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루냐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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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텔라다
Estelada

파일:에스텔라다.svg

카탈루냐 독립파들이 쓰는 분리주의 깃발.[1]
1. 개요
1.1. 상징 깃발: 에스텔라다
2. 역사
2.1. 통합 스페인 이전 시대
2.2. 통합 스페인 왕국
2.2.1.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의 동군연합 스페인 왕국
2.2.2. 카를로스 1세
2.2.3. 펠리페 2세
2.3. 카탈루냐 반란(수확전쟁)
2.4.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과 자치권의 박탈
2.5. 현대
2.6. 2014년 분리독립 비공식 투표
2.7. 2015년 분리독립 선언
2.8. 2016년 분리독립파 자치정부 수반 선출
2.9. 2017년 분리독립 주민투표 강행
2.9.1. 스페인 정부의 강경대응
2.9.2. 실현 가능성
2.10. 2017년 10월 독립 선언
2.11. 2018년
2.12. 2019년
2.13. 2020년
2.14. 2021년
3. 분리 독립의 이유
3.1. 독립적인 정체성
3.2. 경제적인 이유
3.3. 스페인 정부의 탄압과 차별, 억압
4. 진행 흐름에 대한 아쉬움
5. 스페인 법리적 측면과 스코틀랜드와의 차이점
5.1. 법리 외적 관점에서
6. 실제 가능성
7. 독립하면 바뀌는 것들
7.1. UNEU 정회원 가입 문제
7.2. 독립 카탈루냐가 선택 가능한 전략
8. FC 바르셀로나 등 카탈루냐 스포츠 클럽들의 거취 문제
8.1. FC 바르셀로나의 타 리그 편입 가능성?
9. 스페인 국왕의 카탈루냐 독립운동 비판
10. 한국의 반응
10.1. 옹호 측
10.2. 비판 측
11. 기타
12.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2013091600161_0.jpg


스페인카탈루냐 지역이 스페인에서 독립하여 독자적인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분리주의 운동.

보통 카탈루냐 독립이라고 하면 스페인의 카탈루냐 자치지방(autonomous community)만을 대상으로 한다. 극단적인 일부는 같은 카탈루냐어권이자 문화권인 발렌시아 지방[2]발레아레스 제도까지 포함한 '대카탈루냐' 분리독립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카탈루냐 자치지방만을 독립 대상으로 못박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발렌시아는 카탈루냐어를 쓰는 카탈루냐 문화권이지만 카탈루냐 자치지방과는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입장의 차이가 있다.

2017년 10월 27일 카탈루냐 공화국으로 공식적으로 독립 선포를 함에 따라 미승인국 목록에 등재되기도 했으나 결국 카탈루냐가 스페인 정부에 굴복하고 카탈루냐 의회 조기 해산을 받아들임에 따라 사실상 과거에 있었던 일이 되었다.


1.1. 상징 깃발: 에스텔라다[편집]


문서 상단에 나와 있는 것처럼 카탈루냐 독립파들이 쓰는 분리주의 깃발이다. 1918년에 비센스 알베르트 바예스테르(Vicenç Albert Ballester)가 도안하였는데, 전통적인 카탈루냐 깃발에 흰 별과 파란 삼각형을 덧붙였다.

사회주의 계열 카탈루냐 독립파들은 파란 삼각형을 노란색으로, 흰 별을 붉은색으로 바꾼 "red estelada"를 사용한다. 한편 발렌시아 지방의 카탈루냐 내셔널리스트들은 에스트렐라다라는 유사한 깃발을 사용한다.

2017년 카탈루냐 위기를 보도할 때 한국 언론들이 이 깃발을 "카탈루냐 국기"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에스텔라다는 카탈루냐 자치정부, 그리고 며칠간 독립을 선포했던 카탈루냐 공화국에 의해 어떠한 공식적 지위도 부여된 바가 없다.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공인한 깃발은 노란 바탕에 붉은 가로줄 네 개가 그려진 "세녜라(Senyera)"뿐이다.


2. 역사[편집]



2.1. 통합 스페인 이전 시대[편집]


이곳에 처음 문명을 세운 건 페니키아인들로, 페니키아인들의 도시 중 하나인 카르타고의 식민 도시로 시작했다. 포에니 전쟁 후엔 로마 제국의 속주가 되었고 게르만족남하 이후엔 서고트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전역을 정복한 후엔 알안달루스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다 프랑크 왕국샤를마뉴가 이 지역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피레네 산맥의 험난한 지형을 방패 삼아 이슬람으로부터 왕국을 보호할 변경백(Marca Hispanica)을 설치했는데 이게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카탈루냐라는 정체성의 시초다. 이들 변경백들은 이슬람 세력이 강할 때는 움츠리고 있었다가 약해질 때는 점차 남하하기를 약 700년간 반복했고 후대에 이르러 이를 레콩키스타라고 불렀다. 또 이들은 이슬람이란 공동의 적을 앞에 두고 서로 친목을 다졌는데 이는 혼인 동맹을 넘어 혼인을 통한 동군연합으로까지 발전했다. 바르셀로나 백작령의 백작위로 시작해 아라곤 왕국의 왕위까지 차지한 바르셀로나 가문이 그 예이다. 허나 이렇게 백작으로 시작해 왕작까지 오른 바르셀로나 가문도 그 영화는 영원하지 못하고 1410년 왕가의 대가 끊기면서 왕국에 영향력을 미치던 이웃 카스티야 왕국의 트라스타마라 가문이 바르셀로나 가문의 외손이란 구실로 왕위를 차지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같은 가문인 카스티야와 어떠한 계기만 발생한다면 언제든 하나의 나라로 합쳐질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2.2. 통합 스페인 왕국[편집]



2.2.1.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의 동군연합 스페인 왕국[편집]


1469년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이사벨 공주(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왕자(페르난도 2세)가 결혼했는데 이들은 육촌 지간이었다. 이사벨 공주와 페르난도 왕자는 1474년과 1479년에 각각 카스티야 연합 왕국과 아라곤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두 왕은 양국의 공동왕이 되었고 두 왕국은 동군연합이 되었다. 1492년 마침내 레콩키스타를 완수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한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카스티야-아라곤 연합 스페인 왕국을 선포하였다. 이 스페인 연합 왕국은 두 왕국이 동등하게 연합한 형태로 두 왕국 간의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과 독립성이 유지된 상태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카스티야가 아라곤보다 4배 많은 인구와 영토를 보유하여 국력에서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실권에 있어서 이사벨 여왕의 입김이 더 강했다.

물론 페르난도 왕은 아라곤을 단독으로 다스릴 수 있었고 카스티야를 이사벨 여왕과 공동으로 다스리는 특권을 받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카스티야보다 아라곤이 더 세력이 약했고 또 이사벨 여왕이 1살 더 연상이어서 페르난도 왕은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 기를 펴지 못했다.[3] 실제로 이사벨 여왕은 나라의 중대사를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 한 예가 콜럼버스의 신대륙 원정을 지원한 일이었다. 이사벨 여왕은 남편과의 상의 없이 카스티야 여왕의 자격으로 단독으로 콜럼버스를 지원했고 그 결과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 관한 식민지의 권리는 카스티야 왕국 쪽이 보유하기로 했다.

카스티야와 아라곤 동군연합의 조건은 동군연합은 이사벨 1세와 페르난드 2세의 제위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유지되며,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의 자식이 이 두 나라를 함께 물려받아 나라를 하나로 합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사벨 1세가 먼저 사망하자 페르난도 2세는 다른 시도를 했다.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 사이에서 생존한 유일한 자녀는 후아나 공주였으며 그녀가 이사벨 1세에 이어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여왕이 되었고, 약속대로라면 페르난도 2세의 사망 후 후아나가 아라곤 왕국까지 물려받아 통합 스페인 왕국의 여왕이 되어야 했다. 이사벨 1세가 죽으면서 그녀의 남편이었던 페르난도 2세는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공동왕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고 아라곤 국왕의 지위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페르난도 2세는 딸 후아나의 정신이상을 핑계로 딸의 왕위계승권을 뭉개고 자신이 카스티야도 독차지하려고 시도하는 한편 프랑스의 공주와 재혼한 후 그 사이에 태어난 자식에게 스페인 전체를 넘기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페르난도 2세는 재혼한 왕비에게서 자식을 얻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카스티야 의회 및 후아나의 남편인 펠리페 1세의 본가인 신성 로마 제국오스트리아 대공국을 통치하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반발에 직면했다. 결국 페르난도 2세 사후의 왕위는 후아나와 펠리페 1세의 아들 카를로스 1세(카를 5세)에게 넘어갔다.


2.2.2. 카를로스 1세[편집]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국왕 사후 합스부르크 가문의 카를로스 1세(카를 5세)[4]가 즉위했다. 일반적으로 카를로스 1세를 통합 스페인 왕국의 첫 국왕으로 본다. 그의 치세를 거치면서 스페인은 하나의 왕국으로 통합되어 갔다. 그러나 카를로스 1세가 즉위할 당시 스페인의 분위기는 외국 출신의 새 국왕에 대해 상당히 적대적이었다.[5] 게다가 제위 초기에 카를로스 1세가 장기간 신성 로마 제국에 머물면서[6] 카스티야에서 과중한 전쟁 물자를 징발하자 결국 스페인(주로 카스티야)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신성 로마 제국에 계속 머물고 있던 카를로스 1세는 반란이 크게 확산되자 결국 스페인으로 돌아와 각지의 반란을 무자비하게 토벌한 후 스페인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구축했다.

카를로스 1세는 한 곳에 고정적으로 머물지 않고 자신의 영지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스페인에서 비교적 많은 시간을 보낸 편이다. 카를로스 1세는 톨레도, 바야돌리드 등 카스티야 지방에 머물면서 그곳을 중심으로 스페인을 통치했다.[7] 기본적으로 그의 영토 중 카스티야가 인구와 경제력에서 있어서 가장 컸다. 게다가 카스티야의 아메리카 식민지로부터 엄청난 이 유입되고 있었다. 때문에 자연스레 카를로스 1세는 카스티야를 그의 통치착취의 중심지로 삼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8]톨레도는 스페인 국토 정중앙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통치하기 가장 적합한 지역이기도 했다.[9]

카를로스 1세 시절 카스티야가 소유한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막대한 금은이 쏟아지면서 카스티야의 경제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하여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된다. 반면 카탈루냐는 경제적으로 지중해 무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는데 15~16세기에 걸쳐 오스만 제국이 급부상하며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유럽까지 침공하는 통에 지중해 무역이 거의 마비 상태에 이를 정도로 크게 위축되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10] 카스티야의 경제 사정이 좋아지자 카를로스 1세는 카스티야를 집중적으로 털어 전비를 충당했다.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전쟁을 치렀던 카를로스 1세는 막대한 전쟁 자금이 필요했는데, 카를로스 1세의 영지 중에서 가장 심하게 수탈당한 지역이 카스티야였다. 카스티야 지방은 카를로스 1세 제위 초기에 심각한 반란을 일으켰다가 무참히 진압되었기 때문에 끽소리 못 하고 과중한 납세의 부담을 져야만 했다.

이에 비해 카탈루냐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과세 부담을 졌고 특히 군비 측면에서는 거의 부담을 지지 않았다. 아라곤 왕국의 세 개의 영지인 아라곤, 카탈루냐, 발렌시아는 독자적인 법률과 도제 제도를 갖추고 있었고 상당 수준의 자치권을 누리고 있었는데 카를로스 1세는 이를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이처럼 카를로스 1세 치하를 거치면서 카스티야가 스페인의 중추가 된 반면 연합 왕국의 양대 축이었던 카탈루냐는 카를로스 1세가 파견한 부왕이 통치하면서 스페인의 일개 지방이 되어 갔다. 그러나 이러한 통치술은 카를로스 1세가 카스티야를 편애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시 경제력이 우세했던 카스티야를 더 쥐어짜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카를로스 1세는 자신을 플랑드르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2.2.3. 펠리페 2세[편집]


카를로스 1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그의 아들 펠리페 2세(재위 1556년~1598년)는 흔히 유럽 절대왕정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언급된다. 기존의 수도였던 유서 깊은 도시 톨레도가 제국의 수도로는 너무 비좁았기 때문에 펠리페 2세는 넓직한 평야 지대이며 당시에는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던 마드리드천도를 단행하여 번듯한 새 왕궁을 짓고 제국을 위한 새로운 수도를 건설했다. 그는 새로 건설된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절대주의 통치를 펼쳤고 카탈루냐는 이제 스페인 왕국의 한 행정구역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자치권은 유지한 상태였다. 펠리페 2세 이후에도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카탈루냐는 자치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2.3. 카탈루냐 반란(수확전쟁)[편집]


30년 전쟁(1618~1648) 막바지인 1635년 프랑스-스페인 전쟁이 일어났다. 합스부르크 왕조가 다스리던 스페인 중앙정부는 프랑스와 국경과 맞닿은 카탈루냐 지방에 프랑스를 공격하기 위한 군대를 주둔시키고 현지에서 물자를 징발했다. 이러한 조치는 펠리페 4세의 신임을 받던 재상 올리바레스 공작 가스파르 데 구스만에 의해 취해진 것이었다. 올리바레스는 '공평한 과세' 부과를 국정의 핵심 과제로 삼고 있었다. 그동안 스페인 제국의 군사 활동에 대한 경제적 부담은 거의 전적으로 카스티야가 짊어졌는데 올리바레스는 이 문제를 바로잡아 이제는 왕국 전체가 보다 '평등한 군사적 부담'을 지도록 과세 개혁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카탈루냐에서도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물자를 징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말만 공평이고 평등이지 안그래도 메마르고 황량한 곳에 그나마 중세 양모산업으로 부흥했던 카스티야 경제가 스페인 왕실의 지속적인 착취로 박살나서 몰락하다 보니 그냥 착취할 대상을 카탈루냐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마침 프랑스-스페인 전쟁이 발발하자 스페인 군대는 프랑스와의 국경지대인 카탈루냐에 주둔하며 물자를 징발했다. 그러자 카탈루냐 농민들이 중앙정부에 불만을 품고 1640년에 반란을 일으켰으니 이를 수확전쟁(Guerra dels Segadors)이라고 부른다.

농민 반란이 일어나자 제네랄리타드를 이끌던 카탈루냐 귀족 지도자들은 이것을 기회로 삼아 아예 프랑스 왕국에 편입되기로 결의하고 프랑스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프랑스군이 카탈루냐로 진주했고 곧 스페인군과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사태는 점차 묘하게 꼬여갔다. 카탈루냐 귀족들은 부르봉 왕조의 프랑스에게 자신들이 그때까지 유지해 왔던 봉건적 특권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프랑스 재상 리슐리외는 단호하게 이를 거절했다. 유럽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중앙집권적 절대왕정을 추구하던 프랑스 왕정에게 자치권이나 봉건적 귀족 특권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동안 프랑스 왕정이 절대왕정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최대의 걸림돌이었던 것은 지방의 봉건 영주들이었다. 프랑스 왕정은 지방 귀족들의 봉건적 특권을 빼앗고 그들을 왕권의 통제하에 두기 위해 중앙귀족화시키는 과정에서 지난한 노력과 희생을 치러 왔다. 이랬던 프랑스 왕국이 카탈루냐 귀족들의 봉건적 특권을 용인해 줄 리는 추호도 없었다.

