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국(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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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최성국
崔成國 | Choi Sung-Kuk


출생
1983년 2월 8일 (41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범죄
승부조작, 음주운전
학력
정명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중퇴)
포지션
공격수
소속
울산 현대 호랑이 (2003~2006)
가시와 레이솔 (2005 / 임대)
성남 일화 천마 (2007~2010)
광주 상무 불사조 (2009~2010 / 군 복무)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1)
FK 라보트니츠키 (2011~2012)[1]

국가대표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26경기 2골 (대한민국 / 2003~2011)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승부 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확인되어 한국프로축구연맹대한축구협회뿐만 아니라 국제축구연맹에 의해 공식적으로 축구인으로서의 모든 경력과 자격이 말소되었다.


2. 선수 경력[편집]


탁월한 드리블과 돌파 능력으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아, 고등학생 시절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2] 2002년 월드컵 직전 거스 히딩크 감독이 특별히 눈여겨보며 정조국, 여효진, 염동균 등 3명과 함께 훈련 멤버로 참가시키기도 했다. 다만, 최후의 경쟁에서 이들은 나란히 탈락했다.[3] 그래도 어린 나이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훈련에 합류로 충분한 가능성을 인정받는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거의 유일한 드리블러형 선수였다.

그런 기대에 걸맞게 2003년 청소년 대표팀[4]2004년 올림픽 대표팀을 거치며 에이스로 활약한다. 최성국을 가장 돋보이게 한 활약은 중국과의 올림픽 지역 예선에서 한국팀 수비 진영으로 부터 중국 골에리어까지 폭풍 드리볼로 조재진에게 결승골을 어시스트 해준 장면이다.

2003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계약금 3억으로 입단한다.[5]

당시 울산은 해외진출을 앞둔 이천수의 공백을 메울 대체자가 필요했다. 최성국은 그 기대에 부응하여 27경기 7득점 1도움을 기록했고, 팀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울산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승권 팀이었는데, 하필이면 성남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K리그 3연패 전설을 남긴 시기다.

이 해에 청소년 대표 시절 동료 정조국안양 LG 치타스에서 데뷔했고, 둘은 신인상 경쟁을 벌였다. 결국 신인상은 12득점 2도움을 기록한 정조국이 차지했다. 또한 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당시 움베르투 코엘류가 이끌던 국가대표팀에도 차출되어 활약하였고, 인천에서 열린 오만과의 2004 아시안컵 지역예선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하는 등 나름 활약했다.[6]

파일:attachment/Choi_Sung-Kuk_Kashiwa_Reysol.jpg

2004년 올림픽 대표팀 차출로 인해 19경기 1골 4도움으로 저조했고, 그 영향인지 2005년엔 해외 진출을 요구해 결국 J리그 가시와 레이솔로 6개월 임대를 간다.

물론 황선홍, 김도훈, 최용수J리그에서 성공한 공격수들의 전례가 있긴 했으나, 엄연히 이들은 아시아 어느 무대에 내놓아도 꿀릴 것 없는 대표팀의 간판급 선수로서 진출했다. 반면 최성국은 갓 유망주 태를 간신히 벗었을 뿐 확실한 검증조차 받지 못했으며, 더욱이 팀에 녹아들 시간은 부족하고 고작 반년 기간내에 성과를 보여야 했다. 당연히 일본 진출은 실패로 끝나고 초라하게 귀국하고 만다.

최성국의 불운은 계속되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명예 회복을 노렸지만, 피지컬을 중시했던 조 본프레레 감독은 좀처럼 최성국을 눈여겨 보지 않았다. 하지만 최성국은 K리그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으로 길이남을 시합에서 활약하며, 아직 리틀 마라도나는 끝나지 않았음을 만천하에 증명한다.



