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 피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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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카라 칼튼 피오리나
Cara Carleton Fiorina[1]

출생
1954년 9월 6일(69세)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정당


학력
스탠퍼드 대학교 (사학 , 철학 / B.A.)
UCLA 법학대학원 (중퇴)
메릴랜드 대학교 (경영학 / M.S.)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경영학 / M.S.)
가족
배우자
토드 바틀렘 (1977~1984)
프랭크 피오리나 (1985~)
자녀
2명[2]
경력
AT&T 이사
휴렛팩커드 CEO
TSMC 사외이사
1. 개요
2. 약력
3.1. 대러시아 정책 발언과 반응



1. 개요[편집]


휴렛팩커드 CEO. 그리고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공화당의 유일한 여성 후보였다. 이 경선에 출마하기 전에 미국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떨어진 바 있다. 뉴햄프셔 경선 이후 선거 캠페인 중지를 선언했다. (사실상 사퇴) 사퇴 후 한동한 조용히 있다가 3월 초에 트럼프를 막아야 한다며 테드 크루즈 지지선언을 했다. 이런 구애에 보답을 받았는지, 테드 크루즈는 칼리 피오리나를 러닝 메이트로 지명했지만 테드 크루즈 역시 사퇴하였다.[3]


2. 약력[편집]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했다. 이어 UCLA 로스쿨에 진학했으나 한학기만에 중퇴했다. 이후 부동산 중개업을 하다가 이탈리아에 유학하는 남편을 따라 가서 그곳에서 영어 강사를 했다. 하지만 이 첫 남편과는 이혼했고, 미국에 돌아온 이후 결혼한 두 번째 남편인 프랭크 피오리나와 결혼하여 현재 두 번째 남편의 성을 쓰고 있다. [4] 이후 메릴랜드대학에서 MBA, MIT에서 경영학 석사(MS)를 따고 이 경력으로 AT&T에 들어갔다. 이후 IT 및 전자기업인 루슨트 테크놀로지, 필립스에서 경영에 능력을 보였고 주목을 받게 된다. 한국에도 잠깐 왔었는데 당시 거래처 간부와 유흥주점에 같이 가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남자 접대부를 붙여주겠다는 제안은 거절했다고.

이런 경력으로 국제적인 IT 대기업인 휴렛패커드에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CEO로 영입되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입지전적인 인물로 볼 수 있겠으나...

CEO로서의 경력은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대표적인 것은 당시 PC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인답시고 컴팩(Compaq)을 무리하게 많은 돈을 주고 샀다는 것. PC는 사실 서버/메인프레임이나 순수 소프트웨어 쪽에 비하면 마진율이 별로이기 때문에 Dell처럼 유통 비용을 줄이는 혁신을 이룬 게 아니라면 기업 차원에서 굳이 뛰어들 필요가 없는데, 무리한 결정으로 회사의 이익에 큰 손실을 주었다는 것이다. 만약 합병이 1990년대였다면 IBM PC 호환기종 기술을 이끌던 컴팩이니만큼 합병이 위력을 발휘했을 수 있지만,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는 게이트웨이 등이 PC의 가격경쟁을 주도하면서 시장 자체가 가격 본위로 변화하게 된다.[5] IBM이 얼마 지나지 않은 2004년경에 PC 사업부를 Lenovo에 팔아치운 이유이기도 하다. 주주들의 걱정대로 PC 사업부는 2003년과 2004년에 영업 이익률이 1%가 안되는 처참한 성적을 냈다. 그 외에도 그가 주도한 기획안들이 실패를 거듭하며 후임들의 부담을 키웠다.

이러한 이유로 휴렛팩커드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주범이라는 것이 세간의 평이다. HP의 금지어 실제로 IT, 경제경영 관련 매체에서 피오리나는 금지어로 취급되며 구글 연관검색어에는 'Terrible CEO'가 뜬다. 자신은 퇴직 보너스로 211억원을 챙겨 더욱 큰 비난을 받았다. HP CEO를 사임한 후에는 다른 IT기업의 임원직을 맡았다. 2006년에는 TSMC의 사외이사를 지내기도 했으나, 정치 투신을 위해 일찌감치 사임하게 된다. 그러나 피오리나는 이미 미국에서 실패한 경영인의 대표 격으로 찍혀 있는 상태였고, 2010년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에 출마했을 때나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을 때도 그 어떠한 기업 관계자들도 그녀를 지지하지 않았다. 심지어 2015년 11월에는 현직 HP CEO이자 크리스 크리스티의 지지자인 멕 휘트만에게도 디스당했다. 겉으로는 주지사와 같은 자리에서 정치 경력을 더 쌓고 오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처럼 들리지만 피오리나의 경력을 "Nice to have,"[6] 즉 있으면 좋은 정도라고 한 것은 사실상 경력이 마이너스(...)라고 비난하는 쪽에 가깝다.

