있다. 그의 '하루' 연습 메뉴는 다음과 같다.

아침 4시에 기상. 가볍게 러닝으로 몸을 풀고 5시 30분에 개인 체육관에서 훈련 시작. 각각 5개의 스팟에서 200개씩 던지며, 들어가는 것만 카운트.[41]

완료 후 같은 5개의 스팟에서 페이더웨이로 100개씩 카운트. 이후 팀훈련 종료 후 또다시 개인 훈련 시작. 이때 웨이트도 병행하는데 그 종류는 다음과 같다.

Day 1 & Day 4

Bench press

Lat pull-downs

Incline press

Military press

Abdominal crunches

Day 2 & Day 5

Lateral dumbbell raises

Bar dips

Tricep press-downs

Bicep curls

Abdominal crunches

Day 3 & Day 6

Back squats/Front squats

Leg curls

Leg extensions

Calf raises

Abdominal crunches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한참 어린 후배들을 보면서도 그들이 자신보다 더 나은 점을 찾고 끊임없이 물어보고 연습했다. 그 예로 크리스 폴에게는 스크린을 타는 법을 배웠고, 하킴 올라주원에게 포스트업과 드림 쉐이크를 배웠다.

조던에게도 경기 중에 이런저런 조언을 받았으나 무슨 소리인지 이 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사실 경기 도중 상대팀인 불스의 조던으로부터 '어이 애송이 그런 식으로 하면 안되지'라는 식으로 맞붙을 때마다 플레이에 대해서 이것저것 충고를 받았다는 모양이다. 암만 생각해도 조던의 훈수라기도 뭣한 티배깅에 가까운 트래쉬 토크였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코비는 순수한 조언으로 받아들였다는 것. 조던과 친분이 생긴 이후로는 시도 때도 없이, 심지어 새벽에 조던에게 전화를 해대서 처음에는 크게 짜증을 낸적도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코비의 진짜 열정을 알아보았고 크게 감복한 조던은 이후 코비의 큰 형이 되어주기 위해 진지하게 자신의 기술을 하나 둘 알려주기 시작했다고 추도사에서 직접 언급한다.

Netflix에서 2022년에 공개한 'The Redeem Team' 다큐멘터리에서 코비의 연습벌레 성향을 볼수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위해 미국 대표팀은 라스베가스에서 합숙 훈련중이었다. 전체적으로 나이가 어린 편인 팀에 성숙함과 노련함을 위해 코비를 영입했는데 조금 겉도는 성격이긴 했어도 나름 의도대로 팀의 형 역할을 잘 맡았다. 어느 날 훈련이 끝난 뒤 모든 멤버들이 다 같이 클럽에 가서 하루 놀고 오기로 결정을 했다. 코비는 그 성격 탓에 멤버들이 초청을 안 한건지, 먼저 거절한 건지 자세히 언급은 안 되지만, 아무튼 코비를 제외한 전 멤버들이 베가스에서 거창하게 놀고 새벽 4시까지 술판을 벌였다고 한다. 그렇게 새벽까지 놀다가 돌아온 선수들이 호텔 로비에서 코비와 마주쳤는데, 코비는 땀에 젖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다들 각자의 스위트룸으로 돌아가면서 '지금 4시 반인데 저렇게 땀에 젖을 정도로 운동을 했다는거야?'라는 생각에 믿기지가 않았다고 밝혔다. 그 이후 르브론, 웨이드 등은 나보다 뛰어난 세계 최고의 선수가 저렇게 운동하는데 나는 최소한 그 이상 해야만 그를 뛰어넘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 둘 코비의 스케줄에 맞춰서 트레이닝을 시작했고, 머지않아 팀 원 전부 그 스케줄대로 트레이닝을 하게 되었다.

2012년도에는 올림픽 준비 합숙 기간에 매일 새벽 2시까지 자전거를 타고 40마일(64km)을 질주했다. 블레이크 그리핀이 인터뷰에서 꺼낸 얘기로, 코비가 유산소 운동 및 하체강화를 위해 자전거를 타기 시작해서 매일 밤에 나가서 새벽 2시까지 자전거로 40마일을 달리고 호텔에 돌아와 취침, 그리고 7시 반에 기상해서 아침훈련에 참가했다고 한다.

