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르 카시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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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스페인의 축구인. 현역 시절 포지션은 골키퍼로, 2020년에 은퇴한 후 프런트로 전직하여 현재 레알 마드리드 CF 재단의 이사 보좌관을 맡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대표팀 양쪽에서 모두 주장을 맡았던 골키퍼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라리가 5회 우승, UCL 3회 우승을 비롯하여 수많은 우승을 이끌었고, 스페인 대표팀에서는 축구 역사상 두번 다시 없을 최초의 '국제 메이저 대회 3연패[5] 를 주도했다.
A매치 167경기 중 무려 94경기에서 클린시트를 기록하면서, 역대 A매치 최다 클린시트 기록자로 남아 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케르 카시야스/클럽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케르 카시야스/국가대표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카시야스의 신장은 182cm로, 골키퍼로서는 상당히 불리한 신체적 조건[6] 이지만 무시무시한 반사 신경과 이를 바탕으로 한 압도적인 세이브 능력으로 10여 년 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1:1 상황에서는 장기인 빠른 발과 정확한 판단력으로 귀신같이 공의 방향을 예측해서 낚아채거나, 잽싸게 몸을 날려서 환상적인 선방을 해내는 등 말도 안 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많다. 한 팀당 주전 자리는 하나뿐인 골키퍼라는 포지션에서 순수히 소프트웨어적인 능력으로 신체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을 보면 카시야스가 얼마나 대단한 운동 능력을 지녔는지 알 수 있다. 또한 갈락티코 1기 시절부터 페페가 오기 전까지의 레알 마드리드 CF의 수비진이 처참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카시아스의 위상은 더욱 올라가게 된다.
뛰어난 리더십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스타들의 집합소인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2기 시절에서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면서 팀원들과의 불화가 거의 없었으며[7]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으면서 무적함대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특히 카를레스 푸욜, 사비 에르난데스와 함께 앙숙 관계인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사이를 완만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장으로서의 리더십이 탁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8][9]
이렇듯 빠른 판단력과 반사 신경을 바탕으로 한 무시무시한 선방 능력, 1:1 상황에서의 압도적인 면모, 정확하고 안정적인 킥력, 주장으로서 팀을 이끄는 리더쉽까지 모두 갖춘 카시야스는 전성기 시절 말 그대로 완전체였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의 카시야스를 넘어설 수 있는 커리어와 실력을 겸비한 골키퍼는 전무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줬었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상대적으로 작은 신장으로 인해 코너킥이나 크로스 상황에서 공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공을 잡는 대신 펀칭해 내야만 했다는 것 정도.
그러나 이러한 그의 장점들은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급격한 몰락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무시무시한 반사 신경으로 신체적 조건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던 카시야스였지만, 신체적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30대부터는[10] 급격한 하락세에 맥을 추지 못하게 되었다. 반사 신경이 떨어지면서 작은 키를 운동 능력으로 극복할 수 없게 되자 아크로바틱한 선방이나 빠르고 정확한 크로스 처리를 하는 모습은 서서히 줄어들었고, 오히려 불리한 신체적 조건으로 불안정한 플레이를 이어 나가며 주전 자리를 위협받는 신세가 되었다.[11] 발밑이라도 좋았으면 시대의 흐름에 맞춰 롱런할 수도 있었을텐데, 카시야스의 발밑 빌드업 전개 능력은 단신에다가[12] 패스 축구에 강점이 있던 스페인의 골키퍼라는 특징 치고는 썩 좋지 못했다.[13]
그렇게 2012-13 시즌에는 디에고 로페스에게 주전을 넘겨주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고[14] , 계속 하락하는 폼과 끊임없는 이적설에 시달리면서 2014-15 시즌을 끝으로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오랜 경력을 마감했다. 이후 포르투에서는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피지컬적인 부분은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대신 슈팅을 미리 예측해서 막아내는 등 노련한 플레이를 보여주며 말년을 보냈다.