2007년 이적료와 연봉 등 30억 2년 계약으로 성남으로 깜짝 이적하면서 K리그 팬들을 놀래킨다. 심지어 등번호는 신태용이 성남에서 12년간 달고 뛰었던 7번이었다. [7] 물론, 성남은 측면 공격수가 절실한 상황이었으나 반면 울산은 상주 상무에서 정경호가 복귀한다고는 해도 최성국을 잉여 자원으로 분류하기는 좀 애매했다. 또한 당시 핌 베어벡 감독이 이끌던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어 2007년 AFC 아시안컵 본선에 출전하였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득점해 사우디전 무승 사슬을 끊는 듯 했지만 페널티 킥으로 동점골을 허용해 1-1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2008년 K리그, J리그 양국 올스타팀이 격돌한 조모컵에서 최성국은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MVP를 수상한다. 결국 최성국은 성남에서 2시즌을 뛰고, 2009년 광주 상무 불사조에 입대한다. 성남에서 뛴 2년 동안 남긴 기록은 54경기 10득점 5도움. 상무에서 꾸준히 뛰며 폼을 잃지 않았으나,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이후 대표팀 감독에 취임한 조광래 감독이 10월 12일 한일전에 선발했다. 최성국은 선발출장했으나, 시합은 득점 없이 비겼다. 광주에서 2시즌 동안 52경기 13득점 5도움을 기록하고, 2010년 10월 31일 전역하여 원 소속팀 성남으로 복귀했다. 이후 성남은 2010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FIFA 클럽 월드컵에 참가하는데, 최성국이 23인 엔트리에 들었다.

FA 자격을 취득하고는 "프리미어리그 이적 희망' 발언을 했다. 그러자 여러 축구 커뮤니티의 반응은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 말이냐?" 반응을 보일 정도로 영 좋지 않았다. 결국 2011년 1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다. 이적료 13억원이다.

수원으로 이적을 한 지 불과 1주일만에 수원의 주장이 되었다. 윤성효 감독이 등번호로 몇 번을 원하는지 묻자, 최성국이 10번을 원한다며 '10번만 주면 주장이라도 하겠다' 해서 주장 완장을 건넸다고 한다.[8] 그런데...


3.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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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본격화되면서 최성국도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최성국 본인은 결백하다고 부인하면서 승부조작 방지 워크숍에 참석했을때에도 심지어 어이없다는듯 피식 웃음마저 보이며 절대 안 했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자진 신고 기한 마감일 하루 전인 6월 29일, 김동현의 권유를 받고 광주 상무 시절 "승부조작 모의에 가담했다."고 시인하며 이를 자진 신고했다.

본인은 이후에도 "모의에 참여만 했을 뿐, 돈은 받지 않았다"라면서 관여 사실을 계속 부인했고, 수원 구단과 팬들도 최성국의 말을 믿고 그를 옹호해 줬지만,[9] 7월 8일, 검찰 측의 발표를 통해 김동현의 권유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김동현을 비롯한 주변의 많은 선수들을 직접 끌어들이고 승부조작을 직접 조장한 브로커 역할을 수행했음이 밝혀졌고,#

결국 그간 최성국을 옹호하던 소수의 이들조차 모두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연봉에 시달리다 돈 몇 백만원에 양심을 판 단순 조작가담 선수들조차도, 축구협회의 강력 대응 방침에 따라서 전원 영구제명을 면치 못하는 판국인데, 최성국처럼 고액의 연봉을 받던 선수가 브로커 노릇까지 했으니, 용서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수원으로써는 돈은 돈대로 날리고 피해만 입었다.

3.1. 처벌[편집]


8월 25일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의해 영구 제명 처분을 받았으나,# 승부조작을 자진 신고한 점이 참작되어 5년의 보호관찰 기간과 500시간의 봉사활동을 거친 뒤 심사를 거쳐 복귀할 수 있는 길은 열어 놓았다. 10월 5일 축구협회에 의해 판결이 확정되어 제명 처분되었다.