한편 카탈루냐에 진주한 프랑스군은 자신들이 카탈루냐를 구해주러 왔다면서 갑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프랑스군의 갑질 속에서 카탈루냐인들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절대왕정을 구축했던 프랑스의 통치 시스템이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통치보다 훨씬 가혹하고 엄격하게 통제된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카탈루냐인들은 점차 프랑스에 대해 회의를 가졌고 자신들이 저지른 짓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카탈루냐의 귀족 지배층과 농민층이 분열하기 시작했다. 처음 반란을 일으킨 카탈루냐 농민들의 이해관계는 카탈루냐 귀족 지도자들과는 달랐다. 카탈루냐 정치 지도자들은 봉기한 농민들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 반란이 진행됨에 따라 상황이 엄하게 돌아가는 꼴을 본 카탈루냐 농민들은 귀족 지도자들을 불신하게 되었다. 카탈루냐 농민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카탈루냐를 프랑스에 갖다바쳤다가 더 엄한 사태를 초래한 귀족 지도자들을 원망하게 된다. 결국 농민들의 칼끝이 점차 귀족 지도자들을 겨누었다.

한편 카탈루냐인들이 점점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프랑스군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도와 달라고 해서 도와주러 왔더니 오히려 쌩까는 모습을 본 프랑스군은 크게 실망하여 카탈루냐에서 스페인과 싸우려는 의욕도 상실해갔다. 차차 프랑스군은 수세에 몰렸고 마침내 프랑스 정부는 카탈루냐에서 프랑스군을 철수시켰다. 곧 스페인 중앙군이 바르셀로나를 포위하여 공성전에 들어갔고 카탈루냐는 결국 스페인 중앙군에 항복했다. 그러나 아직 프랑스-스페인 전쟁 와중이었기 때문에 반란이 진압된 후에도 카탈루냐는 계속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보장받는 등 비교적 관대한 처분을 받았다.

1659년 프랑스-스페인 전쟁이 완전히 끝나고 피레네 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에 의해 피레네 산맥 이북에 있는 스페인 영토가 프랑스에 할양되었고 피레네 산맥 이북에 있는 카탈루냐의 영토 역시 프랑스로 넘어가게 되었다. 현재 프랑스의 피레네조리앙탈(Pyrénées-Orientales) 지역[11]이 이때 할양된 카탈루냐의 땅이다. 과거 프랑스에 병합된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피레네조리앙탈 지역 역시 카탈루냐어의 사용을 금지당하고 프랑스어의 사용을 강요당하여 프랑스어 사용 지역이 되었다.


2.4.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과 자치권의 박탈[편집]


1700년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마지막 국왕 카를로스 2세가 후사 없이 승하하자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둘째 손자 필리프 공작(펠리페 5세)을,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제국)의 레오폴트 1세는 차남 카를 대공(카를 6세)을 합당한 스페인 왕위 계승자라고 주장했다. 카를로스 2세의 유언은 필리프 공작을 차기 계승자로 지명했기 때문에 루이 14세는 재빨리 필리프를 스페인으로 보내 펠리페 5세로 즉위시켰으나 잉글랜드,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이 이에 반발하여 카를 대공을 옹립하면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했다.

카탈루냐-발렌시아 지역은 1640년 카탈루냐 반란 때의 경험으로 프랑스 부르봉 왕조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의 카를 대공을 지지하며 전쟁에 뛰어들었다. 카탈루냐-발렌시아는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로부터 그때까지 어느 정도 자치권을 보장받아왔기 때문에 합스부르크 왕조에서 왕위를 이어받는다면 계속 자치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반면 절대왕정을 추구하는 부르봉 왕조가 왕위를 이어받는다면 프랑스 남부 지방처럼 자치권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은 물론이고 카탈루냐어를 금지당하고 중앙정부가 강요하는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를 써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12]

그런데 한창 전쟁이 진행 중이던 1711년 카를 대공이 형 요제프 1세의 급사로 합스부르크 제국을 상속 받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6세로 선출되면서 전황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카를 6세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열강들이 태도를 바꾸어 부르봉 왕조의 펠리페 5세를 스페인 국왕으로 차례로 승인하면서 전쟁이 수습단계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카탈루냐는 오스트리아의 지원을 받으며 끝까지 부르봉 왕조의 프랑스-스페인 연합군과 맞섰다. 하지만 역시 힘의 차이가 커서 1714년 9월 11일 마침내 바르셀로나가 함락당하면서 완전히 진압되었다. 예상되었던 것처럼 펠리페 5세는 강력한 중앙집권화 정책을 실시했다. 1716년에 새로운 국가기본법(Decretos de Nueva Planta)이 입법되어 카탈루냐는 최소한의 자치권마저 완전히 박탈당하고 다른 주와 완전히 동일한 정치적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한편 전쟁 당시 바르셀로나 시장으로서 바르셀로나 공방전에서 지휘관으로 활동한 라파엘 카자노바(Rafael Casanova i Comes)는 바로셀로나에 동상까지 세워졌으나 오늘날에도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인물이다. 일단 다수의 카탈루냐인들은 그를 최고의 애국자 중 한 사람으로 추앙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카자노바는 친오스트리아 성향으로 단지 외세와 결탁한 인물일 뿐 카탈루냐의 애국자는 아니라고 비판하는 카탈루냐인들도 있다.

현재 카탈루냐의 독립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바르셀로나 공방전에서 패한 1714년이 카탈루냐가 스페인에 합병된 때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카탈루냐의 독립을 다루는 전 세계 언론을 통해 널리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바깥에서 보자면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직전까지도 스페인 왕국의 일부였던 카탈루냐가 왕위 계승 전쟁 시점에서 잠깐 외부 세력과 결탁했다고 이전까지 독립국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르셀로나 백작이 변경백으로 웅거한 시점에서 카탈루냐 세력이 큰 세력권을 형성한 아라곤 왕국까지가 카탈루냐가 독립국으로 존재했던 시기이며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국왕의 연합 왕국 시기 정도가 어느 정도 자치권을 보유한 연합국의 일원이라 할 수 있는 시점의 한계다. 카를로스 1세합스부르크 왕조가 들어선 후 펠리페 2세가 중앙집권화를 이룬 시점에서 카탈루냐의 독립적 지위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간주된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당시 카를 대공이 손을 뗀 후에는 카탈루냐 지도부도 카탈루냐만으로 부르봉 왕조의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에 맞서 승리하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고 실현 가능성도 없었다. 카를 대공이 스페인 국왕이 되었어도 카탈루냐는 봉건 영주들이 스페인이라는 국가 안에서 여전히 자치권을 가지는 형태나 카를 대공이 펠리페 5세와 스페인을 분할하여 옛 아라곤 왕국을 부활하는 형식으로 카탈루냐의 왕이 되거나 오스트리아에 편입되었을 것이다. 결국 카를 대공이 이겨봤자 카탈루냐는 오스트리아령 카탈루냐로 전락했을 것이다. 수확전쟁에서 프랑스가 이겼다면 프랑스령 카탈루냐가 되었을 것처럼 말이다.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국왕의 연합 왕국 이후 카탈루냐의 저항세력들이 독립국으로 존재하겠다고 하지 않고 자치권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전부터 존재한 독립국가의 면모가 아니라 특정한 국가 내부에 있는 자유도시나 봉건 영주가 자기 권리를 요구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유럽 역사에서 이런 형태로 독립국 취급을 받은 나라는 없다. 이런 자치권이 있는 봉건 제후들이 자치권을 잃고 중앙집권 국가의 일부 지방으로 변하는 것이 유럽 중앙집권 국가의 탄생 과정으로, 프랑스가 대표적이고 스페인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이 늦어져서 현대 막바지에서야 이뤄진 국가가 독일과 이탈리아이며 재편 과정에서 자력으로 독립해서 살아남은 대표적인 지역이 네덜란드벨기에가 있는 저지대 국가, 그리고 스위스이다.


2.5. 현대[편집]


1931년 4월 지방 선거에서 약진한 카탈루냐 공화좌파당(ERC)의 당수 프란세스크 마시아는 4월 14일 '이베리아 연방' 내에서 '카탈루냐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했다. 이 선언에 놀란 스페인 제2공화국 임시정부는 카탈루냐의 독립을 철회시키고 대신 자치 정부 '제네랄리타드'를 구성하도록 했다.

1934년 10월 6일 제네랄리타드 데 카탈루냐의 수반인 ERC의 류이스 쿰파니스가 스페인 연방 공화국 내에서 카탈루냐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했다. 이 사태에 스페인 정부는 군을 투입해서 쿰파니스 등 자치 정부 각료를 해임하고 체포했으며 쿰파니스트는 30년형을 선고받았다. 1936년 좌파 인민전선 정부가 들어서자 석방되었다.

20세기 초 독립파들은 위와 같이 두 차례 카탈루냐 공화국 건국을 발표했으나 스페인 내전 이후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권은 제네랄리타드를 중지하고 자치정부는 망명했다. 프랑스에 망명했던 쿰파니스는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1940년 10월 15일 바르셀로나에서 총살당했다. 카탈루냐는 프랑코 집권기를 맞이하면서 독립파 세력이 강했던 바스크 지방과 같이 매우 심각하게 탄압받았고 자치 기관이 폐지되었으며 공공 기관에서 카탈루냐어 사용이 금지되었다. 1975년 프랑코 사후 카탈루냐는 다시 자치권을 얻었고 2006년에 자치권의 범위가 대폭 확장되었지만 2008년부터 스페인의 경제 상황이 점점 나빠지면서 카탈루냐도 같이 고통받는 상황이 되어 버렸고 2010년 헌법재판소 판결로 자치권의 범위가 대폭 축소되자[13] 2014년부터 독립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카탈루냐 분리독립 주민투표의 실시와 스페인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떡밥이 한창 달아올랐다.


2.6. 2014년 분리독립 비공식 투표[편집]


찬반 투표가 정부와의 협의로 없어질 듯하던 2014년 중반의 상황에서 카탈루냐 주 정부의 마스 자치수반은 찬반 투표 강행으로 선회했다.[14] 물론 스페인 중앙 정부에서는 투표 제안 단계부터 극렬 반대 중으로 주민 투표 자체를 막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2014년 10월 14일 카탈루냐 주 정부에서는 독립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나 대신 11월 9일 독립 여부에 대해서 의견을 묻는 형태로 비공식 투표[15]를 하기로 했는데 유권자 등록 절차 없이도 투표가 가능하고 실질적인 효력이 전무하고 2번째 문항의 문제 때문에 대부분은 이를 여론조사로 인식했다.

이렇게 입장이 대폭 후퇴한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스코틀랜드의 독립 투표가 예상보다 큰 차이로 부결되었단 것이 당연히 언급된다. 하지만 진짜 심각한 것은 두 번째 이유인데 여론조사상으로 찬성률이 예상보다 낮았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무엇보다 이 독립 투표가 스페인 정부에 의해서 불법으로 결론이 나온 것이 크게 작용했다. 현지 여론조사에서 분리독립 투표를 강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체의 27%밖에 되지 않았고 응답자의 45%는 현행 스페인 헌법을 존중하는 방법하에서 독립 투표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는데 현행 스페인 헌법에 의하면 카탈루냐는 사실상 독립할 방법이 없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카탈루냐의 독립을 강하게 원하는 비율이 저 27% 밖에 안된다는 의미이다. 결국 카탈루냐 공화좌파당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현실적으로 카탈루냐 주정부가 투표 같은 거 없이 대놓고 독립을 선언하고 스페인 당국에 의해서 체포되어 처벌받는 것 외에는 한동안 카탈루냐의 독립 이야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예정이었다.

물론 이 분리 찬반 투표에 법적인 의미는 없다. 주민투표는 양식상으로도 중앙정부의 허가가 필요하고 그게 아니라도 스페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 받았으니 결과물이 뭐가 나오던 위헌무효다. 법적으로 평화롭게 독립할 방법 따위는 없다. 독립국가 선언 역시 스페인 입장에선 위법 위헌에 반란군 취급이다.[16]

11월 9일 비공식 투표 결과 첫 번째 문항 “카탈루냐는 국가가 되어야 하는가"와 두 번째 문항 "첫 번째 문항에 찬성했다면, 카탈루냐가 독립국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모두에 찬성한 비율이 80.76%로 집계되었다. 10.07%는 첫 번째 문항에는 찬성했으나 두 번째 문항에는 반대했다. 다만 투표율은 집계하기 불가능하며 37.0(엘 파이스)~41.6%(BBC)로 추정할 뿐이었다.

그리고 스페인 헌법재판소는 이 투표에 대해 만장일치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2.7. 2015년 분리독립 선언[편집]


2015년 9월 27일 카탈루냐 지방선거에서 분리독립 주장 정당들이 과반수(135석 중 72석)를 차지하였다.[17] 결국 10월 28일에 이들 정당들이 과반을 차지한 카탈루냐 주의회는 '카탈루냐에서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포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당연히 스페인 정부는 총리가 곧바로 이례적인 대국민 TV 생중계 연설을 가질 정도로 격분하며 모든 정치적, 법적 수단을 가리지 않고 저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주민 51%가 독립에 반대하는 등 여전히 찬성 비율이 낮기 때문에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카탈루냐는 스페인서 민족자결권을 주장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2015년 11월 09일(현지 시간) 카탈루냐 주의회가 찬성 72, 반대 63으로 분리독립안을 결의하였고 2017년까지 스페인으로부터 공화국 형태로 독립할 것이라 언명하였다. 이에 대해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비상 각료회의를 마친 뒤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 청구를 했고, 헌법재판소는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 문제는 12월 20일 스페인 총선거에서도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었다. 카탈루냐에서도 독립할 경우 EU와 유로존 탈퇴 리스크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큰 점도 있다. 한편 라호이 총리가 이끌던 국민당은 11월 기준으로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기는 했지만 그동안의 경제난 때문에 20% 중반 정도의 수준에 머물었고 그나마도 카탈루냐 분리 독립을 강경 반대하는 중도우파 신생 정당 시민당(Ciudadanos)[18]에 지지표를 잠식당했다.


2.8. 2016년 분리독립파 자치정부 수반 선출[편집]


독립 강경파인 푸지데몬 헤로나 시장이 2017년 내로 독립할 것을 천명했다.

저런 강경책을 들고 나온 이유는 바로 반EU의 기치를 걸고 등장한 스페인 전국 정당 포데모스였다. 포데모스는 EU의 긴축정책에 대한 반대를 앞세워서 창당 2년만에 69석을 획득했다. 포데모스가[19] 국민당과는 다르게 자치권 확대에는 많이 우호적인 편인지라 카탈루냐의 독립 투표를 허용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고 그게 아니라도 스페인이 EU에서 탈퇴한다면 EU를 벗어나는 것 때문에 독립을 주저하는 층을 독립파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총선에서 포데모스가 최소 90석 이상을 차지해서 원내 2당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은근히 독립파의 힘이 강해진 바 있다. 저 정도 의석을 확보하면 포데모스는 연립정부 참여가 가능해지고 탈 EU나 카탈루냐 독립 투표 발의 등도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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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모든 상황이 반전된 것이 바로 브렉시트였다. 브렉시트 이후의 후폭풍으로 탈 EU라는 기치가 상당히 손상되었고 브렉시트로부터 3일 후에 치러진 스페인 총선에서 포데모스의 지지율이 급락했다. 그리고 포데모스는 좌파 연합과 합쳐서 71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이는 스페인 정당 중 3위의 성적으로 득표율 하락의 배경으로는 반EU에 대한 불안감, 카탈루냐 독립을 허용할 것 등이 꼽혔다.

