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아이티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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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개요
2.1. 근세
2.2. 18세기 ~ 19세기
2.3. 20세기
2.4. 21세기
2.4.1. 2010년대
2.4.2. 2020년대
3. 문화 교류
4. 아이티계 캐나다인
5. 대사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캐나다아이티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양국은 프랑코포니, 미주기구회원국에 속해 있고 캐나다내에는 수많은 아이티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2. 개요[편집]



2.1. 근세[편집]


양국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었다. 17세기에 퀘벡일대가 프랑스의 식민지였지만, 영국과 프랑스가 7년 전쟁을 치른 끝에 퀘벡일대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루이지애나일대와 생도맹그가 프랑스령으로 남았다. 프랑스는 히스파니올라 섬 서쪽을 차지한 뒤, 프랑스령 생도맹그로 삼았다.#


2.2. 18세기 ~ 19세기[편집]


18세기 말에 생도맹그에서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이티 혁명이 일어났다. 아이티 혁명 당시에 백인 농장주, 흑인 노예 사이에서 격렬한 전쟁이 일어났다. 결국 프랑스령 생도맹그는 아이티라는 이름으로 독립했다. 반면, 캐나다는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19세기에 캐나다는 자치권을 얻는 형식으로 점진적인 독립이 이뤄졌고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2.3. 20세기[편집]


양국간의 수교는 20세기에 있었다. 다만, 거리상으로 캐나다와 아이티는 멀었기 때문에 교류와 협력이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미국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

한 때는 세계 최대의 설탕과 커피 생산지였던 아이티는 독립 이후 수출애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 농업 생산성에서 다른 국가들에게 도태되면서 외부 인구 유입이 중단되고 급격히 몰락한 반면 캐나다는 20세기 초반 대규모 밀 재배와 낙농업 육성 정책이 성공하고, 2-3차 산업에서 미국과 연계하여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고 대량의 이민자들을 받이들이게 되었다.

2.4. 21세기[편집]


양국은 프랑코포니, 미주기구 회원국이다. 캐나다와 아이티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프랑스의 영향이 남아있다.

2004년에 빌 그레이엄 외무장관은 아이티의 정치적 상황이 개선을 전제로 100명의 경찰력 파견이 가능하다고 밝혔고 동시에 미화 86,000달러 상당의 의료품과 구호물자를 유엔과 적십자사를 통해 보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2.4.1. 2010년대[편집]


2010년 1월 16일에 캐나다 정부는 아이티인들의 이민신청을 우선 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1월 17일에 캐나다는 군대를 파병해 아이티 구조팀을 보낸다고 밝혔다.# 1월 18일에 캐나다의 로렌스 캐넌 외무장관은 아이티를 지원하기 위한 회담을 1월 25일에 개최한다고 밝혔다.# 1월 26일에 스티븐 하퍼 총리는 아이티 재건에 최소 10년은 걸린다고 밝혔다.# 10월 1일에 데이비드 존스턴이 신임 총독으로 취임하고 미셸 장 전 총독은 유엔 아이티 특사가 됐다.# 12월 9일에 포르토프랭스에서 투표 결과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화되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르네 프레발 아이티 대통령, 로렌스 캐넌 캐나다 외교장관 등은 시위대에 자제를 촉구했지만 시위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2012년 1월 11일에 캐나다는 아이티 강진 2주년을 맞아 포르토프랭스에서 주택 신축이나 보수 작업을 벌여 모두 2만 채의 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6년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며 미국과 아이티가 갈등을 빚자 미국내의 아이티인들중에는 캐나다로 이주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2017년 8월에 미국내 아이티 난민들이 캐나다로 망명하는 경우가 늘어났다.#1# 게다가 미국내 아이티인들의 캐나다 밀입국이 늘어났다.# 8월 21일에 캐나다 정부가 미국에서 불법 월경하는 아이티 난민 급증 대책에 부심하는 가운데 이들의 배후에 전문 알선 조직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나섰다.#


2.4.2. 2020년대[편집]


2021년에 아이티에서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혼란이 일어나자 캐나다는 캐나다인의 아이티 체류를 연기하라고 권고했다.# 7월 17일에 유엔, 미주기구(OAS) 특사와 유럽연합(EU), 미국, 프랑스, 독일, 브라질, 캐나다, 스페인 등의 아이티 주재 대사들로 이뤄진 코어그룹은 성명을 내고 앙리 지명자가 총리직을 수행할 것을 권고했다.# 10월에는 캐나다인이 포함된 선교단이 아이티에서 갱단에 의해 납치된 일이 발생했다.#

2022년 1월 7일에 아이티에서 캐나다인 기자가 총격으로 사망한 일이 발생했다.#

2022년 10월 27일 캐나다에서 아이티의 안보 상황과 인도주의적 지원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대표단을 파견했다. #

3. 문화 교류[편집]


캐나다는 퀘벡일대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프랑스어가 퀘벡주의 공용어이자 캐나다의 공용어에 속해 있다. 아이티는 프랑스의 지배와 영향으로 프랑스어가 공용어이면서도 프랑스어에서 파생된 아이티 크레올어가 공용어다. 또한, 퀘벡에 아이티계 캐나다인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아이티 크레올어 화자가 캐나다에 남아 있다.


4. 아이티계 캐나다인[편집]


경제적인 상황으로 아이티인들중에는 미국캐나다로 이주한 경우가 많이 있다. 특히, 퀘벡 지역에는 수많은 아이티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2005년에 아이티 이민자 출신의 미셸 장이 캐나다 여성 총독으로 취임한 적이 있었다.#


5. 대사관[편집]


포르토프랭스 시에 주 아이티 캐나다 대사관, 토론토 시에 주 캐나다 아이티 대사관이 존재한다.

2019년 2월 17일에 캐나다는 아이티에서 혼란이 일어나자 주 아이티 캐나다 대사관을 폐쇄했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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