제명 처분 후 "죄송하다는 말씀은 당연하고, 아껴주신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긴 것 깊이 반성하고 회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죄를 주장하면서 국내 리그가 아니라면 해외 리그에 진출하겠다고 뜻을 밝히면서 논란이 되었다. 원칙적으로 프로 축구선수가 해외로 이적할 경우 소속팀이 속한 축구협회에서 국제 이적 동의서를 발급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유로 동의서 발급을 거부당했을 경우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피파(FIFA)에서는 1년짜리 임시 이적 동의서를 발급해준다. 최성국은 이런 제도상의 허점을 이용해서 해외 이적을 추진했기 때문에 축구팬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마케도니아 FK 라보트니츠키로 이적이 확정되었다. 전번 리그 9위인 하위권 팀이다. 뭔가 초라한 해외진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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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최태욱은 응원이나 한답시고 당시 트위터에다 이렇게 썼다가 분노한 축구 팬들의 항의로 재빨리 삭제했다. 어이가 없어하는 축구 팬들사이에서는 "너도 승부조작했냐?"라고 조사들어가야 한다고 까기도 했다. 결국, 최태욱 본인이 스스로 경솔했다고 인정하는 사과 트윗을 올렸는데 덤으로 양준아도 쉴드를 치다가 까였다.

하지만 이 타국가로의 이적도 FIFA에서 제동을 걸었다. FIFA는 징계위원회를 통해 국내에서의 제명이 해외에서도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는 한국프로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 아시아 축구 연맹, 유럽축구연맹, 마케도니아 축구협회 등 모든 유관 기관에 통보되었다. 최성국에게 부과된 영구제명은 국내경기는 물론 국제경기와 친선경기 등 모든 공식 경기에 적용되었다. 다시 말하면 축구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거의 막혔다는 것이다.[10][11]

또한, 이 경우는 승부조작에 의한 징계를 피해서 외국으로 튀는 선례에 FIFA가 직접 제동을 건 것. 이후 FIFA에서 최성국의 징계를 5년 자격 정지라고 발표했지만, 대한축구협회영구제명이니까 확인해달라고 문서를 보냈고, FIFA는 "5년은 실수였다."라고 의사를 보이면서 다시 영구제명으로 정정했다고 한다.


3.2. 2023년 대한축구협회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및 번복 사건[편집]


2023년 3월 28일, 2023년 대한축구협회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사건으로 12년 만에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영구제명 징계를 사면 받았다.# 사면 일자 기준으로 만 40세로 나이가 있는지라 선수로 활동할 수는 없겠으나[12], 축구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은 열렸을거라 봤다. 그러나 거센 논란에 직면하였고 2023년 3월 31일 대한축구협회에서 승부조작 사면에 대해 전격 철회를 공식 발표함으로서 사면은 없던 일이 되었다.

사면 관련해서 자기도 시큰둥한 인터뷰를 하며 대한축구협회는 조롱거리가 되며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는 걸 인증했다.

인터뷰마다 자기 주장이 다른데, 가장 최근의 영상에선 "사면 전·후 KFA로부터 연락받은 건 없다"면서 "뉴스로 사면 소식을 접했다"고 밝혔다. 이어 "처음엔 얼떨떨했지만 조금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대중이 KFA의 사면 결정으로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며 “내 기억에서 축구를 완전히 삭제하고 살아야 하느냐. 난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개소리를 지껄였다. #


4. 제명 이후[편집]


2012년 6월, 분당구에 있는 한 병원 원무과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병원 간부와 잘 알던 사이라서 취직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사를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낱같은 현역 복귀를 꿈꾼다는 헛생각을 하고 있었는 듯하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현역 복귀를 꿈꾼다는 발언을 하였다. 불쌍하니 길을 열어주자는 극소수의 동정론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절대 다수는 "한 집안의 가장이니 일하는 것은 당연하고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줄 수도 있지만 두 번 다시 축구를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축구 선수로 나서겠다고 열심히 비정기 연습경기에서 나섰다고 한다. 2013년 1월 14일 전 국가대표 선수이자 부천 SK 출신인 이임생이 감독이 이끄는 싱가포르 홈유나이티드와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U-20 대표팀의 연습 경기(U-20 대표팀이 7-2 승)에서 뻔뻔스럽게도 홈 유나이티드 팀 게스트 선수로 나와 경기에 참여했다.