4. 평가[편집]
팀 커리어를 레알과 포르투에서 보내며 준수한 활약을 했고 특히 전성기이던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의 임팩트 놓고 보면 골키퍼 역사에서도 아무리 낮게 평가해도 최소 5 손가락에 뽑히는 선수임이 틀림없다. 또한 이견의 여지가 없는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국대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 받는다.[16] 작은 신장 조건은 결국 나이가 들며 그를 한층 더 불안정한 골키퍼로 만드는 원인이었지만 팀의 패배를 막기 위해 늘 싸웠던 그의 의지는 결코 은퇴까지 꺾이지 않았다.
현재의 평가는 사실상 잔루이지 부폰, 마누엘 노이어, 디노 조프, 고든 뱅크스와 함께 레프 야신 한 단계 밑으로 평가 받는다. 말년이 안 좋았다 한들, 부폰, 노이어, 야신과 달리 메이저 트로피들을[17] 모두 들어본 것은 분명 대단한 업적이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 레알 마드리드 CF (1999~2015)
- 라리가: 2000-01, 2002-03, 2006-07, 2007-08, 2011-12
- 코파 델 레이: 2010-11, 2013-14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001, 2003, 2008, 2012
- UEFA 챔피언스 리그: 1999-00, 2001-02, 2013-14
- UEFA 슈퍼컵: 2002, 2014
- 인터컨티넨탈컵: 2002
- FIFA 클럽 월드컵: 2014
- FC 포르투 (2015~2020)
- 프리메이라 리가: 2017-18
- 타사 드 포르투갈: 2019-20
- 수페르타사 칸디두 드 올리베이라: 2018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2010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2008, 2012
- UEFA-CAF 메리디안컵: 1999
- 스페인 U-20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U-20 월드컵: 1999
- 스페인 U-16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U-16 챔피언십: 1997
5.2. 개인 수상[편집]
- FIFA FIFPro 월드 XI: 2008, 2009, 2010, 2011, 2012
- FIFA 월드컵 골든글러브: 2010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2002 (리저브)
- FIFA 월드컵 드림팀: 2010
- UEFA 올해의 팀: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 UEFA 올해의 궁극적인 팀: 2015, 2017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2008, 2012
- 베스트 유러피언 골키퍼: 2010
- 라리가 최우수 골키퍼: 2008-09, 2011-12
- 라리가 최우수 신인 선수[18] : 1999-2000
- 라리가 페어플레이 상: 2012-13
-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 2007-08
- 프리메이라 리가 올해의 골키퍼: 2018-19
- 프리메이라 리가 올해의 팀: 2018-19
- 프리메이라 리가 페어플레이 상: 2017-18
- ESM 올해의 팀: 2007-08
- 옹즈 드 옹즈: 2008, 2009, 2010-11
- IFFHS 세계 최우수 골키퍼: 2008, 2009, 2010, 2011, 2012
- IFFHS 올타임 스페인 드림팀: 2022
- 브라보 상: 2000
- 골든풋: 2017
- 돈 발롱 21세기 드림팀: 2010
- 마르카 레알 마드리드 올타임 XI: 2017
- 마르카 스페인 올타임 XI: 2020
- 프랑스 풋볼 10년의 팀 (2010–2019)
-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2020 (GK 4위)
- 아스 올타임 XI: 2021
6. 카시야스에 대한 말, 말, 말[편집]
저는 카시야스가 많은 기록을 새로 갈아치우는 것에 대해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타고난 천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페인 국가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가 위기에 쳐할때마다 구해내는 카시야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고, 또한 제가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카시야스가 경기에서 보여주는 모든 것은 세상 모든 골키퍼가 배워야 하는 지침서나 다름 없습니다.
모두가 패했다고 느꼈을 때 카시야스가 나타나 당신을 구원할 겁니다.
카시야스를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는 31살인데 모든 것을 다 이뤘다. 그는 17~18세부터 레알 마드리드 1군에서 뛰기 시작했다. 이것이 카시야스에 대한 모든 걸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카시야스가 스페인의 크랙이다.
