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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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85년 6월 28일
함경남도 단천군 광천면 와동리
사망
몰년 미상
사망지 미상
종교
천도교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포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3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최석곤은 1885년 6월 28일 함경남도 단천군 광천면 와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1919년 3월 10일 오전 11시 3백명의 천도교 신자들과 함께 천도교당에 모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했다. 군중은 용현리와 하서리를 거쳐 헌병대로 향했다. 이에 단천 헌병분대장이 시위대를 막고 해산을 명령하였으나, 최석곤 등은 시위대에게 헌병의 말을 따르지 말고 끝까지 대항하자고 고무시켰다.

시위대는 곤봉을 휘두르고 투석을 하며 헌병대에 맞섰고 헌병대는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결국 서봉화, 염석하, 염석한, 박홍선(朴弘善), 이영호(李永浩), 김상갑(金尙甲), 이종환(李鍾煥) 등 7명이 피살되었고하고 8명이 부상당했으며 142명이 체포되었다. 이후 체포된 최석곤은 1921년 4월 1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5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최석곤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