경기가 끝난 뒤 스포츠서울지 인터뷰에서 "축구선수로 나와 활약하는 게 사죄하는 길이다." 라는 뻔뻔한 발언을 했다. 이에 기자가 "당신은 지금 FIFA에서도 영구 제명 당해서 축구선수로 길은 어렵지 않느냐? 그리고, FIFA 영구제명은 축구선수 뿐만 아니라 지도자로도 박탈이다."는 말에 "몰랐다"는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하고는, "기약은 없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겠다."는 태도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죄 모두 씻고 팬 앞에 설게요."라며 그라운드에 복귀하겠다는 망상을 하고 있는 듯한 기사가 또 나왔다. 그런데, 죄가 무슨 기름때인가? 죄를 씻겠다는 말 자체가 희한한 거다. 사람이라면 어떤 죄라도 평생 짊어지고 가는 것인데... 더구나 승부조작같은 더러운 짓을 하고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전혀 반성을 안 하고 있다는 소리다.

# 2013년 4월 11일 한 기자감성팔이 식의 최성국의 인터뷰를 내놓아 네티즌들의 몰매를 맞았다.

2013년 7월 11일 프로축구연맹은 보호관찰 기간에 봉사활동을 50% 이상 성실히 수행하고 뉘우치는 빛이 뚜렷한 선수들의 보호관찰 기간을 절반 이상 경감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최성국은 현역 복귀가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이에 축구팬들의 반응은, 도대체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생각을 했어요?? 반응이고, "어라? 엿맹이 승부조작 브로커 짓을 하고 있네?"라고 까기도 했다.

# 이에 이용수 해설위원은, 승부조작 선수들의 복귀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하는 바람에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서 축구팬들을 충공깽에 빠뜨렸다. 단 승부조작 가담자들은, 대한축구협회가 선수 자격 박탈을 내린 상태이기 때문에 이 조치가 해제되어야만 복귀가 가능하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K리그 경기에서 K리그의 모든 구단의 서포터들이 연합하여 한 목소리로 한국프로축구연맹을 비판하는 걸개를 곳곳에 매다는 식으로 비난하면서 프로축구연맹도 당황해 하고 있다.

이 상태로 복귀를 해봐야 온갖 비난과 야유가 나올 게 뻔할 뻔자이며, 골을 넣었어도 골키퍼한테 돈을 쳐먹였다는 비난도 당연히 나올 테니, 결국 대한축구협회에서 조기 사면은 없는 것으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최성국은 앞으로 최소 3년을 더 기다려야만 복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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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남양주시에 위치한 모 축구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많은 이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고 있다. 이 덕분에 한국프로축구연맹마재윤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당사자들을 철저히 지워낸 한국e스포츠협회비교당하면서 까이게 된다.

2014년 5월부터는 신림동에서 '최성국의 Mr.꼬조라는 간판을 내걸고 술집을 운영 중이었는데 망했다는 증언이 있다. 2015년 3월 영화 세계일주 VIP 시사회에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그리고 연예인야구연맹 챔피언스 투수로 뛰기도 한다. 2015년 5월, 불법 도박에 대한 종편 방송 뉴스에 나와 "사죄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그라운드에 와서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고요. 다시 한 번 제2의 인생을 살고 싶고." 라는 철면피 짓을 시전했다. 게다가 여기서는 후배가 부탁한 걸 마지못해 조작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직접 승부조작 브로커 짓을 한 것을 거론하지도 않고 억울하게 영구제명을 당했다고 자기변명이나 또 지껄였다. 이는 몇 달 후에 출연한 다른 뉴스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일단 여러 기행이나 사고에도 불구하고 5년의 보호관찰기간 자체는 유지되었기에 별 이변이 없다면 보호관찰기간이 끝나는 2016년 8월. 징계가 해제되었다. 물론 그 죄질을 감안할 때 받아줄 곳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성국 본인은 5년이라도 어떻게든 채워서 선수로 복귀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승부조작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능할지 몰라도 위에 서술하듯이 피파 영구제명을 당한 터에 과연 그런 걸 각오하면서 받아줄지? 게다가 나이가 나이이다. 1983년 생인 최성국이 2016년 말에 운좋게 복귀한다 한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뛸 수 있을지가 아니라 몇 개월이나 더 뛸 수 있을지 모른다.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거의 40살까지 뛰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클로제가 세계적인 선수이자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내에서는 최고의 레전드라서 가능한 거다. 아무리 대한민국이라고 해도 최성국은 박지성같은 선수가 아니다. 그냥 포기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면교사 삼는 게 더 낫다.