카시야스를 넘어 골을 넣으려면 최고의 경기를 펼쳐야 한다.
카시야스의 반사신경은 믿을 수 없다.
스페인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으려고 하는 수많은 쟁쟁한 골키퍼들 속에서도 카시야스는 꾸준히 군계일학의 활약을 보인다.
골키퍼로 경기에 출장하는 일은, 막중한 책임감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카시야스의 실력과 쌓아온 역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책임감, 근면함, 자기관리 능력과 함께 행운까지도 필요한 법입니다. 물론, 카시야스와 현역 시절의 저는 다른 스타일의 골키퍼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골키퍼의 중요성은 평가절하하며 오직 부정적인 실수에만 초점을 맞추는 언론과 시대에 시달려왔다는 점은 같습니다.
데뷔 당시 내 목표는 오랫동안 한 팀에서 그 팀과 함께 성장하는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팀의 정체성에 100% 어울리는 선수, 그 팀의 역사를 대표하는 선수 말이다.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그런 훌륭한 선수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바르셀로나에는 사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레알 마드리드에는 이케르 카시야스와 세르히오 라모스가 있다.
카시야스는 발롱도르를 수상할 자격이 있다.
난 카시야스가 최고의 골키퍼라고 생각한다. 그는 경기에서 자신이 할수있는 모든것을 한다.
카시야스는 공격수가 어떻게 반응할지 미리 알고 움직이는 골키퍼입니다.
카시야스는 자신의 신속함과 집요함으로 상황을 잘 타개할 줄 알고 있다. 카시야스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다.
호세 프란시스코 몰리나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 침착하게 경기를 하는 훌륭한 골키퍼다.
앙헬 이리바르
(가장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유니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케르 카시야스와 처음으로 바꾼 유니폼이다.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한 골키퍼는 카시야스와 에드빈 판데르사르다.
골키퍼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실점을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또한, 스페인 대표팀의 모범적인 캡틴이었다. 그라운드에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해 마음이 아프지만, 축구계는 두 팔을 벌려 환영할 것이다.
그의 지성과 성숙함은 우리가 항상 서로를 존중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몇년이 지났지만 카시야스와 나의 우정은 여전하다. 카시야스는 훌륭한 골키퍼이자, 위대한 남자다. 레알 마드리드를 넘어 스페인과 세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키퍼 중 한 명이다. 카시야스와 함께 우리는 모든 기록을 경신하며 라 리가 우승을 거뒀다.
카시야스는 오늘 은퇴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축구의 역사에 남았다. 라리가를 상징했을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많은 것을 이뤘기 때문이다. 카시야스는 훌륭한 골키퍼였고 그를 상대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마주칠 때마다 서로를 넘어서야 했던 멋진 라이벌 관계였기에 서로 발전할 수 있었다.
카시야스는 영원한 전설이다.
사람들은 경쟁이 우리를 다른 사람보다 발전할 수 있게 만들었지만 우리의 진정한 맞대결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런 헛된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를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고마워 카시야스, 네가 없었다면 모든 것이 덜 의미 있었을 거야.
그는 명백히 저보다 돋보이는 골키퍼입니다.
제가 가장 높게 평가하는 카시야스의 장점은 실수가 극도로 적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항상 공격적인 축구를 추구하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주전 골키퍼 자리를 오랫동안 지켰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누구나 레알 마드리드에서 10년동안 주전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프로페셔날하고, 꾸준해야 하는지 알 것입니다. 카시야스는 바로 그런 선수입니다.