이처럼 워낙 투지가 강하고 농구에 진심인 선수라서 가벼운 부상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로 유명했다. 근데 그 정도가 점점 심해져서 09-10 시즌에는 손가락 인대가 끊어졌는데 경기에 출전하였다. 그런데도 시즌 내내, 그리고 파이널에서까지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며 우승을 거머쥔 적도 있다. 그 부상 입은 손으로 얻어낸 자유투를 끝까지 마무리하고 벤치로 스스로 걸어서 들어가는 장면은 NBA 팬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 하지만, 불행하게도 코비의 투지와 집념이 가장 강했던 장면은 팬들이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는데도 자유투를 던지고 나간 모습이다.

마이클 조던은 전성기 컨디션으로 지금 NBA 선수들과 1 on 1을 하면 이길 것 같냐는 질문에 "다른 선수들은 다 내가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코비만큼은 승패를 장담할수 없다."라는 발언을 하며 "그는 나의 모든 기술을 훔치기 때문이다.("He steals all of my moves.")"라는 이유를 댄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코비는 "옛날엔 모두 당신의 플레이를 따라하고 나도 당신을 따라했지만, 지금은 다들 나를 따라한다."라는 패기로운 답문을 한 것도 유명하다. 조던은 그냥 '본인이 다 바를 수 있다고 말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는' 위치이며 애초에 그쪽이 조던의 성격 및 이미지와도 훨씬 잘 어울리는데, 자신만을 오롯이 치켜세워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위치인 조던이 굳이 코비라는 단 하나의 예외를 스스로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파격적인 일인 것. 그 외에도 르브론 vs 코비를 논하는 주제에서 "게임을 지배하는 능력은 르브론의 우위, 우승하는 능력은 코비의 우위"라고 평가하며[42] '코비는 자신과 같은 저주받은[43] 사람'이라고 말한 바도 있다. 앞서 말했지만 코비의 맘바 멘탈리티를 그 콧대높은 조던이 인정한 것이다![44]

이렇듯 조던은 후배 레전드 중 유독 코비를 의식하고 인정하는 모습을 수 차례 보여주었는데, 샤크나 던컨, 르브론 등 코비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커리어를 쌓은 선수들에게도 이렇게까지 유별난 관심과 애정을 두지는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코비에게 굉장히 우호적인 셈이다. 자신의 아성에 근접하지는 못했을지언정, 자신을 닮은 플레이스타일과 맘바 멘탈리티로 대표되는 승부욕을 기반으로 단순 포스트 조던을 넘어 또다른 레전드가 되어 리그를 호령한 점이 조던의 시각에서 보기에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조던은 그렇게 아끼던 후배였던 코비의 추모식에서 추모 연설을 하며 가슴 아프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성격은 승부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이어지기도 해서, 커리어 말년에 무리한 슛을 자꾸 남발하는 모습을 보고 '코난사'라고 불리며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맘바 멘탈리티는 카이리 어빙, 빅터 올라디포, 제이슨 테이텀 등 많은 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 뿐 아니라 종목을 넘어 역시 만만찮은 근성맨인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 등 다른 스포츠 선수들도 코비의 맘바 멘탈리티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7. 사건사고 및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코비 브라이언트/사건사고 및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코비와 다른 선수들의 말[편집]


What can I say, Mamba out.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맘바 아웃(맘바는 떠난다).

코트에서의 마지막 작별 인사[45]


'''MEAN YOU KNOW THE PASSION CAME FROM LOVE FOR THE GAME

YOU KNOW I LOVE EVERYTHING ABOUT IT LIKE THE SMEEL OF THE BALL YOU KNOW THE SMEEL OF LIKE BRAND NEW SNAEAKERS AND THE SOUND OF BALL MAKES WHEN IT HIT THE GROUND LIKE All THOSE THINGS

I IOVE SO PASSION COMES FROM THAT WHEN YOU GOT THE LOVE YOU JUST WANT TO BE A PART OF THIS THING ALL THE TIME. I WAS BORN TO PLAY BASKETBALL'''

코비 브라이언트


내가 한창때 팔팔한 시절의 전성기라면, 다른 NBA 역사의 모든 선수들은 전부 다 내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하지만 코비만큼은 아니다.그와는 나조차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 그는 나의 모든 기술을 훔쳐서 똑같이 따라하는 도둑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조던


코비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더 발전할 수 있었다.

르브론 제임스


코비와 함께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파우 가솔


81점 기록을 깨기는 불가능하다. 그만큼 특별한 기록이다.

스테판 커리


왜 저런 특별한 선수가 13위까지 내려왔는지 궁금했다.

