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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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리 양식
2.1. 케이준식 음식
2.2. 케이준을 이용한 패스트푸드


1.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후손격인 미국인[편집]


Cajun



1620년 경, 지금의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아카디아(Acadia) 지역에 이주해서 정착해 살던 프랑스인들이 1755년 영국인들에 의해 미국 루이지애나 지방으로 강제 이주하여 살게 되었고, 아카디아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단어 'Acadian'(아카디앙)이 지역민들에 의해 'Cadien'(카디앙)으로 와전된 후, 영어화와 구개음화를 거쳐 지금의 'cajun'(케이준)으로 부르는 식으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해당 지방은 당대의 미국인 기준으로는 척박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식생활은 프랑스 요리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한 토속적인 요리를 발전시켰다. 여기서 흔히 말하는 '케이준 스타일'이 탄생하였다.

오늘날 케이준이라고 하면 루이지애나 근방에 사는 프랑스계 미국인들, 또는 그들의 문화 방식까지도 아우르는 용어이다.


2. 요리 양식[편집]


원래 스페인/프랑스령이었던 미국 남서부 루이지애나의 토속 요리. 상술한 캐나다 출신 프랑스계 이주민 집단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다. 이들 외에도 인접한 멕시코 요리, 크레올 요리나 루이지애나에 원래 거주하던 프랑스계 이주민의 식문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원래 서유럽인은 중세 이래 전반적으로 밀가루 빵과 유제품과 쇠고기/돼지고기를 주로 먹었다. 잉글랜드인이라고 예외는 아니었고 그 잉글랜드인들 중 일부가 아메리카로 이주해 미국인이 되었을 때도 그러한 식습관은 유지되었다. 남북전쟁 때 북군의 졸병용 짬밥으로도 밀가루 건빵베이컨커피만큼은 꿋꿋이 배급되었고, 남부 노예주에서는 면화로 벌어들인 재화에 현지산 옥수수닭고기가 넘쳐나는데도 북부산 밀과 소돼지의 수입이 끊긴 탓에 도저히 사람이 먹을 만한 음식이 없어서 죽겠다는 불평까지 나올 정도였다. 쌀밥치킨을 즐겨 먹는 한국인으로서는 이해가 안 가겠지만, 우리식대로라면 먹을 것이 깡조밥런천미트밖에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북미 대륙 남서부 연안은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밀을 키울 건조한 들판이나 소를 키울 목초지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그렇다고 대농장을 차릴 만한 재벌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곳 주민들은 대안으로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요리해 먹었다.

당시 서유럽인들은 비리고 잡내나는 2급 식재료로 여기던 옥수수, 소동물[1]과 각종 수산물 따위의 현지산 식재료에 구하기 어려운 버터 대신 돼지기름이 더해졌다. 여기에 식재료의 잡내를 가리기 위해서 양념용 채소를 숫제 들이부어 강렬한 향미를 내는 요리를 창조해냈다. 그래서 케이준 요리를 food for survival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는 제육볶음, 부대찌개, 순댓국을 먹으며 살아왔던 한국인들이 충분히 이해할 만한 개념이다. 흔히 말하는 케이준 스파이스에는 마늘, 양파, 칠리, 후추, 겨자, 셀러리 등 강렬한 맛과 향을 내는 채소가 잔뜩 들어가 있다.

사용되는 재료와 조리법 덕분에 케이준 요리는 자극적이고 독특한 풍미로 유명하다. 풍미 못지않게 중요한 특징이 또 있는데 재료를 안 아끼는 요리법이라는 점이다. 원래 미국이라는 나라는 동시대의 다른 지역(특히 유럽)에 비해 식량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특히 기후와 토질 덕분에 양념용 채소의 재배가 수월했을 뿐 아니라 옥수수와 쌀과 소동물만큼은 잘 자라고, 카리브해의 해산물도 구하기 쉬웠다. 여기에 당시 인구 밀도도 낮았다는 점[2]까지 겹치면서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대개 선호하지 않던 기본 식재료를 전혀 아낄 필요가 없었다.

또한 소시지 등의 월동용 가공육 제품을 구워먹지 않고 썰어서 부재료로 활용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기후가 무더워 음식이 상하기 쉬웠고, 이 당시에 냉장고도 없었으니 돼지를 잡자마자 고기를 염장해서 소시지, 염장고기로 만들어 소비했었다. 돼지고기는 시간이 지나면 덥고 습한 곳에서 더욱 더 강한 군내를 풍기기 때문에 운좋게 갓 잡은 돼지는 그냥 통구이로 해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강렬한 햇빛과 소나기를 번갈아 받으며 미시시피 강 하구의 범람 습지까지 끼고 있는 루이지애나쇠고기가 많지 않았다.

결국 엄청난 양의 다양한 재료, 특히 19세기까지 유럽 내륙에서는 잘 안 먹던 쌀과 소동물과 해산물에 역시 귀하게 치던 각종 양념도 듬뿍 넣어서 기름지고, 맵고, 짜게 요리한 것이 케이준 요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더운 기후에서 육체 노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던 크레올과 더 후대의 유럽 출신 이민자[3]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며 대중화되고 정착한 것.

싸고 빠르고, 양도 많고 칼로리도 높으며, 자극적인 맛이라는 점에서 패스트푸드의 원형에 가까운 요리라고 할 여지가 있기도 하다. 실제로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등장하는 요리에 대한 묘사를 보면 당시 미국에서는 정통 남부 바이블벨트풍이나 크레올풍 식문화가 북부 식문화보다 더 풍부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나이프를 꽂으면 그대로 서 있을 정도로 크림을 듬뿍 넣은 진한 야채 크림 소스[4] 같은 묘사에서 당시 미국의 식량 사정이 동시기 유럽보다 훨씬 나았다는 것도 엿볼 수 있다.

흑인들이 먹는 음식인 소울 푸드와도 교집합이 있는데, 이 당시 흑인의 대부분은 남부에서 노예로 착취당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그냥 케이준 비슷한 향만 내는 스파이스를 대충 넣은 음식의 접두어로도 '케이준'이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 케이준 버거 등이 그 예. 군대의 케이준 샐러드라던가



2.1. 케이준식 음식[편집]


정식 요리라기보다는, 굳이 따지자면 개발도상국 시절 한국의 꿀꿀이죽에 가깝다. 백인 노예주들이 흑인 노예들에게 백인들이 안먹는 쌀에 닭과 돼지의 내장과 잡부위(똥집, 염통, 간, 콩팥, 소창, 껍데기 등)를 곁들여 배식한 것이 시초라고 알려져있다. 케이준 요리로 분류 되지만 소울 푸드의 성격이 더 강하다. 케이준식은 닭간과 돼지 소창 대신에 소시지와 다진고기가 들어간다. 물론 케이준식으로 강한 양념이 된게 훨씬 먹을만하다.


2.2. 케이준을 이용한 패스트푸드[편집]



2.2.1. 파파이스[편집]




2.2.2. 맥도날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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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로 닭 같은 가금류[2] 17세기 경에 스페인인 탐험가가 미시시피강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전염병이 번지는 바람에 인구가 크게 줄어들었다.[3] 주로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건너온 이민자들이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고향에서 제대로 못 먹었던 것에 한이 맺힌 사람들이기도 했다.[4]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제대로 만든 크림은 상당히 비싼 식재료였다. 나이프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농도가 진한 소스라는 건, 그 비싼 크림을 그만큼 엄청나게 쏟아부었다는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