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일럽 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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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일럽 클레이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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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61번}}}
김주
(2013)

케일럽 클레이
(2014~2014.6.10.)


라이언 타투스코
(2014.6.19.~2014)




파일:external/file.osen.co.kr/201406111137772073_5397c1bdf373b.jpg

케일럽 러셀 클레이
Caleb Russell Clay

생년월일
1988년 2월 15일 (36세)
신체
188cm, 82kg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출신지
앨라배마 주 버밍햄
학력
콜맨 고등학교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6년 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44번, BOS)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14)
LA 에인절스 (2014)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소개
2. 플레이 스타일
3. 선수 경력
3.1. 마이너리그 1기 시절
3.2.1. 4월
3.2.2. 5월
3.2.3. 6월
3.3. 마이너리그 2기 시절
4. 기타
5. 연도별 주요 성적
6. 관련 문서



1. 소개[편집]


한화 이글스 소속의 외국인 투수.


2. 플레이 스타일[편집]


고등학교 시절엔 최고 95마일(152km/h)까지 던졌지만 토미존 서저리 이후 구위가 떨어져 80마일대 후반~90마일대 초반(대략 140km/h 초반대)의 직구를 던진다. 구위는 다소 부족하지만 그것을 뛰어난 제구로 메꾸는 맞춰잡는 투수. 마이너리그 7시즌 동안 9이닝당 볼넷 개수는 3개가 채 안 되고, 실제로 팀 내에서도 최고의 제구력으로 꼽혔다. 그러나 미국보다 좁은 스트라이크 존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고 있는 듯. 직구가 약간 싱커성으로 떨어지는데 실제로 땅볼 비율은 그렇게 높지 않다. 또한 다양한 구종을 구사하는데,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을 모두 수준급으로 구사한다고. 특히 체인지업이 헛스윙을 유도하는 용도로 쓰인다고 한다. 좌타자에게 약간 더 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체인지업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3. 선수 경력[편집]



3.1. 마이너리그 1기 시절[편집]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준수한 외야수였는데, 3학년 때 팀의 1선발이 부상을 당하자 대체자로 투수로 전향한 것이 프로까지 이어졌다. 보스턴이 그를 1라운드 마지막 순위인 전체 44번째에 그를 지명했다. 입단 2년차에 토미존 서저리를 받았고, 2009 시즌에 들어서 싱글 A에 정착했다. 그 뒤로는 딱히 인상깊은 활약이 없었다. 2011년 더블 A에서 불펜 투수 역할을 했는데, 이때 기록은 1승 5패 7.47이라는 충격과 공포의 기록을 남겼고, 2012년 역시 4.61로 인상적이지 못했다. 이 시기엔 삼진이 늘었지만 볼넷과 피홈런은 매우 증가했다. 2013년 마이너리그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그를 워싱턴 내셔널스가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영입했고, 더블 A에서 특급 선발로 각성하며 트리플 A에서도 15경기 5승 2패 2.49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3.2. 한화 이글스 시절[편집]


2013년 12월 18일 한화가 그를 영입했다. 시즌 전 진행 된 인터뷰 들을 보면 호탕하고 성격이 참 좋다.

파일:/image/421/2014/02/04/748542_article_59_20140204184504.jpg
클레이, 앨버스, 피에.

2월 26일, SK 와이번스와의 연습경기에서 선발등판했다. 1회엔 구위, 제구 모두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구위야 뭐 원래 구속이 빠른 투수는 아니었지만 볼질까지 시전하며 한화 팬들은 브라이언 배스처럼 되는거 아니냐는 반응까지 보였다. 하지만 2회가 되니 클레이는 사람이 달라져 정교한 제구력으로 SK 타자들을 셧아웃시켰다. 본인 말에 따르면 1회엔 마운드가 부드러워 발이 빠지며 제구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우천으로 하루 연기되어 3월 30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해서 5⅔이닝 87투구수 5피안타 1피홈런 2볼넷 2삼진 2실점으로 호투했고 팀은 스코어 4:2로 이겼다. 변화구 제구가 좋은 모습을 보였고, 한화 야수진들이 웬일로 좋은 수비를 보이며 클레이를 도와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날 승리로 한화 외국인 투수 첫 개막전 승리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팀은 단독 1위가 되었다.


3.2.1. 4월[편집]


4월 5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했는데, 팀이 스코어 2:1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6회에만 4실점을 하며 5⅔이닝 95투구수 7피안타 3볼넷 1몸에 맞는 공 1탈삼진 5실점 4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2:6으로 패하여 클레이는 이날의 패전 투수가 되었다.

4월 10일 NC와의 원정경기에서는 5회까지 6피안타에 5사사구로 다소 불안한 피칭이었지만 2실점으로 어찌어찌 막아내면서 보는 한화팬들의 마음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팀이 스코어 3:2 리드하던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와 승리 투수 요건을 충족했으나 6회에 불펜진이 바로 동점을 허용하면서 ND를 기록했다.