7. 다른 키퍼들과의 비교[편집]
카시야스가 월드클래스이자 역대급 골키퍼였던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전성기에 보여준 실력과 커리어가 이를 대변한다.[19] 다만 말년에 부상을 겪으면서 급격한 폼 하락을 겪었기에 한국에서는 평가가 꽤나 박한 편인데, 아무래도 한국 축구팬들이 꾸준한 선수를 선호하는 것이 많이 작용한 듯하다. 또한 2인자에 대한 평가가 애매해지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카시야스는 전성기 시절 단순히 잘했던 수준도 아니며 7~8년 정도 꾸준히 월드클래스에 위치했던 골키퍼이므로, 최소한 2000년대부터 현재까지 활약한 골키퍼 중에 잔루이지 부폰, 마누엘 노이어를 제외하고 카시야스보다 우위라고 평가할 만한 선수는 없다고 봐도 된다.[20] 그러나 개인 수상 커리어 측면에서는 카시야스가 확실하게 부폰, 노이어, 칸에 밀리는 편이다.[21][22][23][24] 다만 피파 월드베스트의 경우, 카시야스가 5회로 노이어의 4회, 부폰의 3회보다 많이 수상했다. UEFA 올해의 팀 같은 경우에도 카시야스가 6회로 부폰의 5회, 노이어의 4회보다 많이 수상했다. 특히 부폰은 칼초폴리의 여파가 있기는 했지만 카시야스와 전성기가 겹친다는 측면에서 카시야스의 개인적 성과도 고평가할수 있다. 결론적으로는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에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던 세계 최고의 골키퍼였으나, 전성기가 짧아서 평가가 살짝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첫 맞대결은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4강 독일 vs 스페인의 경기였고, 이 때 노이어는 첫 월드컵에 출전한 24세의 신예 골키퍼였다. 이 대결에서는 두 선수 모두 선방쇼를 계속 펼쳤는데, 스페인의 1-0 승리로 끝나면서 카시야스가 판정승을 따냈다. 두 번째 대결은 2011-12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역시 1, 2차전 내내 카시야스와 벌인 선방쇼 배틀이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두 경기 모두 명경기였다. 결국 합계 점수 3:3, 승부차기 승으로 바이에른 뮌헨이 승리했다. 승부차기에서도 선방 대결은 팽팽하게 이어졌는데, 노이어가 먼저 2개를 막았지만 카시야스 역시 2개를 연달아 막아내며 맞섰다. 승부를 결정지은 세르히오 라모스의 실축도 노이어가 막은 것이 아니라 골문 밖으로 벗어난 것이었다. 마지막 맞대결은 2013-14 챔스 4강전이었고, 합산점수 5-0 완승을 따내며 카시야스가 다시 판정승을 따냈다.[29]
카시야스와 노이어의 라이벌 관계는 과거 세계 최고의 골키퍼 vs 현재 세계 최고의 골키퍼 사이이기에 더 뜨겁다. 2012년도 까지는 팽팽함 그 자체였고, 카시야스는 커리어에서 전성기를 맞다보니 모든 No.1 골키퍼 상 자리는 카시야스였다. 그러나 노이어가 스위퍼키퍼로 진화하고 바이에른이 유럽을 평정한 1202-13 시즌 카시야스는 부상에 폼 하락에 온갖 불상사가 겹쳤고, 자연스럽게 최고의 골키퍼 자리는 노이어가 되었다. 2013-14 시즌 카시야스가 노이어와의 맞대결에서 이기고 라 데시마를 달성했어도 여전히 최고의 키퍼 자리는 노이어 차지였고, 4년 전 카시야스가 그랬듯이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노이어도 독일을 우승으로 이끌며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노이어가 카시야스를 비롯한 기존 골키퍼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스위퍼형 골키퍼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면서 골키퍼의 영역을 필드 플레이어 수준으로 높이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전성기만 따졌을 때 노이어보다 우위에 있는 키퍼를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거기다 노이어는 30대 중반에도 전성기를 유지하는 중이라 카시야스보다도 장기적으로 롱런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개인 수상 측면에서도 노이어는 골키퍼로서는 매우 드물게 2014년 FIFA 발롱도르 3위, UEFA 올해의 선수에서도 2013-14 시즌 2위, 2019-20 시즌 3위, 2011년, 2014년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 수상을 한 것에 비하면 카시야스는 FIFA 발롱도르, UEFA 올해의 선수 포디움에 단 한 번도 들지 못하고, 심지어 라리가 최우수 선수상도 받지 못하면서 부폰과 마찬가지 케이스로 개인 수상 측면에서는 노이어에게 밀리는 편이다.