2016년 9월 11일에 카탈루냐 전역에 80만 명이 대규모 분리독립 시위가 벌어졌으며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내년에 정부가 승인한 구속력 있는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제안할 계획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

결국 스페인 검찰은 2014년 카탈루냐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시행한 아르투르 마스 전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의 공무담임권 제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불복종 혐의로 기소돼 1년 6개월∼1년 9개월의 공직 출마 금지 처분을 받았다. 블랙코메디는 2017년 카탈루냐 독립 시위가 본격화된 상황에서 아르투르 마스는 “카탈루냐는 진정한 독립을 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세금과 사법 시스템, 영토 문제에 대한 해법 없이는 진정한 독립을 할 수 없다”고 발언[20]하면서 성급한 독립 선언에 대해서 부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2.9. 2017년 분리독립 주민투표 강행[편집]


2016년 10월 6일에 카탈루냐 주의회에서 분리독립 주민투표안을 2017년 9월에 치르는 것으로 가결하였다. # 그러나 스페인 헌법재판소가 분리독립 주민투표안을 중단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카탈루냐 주정부는 비공식적이라도 9월에 주민투표를 강행하기로 했으며 FC 바르셀로나도 이를 지원한다고 한다.#

2017년 10월 1일에 비공식적으로 주민투표를 치르게 되었다.# # 분리독립 투표 결과가 즉각적으로 효력을 갖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독립선언문 낭독은 펩 과르디올라가 맡았으며 그는 "특권이자 매우 영광스럽다"라고 소감을 발표했다.

2017년 7월 여론 조사에 따르면 카탈루냐 분리독립을 둘러싼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국민투표가 치러져야 한다는 입장은 다수이지만 독립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은 41.1% 반대는 49.4%로 집계되어 반대가 다소 많았다. 하지만 여론은 실제 투표가 아니며 찬성 지지자들이 투표에 많이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찬성표가 과반을 넘을 경우 48시간 안에 독립을 선포하고 국경을 통제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10월 2일 투표 결과가 발표되었다. 총 530만 명의 유권자 중 226만 명이 투표에 참여했으며(투표율: 42.34%) 이 중 90퍼센트가 찬성표를 던졌고 8퍼센트 가량이 반대표를 던졌다고 하며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은 카탈루냐가 카탈루냐 공화국 형태의 자치 국가로 독립할 권리를 얻었다고 선언했다.

한편 유럽 연합 이사회는 당연히 '카탈루냐 독립 투표는 불법'이라고 규정했으며 스페인 총리는 "긴급 시 군대 투입 가능성 있어"라며 계엄령을 시사했다.


2.9.1. 스페인 정부의 강경대응[편집]


스페인 헌법재판소와 국회는 카탈루냐 독립을 위헌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실제 독립을 선언할 경우 순순히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2017년 9월 7일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카탈루냐 지방의회가 6일 찬성 72표, 기권 11표로 통과시킨 "주민투표 실시 법률, 가결시 48시간 내 독립 선언"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해당 법의 효력정지를 요구하는 심판을 청구할 것이며 별도로 법 통과를 주도한 카탈루냐 지방의원들을 기소할 것이며 경찰력을 동원해 주민투표를 막겠다고 밝혔다. # 그리고 스페인 정부는 카탈루냐가 계속해서 분리독립을 강행하면 최후 수단으로 자치권 몰수까지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사실 스페인은 인구가 많은 나라도 아니다. 한국보다 인구가 적다(4천 6백만). 헌데 7백만이 뚝 떨어져 나가면 인구는 3천만대(3천 9백만)로 급추락하게 된다. 인구는 곧 국력임을 상기해 보자. 게다가 카탈루냐는 스페인의 가장 부유하고 중요한 산업지이기 때문에 더 파급력이 세다.

또 분리독립 요구가 강한 스페인에서[21] 도시 하나가 떨어져 나가면 마치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다른 동네도 독립하겠다고 들고 일어날 수 있고 이를 막을 명분도 없어지므로 그야말로 스페인은 순식간에 와해되어 국력이 쇠퇴하고 풍비박산날 수 있기 떼믄에 스페인 정부는 타협은 없다는 듯 강경대응으로 일관했다.

9월 19일 스페인 중앙정부는 카탈루냐 자치정부에 대한 중앙정부의 추가 교부금 지급을 중단하고 올해 중앙정부의 재정지출 감독 권한을 공공 필수 부문에 이어 모든 분야로 확대한다는 행정명령을 승인하어 올해 예산 편성과 지출 권한을 사실상 몰수 조치했다. 또 스페인 경찰[22]은 10월 5일까지 불필요한 휴가와 휴무를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9월 20일 스페인 경찰이 아누비스 작전을 개시했으며, 6,600명의 경찰력을 바르셀로나 항에 정박된 두 척의 선박에 숙박시키며 진압에 대비했다. 이 작전에 따라 카탈루냐 정부청사를 급습하여 경제차관 등 12명을 체포했고, 카를레스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의 사무실과 경제·외교부 등 청사 3곳에서 압수수색이 집중 실시됐다.# 주민투표 용지 1천만 장을 압수하는 한편 투표 진행 의사를 밝힌 자치단체장들에게 소환장을 발부하는 등 전방위로 압박했다. 카탈루냐 관료는 이에 사견으로 자치정부의 분리독립 주민투표 추진 계획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토로했다. 9월 21일에는 스페인 헌법재판소가 카탈루냐 독립 투표 선관위 관계자들에게 매일 최대 12,000유로(1625만 원)의 벌금 폭탄을 물리기로 판결하자 이에 카탈루냐 독립 투표 선관위원들이 사임했으며 온라인에서는 독립 투표 정보를 제공한 홈페이지 59개가 폐쇄됐고 85개가 추가 폐쇄될 예정이었다.

스페인 정부가 "협상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밝혔는데 지난 5년간 스페인과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자치권 확대와 분리독립 추진 중단을 맞바꾸는 내용의 협상을 산발적으로 벌여 왔지만 타결에는 실패했다.# 24일에는 카탈루냐 자치경찰의 지휘권을 일부 회수했으며# 검찰은 푸지데몬 카탈루냐 지사도 체포하는 것을 고려했다.# 스페인 검찰총장에 따르면 죄목은 불복종, 공금 유용, 공무 위반 혐의라고 한다.

2017년 9월 24일 스페인 중앙정부는 10월 1일 주민투표무력으로라도 저지하겠다고 선언하고 9월 29일부터 계엄령 선포를 검토했다. 카탈루냐 지방정부 역시 주민투표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에는 불변이며 주민투표가 가결되면 즉각 독립선언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카탈루냐 - 스페인 정부 간 어떤 협상도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 사태에 대해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2017년 스페인 헌정 위기라고 규정하였으며 1975년 스페인 민주화 이후 최악의 정치 위기라고 한다.

카탈루냐의 분리독립에 대해 국제 사회는 부정적인 편이었다. 9월 2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카탈루냐 독립을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으며 "당신들은 정말 훌륭하고 아름다우며 역사가 아주 깊은 나라에 머물고 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9월 28일 카탈루냐 분리 투표는 불법이며 스페인을 계속 통합된 국가로 대하겠다고 했다.

일단 스페인 정부가 지금까지 투표 용지 1천만 장을 압수했으며 설령 그동안 투표 용지를 다시 찍는다고 하더라도 투표소로 예정된 건물을 폐쇄 명령하고 스페인 국가경찰관들이 장악할 예정#이었던 반면 분리독립파 시민들이 학교 등 투표소를 점거하여 투표를 치르겠다는 바람에 투표가 정상적으로 치러질지도 알 수 없게 되었고 결국 파행적으로 진행되었다. 투표 용지 압수가 이어지자 자치정부는 집에서 투표 용지를 출력해 아무 투표소에서나 투표하면 된다고 고지하기도 했다.#

결국 10월 1일 분리·독립 투표가 강행되었으나 스페인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인해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스페인 경찰은 단순히 투표에 참여하기만 한 사람들에게도 폭력적인 진압을 하면서 카탈루냐 주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게 되었으며 통일 스페인의 대의명분에 큰 손상을 입혔다. 투표 전 이미 절반의 가까운 투표소가 경찰에 의해 폐쇄되었으며 중앙정부는 투표가 이미 불법이라 고지했으므로 진압에는 문제가 없다고 정당화했다. 카탈루냐 구조 당국은 다행히 큰 부상자는 별로 없으며 부상자 38명 중 대부분이 경상자라고 밝혔다. 한편 카탈루냐 자치정부 측은 844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카탈루냐 지방경찰이 방관 상태가 되자 소방관들이 나서서 투표소를 지키고 중앙에서 파견한 진압경찰과 대치하거나 무력충돌을 벌였다. 소방관들은 투표소로 향하는 시위대 앞에서 말 그대로 인간 방패가 되었다.


투표 당일이었던 10월 1일경 무방비 상태의 카탈루냐 주민들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스페인 경찰 병력의 모습을 담은 영국의 언론 더 가디언의 동영상. 독립 찬반 투표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경찰의 폭력은 도를 넘었으며 이런 상황은 스페인 공영방송에서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카탈루냐 관련 현지(마드리드) 신문 반응, 스페인 최대 일간지 엘파이스의 스페인 정부 비판 사설 번역

주 스페인 대사관의 카탈루냐 관련 동향보고 - 9월 7일(1) 9월 7일(2) 9월 12일 9월 20일 9월 25일 9월 29일 10월 3일 10월 5일(1) 10월 5일(2)

10월 2일 푸지데몬 카탈루냐 지사는 "스페인과 '깊은 상흔을 남기는 분리'를 원하지 않으며, 독립을 누르는 단추는 없고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며 EU에 중재를 요구하는 한편 "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독립 프로세스는 계속될 것이며, 수일 안에 투표 결과를 카탈루냐 의회에 송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스페인 정치권에서는 카탈루냐 당국이 불법화되었으며 당장 자치권 중단시켜야 한다고 맹비난했으나 스페인 정부는 자치권 회수를 협상카드로 남겨 두며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다. 침묵을 지키던 EU는 이날 이례적으로 스페인 중앙정부와 카탈루냐 양측 모두를 비판했으며 카탈루냐의 중재 요구를 거부함과 동시에 독립 문제가 스페인 '국내 문제'라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

다음날 푸지데몬 지사는 주말이나 다음주 초에 독립을 공식 선언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면 충돌이 불가피해 보였다.


2.9.2. 실현 가능성[편집]


  • 투표의 결과 예상: 카탈루냐 주민들은 분리독립 투표를 치르는 것 자체는 찬성하는 편이었지만 독립 자체에 대한 찬반 여부는 팽팽했다. 그러나 독립 반대파들은 투표를 보이콧할 가능성이 높기에 찬성표가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고 실제로 90% 이상의 찬성이 나왔다.

  • 독립의 실효 가능성: 이미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투표율에 상관없이 찬성이 다수표로 나오면 48시간 내 독립 선포한다고 했는데, 스페인 정부는 이를 절대로 인정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경찰력을 동원해 진압할 가능성이 100%고 상술한 것처럼 카탈루냐 자치정부 주요 인사들과 지지자들은 스페인 당국에 의해서 체포되어 처벌받는 결말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코소보의 독립에는 미국과 나토, 노보로시야의 독립에는 러시아의 비호가 있었으나 카탈루냐의 뒤를 봐 줄 만한 강대국은 전혀 없고[23] 무엇보다 스페인 중앙 정부는 카탈루냐에 공권력을 투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스페인 헌병군 약 2천 명을 투입한 상태였던 데다 1만 7천여 카탈루냐 자치경찰은 지방정부와 스페인 중앙정부 사이에 끼어 곤란한 입장이지만 9월 26일 기준으로 카탈루냐 자치경찰은 스페인 중앙정부의 명령을 따르는 편이었다.# 이런 상황을 뚫고 카탈루냐 독립이 실효성을 가지는 것은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 진짜로 실질적 독립한다면?: 만약 카탈루냐 당국이 스페인 중앙의 방해를 뿌리치고 독립한다고 해도 이후도 문제다. AP통신의 전망 유럽 연합은 카탈루냐가 독립하면 회원국 신청을 하라고 하지만 스페인이 반대할 확률이 100%이기 때문에[24] 카탈루냐는 EU 가입을 못 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중국-대만 관계에서 그러듯 스페인에서 카탈루냐와 수교하는 국가와는 단교하겠다고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스페인의 한 관료는 "베네수엘라도, 북한도[25] 주민투표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설사 그들이 인정한다고 해도 독립 캠페인에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라고 비꼬았다.# 당장 EU는 커녕 유엔 가입조차 전망이 불투명해서 미승인국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경제적 영향은 알 수 없는데 카탈루냐에서 소비되는 상품의 대부분은 스페인 다른 지역에서 공급된다고 한다. 카탈루냐가 독립할 경우 스페인 중앙과 카탈루냐 모두 경제적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되는데 바르셀로나에 있는 글로벌 기업들은 EU 시장에서 분리되지 않기 위해 스페인 쪽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있고 스페인은 카탈루냐의 막대한 세수와 GDP를 잃는다. 또다른 문제는 카탈루냐 정부가 안고 있는 빚이 카탈루냐 GDP의 35.4%인 770억 유로이며 그 중 스페인 정부에 진 빚이 520억 유로라는 점이다.# 자칫하다가는 독립에만 신경쓰다 파탄국가가 되어 버린 모 나라 꼴이 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2.10. 2017년 10월 독립 선언[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카탈루냐 공화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11. 2018년[편집]


하지만 선거 후 3개월이 넘도록 독립파는 정부 출범도 못 시키고 있다. 2018년 3월 22일에 있었던 카탈루냐 유럽민주당(독립파)의 조르디 투룰(Jordi Turull)을 수반으로 선출하는 것에 대한 찬반 투표는 64:65로 반대가 더 많았던데다 가결(68표)에 4표 모자라 부결되어버렸다. 이대로라면 7월에 재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던 와중에 3월 25일 카를레스 푸지데몬이 독일 경찰에 체포되었다. 결국 5월 14일 독립파인 킴 토라가 카탈루냐 새 수반으로 선출되었다.

