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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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최은철.jpg

최은철
Eun Chul Choi

출생
1983년 12월 24일 (40세)
대구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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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학력
대구상원고 - (대구보건대)
신체
188cm, 125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12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BAL)
소속팀
유마 스콜피온스 (2007)
오렌지 카운티 플라이어스
베라크루즈 윈터 리그 (2010)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 마이너 (2012)
[ 펼치기 · 접기 ]
보위 베이삭스 (2012) / AA

지도자
GCL 오리올스(Rk) 투수코치 (2012)
영종 파이오니아 유소년 야구단 감독 (2019~2022)
프런트
볼티모어 오리올스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 (2013~2014)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스카우트 경력
4. 여담



1. 개요[편집]


前 야구선수, 야구코치, 야구감독. 포지션은 투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쭉 선수생활을 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는 일반적인 케이스들과 달리 고등학교 시절 단 .개월만 선수생활을 하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더블A를 경험, 루키 리그에서 투수코치, 구단 스카우트까지 하게 되는 만화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2. 선수 경력[편집]


어려서부터 야구를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하지 못했고 고등학교 2학년, 테스트를 받고 강한 어깨 덕분에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처음 해보는 단체 생활 등에 적응하지 못하고 두 달만에 그만두었다. 대구보건대에 진학해 평범한 대학 생활을 하던 중, 가까운 친구였던 안지만이 마운드에서 투구하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야구에 열망을 느꼈고 안지만의 소개로 알게 된 지인을 통해 2003년 말, 세계사이버대학 야구장학생으로 뽑혀 야구를 다시 시작하게 된다. 2004년, 대만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는데 무리해서인지 어깨에 부상이 오게 되고 결국 수술대에 오른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LG 트윈스의 입단 테스트를 받기 위해 훈련하던 2005년, 설상가상으로 팔꿈치 통증까지 찾아오며 토미존 수술까지 받고 만다.

그럼에도 야구를 놓지 않았다. 그러던 중 심수창의 큰 아버지이자 당시 시카고 화이트삭스 한국 담당 스카우트였던 심형식씨가 우연히 최은철이 훈련하는 것을 보게 되고 미국으로 가보는 것을 권유한다. 하루 10시간씩 6개월을 혹독하게 훈련하고 2007년 초 미국으로 갔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계약은 아쉽게 무산됐지만 심형식씨는 50년 가까이 스카우트 활동을 해온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레이 포이트빈트를 소개해준다.

그리고 2007년 1월 25일, 독립 리그 팀인 유마 스콜피온스에서 야구 인생에서 처음으로 심판을 두고 정식 경기에서 투구를 했다. 야구를 체계적으로 배워본 적 없었지만 94마일(151km/h)까지 던졌다고 한다. 2008년에는 오렌지 카운티 플라이어스에서 뛰었는데 무리한 등판으로 성적이 좋지 않았다.

2009년, 스승이었던 심형식씨가 별세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미국 독립 리그인 애틀란틱 리그의 초청장을 받아놓은 상태였지만 신고선수로라도 국내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화 이글스SK 와이번스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지만 보름이나 되어서야 계약 불가 소식을 듣고 급히 미국으로 가 애틀란틱 리그의 테스트는 합격했지만 비자가 나오는 데 시간이 걸려 리그에 참가하지 못했다.

2010년 초,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본인도 세미프로 선데이 리그에 참가하며 야구를 계속 이어갔다. 레이 포이트빈트는 그에게 지도자를 권유하려고 했지만 선데이 리그에서 30이닝 무실점을 하는 것을 보고 멕시코 윈터리그를 추천한다.

더블A 수준정도인 베라크루즈 윈터 리그에서 7경기에 선발로 나와 완봉승 포함 3승 1패 2.10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2011년에도 이 리그에서 뛸 예정이었지만 팀이 재정난으로 해체하며 무산되고 말았다. 신생팀 NC 다이노스의 입단 테스트를 보기도 했지만 또다시 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그러던 중 레이 포이트빈트의 소개로 볼티모어 오리올스댄 듀켓 단장이 최은철에게 관심을 보였고 마치 꿈만 같이 더블A 계약을 맺게 된다.

제대로 된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범경기에서 미네소타 트윈스, 탬파베이 레이스,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총 8이닝을 던졌다.

3. 지도자, 스카우트 경력[편집]


그러나 스프링캠프 종료 시점, 구단에서는 코치직을 제안했다. 본인도 아쉽긴 했지만 실력으로는 다른 선수들을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루키 리그의 투수코치로 부임한다. 이 때 싱글A, 더블A를 순회하며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하기도 했는데 싱글A에서 조시 헤이더를 만나기도 했다. 2017년에 지도하던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 전지훈련을 갔다가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마이너 리그 코치 연봉이 너무 적었기에 레이 포이트빈트는 스카우트 일을 배워보라고 권유했고 그렇게 스카우트 일을 시작하게 된다.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를 맡으며 윤정현, 윤석민과의 계약을 이루어내기도 했지만 모두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서인지 2014년 이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파일:최은철 윤정현.jpg

2015년에 인천에서 야구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이름은 Choi's Elite Baseball Group으로 야구 교육, 재활, 체력센터 등을 운영 중이다.

이후 선수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학교 수업을 받고 남는 시간에 취미로 야구를 하는 아이들을 모아 유소년 야구단을 만들었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인 '개척하다' 라는 뜻의 파이오니아(pioneer)를 이름으로 정했다. 야구를 통해 건강과 삶의 지혜를 배우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한다.

파일:최은철 감독.jpg


4. 여담[편집]


  • 프로의 체계적 훈련 없이 이미 95m를 넘기는 공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엄청나게 강한 어깨를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 비선수 출신인 한선태LG 트윈스와 계약하며 최은철의 이야기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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