8. 여담[편집]
- 별명은 성 이케르(San Iker), 카시야신(야신과 신god 두 쪽 다 의미한다.)
- 2022년 기준 UEFA 챔피언스 리그 통산 출장 경기 수 역대 2위이다.
- 레알 마드리드 시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가려져서 그렇지. 이 쪽도 호날두 못지 않은 패션 테러리스트다. 그의 소울이 담긴 듯한 가방을 보자.
그나마 이쪽은 점점 나아지기라도 하지, 옆 나라 슈퍼스타는...
- 패션뿐만 아니라 노래 또한 호날두와 비슷하게 음치 기질이 있는 듯하다. # 스페인의 보험 회사 광고에서 부른 "Me siento seguro" 가 병맛 같은 광고랑, 음정을 이탈하는 목소리가 제대로 앙상블을 일으켜서, 한층 더 병맛미를 강조시켰다. # 이 광고가 스페인에서도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는지, 골대 뒤에 있는 사람들이 그 노래를 불렀고, 아이들과 선수들도 이 구절을 부르면서 카시야스를 놀렸다. 정작 본인은 괜찮다고 했지만...
- 근엄하고 진지하게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위의 패션 테러리스트의 면모나 음치 기질과 함께 의외로 트롤같은 면모도 있다. 위에 서술된 제라르 피케와의 감자칩 농담도 그렇고, 페리스코프랑 인스타에서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이 많이 눈에 보인다. 뿐만 아니라, 마르크 바르트라가 인스타 라이브를 하고 있는 도중, 갑자기 난입해서 엘 클라시코에서 가레스 베일에게 주력으로 털린 일을 운운하기도 했다. #[34] 이후, 바르트라는 엘 클라시코 때 넣은 골로 카시야스에게 소소한(?) 복수를 했다. #
- 라모스와는 친한데 좀 많이 친한지 경기 도중 서로 다독이면서 입으로(!) 키스하는 장면이 자주 포착됐었다. 수많은 부녀자팬들을 양산했었으나... 지금은 다른 팀이어서 더이상 애정행각(?)을 볼 수는 없다. 여담으로 커밍아웃 해프닝때 키스를 자주한게 재조명 되기도 했다.
- 정말 여담이지만, 카시야스의 어머니가 그를 임신했을 때 바스크 지방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이때 한 할아버지가 "지금 당신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분명히 커서 뛰어난 축구선수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35]
- 한국과의 인연으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골키퍼로 나온 적이 있다. 그때는 승부차기 끝에 이운재가 호아킨 산체스의 킥을 막아내며 카시야스에게 패배를 안긴 바 있다. 카시야스 자신도 스포탈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이운재를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경기에 나온다면 인사하겠다고 하였다.
- 유벤투스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이자 No. 1인,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과의 라이벌 플래그를 형성했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존경한다는 인터뷰를 보였고, 그 후 경기장에서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이 팬들을 흐뭇하게 하고 있다. 링크
- 2016년 6월 1일 A매치를 앞두고 같은 포르투 소속인 석현준에게 SNS로 "Open your eyes"라며 농담(?)을 건넸다. # 룸메이트라고 하고 둘이 친하다니 정말 농담일지 모르지만,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오해 사기 충분하다. 그래도 석현준이 이케르 카시야스에게 'Amigo'(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웃으면서 넘겼으니 그리 큰 논란은 일지 않은 듯.
- 데뷔 초창기 시절에는 아디다스를 잠시 사용했으나 얼마 안 가서 리복의 장갑과 축구화를 착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2011-12 시즌 후반기부터는 아디다스와 계약을 하였고 현재까지도 아디다스의 장갑과 축구화를 착용 중이다. [36]
- 2018년 전후로는 트위터 사용에 열심인데 아폴로 계획 음모론의 신봉자임을 드러내어 이 분야에 대해서는 그다지 유식하지 않음을 천하에 알리게 되었다.