10월 4일에 킴 토라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은 지난 2일 바르셀로나에서 한 연설에서 스페인 정부가 다음 달까지 카탈루냐의 독립 찬반 주민투표를 승인하지 않을 경우 현재 내년도 정부 예산안 통과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스페인 중앙정부와 카탈루냐 간의 갈등이 심해졌다.#

10월 12일에 카탈루냐측이 스페인 왕정을 폐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자 스페인 총리는 용인할 수 없다고 반발하면서 법적 조치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12월 20일, 스페인 중앙과 카탈루냐는 분리독립 운동으로 촉발된 긴장 국면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 하지만 산체스 총리가 마드리드가 아닌 바르셀로나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자 카탈루냐 독립진영이 반발해 시위를 벌였다.#


2.12. 2019년[편집]


10월 14일. 2017년 카탈루냐주 분리독립을 추진한 전 정치인 및 운동가 9명에 선동 및 공공 자금 남용 혐의로 징역 9∼13년을 선고했다.#, 재판 하지만 이에 대해 반발하는 시위가 계속되었다.#

10월 18일. 카를레스 푸지데몬은 벨기에 검찰에 자진 출두했다.# 그리고 킴 토라 수반은 카탈루냐 분리독립 투표를 재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바르셀로나에선 반스페인 시위에 50만 명이 참여했다.#

지속적인 시위의 영향으로 2019/20 시즌 라리가엘 클라시코 경기가 12월 18일로 연기됐다.# 바르셀로나 등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주요 도시들에서 열흘간 이어진 분리독립 요구 시위에서 경찰과 시위대 양측에서 수백명씩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스페인 중앙은행의 총재는 카탈루냐 독립운동으로 일어난 시위로 스페인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11월 5일에 펠리페 6세 국왕은 카탈루냐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지만, 시위대는 국왕의 사진을 불태우는 등의 시위를 했다.#

킴 토라 수반은 지난 3월 스페인 선관위가 총선을 앞두고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자치정부 청사 등 공공건물에서 카탈루냐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진영의 상징물과 구호가 적힌 현판과 노란 리본 등을 철거하라고 요구했지만 이에 불응한 혐의로 지난 7월 기소되었으며 12월에 18개월간 공직 수행 제한 판결을 받았다.# 또 러시아 정보기관의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2.13. 2020년[편집]


카탈루냐 수반이 공직 수행 제한 판결에 대해 항고하였다.# 스페인 대법원이 부수반 석방 못한다고 전했다.#

스페인 대법원이 푸지데몬 전 수반 면책특권 박탈 요구에 나섰다.#

스페인 정부가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카탈루냐의 최고위급 정치인들의 휴대전화를 해킹하기 위해 스파이웨어로 공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대법원이 킴 토라 수반의 18개월 공직 금지 판결을 인정하였다.# 그러자 바르셀로나에서 다시 시위가 일어났다.#

카탈루냐 전 경찰 간부들에 대해 무죄 선고를 내렸다.#


2.14. 2021년[편집]


카탈루냐 지방의회 선거에서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정당들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

국왕은 폭군이라는 표현이 나온 노래를 부른 스페인 래퍼 파블로 하셀이 수감됐다. #

5월 21일에 카탈루냐 지방의회는 카탈루냐 공화당의 페레 아라고네스를 주지사로 선출했다. #

2021년에 들어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카탈루냐 지방에 대한 구애책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전체의 통합을 위해 이들 분리주의자에 대한 사면 의사를 밝히자 수도 마드리드에서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지만 사면을 결정했으며### G7 이후 스페인에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바르셀로나를 들리자 스페인 국왕인 펠리페 6세와 주지사인 아라고네스가 인사뿐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치기도 했다.#[26]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빌려 바르셀로나에 투자를 유치하겠단 의사를 보이기도 했다.

6월 29일에 산체스 총리는 아라고네스 주지사와 만나 대화를 재개했다.#


3. 분리 독립의 이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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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묻는 독립운동의 이유.


3.1. 독립적인 정체성[편집]


카탈루냐의 독립 주장은 로마 제국서고트 왕국의 몰락 이후 카탈루냐 지방이 스페인 왕국 성립되기 전까지 독립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것에 기인한다. 아스투리아스에서 기원한 카스티야, 포르투갈과 달리 카탈루냐는 원래 프랑크 왕국에서 기원했으며 또한 스페인은 두 주권국가인 카스티야 왕국아라곤 왕국의 결혼동맹을 통해 성립되었기 때문에 카탈루냐인들은 카스티야인들과 구분되는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아예 스페인어와 프랑스 남부 사투리와 비교하자면, 카탈루냐어는 남프랑스의 오크어와 더 유사하다.


3.2. 경제적인 이유[편집]


카탈루냐가 분리 독립을 원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인 이유다. 카탈루냐는 스페인에서 가장 GDP가 높은 주이며 인당 평균소득으로 계산하면 바스크, 나바라, 마드리드 다음인 4위고 동시에 세금도 많이 내는 지방이다. 이 세금들이 카탈루냐는 내버려두고 중앙 정권인 카스티야 지방과 상대적으로 빈곤한 남부 지방에 사용하고 있다는 불만이 높다.[27]

2017년에 마침내 크게 터진 카탈루냐 독립 투표 사태는 기본적으로 예산에 관한 완전한 자치권을 얻고자 하는 과정에서 중앙정부랑 마찰을 빚으면서 독립운동이 격화되면서 시작되었다는 의견이 언론을 통해 많이 소개되었다. 사실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지방정부가 예산을 중앙정부의 개입 없이 완전히 자율적으로 사용한다면 사실상 다른 나라가 되는 것이고 국가의 균형 발전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는다.


3.3. 스페인 정부의 탄압과 차별, 억압[편집]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해 카탈루냐 주권을 되찾고 싶다“

“우리는 유럽의 홍콩”

바르셀로나 대학의 한 재학생#


지방과 중앙정부의 갈등 정도를 넘어서 스페인 정부는 카탈루냐 지역을 실제로 탄압하면서 차별하고 억압하였다.

독립 운동 이전에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카탈루냐와 상의도 없이 카탈루냐 중부로 흐르던 강을 남부인 안달루시아로 강제로 물길을 돌리려고 계획했던' 것이 들통난 일이다. 당시에도 대대적인 독립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카턀루냐가 중앙정부에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투표 사태에는 스페인 중앙정부의 역시 이번 사태에 큰 책임이 있다. 노골적인 차별 대우도 그렇지만 카탈루냐 주정부 정치인들의 주장을 지속적으로 반박하면서 인내심 있게 행동했어야 했는데 초반부터 무작정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강경 모드로 나서면서 독립에 비판적인 카탈루냐인마저 감정적으로 적으로 만들고 있다. 사실 비공식적 조사에 따르면 카탈루냐인 60%는 독립에 비판적이었다고 하는데 차라리 투표하도록 내버려두고 부결되는 쪽으로 유도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 중앙정부는 강경책을 선택했고 이는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고 있는 셈인 것이다.[28]

운동 이후에는 국무부 장관 정도의 사람이 "카탈루냐의 의료 체계를 붕괴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까지 지역정부가 카탈루냐의 의료계를 관리하고 있었으나 투표를 막고 자치권을 뺏은 중앙정부가 고의적으로 의료계를 망가트린 것이다.

가뜩이나 높은 세금으로 불만인 카탈루냐와 바스크는 계속되는 세금 인상과 심해지는 정부의 차별로 인하여 예전에는 민족, 문화적인 문제로 독립을 원했던데 비해서 지금은 경제적, 정치적인 측면 때문에 독립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 사파테로 총리 시절에는 지방 정권들에 나름대로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했는데 다음 총리인 마리아노 라호이는 지방 정권들의 자치권을 대부분 몰수했다. 더군다나 스페인이 2008년 금융위기로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거품이 붕괴되면서 은행들의 재정 상태가 급속히 부실해지자 정부 차원에서 이들 은행들을 살리려고 했다가 중앙정부의 재정도 같이 파탄 상태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카탈루냐도 이러한 타격을 같이 받게 되고 그 영향이 1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29] 기본적인 복지 지출이 대거 축소되고 빈부격차도 크게 증가했기 때문에 불만이 높아졌고 이렇게 중앙정부에 인정도 못 받고 살 바엔 차라리 따로 사는 것이 나을 거 같다는 여론이 크게 증가했다.

카탈루냐 사안은 유럽의 중국홍콩 문제로 봐도 무방한데 중앙정부의 지배권을 공고히하기 위한 국가(중국, 스페인) 대 자유를 원하는(홍콩, 카탈루냐)의 대립인 셈이다. 홍콩/카탈루냐 지역에 거주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평화롭게 분리되고 싶은데 중앙에서 무자비한 탄압과 진압으로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홍콩을 강력 진압하면서 반발이 점점 커지듯 스페인도 카탈루냐를 강력 진압하면서 카탈루냐에서 스페인 정부에 대한 반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과거 프랑코 정권은 카탈루냐 지역의 민족 정체성 약화를 위해 카탈루냐어에 대한 탄압을 펼쳤다. 카스티야어(즉,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하는 스페인 남부 지방 출신을 카탈루냐 지역의 중등 교사 및 경찰로 대거 파견하여 공적인 영역에서 카탈루냐어의 지위를 지속적으로 약화시켰으며 카탈루냐 정체성을 표상하는 출판 및 예술 활동을 금지하였다. 프랑코 정권의 카탈루냐에 대한 탄압과 억압의 잔재는 아직도 카탈루냐를 괴롭히고 있는데 카탈루냐 자치주 헌법에 대한 위헌 판결로 카탈루냐를 부정한 스페인 헌법재판소의 근거들인 현재 스페인 헌법은 독재정 종식 후에도 처벌받지 않은 군부 정권의 영향력 아래 1978년 제정된 것이다.[30][31]

때문에 카탈루냐 독립운동에 대해 스페인 극우[32], 스페인 영토 보전론자들의 카탈루냐에 대한 인식, 스페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자리잡히지 않았냐는 것은 그야말로 홍콩 보고 '중국 정부의 지배 하에 홍콩도 중국으로서의 정체성이 자리잡혔는데 왜 자꾸 자치권을 요구하며 따로 놀려고 하고 심지어 독립하려고 하느냐? 왜 중앙 정부와 갈등을 일으키며 분란을 초래하느냐'고 하는 것과 같다. 홍콩처럼 카탈루냐도 강력한 중앙정부에 지속적으로 정체성을 위협당하며 시간을 보냈다. 때문에 카탈루냐 사람들도 카탈루냐를 "유럽의 홍콩"이라고 부른다.

4. 진행 흐름에 대한 아쉬움[편집]


투표에서 반대표가 많았기 때문에 그냥 하는 게 스코틀랜드처럼 깔끔하지 않았나 하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믿고 투표를 택하는 것은 도박이나 다름없다. 당장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도 여론조사 결과로는 힐러리 클린턴의 압승이었고 2016년 브렉시트도 베팅 업체나 도박사들은 대체로 잔류 가능성을 70%로 봤으며 원래 78%였다가 찬성 우세 여론이 나오자 조금 낮춰 수정한 것이다. 당시 잔류파였던 캐머런 총리가 차라리 투표하도록 내버려두고 부결되는 쪽으로 유도하였으나 실패하여 결국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사임하였으며 하원의원직도 사임했다.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투표 부결로 재미를 보더니[33] 브렉시트 역시 '설마 되겠어?'란 안이한 생각으로 투표를 시행했다가 영국은 물론 전 세계가 뒤집어진 것이다. 불과 1년 전 벌어진 일이다. 그나마도 브렉시트는 영국 국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에 가까우나 카탈루냐 독립은 스페인 정부에 있어서 재앙이나 다름없으므로 1%의 가결 가능성이 있다 해도 무조건 막아야 하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2017년 분리독립 주민투표 강행에 대한 스페인 정부의 강경 대응은 당연한 선택이지만 단지 지나치게 강경하여 역반응을 초래한 면이 아쉬운 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5. 스페인 법리적 측면과 스코틀랜드와의 차이점[편집]


현행 스페인 헌법상으로는 카탈루냐 단독으로 독립 찬반 투표를 실행하거나 독립을 선언할 권한이 없다.

스페인에서 벗어나 독립된 국가가 되려고 하는 것인데 스페인의 법에 제한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으나 문제는 법의 제한을 뛰어넘을 힘이 없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방법도 합법적 정치 절차가 아닌 무력으로 스스로 쟁취한 것이다. 같은 앵글로색슨 민족이든 아니든 그냥 독립해서 따로 살고 싶으면 따로 살 권리가 있다. 다만 어디까지나 그걸 실현시켜줄 힘이 있어야만 가능한 점이 핵심이다. 굳이 무력이 아니더라도 "얘들 통제하느라 국력을 낭비하느니 그냥 독립시켜 버리자" 할 만큼 귀찮게 할 힘이라도 있어야 법을 무시한 독립선언이 가능한 것이다.

결국 스페인 정부로부터 합법적으로 독립을 쟁취하려면 스페인 전체의 여론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서 헌법을 개정하건, 스페인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국민투표에서 독립을 보장받건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독립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우선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카탈루냐가 독립하려는 것이 결국 이익 문제라는 식으로 흘러가면서 다른 지역민들에게는 카탈루냐가 남아 있는 게 더 이익이 되니 독립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영국스코틀랜드의 사례와 비교하며 문제 없지 않느냐는 사람들도 있으나 스코틀랜드의 상황은 매우 특수한 경우다. 영국은 영미법 체계라고 불리는 독특한 법률체계를 사용한다. 영국에는 성문으로 된 헌법이 없고 매우 특이하게도 커먼로(common law)/불문법주의 국가라서 성문헌법이 없이 헌법적 사항을 일반법으로 규정하고 일반 법률 개정이나 국제규약 혹은 협정과 같이 법률적으로 영향을 주는 형태로도 실질적으로 헌법적인 내용을 바꿀 수 있다. 자세한 것은 영국/정치 항목 참조. 하지만 스페인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나라에는 헌법이 존재하며 특히 경성헌법일 경우 헌법 개정은 일반 법률과 난이도가 다르다. 개헌 통과 정족수도 일반 법률안보다 훨씬 높고 통과된 다음에는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영국과 함께 영미법 체계를 따르는 커먼로 국가인 미국조차도 헌법이 별도로 있기에 개헌은 결코 쉽지 않다.

스코틀랜드는 별도로 주권이 있는 독립국은 아니지만 연합 왕국(United Kingdom)의 한 구성국으로서 영국의회의 권한 부여에 따라 광범위한 자치권을 인정받은 독자적인 존재이다.[34] 스코틀랜드는 1706년 연합조약(Treaty of Union)을 체결하고 1707년 연합법(Acts of Union)이 최종적으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양국 의회에서 의결되어 연합 왕국으로 통합을 마쳤다.[35] 그래서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는 영국 법률에 의하여 자체적으로 독립을 결의하고 중앙정부와 협상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36]

하지만 스페인의 폭넓은 지방 자치권은 지역의 권리가 아니라 그저 중앙정부가 헌법을 통해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37] 반대로 스페인 헌법에서는 경우에 따라 자치권 몰수도 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카탈루냐 주정부가 뭐라고 주장하건 카탈루냐 지역에 한정한 찬반 투표만으로는 스페인 영토를 규정하는 스페인 헌법에 영향을 줄 수 없다. 현행 스페인 헌법 체제에서는 스페인 전체 지역에서 카탈루냐 지역의 분리독립 찬반을 국민투표에 부쳐 찬성이 더 많이 나올 경우에만 독립이 가능하다. 물론 이 방법으로 카탈루냐 독립 찬성표가 더 나올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희박하다. 스페인 왕조가 압스부르고 왕조에서 보르본 왕조로 바뀌면서 새로 제정했던 누에바 플란타 칙령 이전에는 스페인이란 나라는 편의상 이름일 뿐이었고 헌법적 주권은 카스티야-레온, 아라곤 각 연합 왕국으로 나누어져 있었을 때는 이게 법리상 가능했고 실제로 무력으로 독립 전쟁도 몇 번 일으켰지만 이런 카탈루냐의 17세기 반란, 독립 전쟁에 대한 대응으로 새로운 보르본 왕가가 법을 싹 갈아 엎으면서 카탈루냐의 헌법적, 독자적 주권은 사라졌고 스페인은 명목상으로나마 중앙집권 국가가 되었다.

