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일라 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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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일라 뮬러
Kayla Mueller


출생
1988년 8월 14일
미국 애리조나 주 프레스콧
사망
2015년 2월 16일 (향년 26세)
시리아 라카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학력
노던 아리조나 대학 (졸업)

소속
국경없는의사회

1. 개요
2. 납치




1. 개요[편집]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자원봉사자로 알려졌으나 국경없는의사회에서는 뮬러와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 2013년 8월3일 시리아 알레포의 시설을 수리하려고 기술자 1명을 보냈을 때 뮬러가 이 기술자를 따라왔기에 안전을 위해 국경없는의사회의 병원에 머물도록 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알레포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통신장비설치를 마치고 철수를 하던 중에 ISIL에게 납치당했다.

2. 납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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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시리아 알레포에서 터키 국경으로 이동하던 중 ISIL 대원들이 외국인 납치를 위해 매복해 있던 곳을 지나가면서 뮬러와 시리아인들 모두 IS에게 납치되었다.[1] 이후 미국은 2014년 델타포스제75레인저연대의 합동작전으로 라카의 한 버려진 정유소를 급습하였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2] 이후 이제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한 가족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 연방교도소에서 86년형을 선고받은 아피아 시디디키와 교환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거절당했다.[3]

IS는 자신들이 인질로 붙잡은 요르단 조종사 무아트 알 카사스베가 참여한 2015년 2월 미-요르단 합동폭격에 휘말려 뮬러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요르단 외무장관은 "인질을 인간방패로 세우고 공습으로 죽었다는 주장은 테러리스트들이 수십 년간 써온 낡고 역겨운 수법"이라며 거짓 선동이라 일축했다. IS는 뮬러가 사망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 등의 증거를 공개하지 않았다. IS는 이미 2014년 여름에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30일 안에 뮬러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했었으며, 미국은 IS가 이미 뮬러를 살해한 뒤 요르단군의 공습으로 숨졌다고 떠넘기는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 IS에 납치된 미국인은 뮬러 외에 세 명이 더 있는데, 이들은 모두 참수됐다.

파일:케일라 뮬러 마지막사진.jpg
그녀의 생전 마지막 사진이 남아있다. 얼굴의 탄 자국, 공포에 질린 듯한 눈에 약간의 멍자국, 그리고 위의 사진과 다르게 많이 야위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지속적으로 끔찍한 고문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뮬러와 함께 감금되어 있다가 탈출한 소녀들은 알바그다디에게 여러 차례 성폭행 당했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소녀들이 탈출하기 전 뮬러에게 함께 나가자고 제안했지만, "내 생김새가 눈에 띄어 함께 도주하면 모두 잡힐 것"이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2019년 10월 26일 미국 델타 포스가 알 바그다디 사살작전을 펼쳤을 때 작전명을 그녀의 복수라는 의미로 '케일라 뮬러 작전'으로 칭했으며, 알 바그다디는 델타 포스가 풀어놓은 군견에게 쫒기다 자폭하여 심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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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시리아 현지인은 이후 살아서 석방되었다.[2] 정확히는 얼마 전까지 인질이 있었다는 정보만 얻었다.[3] 한국에서는 이 테러리스트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IS는 이 테러리스트의 석방을 자주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