- 2019년 10월 8일 본인 인스타에 Girls can do anything 게시물을 올리면서 페미니즘 지지를 선언했다. #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골키퍼 5인을 선정했는데, 2000년대 최고의 골키퍼 1위에 이름을 올렸다.
-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의 결승전에서 깜짝 등장했다. 이전까지는 디펜딩 챔피언의 일원이 FIFA 월드컵 트로피의 운반을 맡았다는 관례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38]
8.1. 커밍아웃 해프닝[편집]
현지시간 2022년 10월 9일 갑자기 본인 트위터에 게시물을 올리면서 본인이 게이임을 선언했다. # 그리고 푸욜이 5분만에 “이제 우리 이야기를 할 시간이야” 라는 내용의 리트윗을 하트 이모지와 함께 작성하였다. # 이혼한 지 얼마 안 되었긴 했지만,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 타이밍 상 다소 뜬금없다. 이 때문에 해킹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기도 하다. 더하여 최근 언론에서 카시야스와 샤키라의 열애설을 보도하고 이로 인해 카시야스가 격하게 부정하는 등의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본인이 언론의 추측성 보도에 신물이 나서 툭 던진 말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카시야스와 푸욜이 기자들을 엿 먹이기 위해 장난쳤을거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후 카시야스는 트윗을 삭제했다. 이로 인해 동성애를 희화화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점점 굳혀지고 있으며 스페인 언론 아스 역시 카시야스가 언론을 비꼬기 위해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이라고 추측성 보도를 했다.##
결국 공식적으로는 본인이 트위터를 통해 "해킹이 되었었습니다. 지금은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많은 팔로워 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LGTB[39] 커뮤니티에 더욱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라는 트윗을 올리며 해프닝은 마무리되었다. #[40]
그러나 현재 트위터에 또 다시 "고환에 총을 7발을 맞고 싶다"는 글을 10월 26일에 올린 채 2023년 현재까지도 지우지 않고 있다.#
9. WAGs[편집]
1984년생 TV 리포터인 사라 카르보네로와 2009년 만나서 2016년 결혼하였다.[41] 사라는 세계적인 남성잡지 FHM USA에서 뽑은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리포터'에 선정된 적이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보다 리오넬 메시가 낫다느니, 호날두가 자신에게 사적인 감정이 있다니 등등 레알 마드리드 팬이라면 부아가 치밀듯한 소리를 자꾸 해댔고 무리뉴와 레알 선수들이 사이가 안 좋다고 대놓고 방송에서 언급했는데 카시야스는 그녀가 언론인이기 때문에 할 말을 하는 것뿐이라고 변호하기 바빠서 그냥 넌씨눈 취급받았다. 사라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덧붙여 카시야스의 부모님과 남동생은 바르셀로나의 팬이다. 덕분에 카시야스는 레알 마드리드 시절 항상 엘 클라시코가 끝나자마자 동생에게 줄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구하러 다니느라 바빴다고 한다. 다만 바르셀로나 선수들과의 원만한 사이가 월드컵 때는 엄청난 장점으로 작용해 주장으로 월드컵까지 들어올렸으니 까일 일만은 아니다.
2014년 1월 3일, 아들 마르틴 카시야스 카르보네로가 태어났다. 엄마 아빠가 기본적으로 얼굴이 되어서 그런지 정말 잘생겼다. 여담으로 사라의 풀네임이 사라 카르보네로 아르벨로, 사라의 성 위치가 좀만 바뀌었으면 아들에게 카시야스와 오랜 냉전을 겪은 그분을 연상시키는 이름이 들어갈 뻔(...) 2016년에는 둘째 아들 루카스가 태어났다.
그러던 2019년 5월, 난소암 판정을 받았고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았으나, 2021년 2월에 난소암 재발 판정을 받으면서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후 더 선에서 3월에 이혼설이 났지만 본인들이 직접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었으나 3월 13일 이혼했다고 밝혔다.[42] 아마 본인의 병 치료 때문에 바쁜 남편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