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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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최연종.jpg
본관
삭녕 최씨[1]
출생
1925년 6월 4일
경상남도 사천군 읍내면 용당리
(현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용당리)
사망
1999년 11월 24일
경상남도 사천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편집]


최연종은 1925년 6월 4일 경상남도 사천군 읍내면(현 사천시 사천읍) 용당리에서 태어났다. 1943년 경남 진해의 일본군 제51해군항공장에서 군속(軍屬)으로 근무하던 중 독립운동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고, 박준기·김차형(金此炯)·김병길(金秉吉) 등 11명의 동지와 함께 친목회를 가장한 항일결사 일심회(一心會)를 조직하였다.

일심회는 연합군이 진해에 상륙할 때 무장봉기하여 항공창을 점령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한 준비활동으로 첫째, 일제의 항공기 생산을 방해·지연시키고, 둘째, 한국인 기술자의 처우개선을 주장하며, 셋째, 일본인 노동자를 배척하고, 넷째, 한국인 노동자의 투쟁의식을 고취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항공창의 항공기와 변전호를 폭파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추진하던 중 동회의 조직이 노출되어 1944년 1월 11일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4개월간에 걸친 가혹한 고문을 당한 후 1944년 7월 12일 군법회의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 8.15 광복 직후 출옥했다.

이후 사천시에서 교육계에 종사하면서 초등학교 교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1999년 11월 2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최연종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1999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부사공파 21세 연(演) 인(寅)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