카탈루냐에서 주장하는 바는 원래 권한이 없지만 자신들을 독립개체로 인정해서 주민 투표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고 스페인 중앙 정부는 이를 일관되게 부정했다.

결국 카탈루냐 주정부의 독립 방법은 외교독립론 아니면 무력독립론뿐이다. 전 세계에 원래 자신들은 독자적인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스페인이 카탈루냐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음을 안 좋은 쪽으로 인식을 몰아가서 스페인을 압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스페인이 굴복해서 스코틀랜드와 마찬가지로 독립 투표를 허용하게 함이 현재 카탈루냐 주정부의 목표다. 후자는 곧 내란이나 내전을 일으키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스페인 중앙정부가 인정 안 하면 끝이다. 스페인을 압박할 국가도 없다. EU에는 스페인과 딱히 사정이 다르지 않은 나라가 득시글거린다. 그 나라들의 입장에서 카탈루냐 독립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분열을 의미한다. 심지어 프랑스만 해도 브르타뉴, 코르시카, 바스크 소수민족 지역 등을 중심으로 분리주의 움직임이 보인다.[38] 그리고 우크라이나 동부 노보로시야크림반도 문제와 엮여 유럽연합 입장에서는 카탈루냐를 인정한다는 것은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해서 굉장히 껄끄러운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이는 EU와 연대해서 러시아에 압박을 가하는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런저런 상황에서 카탈루냐가 독립 투표를 강행하여 실제로 찬성표가 더 나왔을 경우 시나리오는 이렇게 전개될 것이다. 물론 2014년의 실제 상황에서 스페인 정부는 독립 찬반 투표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해서 막았지만, 이 부분은 일단 넘어가자 우선 카탈루냐 주정부는 독립국가임을 선언할 것이고, UN과 EU에는 자신들이 승인국 및 EU 가입국임을 인정하거나 가입시켜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으로부터의 보호와 중재를 요청할 것이다. 반면 스페인 정부는 독립 카탈루냐 정부를 불법 단체로 규정하고 이를 체포하려고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 카탈루냐는 무장 독립 투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고 있으므로 카탈루냐 정부 구성원은 스페인에 의해서 체포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카탈루냐 독립 단체 시민들이 무력으로 막을 수도 있으나 이 경우는 운이 좋으면 공무집행방해죄, 운 나쁘면 내란 및 외환에 관한 범죄의 종범으로 처리될 것이다.

그리고 카탈루냐 주정부가 그렇게 개입해 줄 것을 요구하는 EU는 스페인 중앙 정부가 군대를 동원하려고 하는 경우에만 중재에 나설 것이다. 실제로 카탈루냐에서 무장 투쟁을 포기한 것이 이 때문이다. 만일 카탈루냐가 무장 투쟁을 하면 스페인 중앙 정부 입장에서는 그것만큼 좋은 게 없다. 군대를 투입해서 강제로 분리 독립을 막아 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 무장 투쟁을 포기한다면 스페인 측도 경찰을 투입하는 등 좀 더 온건하게 나갈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정치적 의미는 존재한다. 실제로 독립이 이뤄지느냐와 별개로 독립 찬반 투표에서 상징적으로 찬성표가 더 나온다는 것은 정치적 의미가 크기 때문에 주목의 대상이 된다. 찬반 투표에서 독립 주장이 더 나올 경우에는 반스페인 카탈루냐 내셔널리즘 성향 강화와 더 많은 자치권을 요구하면서 강하게 압박할 수 있을 것이고 반대의 경우라면 카탈루냐 독립운동 진영은 세가 확 떨어지게 된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기 때문에 일부에서 카탈루냐의 독립 주장은 보여주기식 퍼포먼스고 실제 목적은 자치권 확대 - 그리고 카탈루냐가 스페인 경제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만큼의 교부금과 투자 - 와 독립을 원하는 강성 유권자의 지지 획득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5.1. 법리 외적 관점에서[편집]


독립운동 자체는 경제적 이기심에서 발호되고 있지만 분리독립을 주장할 만한 차별화된 민족 정체성이 존재하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 스페인 정부가 카탈루냐 독립 논의를 불법이라고 전면 부정하고 폭력적 진압 수단을 동원하면서 카탈루냐에 동정적인 여론이 생기는 면도 있다. 이런 스페인의 대응이 구성원의 인권과 민주적 의사 결정권을 보장하도록 규정한 리스본 조약을 위반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6. 실제 가능성[편집]


카탈루냐의 독립 요구에 대하여 스페인 중앙 정부는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다. 실상 어느 나라던지 분리 독립에 강경한 것은 당연한데 독립적인 면모가 강한 지역에 대해 폭넓은 자치권을 내 주는 경우가 많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스페인은 자치권 허용의 폭이 굉장히 좁은 편이다. 카탈루냐는 엄연히 스페인 중앙과 '다른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졌는데도 자치권 허용의 정도는 대한민국의 지방자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39] 카탈루냐 독립/자치운동에 대한 스페인 중앙정부의 입장은 (반대급부를 주지 않는) 무조건 불인정에 가깝다. 이런 태도는 일단 카탈루냐 독립 운동의 규모를 축소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운동의 저변에 있는 대중적 감정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즉 강경 일변도의 대응이 오히려 카탈루냐 독립 운동의 강성화를 불러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잉글랜드가 압도적 경제적 우위를 가지고 스코틀랜드를 시장과 재정 면에서 보조하고 있는 영국과는 달리 스페인의 경우는 카탈루냐가 스페인 내에서도 경제적으로 꽤 부유한 터라... 카탈루냐와 바스크에서 걷은 세금을 다른 지역에 쓰면서 정치적 권리는 확대해 주지 않고 이 때문에 카스티야 주도의 중앙정부가 인구 우위를 이용해 정치적으로 카탈루냐를 삥뜯고 있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는 것[40][41]이다. 말하자면 세금은 제일 많이 내는데 정치적으로는 전혀 배려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에 독립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이다. 사실 스페인의 유로화 동전 도안을 보더라도 중앙 정부가 카탈루냐 지역에 대한 배려에 별 관심이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는 게 후안 카를로스 국왕, 세르반테스, 오브라도이로 대성당 모두 카스티야 문화에 속하는 주제들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라든지 최소한의 카탈루냐권 문화가 전혀 없다.

현재 카탈루냐 독립이 실현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네임드 강대국들이 거의 죄다 반대하기 때문이다. 일단 티베트 등지의 독립을 막느라고 무력 응징하겠다는 법까지 제정하고 분리독립 얘기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중국이 있다. 그리고 분리주의만큼은 자유, 평등, 박애 다 무시하고 틀어막는 프랑스도 반대한다. 무엇보다도 만약 카탈루냐가 독립한다면 현재 프랑스령인 동피레네 페이카탈랑(카탈루냐어 사용지역)도 프랑스의 지배를 거부하고 들고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서 찬성할 리가 없다. 이탈리아도 북이탈리아 분리주의를 막느라 찬성할 여지가 없다.[42] 미국은 직접적인 이해관계는 없지만 나토 회원국들이 카탈루냐 독립을 시발점으로 하는 분리주의의 발흥 때문에 정세가 불안해지면 러시아의 위협 앞에서 그 안보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며 이런 생각은 더 이상의 난민 발생과 유입을 경계하는 다른 자유 세계 국가들도 다를게 없다. 이러면 만에 하나 카탈루냐가 스페인 중앙정부과의 내전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스페인의 동맹국들이 그냥 경제 제재 걸어버리면 그날로 카탈루냐 독립정부는 붕괴해버린다. 그런 과격한 제재가 아니라도 경제는 필연적으로 망가진다. 당연히 스페인이 카탈루냐의 EU 가입을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EU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것은 경제적 손실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은 경제적인 이유고 정치적인 이유는 연쇄적인 독립을 허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독립을 승인해버리면 일단 카탈루냐보다 독립 성향이 더 강한 바스크를 비롯하여 카나리아 제도[43]도 독립 요청을, 넓게는 서북부의 갈리시아, 스페인 북부나 발렌시아 같은 어느 정도 높은 자치권을 요구하는 지방들도 지금보다 더 높은 자치권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44] 그렇게 된다면 스페인은 카스티야-레온 왕국 시절로 축소되어 버리든가 아예 박살날 수 있다.

독립국이라는 것은 무언가 명확한 실체가 있다기보다는 국제사회에서 대다수의 국가들이 그 주권을 인정해준다는 개념에 가깝다. 이를 위해서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처럼 다른 정부가 주권을 침해할 수 없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거나 바티칸 시국처럼 다른 국가들에게 외교적으로 주권을 인정받거나 (대다수 국가들이 그렇듯) 양쪽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카탈루냐는 무력으로 인한 독립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할 수도 없고 외교적으로는 위와 같이 강대국들이 모두 반대하는 상황이므로 실질적으로 카탈루냐가 독립국이 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 카탈루냐 독립 선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31년 4월 14일 프란세스크 마시아가 '이베리아 연방' 내에서 카탈루냐 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했으나 스페인 공화정과의 협상으로 3일만에 제네랄리타드로 바뀌어 자치권을 받았고, 유이스 콤파니스 전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1934-1940)는 1934년 10월 6일 '스페인 연방 공화국' 내에서 '카탈루냐 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했으나 스페인 공화정의 즉각적인 군사 개입으로 9시간 만에 제압한 사례가 있으며, 진압 과정에서 74명이 죽고 252명이 다쳤다.

콤파니스는 30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1936년 인민 전선 정부가 들어서면서 석방되었다. 그러나 이후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이 집권하면서 프랑스로 망명했으나 나치 독일이 프랑코측에게 신병을 넘겨주면서 1940년 바르셀로나에서 총살되었다.


7. 독립하면 바뀌는 것들[편집]


만약 카탈루냐가 스페인에게서 독립했다고 가정해 보면 당연히 스페인 - 카탈루냐 국경이 생긴다. 지금은 카탈루냐가 스페인의 행정 주(州)라 주 경계에 불과하지만 독립하면 주 경계가 국경으로 승격된다. 그리고 스페인군과 카탈루냐 국방군이 각각 국경을 수비하는 목적으로 군사 계책도 변경될 수 있으며 도로도 국경이 승격된 만큼 국경 검문소가 설치될 수 있고 검문도 받을 수 있다. 주 경계 때는 범죄 수배를 제외하고는 검문을 하지 않지만 국경으로 승격되면 그 사정이 달라진다. 솅겐조약이 있지만 카탈루냐는 EU 회원국이 아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각주에서 언급했지만 EU 회원국이 되기위해서는 기존의 EU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카탈루냐는 스페인이 걸린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카탈루냐 사태와 비슷한 입장인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 역시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독일과 프랑스는 대놓고 카탈루냐를 비판하고 나섰다.

카탈루냐가 독립국이 되면 당연히 카탈루냐군이 창설될 것이다. 아마도 카탈루냐 자치경찰이 군 창설의 모체가 될것으로 보이며 스페인과의 관계가 적대적인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군비 증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카탈루냐 주민의 지위도 바뀌게 될 것이다. 지금은 카탈루냐 주민들이 스페인 국적이지만 카탈루냐로 독립하면 카탈루냐 국민으로 지위가 변경된다. 또한 교육 과정도 스페인 방식이 아닌 카탈루냐 방식으로 바뀔 수 있다. 카탈루냐는 이중국적 언급을 했지만 정작 스페인이 그걸 허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

스페인 지방어로 지정된 카탈루냐어도 독립하면 카탈루냐 국가 공용어로 변경될 수 있다. 지금은 카탈루냐어가 공용어인 나라가 안도라뿐이다.

현재 카탈루냐의 중심지이자 주도인 바르셀로나가 국가 수도로 승격될 수 있다.

카탈루냐가 소비하는 전력의 겨우 40%만이 카탈루냐 영내에서 생산된다.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 하지 않으면 카탈루냐는 블랙아웃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통신 분야 역시 마찬가지이다. 카탈루냐에서 본사를 이전한 기업에 에너지 분야와 통신 분야 기업이 포함된 것은 이 부분을 상징한다. 알바로 나달 스페인 에너지 장관은 카탈루냐가 독립을 선언하면 공급이 중단될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경제적인 부분은 꾸준히 언급되었지만 단기적으로는 가라앉는다는 전망이 많다. 일단 카탈루냐 소재 대기업들이 엑소더스했으며 나머지 기업들도 떠나는 것이 본격화되었다. 중소규모 기업으로 이전 움직임이 적은 곳은 떠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 없는 것에 더 가깝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을 정도로 전망이 어둡다. 최소로 보는 곳도 GDP의 15-20%는 증발할 것으로 예상했고 스페인 정부는 30% 이상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건 으름장도 있지만 실제로 스페인 정부가 작심하면 그렇게 하락시킬 수 있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단적으로 카탈루냐가 스페인에 있어서 인구는 16%, GDP는 20%라고 주장하지만 세금은 전체의 13%에 불과하다. 참고로 카탈루냐보다 더 부유하지만 카탈루냐보다 더 세금을 적게 내는 곳이 바스크이다. 바스크는 대놓고 자치정부가 모든 세금을 거둔 다음에 중앙정부에 국방 및 인프라 비용 등으로 일정 부분을 지불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카탈루냐가 바로 이 바스크 모델을 목표로 독립선언을 했다는 관측도 많다.[45]

사실 이런 것 다 빼 놓고 경제적 불안정성 하나만 해도 문제이다. 카탈루냐의 정세는 굉장히 불안정하고 우습게도 어차피 독립 가능성이 적다는 것으로 불안감이 억눌려 있는 것에 가깝다. 상황이 예측 불가능해지면 경제가 흔들리고 소비 심리가 얼어붙는다. 이 부분만으로도 GDP 하락을 예상하는 경제 기관이 많았다. 신용평가 기관인 피치S&P도 카탈루냐 지방채에 대해서 비관적 전망을 내놓으면서 신용 등급을 부정적 관찰 등급으로 하락시키면서 추가 하락을 경고했다. 애초에 카탈루냐 주정부의 지방채는 독립선언을 언급한 2012년과 2015년 각각 투기 혹은 정크로 평가받는 BB 등급까지 떨어진 적이 있다. 그리고 이때마다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부채를 늘려서 720억 유로(약 96.55조 원. 스페인 전체 부채의 16%)의 빚을 지고 있고 이 중 상당 부분은 스페인 중앙정부에서 빌린 돈이다.

또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관광 수입도 스페인과 카탈루냐가 충돌함에 따라 전 세계에 분쟁 지역으로 인식되고 스페인 측에서 만약 카탈루냐를 입국한 기록이 있는 외국인의 스페인 입국을 막는다면 관광객이 상당수 감소하면서 관광 수입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실제로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그리스북키프로스에 이런 제재를 가하고 있다.