제리 웨스트


코비는 우리 세대의 마이클 조던이다.

데릭 로즈


넘어야할 산이 있어서 두려운게 아니라 넘어야할 산이 없는게 두렵다.

코비 브라이언트


9. 관련 문서[편집]


[1] 1[2] 바넷사 브라이언트:"내 키가 몇이나 되냐는 질문이 많은데 나는 5피트4고 코비는 정확히 6피트 4 3/4(195cm)에요. 내가 이걸 어떻게 아냐면 아나운서들이 얘기하는 198cm 만큼 크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맨발 키를 직접 재봤거든요. 물론 나이키 신발을 신으면 6피트6(198cm)이죠". 현재 해당 포스팅을 삭제한 상태이나, 여러 팬사이트에서 인용되고 있다. https://fansided.com/2017/03/27/kobe-bryant-height-6-foot-4-lakers/[3] 코비 본인이 직접 언급한 것도 있는데, 2006년 경에 불우한 아동을 위한 자선행사로 대니얼이란 아이를 만난 코비는 "다들 내가 6피트7인치라고 아는데, 우리끼리만 살짝 얘기하는 거지만 난 사실 6피트4야"라고 언급했다. 사실 미국 사회에서도 키 얘기를 하면 맨발신장을 얘기하지만 보통 NBA공식 신장은 신발신은 키를 얘기하고, 코비가 6피트4.75라면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6피트4로 언급하고 다니는 것도 말이 되고, 농구화를 신으면 실제로 6피트6이 되기 때문에 바네사가 언급한 키가 딱 앞뒤가 맞는다.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기도 하고, 실제로 농구화는 평균적으로는 1.3인치(3.3cm) 높으면 그 이상이기 때문에 저 키라면 NBA 기준으로 키를 전혀 속이지 않은 케이스가 된다.[4] 1[5] 데뷔 이후 90kg을 좀 넘는 슬림한 체형을 유지했으나 2000년대 초반에 벌크업하기 시작해 한때는 100kg까지 나갔다. 그러나 파워는 강해졌지만 늘어난 근육만큼 부상위험도 늘고 코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 유연성도 타격을 입어 결국 90kg 중반대 정도의 비교적 슬림한 체형을 커리어 내내 유지했다.[6] 명문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서만 20년 선수 생활을 한 자랑스러운 프랜차이즈 스타이지만, 이때 트레이드가 드래프트 당일에 이뤄지는 바람에 드래프트 행사에선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가 아닌 샬럿 호네츠의 모자를 쓰고 참가했다. 이미 트레이드하기로 얘기가 끝난 상황이라 해설자들도 "샬럿의 선택이지만, 레이커스 선수입니다"라고 언급하였고 조금만 더 일찍 트레이드가 이뤄졌다면 정식으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모자를 쓸 수 있었다는 것. 실제로 2004년 2번 픽 에메카 오카포 역시 샬럿이 지명권을 트레이드해서 (4번픽 +알파를 주고 사옴) 뽑았는데 드래프트 날 이전에 이뤄져서 정식으로 샬럿 모자를 썼다.[7] 1996-97 시즌 ~ 2005-06 시즌.[8] 2006-07 시즌 ~ 2015-16 시즌. '하루가 24시간이고 공격제한 시간 또한 24초이니 나는 매일 매순간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의미로 등번호를 바꾸었다.[9] 리그 역대 최초로 한 팀에서 20년을 뛴 선수이자, 한 구단 2개 넘버 영구결번 선수이다.[10] NBA 올스타전이 열리기 몇 주전 사망한 올스타전 MVP 최다 수상자인 코비를 기리기 위해 2020년 2월에 "NBA All-Star Game Kobe Bryant Most Valuable Player Award"로 상의 공식명칭을 변경하였다.[11] 2014년 - 2015년 올스타전은 부상으로 불참하였다.[12] 공식명칭은 "Naismith Prep Player of the Year Award" 로 고등학교 최고의 농구선수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고등학생이 받을 수 있는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이며, 이 상을 받은 선수로는 르브론 제임스, 알론조 모닝, 드와이트 하워드 등이 있다.[13] 스눕독이 이 그룹의 멤버인데, 아무래도 프로젝트형 그룹인듯 하다.