4월 16일 KIA와의 경기에서 3⅔이닝 7피안타 2사사구 6실점으로 난타당했으나 피에甲참교육 구원으로 올라온 윤규진의 호투, 이용규의 2타점 결승타에 힘입어 패전을 면했다.

4월 22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3이닝 67투구수 4피안타(2피홈런) 4사사구 3자책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직구 구속이 146km/h까지 올라온 모습이였지만 백투백 홈런을 맞으며 3회에 3실점 후 3회를 채우고 강판되었다. 3점을 내준 것은 중요치 않으나 계속 컷트당하며 끌려다녀 투구수가 급증하고 사사구가 늘었고, 호수비에 잡히긴 했지만 홈런외에도 위험한 장타를 맞는 모양새여서 강판당했다.

이날 모습으로는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긴 현저히 무리였다. 커브의 구위를 해설위원이 칭찬하였지만 어째서인지지 몇 개 던지지도 않아 결정구의 부재를 드러냈고 개막전의 호투 외엔 장타를 맞는 일이 급증하였다. 대나 이브랜드데니 바티스타를 다시 데려오라는 아우성이 급증했다. 물론 그들이 오더라도 욕을 안 먹진 않을 거라고는 다들 잘 알고 있다. 한국 리그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1라운드 지명자의 위엄, 혹은 작년 트리플A에서의 모습을 빨리 끌어올려야 했다.

4월 30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2⅓이닝 6피안타 2볼넷 1K 4실점 2자책점[1]으로 다시 한 번 무너지는 모습올 보였다. 계속 이대로라면 중도 퇴출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3.2.2. 5월[편집]


5월 4일 어깨 통증으로 1군에서 말소되었다.

2군 경기에서 5이닝 무실점으로 자신을 찾은 듯했다.

17일, 1군에 콜업되어 팀의 5연패를 끊느냐 마느나, 상대 팀 SK는 6연패를 끊느냐 마느냐의 건곤일척의 승부에서, 5이닝 3실점으로 기대에는 살짝 못 미친 성적을 냈지만 승리 투수 요건을 채우고 내려갔고, 윤근영, 송창식, 박정진이 완벽하게 뒷문을 틀어먹으며 2승을 수확했다. 평균자책점도 살짝 내려갔다. 뱀발로 이 날은 올드 유니폼 데이로, 선수들이 빙그레 이글스 시절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했는데 클레이의 유니폼엔 등록명이 클이로 등록되어 있었다.

22일 넥센전 등판, KBO 최강인 넥센의 강타선을 상대로 6이닝 2실점으로 QS를 달성했다. 투구수 조절 성공으로 7회에도 마운드에 올라왔으나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무사 1, 2루에서 내려갔으나 구원투수 정대훈이 남은 주자를 모두 정리함에 따라 자책점이 올라가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정대훈이 덕아웃으로 돌아올 때 맞아주며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덤으로 타선이 넥센 마운드를 쉴새없이 두들겨 시즌 3승을 챙겼다.

2군에 다녀온 후로 선수들이 환골탈태하는 것을 보고 한화팬들은 1군 김응룡 감독보다도 2군 이정훈 감독을 찬양하였다.

그러나 28일, NC전에선 2⅓이닝 8피안타 1피홈런 2볼넷 7실점 7자책으로 다시 탈탈 털렸다. 당연히 패전투수가 되었고, 이 날 경기 이후 시즌 성적은 9경기 38⅔이닝 3승 4패 ERA 7.22, WHIP 2.07, 피안타율 .348로 그야말로 올 시즌 외국인 투수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팬들은 기대한 것이 잘못인가, 하루 빨리 클레이를 퇴출시켜야 한다는 반응이었다.


3.2.3. 6월[편집]


6월 10일 광주에서 열린 KIA전에서 1군 복귀전을 치뤘으나, 이번에도 1⅓이닝 7피안타 1피홈런 6실점 6자책점을 기록하는 등 최소 이닝만을 소화하며 강판되었다. 다행히도 경기의 영향 때문에 패전투수가 되는 것은 면했지만, 다음날 웨이버 공시가 됨으로서 6월 10일 경기가 그의 한화 이글스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한화의 전통인 인품좋은 용병임을 증명하듯 한명 빼고 '내가 더 잘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구단과 팬들에게 미안하다'라며 마지막 인사말을 전했다.



