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철(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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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基哲(1910.10.16~2002.10.22)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본관은 강릉 최씨. 대한민국의 생물학자, 어류학자


2. 생애[편집]



1986년 6월 10일 KBS2 <11시에 만납시다> 인터뷰 영상.

1910년 대전에서 출생했다. 1931년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청주사범학교 교장[1], 1946년 충주사범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1948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1975년까지 재직하였다. 이 기간에 1957년 미국 피바디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였으며, 196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특히 1976년 정년 퇴임 이후 전국의 초중고교에 공문을 띄워 그곳에 사는 물고기를 조사해 우리나라 전역의 민물고기 서식 실태를 발표해 ‘민물고기 박사’란 이름을 얻었다. 1994년에는 생태계 파수꾼들의 모임인 한국민물고기 보존협회를 발족시켰고, 최근에는 생물학자의 꿈을 키워가는 학생들의 모임인 '곤민모임(곤충과 민물고기를 연구하는 모음)'을 후원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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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담으로 이 시기 화랑세기 필사본으로 유명한 박창화와 함께 근무하였다. 이런 이력때문에 1999년 화랑세기를 다룬 역사스페셜에서 박창화에 대하여 증언하였다.