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루스 주제 카스칠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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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1927년 출생
- 1987년 사망
- 1945년 데뷔
- 1965년 은퇴
- 리우데자네이루 출신 인물
- 브라질의 남자 축구 선수
- 골키퍼
- 플루미넨시 FC/은퇴, 이적
- 파이산두 SC/은퇴, 이적
- 브라질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참가 선수
-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참가 선수
-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 참가 선수
- 1962 FIFA 월드컵 칠레 참가 선수
- FIFA 월드컵 우승 선수
- FIFA 월드컵 다회 우승 선수
- 브라질의 코파 아메리카 참가 선수
- 1953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페루 참가 선수
- 1957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페루 참가 선수
- 1959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아르헨티나 참가 선수
- 브라질의 남자 축구 감독
- EC 비토리아/역대 감독
- SC 인테르나시오나우/역대 감독
- 과라니 FC/역대 감독
- 그레미우/역대 감독
- 산투스 FC/역대 감독
- SE 파우메이라스/역대 감독
- 자살한 축구선수
1. 개요[편집]
브라질의 전 축구 감독.
2. 생애[2][편집]
2.1. 선수 생활[편집]
2.1.1. 클럽[편집]
카스칠류는 플루미넨시 FC에서 통산 698경기 출전으로 팀내 최다 출전 기록 보유자이며 420승, 777실점, 255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2.1.2. 국가대표[편집]
카스칠류는 니우통 산투스와 더불어 브라질 대표팀 사상 최초의 FIFA 월드컵 4회 출전 기록을 남긴 선수이다. 그러나 카스칠류가 주전으로 뛴 대회는 1954년 한 번에 불과하다. 카스칠류는 1950년에는 바르보자, 1958년과 1962년에는 지우마르의 백업 골키퍼였다.
2.2. 이후[편집]
카스칠류는 감독으로 여러 팀을 지휘했고 최고의 성과는 1984년의 산투스 FC를 이끌고 거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이었다.
카스칠류는 1987년 2월 2일, 아내를 만난 후 창문 밖으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카스칠류가 우울증을 앓았다고 추측했지만 그의 가족들은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2006년, 플루미넨시 FC는 자신들의 본부에 카스칠류의 동상을 설치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카스칠류는 뛰어난 기술과 함께 불가능한 선방을 해내던 골키퍼로 유명했다. 카스칠류의 행운을 곁들인 선방으로 인해 상대편 서포터들은 그를 행운의 사람(Leiteria), 플루미넨시 FC 서포터들은 세인트 카스틸류로 불렀다.
또한 카스틸류는 페널티 킥 방어에도 강점을 보였는데 1952년 한 해에만 6개의 페널티 킥 세이브를 기록했다.
4. 뒷이야기[편집]
- 카스칠류는 색맹이어서 밤 경기에 흰 공을 보는 것에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 카스칠류는 1957년에 왼손 새끼손가락을 다섯번째로 다쳤다. 의사는 두 달간의 치료를 권했지만 카스칠류는 경기에 빨리 복귀해야 한다며 손가락을 잘랐고 절단 후 2주 만에 필드에 복귀했다.
5. 수상[편집]
5.1. 선수[편집]
5.1.1. 클럽[편집]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 3회: 1951, 1959, 1964(플루미넨시 FC)
- 캄페오나투 파라엔시 우승 1회: 1965(파이산두 SC)
5.1.2. 국가대표[편집]
5.2. 감독[편집]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 1회: 1984(산투스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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