[14] 이 때문에 코비는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고, 축구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팀은 AC밀란. 조가 은퇴하고 난 뒤에 코비가 13세 때 브라이언트 가족은 영구적으로 필라델피아로 이사하게 된다.[15] 한국에서도 당연히 인지도는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높지만, 2000년대의 NBA가 한국에서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던 것도 있고 특유의 미국의 스포츠맨십과 동화된 것 같은 코비의 태도와 면모를 다소 꺼리는 사람도 꽤 있다.[16] 겁없던 신인 시절부터 오닐과 협력하며 영광을 맛봤던 초창기, 홀로 레이커스라는 명예로운 팀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를 보이며 노력하다 성폭력 사건에 휘말린 중반, 끝내 농구의 본질인 팀 게임을 통달하여 가솔과 함께 백투백 우승을 차지한 후반, 노화와 부상으로 인한 기량 저하에 시달리다 60득점을 기록해 스완송을 제대로 부른 마지막 경기까지, 그야말로 스포츠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서사와 성장을 보여준 선수다.[17] 고베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Kobe"는 고급 쇠고기 정도의 느낌이다.(미국에서 유통되는 고베산 쇠고기는 대부분 수출용 고급육이다) 그나마 스펠링은 같지만 발음은 "코우비"라고 해서 그렇지 발음까지 "코우베"라고 했으면 영락없는 쇠고기.[18] 게다가 원래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는 리그에서 더 뛰어난 리그의 슈퍼스타를 영입하려면 그 가치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줘서 꼬셔와야 한다.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시절 데이비드 베컴이 말도 안되는 수준의 연봉을 받은 것처럼. 게다가 미국과 영국/스페인의 축구 수준 차이보다 미국과 한국의 농구 수준 차이가 훨씬 크다는 것, 또 NBA 연봉의 최소 두 배 이상은 줘야 고려해볼만하다.[19] 그런데, 저 기록은 2위다. 1위는 윌트 체임벌린이 기록한 100점. 그런데 더더욱 무서운 사실은 코비가 저 기록을 달성하기 전에 윌트 체임벌린이 각각 78점, 73점으로 2위와 공동 3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20] 가장 먼저 바클리가 "나이 얘기 하니까 웃긴다. 지금 말한 코비는 34살이지만 92년 자신이나 조던은 29세의 최전성기였다. 92년 드림팀에 뽑힐만한 지금 미국 국대선수는 코비, 르브론, 듀란트 뿐이다." 하고 받아쳤다. 만약 실제로 붙으면 코비는 전성기의 마이클 조던과 매치업되어 공수 양면에서 밀릴게 뻔하다. 둘 다 전성기라도 코비가 딸리는데, 29살의 조던과 34세가 다 되어가는 코비라면 객관적인 우열이 확실한 건 사실이다.[21] 바클리에 이어 쪼잔하기로 유명한 그 분도 "absolutely laughed", 그리고 우리 팀엔 명예의 전당 헌액 선수가 나 포함해 11명이다. 니들도 11명 헌액되고 나서 비교하자. 우리가 니들에게 배운게 아니라 니들이 우리보고 배운거다.라고 받아쳤고, 래리 버드는 "걔네들이 이길거야. 난 뛰어본지 20년 됐고 우린 늙었거든"이라고 래리 버드 특유의 디스를 작렬했다. 스카티 피펜은 "우리가 25점차로 이긴다"라고 받아쳤다.[22] 굳이 따지면 르브론과 듀란트가 버티는 포워드진은 2012년 팀의 우세라는 평이 많고, 가드진의 경우 코비와 웨스트브룩을 보유한 12년 팀이 조던-스탁턴-드렉슬러의 1기 드림팀과 비교정도는 해볼 만 하다. 문제는 골밑인데, 수비자 3초룰이 없어 센터의 영향력이 큰 FIBA 룰 하에서는 1기 드림팀이 압도적 우위를 점한다는 것. 당장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21년도 드림팀만 봐도 센터 포지션이 약해 고전하거나 예상외 패배를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1기 드림팀의 유잉과 로빈슨을 상대로는 12년도 팀이 골밑에서는 도저히 견적이 안나온다.[23] 사실 04대표팀의 경우 센터는 사실상 팀 던컨 하나밖에 없고, 포워드가 지나치게 많은데다가 있는 포인트가드도 전부 리딩보단 득점을 즐기는 선수들이라 팀조합이 개판이었다. 