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야 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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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1억 부 클럽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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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만화
작가
연재 기간
권수
수치
1위
원피스
오다 에이치로
1997년 ~ 연재 중
106권
5억 1,660만부
2위
드래곤볼
토리야마 아키라
1984년 ~ 1995년
42권
3억부
3위
고르고13
사이토 타카오
1968년 ~ 연재 중
206권
3억부
4위
명탐정 코난
아오야마 고쇼
1994년 ~ 연재 중
103권
2억 7,000만부
5위
나루토
키시모토 마사시
1999년 ~ 2014년
72권
2억 5,000만부
6위
도라에몽
후지코 F. 후지오
1969년 ~ 1996년
45권
2억 5,000만부
7위
슬램덩크
이노우에 다케히코
1990년 ~ 1996년
31권
1억 7,000만부
8위
여기는 잘나가는 파출소
아키모토 오사무
1976년 ~ 2016년
201권
1억 5,700만부
9위
귀멸의 칼날
고토게 코요하루
2016년 ~ 2020년
23권
1억 5,000만부
10위
크레용 신짱
우스이 요시토
1990년 ~ 연재중
45권
1억 4,800만부
11위
진격의 거인
이사야마 하지메
2009년 ~ 2021년
34권
1억 4,000만부
12위
맛의 달인
카리야 테츠(원작)
하나사키 아키라(그림)
1983년 ~ 2014년(휴재)
111권
1억 3,500만부
13위
블리치
쿠보 타이토
2001년 ~ 2016년
74권
1억 3,000만부
14위
죠죠의 기묘한 모험
아라키 히로히코
1987년 ~ 연재 중
131권
1억 2,180만부
15위
소년탐정 김전일
아마기 세이마루 (원작)
카나리 요자부로 (원작)
사토 후미야 (작화)
1992년 ~ 연재 중
83권
1억 1,500만부
16위
철완 아톰
데즈카 오사무
1952년 ~ 1968년
23권
1억부
17위
터치
아다치 미츠루
1981년 ~ 1986년
26권
1억부
18위
북두의 권
부론손(스토리)
하라 테츠오(작화)
1983년 ~ 1988년
27권
1억부
19위
더 화이팅
모리카와 죠지
1989년 ~ 연재 중
136권
1억부
20위
킹덤
하라 야스히사
2006년 ~ 연재 중
69권
1억부
출처 1 / 출처 2




카리야 테츠
雁屋 哲 | Tetsu Kariya


파일:TETSU-KARIYA.jpg

예명
카리야 테츠
(雁屋(かりや (てつ, Tetsu Kariya)

본명
토츠카 테츠야
(戸塚(とつか 哲也(てつや, Tetsuya Totsuka)

출생
1941년 10월 6일 (82세)
중화민국 베이핑[1] (현 중국 베이징시)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학력
도쿄대학 (양자역학 / 학사)
데뷔
1972년 '외톨이 린'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일본인 만화 스토리 작가이자 에세이 작가.

오토코구미, 맛의 달인의 원작자이자 일본인과 천황이라는 천황을 비판하는 걸출한 작품을 쓴 인물이다. 국내에서는 맛의 달인 원작자로 유명하다.


2. 생애[편집]


2차 대전이 한창인 1941년 중화민국 베이핑에서 출생했으며, 2차 대전이 끝난 뒤엔 도쿄에서 지냈다. 도쿄대학 졸업 후 광고 회사 덴츠(電通)에 취직해 재직 중 만화 스토리를 쓰기 시작했으나,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스토리 작가로 활동한다.

맛의 달인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활동 초중기에는 주로 소년지에서 액션 만화를 연재했다. 신인 시절인 1974년에 작화가에 이케가미 료이치를 두고 <오토코구미>를 만들어 명성을 얻게 되었고, 이후 <오토코오오조라(男大空)> 등을 계속 발표한다. 이 시절에 원작을 담당한 작품의 대부분은 몸과 마음이 건전한 청년이 부패한 권력에 대항한다는 좌익 성향이 강한 작품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색적인 것이 야망의 왕국으로, 일본 만화의 괴작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그 전까지의 작품에서 방향성을 전환하여 주인공은 국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암약하는 두 명의 천재 청년으로 설정했으며, 성적인 묘사나 인체 파손적인 묘사는 없지만 대단히 폭력적이고 황당무계한 작품이다. 일본의 정치가나 관료를 배출한 도쿄대 법학부를 대놓고 사회를 더럽히는 장본인이라고 매도하는 등 국가나 관료, 경찰이나 폭력단의 묘사들이 매우 공격적이라서 언론이나 고학력층에게 항의를 받지 않은 것이 의아하기까지 하다. 어디에서도 태클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당시 일본의 사회상이, 정치적 문화적으로 몹시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평.