복귀해도 주전으로 뛰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거니와 뛸 수 있다 하더라도 뛸 수 있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을 뿐더러 위 아 더 월드로 욕먹으면서 서포터들까지 분노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징계 기간이 끝나는 2016년 7월에 축구계에서는 여전히 복귀할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13]

2016년 3월에는 토토 분석 사이트에 출연하여 여전히 자기합리화와 변명을 곁들여 그라운드로 가고 싶다고 망상을 풀었다. 유튜브.

이후 조용히 잊혀지나 싶더니 스포플레이[14]에서 하필이면 세리에A 중계를 하게 되었다. 흑역사를 극복하고 다시 상승하고 있던 세리에의 팬들은 단체로 분노를 쏟아내는 중. 한 팬이 스포플레이에 승부조작범에게 해설을 시키냐며 항의했지만 가볍게 묵살당했다.

2016년 12월에는 강남역 인근에 고깃집을 열었다. 최성국은 평소 요식업에 관심이 많았고, 열심히 살기 위해 매장을 오픈하게 되었다고.[15] 그런데 한편으로는 여전히 축구계로 복귀를 꿈꾸고 있다는 사족을 붙였다. 물론 지금도 복귀는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영원히 복귀는 안 된다. 조작 C급들도 안현식이나 내셔널리그로 옮긴 조형익 정도를 제외하면 결국 축구계를 다 떠났는데, B급도 아니고 A급을 받아줄 팀도 없다.

2019년 4월에 서울 역삼동 모처에 축구교실을 열었다.

2019년 10월에는 유튜브에 최성국 TV를 열고, 승부조작에 관련된 당시 정황을 설명한답시고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마구 늘어놓았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16] 요약하자면 승부조작에 가담했지만 대가는 없었고, 조직폭력배의 협박을 받았으며[17], 아들이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싶어하지만 나 때문에 하지 못해 속상하고[18] 어떻게든 축구를 통해 사죄하고 싶다는 것이다.기사 관련 영상 이에 우충원 기자가 '받은 금액이 수십억이든 1원이든 승부조작은 조작일 뿐이다'라며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해당 기사. 승부조작 관련 때문에 거의 댓글이 죄다 악플 뿐이다. 2019년 12월에 올라온 영상을 끝으로 더 이상 올라오지 않고 있으며, 사실상 버려진 채널로 봐도 무방하다. 올라온 게시물도 대부분 축구 강습 관련인데 대부분 좋지 못한 반응 뿐이라 유튜브도 접은 걸로 보인다.[19] 2023년 3월 현재, 최성국TV로 알려져 있던 유튜브 채널은 이름이 바뀌었으며 동영상은 없지만 연결되어있는 아프리카TV 채널이 최성국과 관련없는 내용이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페이지 주인이 바뀐듯 하다.