UN, IOC, FIFA에 독자적인 정회원 가입도 시도할 수 있다. 다만 이들 단체에 가입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우선 UN의 경우 러시아, 그리고 특히 중국[46][47]이 강력하게 반대할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으며 IOC나 FIFA 역시 스페인이 걸려 있으므로 어렵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스페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해도 비슷한 상황을 겪는 다른 나라가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의 반대로 외교적으로 독립국가로서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과 비슷하게 스페인하나의 중국과 비슷한 정책을 사용하여 독립한 카탈루냐와 수교하는 국가와는 단교하는 정책을 시행할 수도 있다. 다만 이 부분은 남한과 북한의 국력 차이로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통화는 자체 통화를 발행하거나 몬테네그로코소보처럼 유로 통화를 가져다 쓸 수 있겠지만 EU 비회원국으로서 재정 정책에 참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로화를 사용한다고 해도 모나코산마리노처럼 조폐권을 포함한 정식 유통권을 가질 수는 없다. 이는 EU 협정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만일 유로화를 유지한다면 이들은 화폐 정책을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

한편 1) 과거에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2) 현재도 스페인과의 관계가 나쁘며 실질적 교류도 미미해서 스페인과 단교해도 잃을 게 없으며 3) 서사하라를 독립국으로 인정한 국가들 또는 서사하라 자신의 경우 서사하라와의 형평성, 유사성 등을 이유로 카탈루냐를 독립국가로 공식 승인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유럽에 있었다면 독립 투표 안 했을 거라는 쿠르디스탄 대표


7.1. UNEU 정회원 가입 문제[편집]


일단 독립국이 무조건 UN에 가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만약 가입을 시도할시, 상임이사국 5개국에 포함된 중국이나 러시아 등의 반대가 있을 수도 있단 거다. 먼저 중국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티베트독립 문제와 홍콩 문제로, 러시아는 체첸[48]의 독립 문제로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49] 실제로 중국은 EU 비가입 주요국 중에서는 가장 먼저 카탈루냐 독립을 비판하고 스페인 정부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관련 기사 이들이 스페인 편을 들며 가입을 승인하지 않으면 사실상 UN 가입은 물 건너간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카탈루냐 독립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미영프의 지지를 받는 코소보도 독립 10년이 가까워지지만 UN 가입을 못 했는데, 카탈루냐는 상황이 나쁘면 나빴지 좋을 수는 없어 보인다.

EU 가입의 경우 스페인의 동의부터 얻어야 한다. 카탈루냐의 입장은 EU에서 독립을 해도 EU를 탈퇴하는 것은 아니니까 재가입이 필요없다는 식이지만, 정작 EU는 독립 시 자동 탈퇴라고 꾸준히 언급한 바 있다. 앞서 말했듯 EU 가입은 만장일치제. 일단 EU는 일방적인 카탈루냐 독립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데, 다른 EU 국가 내에서도 연쇄적 분리독립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 데다 이런 민족주의로 인한 참화를 입은 경험이 있기 때문. 코소보가 UN에 10년 동안 가입하지 것은 장난처럼 보이는 것이 터키의 EU 가입 시도다. 터키의 EU 가입 시도는 역사가 엄청나게 유구한데, 1949년 유럽의회 회원국, 196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의 참관국을 거쳐서 1987년 EEC 가입 신청을 했다. 여기에는 냉전 체제에서 터키를 유럽에 연결시키려는 미국의 적극적 지지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터키는 EU 가입국이 아니고, 향후에도 가입할 가능성이 낮다.

카탈루냐 독립 선언 시 EU에서 즉각 추방될 거라는 프랑스


7.2. 독립 카탈루냐가 선택 가능한 전략[편집]


영국의 경우 스코틀랜드 문제와 지브롤터 문제 그리고 브렉시트 문제가 엉키며 셈이 매우 복잡해졌다는 전망이 영국 내 언론들을 통해 나왔다. 만에 하나 영국이 카탈루냐를 국가로 인정하게 된다면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싱가포르 같은 영국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영연방 국가들과 미국이 카탈루냐와의 수교 협상에 나설 수도 있기는 하다. 즉, 독립 카탈루냐가 EU에 가입하지 못할 경우 영국을 지렛대 삼아 다른 길을 찾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 EFTA, NAFTA[50] 등 다른 경제 블록 가입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독립 선언 직후 영국이 독립선언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공식 성명을 낸 상태에서 이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은 당장은 한없이 낮다. 영국 입장에서도 카탈루냐 독립 여부가 매우 불확실한 상황인 만큼 "이미 존재하는 국가"인 스페인 편을 들 수밖에 없고 굳이 카탈루냐 문제를 자극해 스페인과 유럽 연합과의 관계를 험악하게 만들 이유가 없기도 하다.

쉽게 말하자면 영국이 카탈루냐를 돕는 상황은 영국이 스페인 혹은 유럽 연합과의 관계를 완전히 파탄낼 각오를 해야 할 만큼의 안 좋은 상황이 되거나 카탈루냐가 영국에게 스페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더 큰 유인을 제공할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하다.

이는 EFTA나 NAFTA도 마찬가지라서 이런 다자간 무역 협정 혹은 경제 블록에 신규 국가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기존 소속국들의 동의가 필요한데 문제는 기성 소속국들이 자신들이 국가로 인정해 주지도 않는 독립 카탈루냐를 받아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일단 독립 카탈루냐가 경제적으로 지속되기 위해선 유럽 내 소국들과 라틴 아메리카에서라도 국가 인정을 받는 것이 우선인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8. FC 바르셀로나 등 카탈루냐 스포츠 클럽들의 거취 문제[편집]


정말로 카탈루냐가 독립해 버린다면 FC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카탈루냐 스포츠 팀들은 자동으로 스페인 리그에서 퇴출될 것이다. 특히 스페인 최대 인기 스포츠인 축구가 심각한 문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문제도 그렇지만 FC 바르셀로나가 퇴출되면 레알 마드리드의 독무대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있기는 한데 바르셀로나의 대체자 노릇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FC 바르셀로나의 위세가 레알 마드리드와 함께 스페인 축구를 이끌어가는 수준이라 라리가는 물론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도 위기에 봉착한다. 스페인 국대의 선수들 상당수가 카탈루냐 출신 아니면 FC 바르셀로나 소속이다. 레알 마드리드와 더불어 스페인 국가대표팀 선수단을 이루는 쌍벽이다. 카탈루냐가 독립으로 이탈하면 다른 카스티야 지역 팀들이라야 하는데 현재 그 어떤 카스티야 지역 팀도 바르사의 선수층을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

처음엔 FC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카탈루냐 연고지 팀들은 독립이 되더라도 라리가에 소속되어 경기를 치르겠다고 주장했지만 라리가의 하비에르 테바스 회장은 “다른 국가의 팀이 라리가에서 뛰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카탈루냐가 스페인에서 독립한다면 리그에서 뛸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처음엔 라리가를 탈퇴하지 않겠다는 카탈루냐 축구협회는 독립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이에 따른 갈등이 고조되자 카탈루냐 독립 시 카탈루냐 지역 팀들은 스페인 축협을 탈퇴하고 카탈루냐 리그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카탈루냐 지역 프로급 팀은 라리가의 FC 바르셀로나, RCD 에스파뇰, 지로나 FC라리가 2힘나스틱, 레우스 데포르티우가 있고 나머지 하부 리그를 포함하면 총 13팀.[51] 2017년 9월 29일 카탈루냐 자치정부 체육장관은 "라리가에 남을 수도 있고 프랑스 리그 1, 혹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 편입할 수도 있는 등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했다.# 만약 카탈루냐가 독립한다면 현실적으로는 독립적 카탈루냐 리그를 꾸리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고 흥행 수익을 노린 EPL이나 리그 1에서 끌어들일 가능성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리그 내에서의 원활한 활동과 유럽 대항전 진출 등을 위해서는 해당국 정부가 카탈루냐를 국가로 인정해줘야 해결 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FA의 경우 정부의 영향력에서 타국 축구협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의지를 가지고 매우 강력하게 추진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FA 입장에서 굳이 영국 정부UEFA와의 갈등을 감수하고라도 카탈루냐 팀들을 끌어안을 필요가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리그를 꾸리든 다른 리그에 편입되든 라리가도 크게 피해를 입겠지만 무엇보다도 FC 바르셀로나가 가장 크게 손해를 보게 된다. 우선 독립 리그를 만들게 된다면 말할 것도 없이 구단 가치는 순식간에 폭락할 것이고, 설사 다른 리그로 편입된다 하더라도 라리가에 있을 때처럼 중계권으로 수익을 크게 벌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바르샤에 있는 선수들의 거액의 연봉을 책임지기가 힘들어지게 되고, 카탈루냐 선수들은 몰라도 외국인 선수들은 바르셀로나를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카탈루냐 독립 이후 절대 그럴 리 없겠지만 라리가에 남게 된다면, 원래 지역감정이 섞였던 엘 클라시코는 국가 대항전이 되어 팬들은 몰론, 스태프들끼리의 폭력 사태 까지 우려될 정도로 매우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10월 초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소집에 따른 공개 훈련에서 스페인 축구팬들은 스페인 국기를 꺼내들며 독립 투표에 참여한 바 있는 열성 독립파인 제라르 피케에게 거센 야유를 보냈고#[52] 설령 라리가에서 떠나더라도 챔피언스 리그에서 만나게 되면 말할 것도 없이 헬게이트 확정이다.

FC 바르셀로나의 전/현직 선수들 중 상당수가 비공식 카탈루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이기도 하다. 카탈루냐 독립선언문 낭독자도 선수 출신 펩 과르디올라다. 그럼에도 제라르 피케나 세르히오 부스케츠 같은 선수들은 여전히 스페인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뛰기를 원하고 있지만 희망 사항일 뿐이다.

독립 투표 날인 2017년 10월 1일은 RCD 에스파뇰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원정을 오는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경기장에 모인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에스파뇰 보란 듯이[53]로 카탈루냐 독립 반대 퍼포먼스[54]를 펼쳤다. 다만 경기 장소가 바르셀로나가 아니라 마드리드이기도 했고 다니 카르바할이 심장 때문에 몸져 누운 비보가 전해져서 축구 외적인 카탈루냐 독립운동 면에서는 스페인 정부의 폭력 진압에 묻히며 상대적으로 크게 이슈화되진 못했다.

다행히 12월 23일에 열린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의 엘 클라시코는 이미 카탈루냐 독립운동의 열기가 식은 상태라 바르셀로나가 0:3으로 이겼음에도 별다른 소요 사태 없이 잘 넘어갔다.


8.1. FC 바르셀로나의 타 리그 편입 가능성?[편집]


2015년 이에 대해 프랑스 마뉘엘 발스 총리는 바르사를 자국 리그 리그 1에 편입시킬 의향이 있다고 한다.출처 이렇게 된다면 파리 생제르맹 FC의 독무대인 리그 1이 파리와 바르셀로나와의 상호 경쟁 관계로 바뀌게 된다. 새로운 르 클라시크는 덤이다.

하지만 민족국가 분할 독립에 대해 부정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EU 정서상 리그앙 편입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저 발언은 프랑스의 공식적 입장이라기 보다는 마뉘엘 발스라는 인물의 특수성으로 봐야 한다. 왜냐하면 발스 총리가 카탈루냐계 아버지를 두고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스페인 이민자 출신 총리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연히(?) 발스 총리는 바르셀로나의 팬이고, 자기 아들과 함께 관용기를 타고 독일로 날아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관람해서 십자 포화를 맞았던 인물이기도 하다.[55] 그래서 발스 총리가 바르셀로나와 관련해서 하는 말은 상당히 걸러서 들을 필요가 있다. 실제로 2014년 11월 이미 프랑스 축구협회는 바르셀로나의 합류에 대해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바 있다. 프랑스 체육법과 리그 1 규약에는 프랑스와 모나코 공국의 팀만 출전이 가능하다고 규정되어 있다. 바르셀로나를 집어넣으려면 법률과 리그 규정을 모두 고쳐야 한다. 발스 총리가 말 한마디 한 것으로는 립서비스 이상의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이후에 정정 보도가 나왔는데, 이는 오보, 혹은 오해라고 했지만, 정확하게는 발스 총리의 개인적 발언을 확대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한 것이다. 이는 발언의 주체가 프랑스 주재 스페인 대사관인 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발스 총리의 발언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에서 클레임을 걸고 일을 끝낸 것이다. 이 때문에 FC 바르셀로나의 리그 1 입성 가능성은 새삼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 발언은 카탈루냐를 모나코처럼 프랑스의 준 보호국 취급한 데서도 문제가 되었다. 모나코는 한때 공가의 대가 끊어지면 프랑스로 합병된다는 조건을 집어넣었을 정도로 프랑스에 종속된 국가다. 독립도 하지 않은 카탈루냐를 모나코 취급한다는 것은 프랑스가 옛 서프랑크프랑스 제국 시절처럼 '카탈루냐가 독립하면 실상으로는 프랑스의 영향권 아래에 두겠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2017년의 상황을 보자면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대놓고 카탈루냐 독립을 반대하고 스페인 지지 선언을 했다. 애초에 마크롱은 EU 유지파고 마크롱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경쟁자였던 르펜과 달리 EU 유지를 공약했기 때문이었다. 카탈루냐의 독립은 EU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EU의 주축인 프랑스와 독일은 이에 맞서 가장 먼저 스페인 지지 선언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해당 국가들이 카탈루냐 팀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애초에 스포츠는 정치와 무관하지만 정치적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코소보만 해도 미영프라는 자유 진영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세르비아 쪽의 반대로 인해 독립 후 UEFA 주관 하 친선 경기를 하는 데는 4년, 가입에는 6년이 걸렸다. 그런데 지지 국가가 한 군데도 없는 카탈루냐의 팀에게는 이러한 움직임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후 카탈루냐 체육부 장관이 말하기를 카탈루냐 팀들이 굳이 리그 1이 아니어도 갈 곳은 있다고 발언하며, EPL세리에 A를 언급했다. 예전에 거부 의사를 밝힌 바가 있었던 이탈리아와 달리 FA 측에서는 공식적으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상황이다. 잉글랜드-웨일스 리그 합류의 경우 결국 FA의 의지와 손익 계산 결과가 문제인데, 현재 영국 정부와 UEFA는 카탈루냐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즉, FA가 영국 정부나 UEFA의 반대를 무릅쓰고 카탈루냐 팀들을 끌어안음으로써 생길 흥행 수익이, 이 때문에 발생할 문제와 손실에 비해 크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이쪽도 매우 힘들다. 이와는 별도로 FC 바르셀로나 대표의 발표로는 FC 바르셀로나는 될 수 있으면 라리가에 남겠다는 쪽인 듯하지만, 이쪽은 이쪽대로 위에 언급한 것처럼 라리가가 그걸 받아주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다.


9. 스페인 국왕의 카탈루냐 독립운동 비판[편집]


2017년 10월 4일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가 국왕 성명으로 카탈루냐 독립운동에 대한 입장을 내놓았다. 펠리페 6세는

카탈루냐의 독립운동은 민주주의를 저버리고 스페인을 분열시키는 반역에 가까운 행위이며, 이 같은 일로 스페인의 국력이 쇠퇴할 위기에 놓여 있고 질서를 해치려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며 카탈루냐 독립에 대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의 입장을 국왕으로서 지지하고 있으며 헌법질서를 수호할 책무가 있다면서 카탈루냐 독립을 비판하였다.