훈련시간도 부족하고 대부분 선수들이 첫 대표팀 출전이라 어렸을때부터 자주 같이 출전해 조직력이 좋은 아르헨티나와 비교불가한 환경이었던 것. 스페인 대표팀 등 유럽 정상급 팀들이 미국 대표팀을 상대로 선전할 수 있는 것 또한 이러한 차이에서 기인한다. 즉, 능력 총합은 좋지만 조직력과 팀구성이 개판인 팀과, 능력 총합은 떨어지지만 찰떡궁합 팀의 비교인 셈. 그런데 92와 12팀의 경우 포지션별 밸런스는 둘 다 괜찮고, 조직력도 큰 차이가 나지 않으니 이 경우는 능력치의 총합이 꽤나 객관적인 기준으로 적용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이런 경우 04년 아르헨티나와 미국이 아니라, 조직력/조합 수준은 비슷한 환경에서 출발하는 NBA내 팀들 사이에서 우열을 비교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경우 승리를 장담하진 못해도 더 쎈놈들이 모인 팀의 승리가 더 쉽게 그려지는게 사실이다.[24] 1992년 대표팀은 조던의 말처럼 선수 12명 중 11명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 있는 레전드들이다. 래리 버드매직 존슨이 커리어를 마치는 시점이지만 마이클 조던스코티 피펜 등 주축선수 대부분은 20대 후반의 전성기였다. 게다가 패트릭 유잉, 데이비드 로빈슨, 칼 말론, 찰스 바클리로 구성된 원조 드림팀의 막강한 포스트는 센터기근을 맞고 있는 2012년 타이슨 챈들러, 케빈 러브 등의 골밑과는 비교불가 수준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25] 당연한게 저건 조작을 하지 않고 직접 스턴트를 하는게 멍청한 짓이다. NBA 슈퍼스타들은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는 만큼 몸이 재산이고, 어쩌다 다치면 팀에게도 엄청난 손해를 끼친다. 실제로 마이클 조던이 은퇴 후 오프라 윈프리쇼에 나와서 한 말에 따르면 이들의 계약서에는 오토바이를 못 타는 건 물론이고 스키도 못 타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만약 금지조항에 있는 행위를 하다 다치면 팀은 연봉지급의 의무가 없다). 돈도 문제지만 저런 스타들이 다치면 팀 전력에도 크나큰 지장을 주고 그들을 보기 위해 비싼 돈 주고 오는 팬들에게도 민폐다. 그런데 코비가 전문 스턴트맨도 아닌데 저런 위험한 짓을 굳이 할 이유가 1도 없다. 아무리 코비가 운동능력이 뛰어나도 막말로 순간 삐끗하면 크게 다쳐서 장기결장하거나, 잘못하면 은퇴, 혹은 죽을지도 모르는데 다윈상 1순위 그런 바보짓을 광고 하나 찍자고 굳이 할리가 있는가?[26] TNT에서 NBA 경기 방송 직전이나 하프타임때 방송하는 일종의 프리게임쇼. 찰스 바클리, 케니 스미스, 그리고 샤킬 오닐이 패널로 출연하고 어니 존슨이 진행을 맡고 있다. 주로 NBA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나 팀 동향, 리그 동향, 또는 중계 중인 경기에 대한 평가를 소개하고 패널들이 이를 해설해 주는 프로. 가끔 가다 찰스 바클리의 개그 본능으로 시청자의 배꼽을 떨구는 일도 많아 재미를 더한다.[27] 물론 설령 칼이 지칭하는 선수가 코비가 맞다고 해도, "조지 칼이 코비가 약물을 한 것으로 의심했다" 정도이지 코비가 약물을 한게 확정인 것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조지 칼은 한번도 코비와 같은 팀에서 재직한 적도 없고 따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인 정보 출처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칼의 정보가 정확한지나, 칼이 코비를 지칭한다고 확정된 적도 없으며 현재 코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약물 사용 의혹은 없다.[28] 이 때 아이제아 토마스가 자신에게 전화해 물어본 걸 언급하고 그를 극찬한다.[29] http://bleacherreport.com/articles/2748354-kobe-bryant-coaches-daughters-basketball-team-runs-triangle-offense[30] 이 점도 그의 우상이자 사적으로 친했던 마이클 조던과 비슷했는데, 조던 역시 페라리를 좋아해서 현역 시절부터 은퇴 이후까지 페라리 512TR, 599 GTB 피오라노, 피스타, 마라넬로 등을 보유했었다. 