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 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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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 칸국
قازان خانليغى
Казан ханлыгы

파일:카잔 칸국 국기.svg
국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KazanKhanate1500.png
1438~1552
위치
볼가 강 인근
수도
카잔
정치체제
전제군주제
국가원수
/ 차르
언어
타타르어, 바시키르어, 추바시어, 마리어
종족
타타르족, 바시키르인, 추바시인, 마리인
종교
이슬람
성립 이전
킵차크 칸국
멸망 이후
루스 차르국
1. 개요
2. 상세
3. 영향
4. 참고자료

언어별 명칭
타타르어
قازان خانليغى / Казан ханлыгы
러시아어
Казанское ханство


1. 개요[편집]


1437년부터 1552년까지 볼가 강 유역 오늘날의 카잔과 타타르스탄을 중심으로 한 칸국이었다. 킵차크 칸국의 계승국들 중 하나이다.

볼가 강 수운을 이용하여 모스크바 공국과 아스트라한 칸국을 연결하는 중개 무역으로 상업이 번창했으며, 과거 이 지역에 위치한 불가르 칸국처럼 반농반목 경제였다.


2. 상세[편집]


카잔 칸국은 킵차크 칸국이었던 울루그 무함마드(Oluğ Möxämmäd)에 의해 1438년 세워졌다. 울루그 무함마드는 칭기즈 칸의 후손[1]으로, 한때 킵차크 칸국의 대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사이드 아메드에게 쫓겨나자 동쪽으로 도주하여, 1438년 카잔을 수도로 국가를 창건했다. 울루그 칸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웃한 모스크바 공국을 상대로 여러 번 승리를 거둠으로써 그들을 복속시켰다. 심지어 1445년의 수즈달 전투에서는 모스크바 대공 바실리 2세를 생포한 뒤 많은 배상금을 받고 풀어주기도 했다.

울루그 칸 사후 그의 자식인 마흐무덱(Мәхмүт)이 즉위하여 칸국의 기반을 다지는 데 힘썼다.[2] 마흐무덱의 뒤를 이어 즉위한 이브라힘(Ибраһим)은 모스크바 공국과의 전쟁에서 또 한 번 승리를 거두면서 일부 영토를 병합하였다. 이 시기 카잔 칸국은 강성했으나 영토의 크기나 인구의 규모가 모두 작았기에 근처의 모스크바 대공국이나 크림 칸국과 같은 국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게다가 이브라힘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들인 알함(İlham)과 무함마드 아민(Möxämmät-Ämin) 사이에 칸위를 둘러싼 계승 분쟁이 일어나면서 국력은 날이 갈수록 약화되었다.

무함마드 아민은 1487년 모스크바의 도움으로 칸의 자리에 올랐다. 이어 1496년에 시비르 칸국과의 분쟁으로 권좌를 잃었으나, 1502년 다시 한번 모스크바의 도움으로 복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카잔 칸국에 대한 모스크바의 영향력이 대폭 확대되었다. 1506년, 무함마드 아민은 모스크바 공국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스크바의 군대와 전투를 벌여 그들을 일시적으로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모스크바의 위협은 여전하였고, 1519년 무함마드 아민 사후 울루그 무함마드의 혈통이 단절되자 모스크바의 바실리 3세가 지지하는 아스트라한 칸국 출신의 샤 알리가 후임 칸이 되었다.

이후 카잔 칸국은 크림 칸국과 모스크바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모스크바가 샤 알리를 칸위에 올리자, 1521년 크림 칸국이의 메흐메트 기레이 칸이 카잔을 점령한 뒤 동생 사힙 기레이를 카잔 칸국의 칸 자리에 앉혔다. 이후 크림 칸국이 지지하는 기레이 가문 인물들과 모스크바가 지지하는 인물들 사이에 지속적인 제위 분쟁이 발생했다.

1552년 모스크바의 이반 4세는 카잔 칸국을 병합하기로 결심한다. 이반 4세는 카잔 칸국을 대대적으로 침공하였고 1552년 10월 2일, 카잔 칸국이 함락되어 모스크바 공국으로 흡수되었다. 이후 카잔 칸국의 제위는 모스크바 공국이 차지하게 된다.


3. 영향[편집]


카잔 칸국이 멸망하여 러시아에 흡수된 1552년은 루스 차르국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루스인들이 킵차크 칸국으로 대표되는 몽골-튀르크 세력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이후 슬라브족 이외의 여러 타 민족(무슬림 튀르크)을 지배하는 첫 번째 시기가 바로 이 즈음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키예프 루스의 멸망 이후 한동안 끊겼던 중앙아시아 무역을 볼가 강의 카잔 칸국과 아스트라한 칸국을 손아귀에 넣음으로써 다시 진행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러시아는 다민족-다종교 사회가 되었다. 모스크바 공국은 카잔 칸국을 정복하고 그 지배 계층을 흡수하여 루스 차르국으로 거듭났다.

카잔 칸국의 볼가 타타르족과 바시키르인들은 뛰어난 기마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 제국 치하에서 경기병으로 활약하면서 많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무슬림이었던 이들은 중앙아시아의 무슬림 상인들과 거래하면서 많은 이익을 보았고, 많은 타타르인들이 러시아인 평균보다 더 높은 교육 수준과 경제력을 갖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에서는 이들에게 기독교로 개종하면 많은 혜택을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무슬림 국가들과의 교역에서 많은 이익을 보고 있던 이들은 기독교 개종을 거부할 수 있었다. 아스트라한의 타타르족들도 카잔 칸국의 타타르족들과 자연스레 동화되며 볼가 타타르족을 이루게 되었다.

반면 카잔 칸국의 보병으로 복무했던 추바시인마리인들은 가난한 농노로 전락했으며 이후 정교회로 개종하게 되었다. 모르드바인들도 보병으로 복무했지만, 이들은 러시아의 카잔 지배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나은 대우를 받았다. 카잔 칸국의 지배를 받던 여러 민족들이 러시아에 흡수되면서 루스 차르국은 북카프카스와 카바르다 지역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4. 참고자료[편집]


찰스 헬퍼린, 권용철 역, 『킵차크 칸국 - 중세 러시아를 강타한 몽골의 충격』, 글항아리, 2020.
이주엽, 『몽골제국의 후예들』, 책과함께,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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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확한 계보는 불분명하지만 토크타미쉬의 손자라는 설이 있다.[2] 아들 마흐무덱이 울루그 칸을 암살했다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