3.3. 마이너리그 2기 시절[편집]


파일:external/www.milb.com/Caleb_Clay_1_2j7m13in_9w7s0lqt.jpg

에인절스 AAA 산하 솔트레이크 시티 시절. 이 사진은 7월 20일 완봉승을 기록한 날의 피칭사진이다.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의 트리플 A팀인 솔트레이크 시티 비즈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고 6월 22일(미국시간 기준) 첫 경기에 나섰다. 그런데 5⅔이닝동안 3피안타(1피홈런) 무사사구 2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며 첫승을 거두었다. 한국에서의 불안정한 모습과는 딴판이라서 한국 공인구나 스트라이크 존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동안 죽을 쒔던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다. 이것이 바로 한화 3승투수의 위력이다

7월 20일(현지시각)에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던지 뉴욕 메츠 산하 라스베가스 51s와의 경기에 선발등판해서 9이닝 3피안타 1볼넷 6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기록했다. 투구수는 101개였고 그 중 스트라이크는 66개였다. 팬들은 이제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한화에 뭔가 있다(...)며 놀라워하고 있다. 더욱이 라스베가스 51s는 리그내에서 제일 많은 득점을 기록하고 있던 팀이었다고. 해외인재육성구단 한화 이글스 메이져리거를 벌써 5명 배출했다

이러한 성적을 발판삼아 바로 다음날인 7월 21일에는 퍼시픽 코스트 리그(PCL)[2] 이번 주의 투수(7.14-20) 에 선정이 되기도 하였다.


3.4.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시절[편집]


그리고 8월 10일 (미국 현지시각) 메이저로 콜업되었다!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가 바로 전날 연장 19회(...)까지 진행된 경기를 치루느라 투수 소모가 심했고 기존 5선발이던 타일러 스켁스가 토미 존 서저리를 받게 되면서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콜업으로 보인다. 한화 이글스에서 방출된지 대략 2달만의 일이고 클레이가 메이저리그에 콜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한화 출신 용병들이 꽤 많이 한화를 떠난 이후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았었지만 퇴출된 바로 그 해에 빅리그 승격을 그리고 메이저리그 데뷔를 이루어낸것은 클레이가 처음이다. 진짜로 메이저리거가 되었다

나름 2006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1라운더로서 각광을 받았었으나 그 이후 크게 발전하지 못하다가 드래프트 된 지 8년만에 메이저리그 승격을 이루어냈으니 클레이 본인도 나름 감격에 겨울 듯. 당연하겠지만 지난 22년동안 이 날을 기다려 왔다면서 본인은 흥분에 겨운 트윗을 작성했다. 인터뷰도 했는데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여기 스트라이크존을 경험하지 못해서 자신들의 스트라이크존이 얼마나 협소한지 모를 것이라는 옹골찬 말이 특히 주목받았다. 또 투수들의 근면함을 장점으로 말했는데, 사실상 네티즌들은 마구잡이식 불펜운용을 하는 김응룡을 까는 말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투수 소모가 심했던 것 때문에 콜업이 되었기 때문인지, 8월 10일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하루의 휴식일이 생겨 투수 운영에 여유가 생기자 한게임도 뛰지 못하고 8월 12일에 다시 AAA Salt Lake Bees로 내려갔다. 다만 그동안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적이 없어서 마이너리그 옵션이 3개 남아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지명할당되지는 않았다.

AAA에서 남은 기간 동안 실력발휘를 해서 9월의 확장 로스터 진입을 노려야 할 듯. 그러나 마이너리그로 내려간 이후 급격하게 페이스가 무너졌고 결국 AAA에서 평균자책점 5점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2015시즌에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으나 AAA에서 평균자책점은 5점대에 피안타율도 3할이 넘는 등 부진한 성적이었고 결국 시즌 후 방출되었다.

그후 부상때문에 현역을 은퇴하고 일반 회사를 다니면서 지낸다고 한다. 메이저리그 콜업은 있었으나 출전은 1경기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끝내 팬텀 볼플레이어로 남고 말았다.


4. 기타[편집]


  • KBO 리그에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래 한국에 왔을 당시의 나이가 가장 어린 선수 2위다. 1988년생이 2014년에 왔으니 26세. 1위는 2002년 현대 유니콘스멜퀴 토레스와 1999년 현대의 에디 피어슨. 토레스는 1977년생으로 2002년에 한국에 왔으니 25세에 한국에서 뛰었고, 10승 11패 평균자책점 4.19의 성적을 남겼다. 피어슨은 1974년생으로 1999년에 한국에 왔으므로 역시 25세. 129경기 502타수 145안타 31홈런 108타점 타율 0.289의 성적을 남겼다.





5.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3]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4
한화
10
40
3
4
0
0
0.429
8.33
62
8
28
20
40
37
2.175
KBO 통산
(1시즌)
10
40
3
4
0
0
0.429
8.33
62
8
28
20
40
37
2.175


6. 관련 문서[편집]




[1] 정근우의 실책으로 1사 1루에서 주자가 모두 살아남으며 클레이가 흔들렸다.[2] 마이너리그 AAA팀의 리그 중 하나로, 클레이가 속해있었던 솔트레이크 시티는 PCL에 속해있다.[3]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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