2014년에 고려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는데, 이사회가 내부문건을 언론에 공개하며 문제가 생겼고 자신이 스스로 CEO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라는 변명을 해 비난을 샀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선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를 지지했다. 지지 선언 이유로는 "바이든은 평생 겸손함과 공감 능력을 보인 인물이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함과 공감 능력"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후보에게 지지 선언을 한 칼리 피오리나에 대해 "내게 처참하게 패배한 경선 주자"라는 트윗을 남겼다.#

3.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편집]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를 선언했다. 처음에는 낮은 지지율 때문에 메이저 1차 토론회에 초대 받지 못했으나 마이너 1차토론회에서 (지지율 10위 밖의 후보들을 위한 토론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높아진 지지율로 CNN에서 열린 2차 토론회에는 메이저 토론회 참가 자격을 얻었다. 여기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지율이 3%정도 올라갔다! 토론회 중 자신의 얼굴을 비판한 도널드 트럼프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2015년 9월에는 지지율 3위를 달리고 최대 15%를 찍으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 경력이 있는 인물을 불신하는 현 공화당 투표자의 성향과 맞물려서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불과 몇달전 10위 안에도 못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러나 10월달부터 지지율이 다시 폭락하기 시작해서 11월에는 평균 3.0%의 지지율로 8위로 다시 주저앉았다.

12월 5일에는 아이오와에서 시청 모임을 개최했지만 거의 아무도 오지 않아 굴욕을 당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트럼프와 카슨 사이에서 경선을 이길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결국 현지시간 2월 10일 경선중단을 선언했다.


3.1. 대러시아 정책 발언과 반응[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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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과 만나봤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만, 저라면 그와 한마디의 말도 안할 것입니다. 우리는 푸틴에게 벌써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할 것은 즉시 미해군 6함대와 폴란드 미사일 방어체계 전력 배치를 재구축 하겠습니다, 또한 발트 3국에 대해서 일관되면서도 강경한 군사적 조치도 취할 예정입니다. 저는 수천명 이상의 군대를 독일로 보낼 것입니다. 그러면 블라디미르 푸틴도 그 뜻을 알 것입니다. <중략> 러시아는 말썽을 부리는 국가지만 푸틴은 대화할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면 그를 멈출 유일한 방법은 강력함을 보이는 등의 기존의 방법과는(평화적)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서 그들은 우리 손아귀에 들어올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제6함대를 재구축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안 해 왔지만 제가 할 것입니다. 우리는 미사일 방어 체계를 재구축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안 해 왔지만 제가 할 것입니다.


"Having met Vladimir Putin, I wouldn't talk to him at all. We've talked way too much to him. What I would do, immediately, is begin rebuilding the Sixth Fleet, I would begin rebuilding the missile defense program in Poland, I would conduct regular, aggressive military exercises in the Baltic states. I'd probably send a few thousand more troops into Germany. Vladimir Putin would get the message. <…> Russia is a bad actor, but Vladimir Putin is someone we should not talk to, because the only way he will stop is to sense strength and resolve on the other side, and we have all of that within our control. We could rebuild the Sixth Fleet. I will. We haven't. We could rebuild the missile defense program. We haven't. I will."

위의 발언은 2016년 9월 16일에 열린 공화당 2차 토론회에 나온 것으로 트럼프가 "푸틴과 얼마든지 만날 의향이 있다"고 말한 것에 대응하는 성격의 내용이었다. 요약하자면
  1. 미 해군 제6함대(유럽, 중동관할) 증강하겠다.
  2. 중단했던 폴란드의 미사일방어체계 전력 배치를 재개한다.
  3. 러시아 코앞인 발트 3국에서 나토의 군사훈련을 대규모로, 수시로 실시하겠다.
  4. 주독미군 병력을 수천명 증원하겠다.
  5. 푸틴과는 일체의 회담이나 대화를 거부하고, 상대 자체를 안 하겠다.

이 발언 덕분에 트럼프와 견줄만한 인지도를 얻게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미러관계 전문가들은 어이가 우주 끝으로 날아간(...) 반응을 보였다. 현재 미러관계 악화의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러시아와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런 사고방식으로 경영을 하니 회사를 말아먹지."라는 반응...

하지만 이 이후로 딱히 존재감이 있는 발언을 하지 못했고 계속해서 지지율이 떨어져 버렸기에 트럼프의 압승이 기록된 뉴햄프셔 경선 이후 출마 포기를 선언 하였다.

그런데 피오리나의 대러 정책은 오바마 행정부 말기부터 일부분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폴란드5조 8천억 규모의 MD 도입을 결정했고, 발트3국에서 '대규모'와 '수시'가 어느 정도인지는 의견이 갈리겠지만 크림 사태 이후 NATO 군사훈련 빈도가 크게 늘어났다.#

결국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적으로 침공하면서 미군 전력이 대규모로 동유럽에 재배치되고, 러시아와 서방세계 간의 외교적 채널이 얼어붙는 등 피오라나의 대러정책이 대부분 현실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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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혼 전 성은 스니드(Sneed).[2] 수양딸들이다[3] 훗날 테드 크루즈는 친트럼프계 인사가 된 반면, 칼리 피오리나는 비트럼프계를 넘어서 반트럼프계 인사가 되었다.[4] 결혼 전 성은 스니드 Sneed.[5] 컴팩은 IBM보다 먼저 인텔 80386 CPU를 사용한 32비트 PC를 내는 등 90년대 PC 시장의 리더였다. 그러나 2000년대에 와서는 역시나 가격경쟁에 말려들면서 사실상 저가 브랜드로 전락한 상태였다.[6] 휘트먼 인터뷰 동영상 2분 50초에 해당 문장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