페라리 외에 그가 특히 애용한 차는 쉐보레 코벳. 특히 그의 고유 플레이트 M Air J 라이센스 플레이트가 붙은 512TR은 90년대에 자주 타고다녀서 팬들에게 친숙하며, 다큐 라스트 댄스에도 등장한다.[31] 캘리포니아에서는 부검서를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라 한다.[32] 정확히는 허벅지 밑으로 절단된 것이며 대퇴골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절단보다는 뜯겨나간 것에 가깝다. 생전 키가 6' 6" 였는데 시체는 5' 5"(약 165cm)였다고.[33] 슈팅게임인 카스에서 투척형 무기인 수류탄으로 적을 죽이는 것은 꽤나 힘든데, 긴 거리를 포물선으로 던져 넣는 것이 코비의 초장거리 슛을 연상케했기에 붙은 것. 사실 2010년 이후로 스테픈 커리가 초장거리 슛의 대명사가 되었고 대미언 릴라드 등 다른 선수들도 만만찮지만, 2000년대 당시에 초장거리슛을 상징하는 선수는 코비였다. 그는 전문슈터 정도의 정확도는 아니었지만 유독 긴 슛거리와 특유의 집중력으로 좀 심하다싶은 초장거리슛도 거리낌없이 시도하고 종종 넣곤 했는데, 특히 2006년 NBA올스타 주간 당시 슈팅스타 대회에서 하프코트 샷을 정상적인 점프슛 폼으로 단 한번만에 넣은 것이 꽤 화제가 되었다.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등 저 정도 거리의 슛을 정상 점프슛 폼으로 넣는 다른 선수들도 있었지만, 코비 특유의 자신감 있는 태도와 저때 임팩트가 커서 초장거리슛 하면 코비를 연상시키는 팬들이 많았다.[34] 아디다스와 계약 만료후 자신에게 딱맞는 농구화를 찾기 위해 리복, 에어 조던, 컨버스 등 여러가지 브랜드를 신기도 하였다.[35] 코비의 아디다스 시절 농구화만 봐도 알 수 있다.[36] 앞서 각주에서 서술했든 아디다스에서 나이키로 갈아타기 전에 수많은 브랜드의 농구화를 직접 신었는데, 그때도 나이키 허라치 시리즈를 꽤 좋아했던걸 보면 코비 자신은 예전부터 가볍고 유연한 농구화를 선호했던 듯 하다. 아디다스에서는 초창기 이큅먼트 시리즈는 얇은 코트필에 반응성을 중시한 신발이어서 코비 입맛에 맞았을텐데, 정작 나온 코비1,2는 정반대로 단단한 갑피로 둘러싼 농구화라는게...[37] 이전까지의 로우컷 농구화들은 하이컷의 원본이 있고 추가적인 서비스 개념으로 발매되는 경우밖에 없었다[38] 미국 현지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때마침 삼성으로 이적한 이상민이 삼성 스폰서인 아디다스 신발 중에서 고른게 길제로여서 유명세를 탔다. 이전까지는 나이키 역대 최고의 가드용 농구화인 줌플라이트5를 주로 신던 이상민이 선택한 신발인것 자체만으로도 국내에선 성능이 입증되고 화제가 됐을 정도.[39] 아킬레스건을 다치고 난 뒤 돌아온 뒤 나온 신발 Kobe IX를 제외하면 [40] 디자이너 Eric Avar는 코비가 신발을 제작하는 과정에 점점 더 많이 참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코비는 항상 "나는 가장 가벼운 농구화를 원한다"는 어필을 해왔다. 사적으로도 많이 친했는데, 서로의 취미 생활이나 즐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이 비슷해서 디자인 작업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41] 코비 본인 말로는 한번 훈련할 때마다 약 1,500여개를 던진다고 한다.[42] 단, 릅이 19-20시즌 4번째 우승과 파엠을 거머쥐며 우승하는 능력 역시 밀리지 않음을 증명했다.[43] 이기지 않고는 못 배기고, 이길때까지 성장하지 않고는 못배길 정도로 승부욕에 미쳐있다는 점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44] 샤킬 오닐이 코비의 멘탈을 소유했다면 리그가 멸망했을 거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실제로 코비가 얘기한 바로는 “오닐이 나의 워크에틱을 가졌더라면 x발 반지 12개는 땄겠지” 라고 한 적이 있다.[45] 이후 이 멘트는 버락 오바마임기 마지막 백악관 만찬 때 마무리 멘트로 써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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