정치에는 일절 개입하지도 않고 불간섭주의를 내세웠던 스페인 국왕이 정치적인 문제인 카탈루냐 독립에 대한 입장을 이같이 밝힌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카탈루냐가 독립한다면 다음 타자는 바스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전예방 차원에서도 필요한 조치였다. 실권이 없는 국왕이라도 국가원수이므로 스페인이 두 나라로 분단되는 국가적 위기를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56]

사실상 스페인의 실질적 지도자인 총리가 카탈루냐 독립을 반대하는 가운데 스페인 국왕도 카탈루냐 독립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면 스페인이 결코 카탈루냐를 독립하도록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강경한 메세지이기도 하다. 이같이 스페인의 국왕과 총리가 국가원수정부수반으로서 카탈루냐의 독립에 반대 표명을 함에 따라 스페인과 카탈루냐 간의 갈등은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10. 한국의 반응[편집]


외교부가 통합된 스페인을 지지하며 카탈루냐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10.1. 옹호 측[편집]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 한국인들은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찬성 반응이 많다. 10월 1일의 진압사건 이전에도 옹호 의견이 많았다. 주로 "민족/문화가 다르면 나라도 달라야지"라는 단순한 논리며 특히 억울하게 주권을 상실했던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숱한 독립운동의 영향으로 인해 타국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대체적으로 동정적인 입장이 많다.

또 대한민국에서는 독재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정부의 강경대응에 굉장히 반감이 크다. 따라서 기여한 만큼의 이익을 얻지 못하는 카탈루냐에 공감했고 강압적으로 나온 스페인 정부에 반감을 가진 것이다.

애초에 독립 지지율 자체도 그리 높지 않은 상황이라 최대한 합의점을 찾으려 노력했으면 이 정도로 일이 커지진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당장 2014년에 스코틀랜드에서도 분리 투표가 있었으나 영국 정부에 적극적인 합의로 평화롭게 끝났다[57]. 그런데 스페인 정부는 그러한 노력은 하나도 하지 않았고 민족이 다르다고 해도 자국민을 폭력으로 탄압하는 것을 선택한 스페인에 대한 반감으로 독립에 지지를 표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스페인 정부 쪽에서 먼저 무력을 사용한 것 역시 카탈루냐 측에 유리한 사안이다.


10.2. 비판 측[편집]


카탈루냐 독립운동의 실상이 한국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는 달리 경제적 이익에 치우쳐 있다는 게 한국에 많이 전파된 후에는 비판 의견도 상당히 많아졌다.

원칙적으로 일단 법원에서 위헌이라고 했으므로 헌법 위반을 한 셈인데 공권력 진압만을 문제삼는 것도 어폐가 있다. 폭력적인 진압이라고 비판하는데 이미 헌법을 무시하고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극렬 시민들을 대화와 설득만으로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결국 거칠게 저항하는 시민들을 막으려면 과격한 진압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단에서는 정부가 먼저 과잉진압을 했다고 조소를 하고 있는데 법적으로 금지된 행동에 대한 부작위를 명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이 강행을 주장하면 답이 없다.

예를 들어서 썰전에서 미담처럼 언급한 것이지만 불법 투표소를 카탈루냐 측이 학교에 갑작스레 설치하고 그 학교를 투표 전까지 점거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정부측에서는 위헌을 저지른 사람들을 투표 못하게 뜯어말리거나 강제 연행을 하려고 하고 투표 하겠다고 강하게 저항하고 저항하는 사람 다시 처벌하려고 하는 에스컬레이트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렇게 안 가려면 카탈루냐 측이 투표를 철회하거나 정부측이 투표를 인정해야 하는데, 정부측에는 투표가 벌어지는 것을 인정할 권리가 당연히 없고 카탈루냐 측은 헌법을 위반하면서까지 강행을 주장했으니 좋게 해결될 방법은 원래 없었던 것이다. 현행 법이 프랑코 시절처럼 명백하게 민주주의 이념과 사회 정의에 불합치한다면 모를까 현재 스페인 헌법이 그런 막장 상황도 아니다. 오히려 정당하게 제정되어 작동 중인 헌법을 위반하는 실상 폭도나 반란군에 가까운 국민들을 공권력이 그대로 방치한다면 직무유기에 가깝고 헌법이 유명무실해진다면 그 나라는 끝난 것이다.

옹호 측 부분은 카탈루냐 독립을 스페인이 강압적으로 막고 있다는 사실이 부각된 게 큰데 침략으로 뺏긴 경우와는 실제로 차이가 많다. 스페인에서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건 오히려 바스크 쪽이 더 가깝다. 그나마 바스크가 나은 점은 체제 자체의 차이 때문에 실질적인 권리가 아예 없는 식민지인과 달리 바스크인들이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 권리를 모두 누린다는 것, 그리고 스페인에서도 가장 부유한 지역에 속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 문서에서도 서술한 것이지만 세금 문제에서도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처리하도록 하는 방침에 합의를 둬 스페인 지역의 한 곳으로 묶어둘 수 있었다. 바스크의 독립운동은 ETA로 대변될 정도로 강경했었기 때문에 타협이 이뤄진 것에 가깝다.

위에도 나왔듯이 스페인은 카스티야-레온과 아라곤 두 왕국 간의 결혼으로 인해 동군연합이 되어 하나의 연합 왕국을 형성했다. 그러면서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나라로 연합해 왔으나 아무래도 인구나 면적에 있어서 네 배나 큰 카스티야 중심으로 나라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통합 스페인 왕국의 첫 국왕인 카를로스 1세가 자원과 경제력이 풍부한 카스티야를 위주로 국가를 재편하면서 그런 상황이 고착화되었다.

카탈루냐가 독립하려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민족적인 것이지만 실제로는 납세에 대한 불만이다. 카탈루냐는 스페인에서 부유한 만큼 세금을 많이 내는데 결국 세금을 많이 내는 것에 대한 불만이 독립 요구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나 부유층이나 소득이 높은 도시가 세금을 더 많이 내고 그것으로 빈곤층이나 저소득 지역에 복지나 개발이 이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특히 사회복지 및 보장 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는 유럽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이미 카탈루냐 독립론 자체가 병맛인게 드러난다. 카탈루냐의 세율이 높은 이유는 카탈루냐를 특별히 착취해서가 아니라 카탈루냐가 스페인 전 지역에서 가장 부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당정치에서 돈은 즉 영향력이므로 정치적으로 세율의 감소를 실현하고 싶으면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다. 특히 역시 부유한 바스크와 연대한다면 부자감세 진행은 더 쉬워진다. 그리고 애초에 프랑코 총통이 민족문화적으로는 탄압했을지언정 좌경 노동운동 세력을 더더욱 극렬히 때려잡아 준 덕분에 이득을 고스란히 본 것이 바로 카탈루냐의 부르주아들이다. 그런데 탄압이 풀린 이제와서 세금 내기 싫어서 독립하겠다고 하면 설득력이 없다. 보통 경제적 이유로 독립여론이 형성되고 인정받는건 오히려 경제적으로 착취당해 빈곤하기 때문인데 자기들을 부자로 만들어준 나라가 싫어서 독립하겠다고 하면 비웃음을 당하는게 당연하다. 그 높은 경제력을 가지고 고작 투표소 강제점거나 하고 있단 말인가? 정치에서 폭력은 항상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는 자들이 행사하는 최후의 수단인데 말이다.

그리고 정말 그들이 민족을 위해 독립을 원한다면 같은 민족이지만 자기들보다 못사는 발렌시아발레아레스 제도도 함께 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카탈루냐 지방 사람들은 발렌시아와 함께하는 것은 꺼리고 있거나 심지어 무관심이나 다름없다.[58] 여기서 카탈루냐 독립에 대한 명분이 뭔가 논리가 맞지 않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며 이러한 점을 직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카탈루냐의 독립운동은 썩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카탈루냐 민족의 독립이라는 그럴 듯한 구실을 변명으로 카탈루냐 지방만의 경제적인 잇속을 챙기려는 지역 이기주의적인 속셈인 것이다. 위의 언급된 같은 카탈루냐 민족 구성원인 발렌시아 지방에 대한 카탈루냐의 무관심이 이를 증명하는 셈이며 민족 독립이니 뭐니 하는 건 실상 거짓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10월 1일 이전의 피상적 이해(독립운동에 대한 무조건 옹호)나 10월 1일 직후 스페인 당국의 폭력진압으로 인한 동정 여론은 이후 카탈루냐 향토기업들의 대거 탈출과 카탈루냐 당국의 독립 선언 유보 등으로 경제적 목적이라는 것이 알려지며 카탈루냐 독립에 대한 비아냥도 늘어난 편.

그렇기 때문에 카탈루냐 독립운동은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으며 사실상 2017년 한 해의 뜨거운 감자였을 뿐 곧 식을 여론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이후에는 스페인 정치권에서조차 독립 찬성파의 어그로나 가끔가다 방송에서 벌어지는 논객들의 썰전 정도를 제외하면 독립에 대한 여론이나 이슈가 전국적으로 많이 식었다. 사실상 사장되어 버린 이슈나 다름없다. 심지어 카탈루냐 시민들조차도 가끔 가다 몇몇 개인이 독립 명목으로 공공장소에서 행패 부리는 경우가 뉴스로 방송되는 해프닝을 제외하면 독립 이슈에 대해서 관심이 식어 버린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2019년 10월 14일 스페인 대법원이 분리독립을 시도하던 카탈루냐 자치 정부 지도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하자 이에 반발한 카탈루냐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다만 시위대가 공항을 점거하기 시작한 후 화염병을 투척하고 차량과 거리의 쓰레기통 방화, 상점 약탈 등 폭력 시위로 번졌기 때문에 유럽은 물론 한국에서도 우려 섞인 반응이 커졌다.

그 외에 FC 바르셀로나라는 축구계 거인의 존재로 인해 축빠들이 카탈루냐의 독립에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기도 한다. 바르셀로나 팬들 사이에서는 아무래도 카를레스 푸욜, 제라르 피케 같은 카탈루냐 독립파 선수들에게 감정 이입[59]을 하며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의견이 많은 편이기는 하지만 독립이 실현되면 라리가에서 바르사를 퇴출할 것이 자명하다 보니 "바르사 축구 보고 싶어서라도 독립은 막아야 한다" 내지는 독립을 하든 말든 엘 클라시코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독립을 반대하기도 한다. 스페인 축구협회에서는 카탈루냐 독립 시 FC 바르셀로나를 라리가에서 퇴출하겠다고 못박아 둔 상태라 FC 바르셀로나가 남아 있을 가능성 따위는 0%이다.


11. 기타[편집]


  • 여기서도 가짜 뉴스가 한 몫했다.# 배후에 푸틴이 있다는 소리도 나왔다. 사실 공식적으로 러시아 측이나 푸틴이나 스페인의 내부 문제라면서 관망했다고는 하지만 카탈루냐가 스페인에 남는다고 해도 크게 손해볼 건 없기는 하고 설사 분리되더라도 크림반도의 러시아 합병으로의 명분이 생기는 셈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푸틴으로서는 나쁠 건 없기는 하다. 카탈루냐 독립 후에 카탈루냐와 스페인 어느 한쪽이나 혹은 둘 다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 위기에 빠진다면 그 위기를 지렛대 삼아 EU를 간접적으로나마 압박하여 러시아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는 데에도 안성맞춤이기도 하고. 물론 결과적으로 러시아도 카탈루냐 독립 반대 입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정리되기는 했다.[60] 즉, 그러니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겉으로는 하든지 말든지 하면서 치고 나갈 타이밍을 잰 것에 가깝다.

  • 비정상회담에서도 이 의제를 다뤘는데 7(반대):3(찬성)이었다. 스페인 일일비정상[61]도 독립 반대 의견을 냈다. 그 이유는 투표 자체 문제가 컸으며 중앙 정부 허락 없이 강행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복 투표하고 독립 반대자들이 불참해서 투표율 42%였다.


12. 관련 문서[편집]