2023년 4월 5일에 올라온 기사와 영상에 의하면 파주고려FC U-18팀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게 밝혀졌다. 심지어 본인은 영구제명으로 팀 감독을 할 수 없는 상태인데도 남의 명의를 빌려서 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졌다. 기사 영상

곧바로 KBS와 대면 인터뷰가 보도됬는데 자신은 친구가 운영하는 클럽에서 운전[20] 과 간단한 훈련 보조만 한다고 하며 급여는 따로 받지않고 용돈 정도만 받을 뿐 생계를 유지하려면 여기 있으면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5. 두 차례 음주운전[편집]




2013년 12월 27일, 음주운전까지 한 사실이 알려졌다. # 여담이지만 최성국은 승부조작 이후 차도 국산차로 바꾸고 자숙중이라고 밝혔는데, 막상 음주운전 당시 몰고 있던 본인 소유의 자동차미니 쿠퍼였다.[21] # 게다가 이전에도 음주운전으로 벌금형 150만원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6.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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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랜스퍼마크트에서 최성국이 국내에서 승부조작 징계를 받고 이적을 도모했던 북마케도니아의 라보트니츠키에서의 경력을 포함하고 있으며(2011년 9월 1일자 입단), 이듬해인 2012년 3월 16일자로 영구제명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정식 경기에선 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2] 이때 같이 뛰었던 선수로 조한선이 있다.[3] 그래도 23인 엔트리와 동행하면서 이들이 일궈낸 4강 신화를 함께했다. 마치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 예비명단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여 동행한 오현규와 비슷한 상황이다.[4] 당시 멤버가 다름아닌 정조국, 박주영, 조원희, 이호, 오범석, 김영광 등이다. 그야말로 황금세대.[5] 당시 신인선수 계약금 최대상한선이다.[6] 참고로 이번에는 반대로 오만으로 원정을 가서 경기를 한 한국 대표팀은 오만에게 1-3으로 패했고, 이는 오만 쇼크로 남게 되었다.[7] 하지만 이로 인해 당시 K리그 몸값 거품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표주자 중 한 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8] 시즌 개막 전 출간된 팬북에도 실린 내용이다.[9] 일부 팬들은 이를 양심 선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수사망이 좁혀져 오던 상황에서 자진 신고를 한 것인 만큼 이를 양심 선언이라고 보긴 어렵다.[10] 승부조작으로 퇴출된 선수들의 이후를 봐도 자신이 몸담았던 곳에서 계속 남아 있는 경우는 없다. 게다가 최성국은 외국으로의 이적 시도 탓에 승부조작에 관해서는 이미지가 더 떨어질래야 더 떨어질 수 없는 상황이다.[11] 축구 쪽 일을 하고 싶으면 조기축구회나 개인이 축구교실을 차리는 것 밖에 답이 없다는 이야기이다.[12] 같은 연령대에서 골키퍼로 활약 중인 김영광을 제외하면 필드 플레이어로 최성국과 동년배인 선수는 이미 다 은퇴를 했으며, 대부분 지도자로 제2의 삶을 살고있다.[13] 복귀 가능성이 없다는 말이 완전 영구제명으로 조정되어 그런 건지 아니면 죄질이 나빠서 징계가 풀려도 어차피 복귀 못할 선수라서 가능성이 없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는데, A, B급들이 거진 대부분 복귀하는 데 실패했음을 감안하면 후자 쪽이 더 가망이 있어보인다.[14] 스포티비가 아니다. 혼동 주의 바람.[15] 프랜차이즈 고깃집이다. 그러나 2019년 기준으로 공식사이트에서 매장이 없어진게 확인되었다. 블로그에 방문후기가 몇 개 검색되긴 하는데 2018년 이후로 후기가 없다.[16] 현재는 비공개된 영상으로 나온다.[17] 설사 이 점이 사실이더라도 본인이 조직폭력배에게 속아넘어가 승부조작을 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18] 그런데, 아들이 다른 팀도 아니고 최성국이 승부조작을 해서 말아먹은 수원의 유스팀인 매탄고등학교에 다닌다.[19] 올라온 댓글의 대부분이 범죄자한테 축구를 배우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 대다수다.[20] 사실 최성국의 주장이 사실이라도 문제인게 최성국은 이미 두차례의 음주운전 전과가 있다.[21] 물론 차를 또 바꿨을 가능성도 있는데, 중고차라면 갑자기 결함이 생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고차가 아니더라도 기사가 난 시점에서 10개월 지났으니 충분히 차를 바꿀 시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