그러나 야망의 왕국 완결 후 이듬해인 1983년에는 작품 스타일이 크게 바뀐다. 이때 카리야는 시마모토 카즈히코의 만화 '바람의 전사 단'의 원작자를 했는데 이것도 시작은 하드보일드 극화물이었는데 시마모토가 개그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고 개그를 넣어버렸다고 한다.[3] 카리야는 "뭐지? 나도 개그를 해야하나?" 라고 당황했고 개그 만화로 노선을 변경했다. 그런데 이 만화 반응이 의외로 괜찮아서 그동안의 '폭력 만화 전문 원작자'라는 이미지가 희석되어 여러 장르의 작품 의뢰가 들어오게 되었고 카리야 테츠 스스로도 개그 만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주 유명한 작품은 아니지만 카리야 개인적으론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한다.[4]

그리고 카리야는 그 때까지의 방향성과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지닌 맛의 달인을 '빅 코믹스 스피릿'에 연재하기 시작한다. 이 만화는 오토코구미에 이은 카리야의 히트작이 되었다.

맛의 달인은 일식을 중심으로 하는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 대해서 대단히 정치적으로 배려가 잘 돼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절 일본의 학살과 만행에 대해서도 대부분 인정하고 비판하며, 이런 점은 한국편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지한파로 알려졌으며, 일본 내에서는 반천황주의자로도 활동 중이라고 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한국에서는 묘하게 평가가 높지만 정치적인 면으로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좌익판 고바야시 요시노리라는 비평도 있다. 특히 이러한 평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 저서인 <박쥐를 쏴라!(蝙蝠を撃て!)>로 특정 정치가를 지정하여 공격하는 구도는 고바야시의 대표적인 수법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우익은 카리야를 부모의 원수 보듯 싫어하고 중도도 카리야가 표현하는 정치 성향과 여러 행보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일례로 맛의 달인에서 "일본 천황백제의 핏줄이다." 라는 천황의 백제 기원을 언급하기도 했고, 일본 수상들이 과거사에 대해 개인적으로 사과했을 뿐, 국가가 사과한 적이 없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일본 도예 문화의 발달은 임진왜란 때 한국에서 납치해 간 도공들 때문에 가능했다라는 말도 작중에서 한 적이 있다.[5] 전체적으로 전쟁의 피해에 대해 언급하며 전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는 주의. 이 때문에 2ch 및 일본 내 우익계에게 많은 비난과 심할 경우엔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물론 과거의 가락이 죽지 않았는지 맛의 달인에서도 주인공 지로의 입을 빌어 도쿄대는 일개 대학이 나라를 조져놓은 케이스로 세계 최고 수준일 거다라고 까기도 한다(...). 그러는 본인도 도쿄대 출신

자녀 교육 문제로 1988년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갔으며 호주가 마음에 들어서 수십 년 이상 호주에 거주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맛의 달인에서 오스트레일리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높다. 일각에선 우익들의 보복 협박 때문에 호주로 도피했다는 말이 정설처럼 돌고 있으나 그가 반천황적인 성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호주로 간 뒤 한참 뒤인 90년대 이후부터이므로 사실이 아니다. 88년 때만 해도 카리야 테츠는 우익의 협박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그는 호주에 간 뒤 일본에선 볼 수 없었던 여러 자료와 증언을 접하며 일제의 대한 만행을 직접 알고 나서 성향이 바뀐 걸로 보인다. 또한 그러한 성향을 내비친 이후에도 취재를 위해 일본에 머물러 있는 시간도 굉장히 많은 편이라[6] 우익 인사의 보복을 회피하러 호주로 갔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7].

중국 출신이다 보니 중국 음식에 대해 다루는 비중도 큰 편이다. (물론 아시아 요리를 논하는데 중국 요리를 빼면 안되긴 하지만)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김인식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비난했다.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발언을 공식 석상에서 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다. 실제로 이는 국내에서도 조금 논란이 일었다. 이를 비난한 것 때문에 국내찌라시언론에 의해 좋은 떡밥이 되어 '혐한 작가가 대표팀을 욕한다 카더라'는 식으로 과장되어 퍼졌다. 김인식 감독 비판 때문에 이 작가를 모르는 사람 가운데 우파로 여기는 경우 마저 있다.

WBC 결승이 끝나고 난 뒤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면 WBC를 통해 표출된 내셔널리즘을 까고 있다.

맛의 달인에서 포경을 관대한 시각으로 그리고 있어서 까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다만 작중에서도 멸종 위기의 고래를 포경하는 것(예:참고래)에서는 반대 입지에 섰으며, 그가 비난한 것은 이미 멸종 위기에서 벗어난 밍크고래를 멸종 위기라고 싸잡는 것과[8] 머리가 좋은 동물이라서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2014년 1월 일본 '니치고 프레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며, 이 여파로 일본 음식이 장기적으로 매우 어려운 지경에 이를 것이다. 또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을 통해 해외에서 싼 음식물이 들어오게 되면 (일본 음식은) 앞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라고 인터뷰를 했다. 또한 "내가 직접 후쿠시마 방문했다가 갑자기 밤마다 코피를 쏟고 알 수 없는 피로감에 고생했다. 그런데도 일본 병원에서는 '코피와 방사능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라고 하더라." 라며 "잔인한 이야기이지만 후쿠시마 인근은 더 이상 사람이 살아서는 안되는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때문에 5ch나 우익 성향 사이트나 블로그 등에서 주구장창 까이고 있다.