[1] 1918년에 비센스 알베르트 바예스테르(Vicenç Albert Ballester)가 도안하였는데 전통적인 카탈루냐 깃발 세녜라(Senyera)에 흰 별과 파란 삼각형을 덧붙였다. 흰 별과 파란 삼각형은 쿠바 국기에서 가져온 것이다.[2] 발렌시아주의 카탈루냐어는 정서법에 있어서 카탈루냐 본토와 약간 차이가 있다.[3] 아라곤은 오로지 페르난도 왕 혼자서만 다스리고 형식적으로는 카스티야를 부부 두 사람이 함께 통치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다만 카스티야의 국력이 아라곤보다 강했으므로 형식적으로는 공동 통치라도 실질적으로는 페르난도 왕의 말발이 안 먹혔을 수 있다.[4] 재위 1516년~1556년.[5] 레콩키스타를 거치며 유럽에서 가장 민족의식이 높았던 스페인 사람들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겸했던 카를로스 1세를 이방인(네덜란드인 또는 독일인)이라고 여겼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카를로스 1세는 카스티야어(스페인어) 및 카탈루냐어계통적으로 가까운 프랑스어를 모어로 썼지만... 카를로스 1세는 왕위를 물려받고 나서도 스페인의 상황이 두려워 1년 반이나 스페인으로 입국하지 못한 채 부하들을 먼저 보내 현지 상황을 어느 정도 수습한 후에야 스페인에 입국했을 정도였다.[6] 황제 선거 및 대관식, 마르틴 루터종교 개혁 문제 등이 산적하여 계속 신성 로마 제국에 머물러야 했다.[7] 카를로스 1세가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처음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 후아나 카스티야 여왕이 아직 생존해 있었던 관계로 카스티야 쪽 왕위 계승 문제가 복잡하게 꼬여 있었는데 카스티야 의회의 인준 등의 절차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카스티야 왕궁의 중심지인 톨레도와 바야돌리드에 정착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8] 합스부르크 가문의 중심 영지인 오스트리아 대공국은 황제가 머무르는 신성 로마 제국의 중심지로서의 위상은 높았지만 인구 자체는 적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오스트리아 제국 내에서 터진 각종 문제들도 결국 지배층인 오스트리아계 독일인의 인구가 제국 전체의 25%에 불과한 한계 때문이었다.[9] 레콩키스타를 막 끝냈을 당시 스페인의 교통 사정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열악했다. 스페인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합스부르크 네덜란드를 떠나 스페인에 도착한 카를로스 1세는 스페인의 열악한 교통 상태 때문에 거의 죽을 뻔하기도 하는 등 무척 고생했다. 카스티야와 카탈루냐가 통합 왕국이 된 지 500년이 되도록 서로 융화되지 못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스페인 내부의 교통망이 워낙 헬이라 서로 교류가 별로 없었다는 점이 꼽힐 정도다. 어쨌든 이 때문에 카를로스 1세에게 있어서 스페인 중심에 있던 톨레도의 지리적 위치는 제국을 통치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10] 15세기 대항해 시대가 열린 것은 근본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위협으로 지중해 무역이 어려워지자 그 대안을 찾아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중국과 무역을 하기 위한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이탈리아르네상스가 쇠퇴한 것 역시 오스만 제국의 위협으로 인한 지중해 무역의 쇠퇴 때문이다.[11] 또 다른 말로는 카탈루냐델노르트라고도 불리며 프랑스의 베테랑 골키퍼 위고 요리스도 이 지역 혈통이다.[12] 과거 사례를 보면 프랑스 중남부 지역은 물론이고 1640년 반란 때 카탈루냐에서 프랑스로 넘어간 지역인 피레네조리앙탈(Pyrénées-Orientales)도 프랑스어의 사용을 강요받아 더 이상 카탈루냐어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13] 인민당이 직접 헌법재판소에다가 소송을 건 결과물이다.[14] 스코틀랜드 독립 찬반 투표의 영향인 것 같은데 정작 그 스코틀랜드 독립 찬반 투표는 결국 10% 이상의 차이로 반대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결정이 났다(스코틀랜드는 국가 존립에 필요한 경제력이 별로 없다). 물론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이 과정에서 영국 본국으로 부터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을 얻어냈지만 이건 스코틀랜드 독립이 합법적으로 진행되었고 영국과도 협상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앙정부에 대놓고 반기를 든 카탈루냐와는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15] 첫 번째 문항 “카탈루냐는 국가가 되어야 하는가" 두 번째 문항 "첫 번째 문항에 찬성했다면, 카탈루냐가 독립국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16] 만약 같은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다면 분리 독립을 시도한 것에서 반국가단체 결성, 실제 독립선언을 한 것으로 내란죄에 해당하여 '사형 및 무기 징역'에 해당한다.[17] 단, 이들 정당의 득표율은 48% 정도였다.[18] 바르셀로나에 본부를 둔 카탈루냐 내셔널리즘에 반대하는 정당.[19] 바르셀로나 시장이었던 아다 콜라우는 독립 반대파이지만 포데모스와 연합해서 시장직을 역임했다.[20] 사실 이 발언도 웃긴 것이 영토 문제를 제외하면 카탈루냐 독립과 관련해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부분이다. 실질적으로 독립의 어려움이라기보다는 자치권 확대에 직접 닿아 있는 부분이 세금과 사법이다. 실제 독립을 하려면 외교, 국방, 에너지와 통신 등의 인프라 구축이 더 필수적이다. 아래에도 적혀 있지만 카탈루냐가 만일 독립선언을 하게 되면 가장 문제가 될 부분은 세금이나 사법이 아니라 전기, 통신, 국방, 외교 등이다.[21] 바스크,카탈루냐 등에서 독립 요구가 많다.[22] 스페인은 자치경찰과 국가경찰이 공존한다.[23] 우크라이나 사태 당시에도 러시아와 거리가 먼 오데사 지역은 금방 우크라이나에 제압당했다.[24] 유럽 연합 가입은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필요하다.[25] 실제로 스페인이 북핵 실험에 항의해서 주스페인 북한 대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해 추방했기 때문에 북한의 경우에는 스페인 엿 먹으라고 카탈루냐와 수교할지도 모르겠다.[26] 아라고네스가 선출된 뒤로 펠리페 6세는 카탈루냐를 네 번 방문했지만 아라고네스는 단 한 번도 응대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만남은 이례적이란 보도가 있었을 정도다. 물론 카탈루냐 주지사로선 국빈 방문과 국내 분열을 타국 정상에게 보일 수 없는 입장 때문에 행사에 불참하거나 안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없었을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27] 사실 근대까지는 카스티야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왕실 직할령에 가까워서 세금 부담이 많았다.[28] 하지만 스페인 정부로서는 헌법상 그럴 권리가 없기도 하거니와 2014년과는 달리 이번에 카탈루냐 주 의회가 통과시킨 법에 따르면 주민투표가 가결되면 48시간 내에 국경 통제하고 스페인 군대를 추방하겠다고 나오던 통에 스페인 중앙정부로서도 묵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주민투표 허용이 도박이라는 데 있다. 부결되면 분리주의의 세가 확 떨어지겠지만 가결되면 진짜로 카탈루냐는 독립해 버린다.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투표 직전에도 여론조사가 박빙으로 나와 스코틀랜드 독립이 현실화는 것으로 보이자 주민투표를 승인해준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이 미친 듯이 까였던 적이 있다. 게다가 스페인은 바스크 문제도 있다. 괜히 카탈루냐 투표를 허용해주면 바스크도 가만 있지 않을 것이고 결국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29] 2016년 이후 상황이 그나마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청년 실업률이 30-40%대를 넘나들 정도로 상황이 어렵다.[30] 지금도 헌법의 민주주의적 정통성 논란은 스페인 사회에서 지속되어 왔으며 특히 스페인이 다민족 국가임을 인정하도록 헌법을 개정하라는 요구는 독자적인 민족 정체성을 주장하는 카탈루냐 및 바스크 지역에서 있어 왔는데 그것은 1992년, 2011년에 있었던 두 차례의 헌법 개정 과정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결국 2010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정통성을 의심받는 헌법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투표를 통해 전해진 변화의 요구를 무시한 사례가 되었다. (출처)[31] 이러한 프랑코 정권의 잔재들이 청산이 안 되는 이유는 애초에 프랑코 정권은 시민들이 뒤엎은 게 아니라 프랑코 본인이 후안 카를로스 국왕에게 권한을 물려주면서 프랑코 정권의 기반세력들도 프랑코 정권 종식 이후로도 스페인 사회에서 영향력을 상당 기간 유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망각협정이라고 하여 현실과 타협했고 1975년 프랑코 사후 이른바 '망각협정'으로 불리는 과거사 처리 방안에 합의했다. 내전과 관련된 사람들의 허물을 덮고 절대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법적인 면죄부를 주었다.#[32] 복스 등 강경 프랑코주의자[33] 사실 재미를 봤다고 하기도 어렵다. 주민투표 직전의 한 여론조사에서 스코틀랜드 독립 찬성이 우세한 걸로 나와서 영국 정계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고 독립은 안 됐지만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서 이제 이 당은 어느 선거에서든 명실상부한 스코틀랜드 제1정당이 됐다. 그 전까지 SNP는 자치의회에서나 제1당이었으나 주민투표 이후엔 영국 국회 하원에서도 스코틀랜드 내 제1당이다.[34] 영국의 네 지방(구성국) 문제는 단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한 사안이다. 미국은 주와 연방정부가 따로 있으며 명칭도 United States이다. 이러한 사정은 다른 연방국인 말레이시아, UAE(United Arab Emirates), 스위스, 호주 등 구체적인 형태를 막론하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영국은 단일한 정부가 있으며 잉글랜드를 제외한 지방에 독자적인 정부를 설립할 수 있도록 양해한 것이다. 영국만의 독특한 정치문화라 하겠다. 따라서 양 지역의 차이는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차이가 아니라 상대적이고 문화적인 차이다. 그 차이가 이렇게나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중앙정부의 태도 때문이다.[35] 물론 현재의 스코틀랜드 의회는 통합 당시의 의회를 이어받지 않고, 영국 의회가 제정한 스코틀랜드법에 따라 1999년 설립된 자치의회다.[36] 2012년 에든버러 합의가 이뤄지며 2014년 독립 투표를 합의한 것이다.[37] 자치권은 영미계에서는 천부적인 권리로 보지만 유럽 대륙계에서는 그저 국가에 의해 주어진 시혜적 권리로 본다.[38] 이 점 때문에 FC 바르셀로나가 르 샹피오나에 가입할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들이 많다. 아니, 카탈루냐 축구 리그가 UEFA에 가입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최악의 경우, 라리가 측에서 시즌을 보이콧하겠다고 할 수 있을 수도 있다. 소설 <마지막 수업>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프랑스어는 19세기까지도 합병된 지 몇 세대가 안 된 지방이 많았고(나폴레옹마저 단 몇 년 차이로 프랑스인이 되었다) 독립 기운마저 있었던 각지에 철저하게 표준어를 보급하고 민족적 일체감을 교육하고자 했던 시대 프랑스의 단상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지방 언어 문제 문서도 참고하면 좋다.[39] 하다 못해 중국대만에게 중국의 통치 제도 아래에서 홍콩보다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일국양제 통일을 요구한다. 물론 이쪽 동네는 얘기가 좀 다르긴 하지만...[40] 어떻게 본다면 이게 바로 상술했던 카탈루냐 주민 51%가 분리독립에 반대하고 있음에도 카탈루냐 지방정부 지도부가 분리독립을 일관되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일 것이다. 일개 지방정부의 경제력이 굉장히 강력한데 그 세입으로 통치하는 주제에 생색낸다는 입장이니.[41] 스페인 정치 체계에 대해 조금만 알아보면 중앙정부는 사실 각 자치주의 세금과 중앙정부 소유의 시설물로 벌어들이는 소득 외에 수익이 거의 없으며 재정적으로도 카탈루냐 자치주에 비해 가난하지 않다. 비교를 하려면 마드리드 주와 비교해야 하는데 마드리드 주보다도 더 부유한 편도 아니다. 또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다국적 기업의 유치 등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카탈루냐만의 힘으로 현재의 경제력을 이룩한 게 아니다.[42]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지역에서 쓰이는 언어들은 오크로망스-갈로이탈리아 계열로서 모두 매우 가까운 근연관계에 있다. 각각 중앙정부에서 지정한 표준어와는 말이 안 통할 정도로 다르면서.[43] 연고지가 카나리아 제도인 UD 라스팔마스가 FC 바르셀로나와의 무관중 경기 중 스페인 국기를 달고 경기를 한 만큼 카나리아 제도는 아직까진 분리를 반대한다.[44] 특히 스페인이 가장 우려를 나타내는 쪽은 바로 바스크다. 이 지역은 소득도 높기도 하지만 아예 언어와 문화 자체가 다른 분리주의 강성파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페인에서 일어났던 테러 사건들의 배후도 이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소행이거나 혐의가 짙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정도로 과격파들이다. 만에 하나 바스크 지역에서 카탈루냐 독립에 자극받아 역시 분리운동을 시도할 경우 카탈루냐에 투입했던 공권력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수 있다.[45] 문제는 바스크와 카탈루냐는 그 본질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탈루냐는 경제적인 편의성이 독립의 이유인 반면 바스크는 자신들은 스페인과는 전혀 연관점이 없다는 것이 독립의 이유이다. 게다가 카탈루냐는 여차하면 무력을 써서라도 압박을 가할 경우 제풀에 꺾여 나갈 정도로 간단하지만 바스크는 테러를 불사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켜 나갈 정도로 극단적 강경파들이라 중앙정부가 쉽사리 손을 못 쓰는 형편이다. 만에 하나 바스크가 분리 운동을 전개할 낌새를 보여 중앙정부가 이를 진압하려한다면 이는 곧 내전으로 옮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46] 중국의 입장에서도 카탈루냐 독립운동이 민감할 이유가 티베트위구르, 더 나아가 양안문제에까지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며 홍콩마저도 독립하겠다고 할 정도로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카탈루냐가 스페인에게서 독립을 이뤄낸다면 그야말로 독립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셈이다.[47] 공교롭게도 홍콩 민주화 운동에 자극받아 카탈루냐 독립운동 역시 심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스페인으로서는 결국 중국으로 인해 생긴 상황이나 다름없어서 상당히 불편하게 볼 사항이기도 하다.[48] 다만 체첸은 2000년대 푸틴 집권 이후 독립운동 세력이 크게 줄었다. 러시아 정부의 강력한 소탕 작전 때문이기도 하지만 체첸 반군이 이슬람 원리주의에 경도된 나머지 온갖 테러를 저지르고 다녀 민심을 상실했다. 특히 2004년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은 체첸 반군에 대한 일말의 동정론마저도 사라지게 만드는 최악의 테러였다.[49] 사실 카탈루냐 독립 문제도 겉으로만 내색을 안 할 뿐 이들 국가에게도 상당히 민감한 문제이다. 자칫했다간 카탈루냐 독립이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러시아 상원의장이 카탈루냐인과 대화하라고 했지만 이는 코소보와 크림반도 문제에 대한 정당성 얻기 립서비스일 뿐. 뿐만 아니라 스페인 국내의 다른 카탈루냐 문화권의 도시들도 이에 자극받아 독립하겠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만큼 카탈루냐가 독립해 UN에 가입한다고 하면 이들 두 국가들은 극도로 반대할 확률이 무척 높다. 특히 중국이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할 가능성이 큰데 중국이 겪고 있는 일부 지역의 독립 문제가 지금의 스페인-카탈루냐 상황과 흡사하기 때문.[50] 이쪽은 캐나다가 영국의 가입을 제안하고 있는 상황이라, 만에 하나 같은 라틴 권인 멕시코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카탈루냐에게도 가입 문이 열릴 수도 있다. 애초에 멕시코가 카탈루냐를 도우려 할지는 차치하고 말이다.[51] 4부 리그까지 합계고 5부부터는 카탈루냐 지역 리그가 존재한다.[52] 왠지 스페인 국대 응원하는 관중 속에 포르투갈 선수 저지가 보인다.[53] 사실 에스파뇰은 카탈루냐 독립에 있어 조금 소극적이다. 에스파뇰의 설립자들이 카탈루냐에 사는 카스티야 사람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54] 경기 12분째에 관중들이 스페인 국기와 스카프를 꺼내들었다.[55] 이와 관련해서 발스 총리는 사과하고 아들의 비행기 삯을 물어내야 했다.[56] 국왕의 실질적 권한이 거의 없는 유럽 국가들이라고 할지라도 카탈루냐 독립운동처럼 국가 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사태에서는 국왕이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관해 개인적인 견해 내지는 의견을 나타내기도 한다. 어쨌든 국가의 상징이므로. 이미 스페인에서는 1981년에 전 왕 후안 카를로스 1세쿠데타에 대해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여 쿠데타를 막아낸 전력이 있다.[57] 스코틀랜드의 독립운동은 여론 뿐만 아니라, 영국 내에서 나날이 브렉시트에 대한 찬성 여론이 증가하는 것에 대한 반감때문에라도 많은 지지를 받은 바 있다. 그래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어 정말로 영국이 유럽 연합에서 탈퇴하자, 다시금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2014년에 있었던 독립 여부를 묻는 투표가 부결된 건 당시 영국의 수상이었던 데이비드 캐머런이 스코틀랜드가 독립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브렉시트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인 결과였다.[58] 사실 발렌시아 역시 카탈루냐가 독립하면 그 이익은 전부 카탈루냐의 실질적 수도인 바르셀로나가 다 차지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다지 반기는 편도 아니다. 즉, 애초에 발렌시아와 발레아레스가 스페인을 이득이라 여겨 카탈루냐 독립에 동조하지 않거나 잠정적으로 독립을 반대하는 것이지 카탈루냐 독립파가 그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당장 그 2지역을 포함시키면 안그래도 낮은 독립찬성율이 더 낮아질 여지가 큰 상황이다.[59] 한국 바르셀로나 팬들은 일제 독립 투사에 비유하며 과몰입하기도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일단 푸욜은 카탈루냐인의 정체성을 드러낸 적은 있지만 대놓고 독립을 지지한다고 한 적은 없으며 카스티야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는커녕 온건한 태도를 종종 보여와서 독립 찬성파들 사이에서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았고 피케는 카탈루냐인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성향이긴 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독립을 지지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60] 사실 자국 내 분리주의 세력에게 민감한 건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체첸 공화국이 한때는 그런 분리주의 세력이었으며 소련 붕괴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으니...[61] 발렌시아 출신. 발렌시아 역시 카탈루냐 문화권이긴 하지만 카탈루냐 독립운동의 주도 측이 바르셀로나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독립이 이뤄져도 결국 바르셀로나가 모든 이득을 독식하게 되는 구조라 발렌시아는 부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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