UFO전사 다이아포론과 특촬물인 메가로맨의 원작을 담당하기도 했다.


3. 여담[편집]


  • <마스터 키튼>의 절판에 관한 의혹에 휘말려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을 참조하자.

  • 한국과는 상관이 없으나 일본 내의 특정 회사나 상품을 작품 중에서 언급하는 수법에 대해서는 많은 비난이 있다.

  • 작중에서 다루는 지식들에 적지 않은 오류가 있으나 후에 단행본화되거나 재판될 때 이것을 수정하거나 정정문을 내지 않는다.

  •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때 민주당을 비난하는 자민당을 비판했다. 사고 당시 집권당이 민주당이므로 기본적으로 비난을 받을만은 했지만, 오랜 자민당 집권시기에 누적된 원전계의 병폐에 대한 자기 책임을 외면하고 정쟁에 나선 것에 분노한 것. 그러나 정치적 반대자들로부터 비난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결국 카리야는 해당 글을 내렸다.

  • 폭력 만화의 원작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 성격하는 편이다. 자신의 블로그 중에 하나인 <오늘 또 다시(今日もまた)>에서 2008년 6월 23일자로 머리 염색에 대한 글을 올렸는데 '일본인은 육체적으로 서양인에게 도저히 상대가 안되니 머리로 겨룰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머리를 물들인 자들한테는 일절의 지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머리를 염색한 크리에이터의 창작물은 거품같아서 2년도 못 간다', '머리를 염색한 크리에이터들은 패배자', '더럽다'같은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막말을 하는 편이라 자신을 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낸 주간지에 대해서 원색적인 비난을 한 적도 있다.

  • 고양이에 대한 에피소드를 여러 번 다룬 것으로 보아 개인적으로 고양이 덕후로 추정된다. 개는 상대적으로 등장이 적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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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왕징웨이 정권이 장악한 상태였다.[2] 참고로 호노오의 계산으로는 자신이 카리야가 보내준 원작 분량을 그대로 그려내려면 무려 80~90페이지가 필요한 상황이라 칼질과 초압축이 불가피했다.[3] 시마모토가 본인의 신인시절을 소재로 재구성한 만화인 아오이 호노오에서는 '이제 1화인데 과도하게 많은 원작 원고+할당된 잡지 페이지는 고작 32페이지[2]+이번이 첫 연재인 신인 만화가 시마모토+진지한 만화는 완급조절 미숙함'이라는 환장의 4중주로 인해 신인으로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장기 분야인 개그 만화로 뒤틀어서 그린 것으로 나온다.[4] 정작 시마모토는 멋대로 그려서 카리야가 분노했을 거라고 생각했고 카리야에게 처맞을 것 같아서 25년 동안 피해 다녔다고 한다. 그럴 만도 했던 게 카리야는 그전까지 자기가 쓴 원작을 편집자나 그림작가가 멋대로 각색하면 극렬히 화를 내는 것도 모자라 더 격해지면 주먹까지 나가는 걸로 업계에서 유명했고, 실제로 사람을 팬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당시 시마모토의 담당 편집자도 시마모토의 원고를 카리야에게 전달하는 그 순간까지 겁에 질려있었다고 한다.)[5]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맞는 말이다. 실제로 임란 당시 도공을 많이 납치해 간 것도 사실이며, 일본의 만화 효게모노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조선에선 서민들이 대충 쓰던 막사발이 일본에선 엄청난 명물 다기로 평가받아 다이묘들이 비싼 값에 구입하기도 했기 때문이다.[6] 반 년 넘게 취재하는 경우도 있다.[7] 다만, 그와는 별개로 진짜로 호주의 정치 풍토가 마음에 들어서 그곳에서 살고 있는 것일 가능성은 크다. 실제로 호주는 급진 좌파 성향이었던 전(前) 수상인 존 커틴을 자국의 국부로 숭앙할 정도로, 상당히 사회 분위기가 진보적이다. 한국에도 카리야 테츠와 같은 사례가 있었는데, 바로 서재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에 비하면 훨씬 진보적인 분위기가 강한 미국 사회를 마음에 들어하던 와중에, 그동안 자신이 몸담았던 개화운동과 독립운동이 모두 좌절되자 아예 미국에 뿌리를 박은 것이다.[8] 안타깝게도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점점 수가 줄어가고 있다. 그나마 그 숫자가 다른 고래보다 많았던 것은, 다른 고래에 비해 크기가 작아 오랫동안 포경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